(2010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 한국 여자축구의 국제적 위상이 급부상하였다. 아직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할만큼 강력한 전력을 구축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크고 작은 메이저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피스퀸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렸던 17세 이하 대회에선 우승, 독일에서 열렸던 20세 이하 대회에선 3위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열린 20세 이하 대회에선 8강까지 올라갔다. 여자 축구 강대국(일본,호주, 북한)들이 아시아에 몰려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요근래에 거두고 있는 여자축구대표팀의 성적은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도 필적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좋은 성적이 단순히 일회성이 아닌 꾸준하게 거두기 위해선 한국 여자축구의 기반이 튼튼해야하지만, 국내 여자축구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녀들은 이 척박한 한국땅에서 힘겹게 자신들의 꿈을 위해 키우고 있다. 10년 동안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여자 고종수'라는 별명을 지닌 수원 FMC의 김결실의 말을 빌려, "한국에서 여자 축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말리고 싶다. 죽자고 해도 남는 건 없다. 기회가 있다면 다른 것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라고 했다. 현재 김결실의 경우에는 피치로 돌아오기 위해 열심히 재활훈련에 전념하고 있다지만, 이 재활훈련에 드는 비용은 자기가 대부분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그녀는 자신이 들어둔 적금까지 깼다고 했다). 특정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국내에서 뛰는 여자 축구선수들이 생계곤란의 위기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겹게 재활훈련을 준비하고 있는 김결실에게 뜻하지 않은 날벼락이 떨어졌다. 바로 그녀가 소속된 구단인 수원 FMC의 해체 통보다.
뒤통수 맞은 수원 FMC, 아무 지원도 못받고 팀 해체 통보를 맞다.
(2010 WK리그 우승팀이었던 수원 FMC, 수원시의 일방적 통보로 팀 해체라는 파국을 맞았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수원 FMC는 수원시로부터 믿기지 못할 통보를 받았다. 바로 수원 FMC의 팀 해체라는 통보다. 그들이 해체되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서 이러하다. 수원 FMC의 성적부진과 수원시 산하에 있는 스포츠팀의 부피 줄이기. 이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기존에 있던 수원 FMC는 해체하면서 수원시에서 제10 프로야구단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아도, 수원시의 통보는 앞뒤 말이 안맞는 셈이다. 그리고 어제 오후, 수원시는 수원 FMC 해체를 공식 선언하였다.
먼저 성적 문제부터 넘어가보자. 창단 첫 해인 2008년 수원 FMC는 도민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염태영 시장이 수원 시장으로 부임한 2010년에는 여자축구의 가장 큰 대회인 WK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도민 체육대회와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하며 무려 3개의 타이틀을 가져갔다. 2011년에는 WK리그와 도민체육대회에서 각각 3위를 차지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에는 리그 6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승점 차이만 보면 3위와 6점 차이로 크지 않았다. 수원시가 말하는 성적이 전국체전일 수도 있겠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평가하기엔 다른 대회에서 이뤄낸 성과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원시가 주장하는 지원 문제에 대해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수원시의 주장에 따르면 직장운동부 예산비중에서 수원FMC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하였는데, 수원시는 남녀축구단의 예산으로 46억을 책정을 했고, 특히 여자축구단은 15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1년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선수25명에 코칭스텝 5명을 포함하여 30명의 선수단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최고연봉은 4000만원, 최저연봉은 1200만원 가량, 그리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출전수당 30만원이 그들의 수입의 전부다. 실제 많은 선수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을 받고 선수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만으로 행복해했다. 그런 선수들을 졸지에 실업자로 만들고 수원시에서는 국비+도비+시비 총 합쳐서 290억원을 들여 수원야구장 리모델링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근데 290억원 중에 국비 75억, 100억 도비, 110억시비로 사업을 진행을 하고 있다. 110억이면 여자축구단을 7년동안 운영할수 있는 비용이다.
(수원 FMC의 숙소 및 연습구장. 예전 연병장이었던 터에서 쓰고 있고, 현재는 중학교 야구팀이 쓰고 있다. 사진출처 강석경(@wfootballlove)님 트위터)
염태영 시장과 수원시의 태도가 더 못마땅스러운 건 바로 위의 사진 때문이다. 위에 나와있는 사진은 수원 FMC가 쓰고 있는 숙소 및 연습구장인데, 원래 연병장이 있었던 터를 그대로 쓰고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상당히 열악한 환경에서 그녀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현재 중학교 야구부에게 이마저도 빼았겼다). 이러한 수원 FMC를 위해 염태영 시장은 수원 FMC 선수단을 방문하면서 이 4가지 공약을 실천해주겠다고 하였다.
1. 운동장 잔디를 깔아주겠다.
2. 선수단을 30명으로 확대보강해주겠다.
3. 숙소를 리모델링해주겠다.
4. 연봉을 올려주겠다
하지만 수원 FMC 선수단이 염태영 시장으로부터 받은 것은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씩이 전부였고, 염태영 시장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수원 FMC 해체에 대한 자신의 블로그 글 말미에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과 관련된 분들을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고 마음이 좋지 않다. 여러 날을 고민하고 관련된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라는 말을 붙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성균 수원 FMC 감독이나 소속 선수들은 그러한 적이 없었다고 대답하였고, 해체에 대한 논의는 예감하고 있었으나, 사전 이야기도 없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고 답변하였다. 해체 통보가 나올 때까지 수원시는 선수단과 일절의 소통조차도 없었다는 말로 직결된다. 이렇게 통보를 받았으니, 수원 FMC 선수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들을 더욱 분노하게끔 만든 건 바로 이 홍보물이었다.
(수원 FMC는 해체시키면서 수원여자야구팀 모집이라니... 수원시는 무슨 짓을 하는건가?)
수원 FMC는 해체가 공식화되어서 올해 연말을 끝으로 공중분해가 될 지경에 이르렀고, 해당 소속 선수들도 당장 어디로 가야할 지,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할 지 모르는 판국에 수원시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녀들을 제대로 엿먹이려고 작정을 했는지 제10프로야구단 추진에 모자라서 이제는 수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원여자야구팀을 모집한다는 홍보물을 냈다. 이 말은 곧 무엇으 의미하는가? 성적부진이라는 등, 예산을 많이 썼다는 등의 이유는 전부 다 수원 FMC를 어떻게 해서든 해체시키겠다는 핑계거리였다는 말이 아니던가?
수원 FMC 선수들 중에서 일부 선수들은 소녀 가장 역할을 하고 있기에 가족들에게 해체 통보가 온 사실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입단한 신민아는 "처음 감독님을 통해 해체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꿈꿨던 것들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성은은 "정말 시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해고를 한다면 이해를 하겠다. 하다못해 선수들을 불러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하루 아침에 '너희들 언제까지만 나오면 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현희는 "운동만 바라보고 운동 밖에 할 줄 모르는 선수들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수원시민이 바라보는 수원 FMC 해체사태, 그리고 염태영 시장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나는 축구팬이 아니라 올해로 11년째 거주하고 있는 수원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한 번 바라보려고 한다. 수원시 말처럼 수원에는 이미 수많은 스포츠구단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원시에서 밝힌 대로 수원시 산하에 등록되어있는 팀만 무려 252개나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 협의도 없이 스포츠 팀을 일방적으로 해체시키겠다고 통보하는 것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쌍용차 사태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원 FMC가 야구단 때문에 해체된다는 것 때문에 분개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게 야구단이 아니라 설사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해 수원 FMC를 대승적 차원에서 해체시켜야한다고 해도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라는 논리와 같은 것 아닌가. 우리나라 스포츠는 매번 비인기 종목, 소수의 스포츠 선수들이 외면받아왔었고, 오늘날에도 그러한 현상은 이어져왔다. 비록 여자축구가 요근래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비주류이고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보니 그녀들이 받은 차등대우와 서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언제부터 수원시민의 열망이었지? 난 처음 듣는 소린데)
그리고 염태영 시장이 고집스럽게 밀어부치고 있는 수원 프로야구 제10구단 창단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염태영 시장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역문화발전 및 활성화. 여기에 제격인 것은 스포츠팀 창단이며, 시를 대표하는 스포츠팀이 선전한다면 그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왜 야구단만 그렇게 여기는 것이며, 수원 FMC나 수원시청같은 축구팀에 대해서 수원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수원과 야구팀이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고 수원시민들에게는 일종의 생채기로 남은 사건인데 말이다.
예전에 수원야구장에 현대 유니콘스가 잠시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이전하려다가 여의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수원으로 들어온 입장이라서 인천과 수원시민들에겐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그들이 해체하기 전까지 현대 유니콘스는 어떻게해서든 서울로 가려고 시도했다. 결국 팀이 해체되고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서울 목동으로 가버리면서 수원 사람들에겐 상처로 남았다. 이전에 수원 연고로 쓰던 삼성썬더스가 서울로 도망갈 때 그 배신감을 야구팀에서 또다시 느꼈던 것이다. 이런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염태영 시장은 대체 누구 마음대로 '수원시민의 열망'이라는 타이틀을 함부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야구단 하나 창단한다고 해서 과연 수원의 지역문화가 발전할까? 이미 수원이라는 브랜드 홍보는 수원 블루윙즈라는 축구팀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는데 말이다.
(수원시가 야구단 창단에 미쳐있을 때, 영통동은 10년째 분당선 연장 개통공사로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라 발생한 안전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또 하나 납득이 되지 않는 건, 야구단 유치가 현재 수원시에서 가장 급선무로 해결해야할 문제인가이다. 현재 수원시에서 해결해야할 사안들이 많이 쌓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내가 사는 동네인 영통동만 하더라도 지금 분당선 연장개통공사로 벌써 10년 가까이 진행중이고, 공사가 오랫동안 진행되다보니 그 넓디넓은 영통대로는 마치 전쟁에서 폭격맞은 마냥 도로가 쑥대밭으로 바뀌어있다. 공사가 제때 진행되지 않아 한동안 중단되었던 적도 있어서 영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도로를 이용할 때마다 마치 모험을 감행해야만 할 정도로 위험했다(차를 몰고 다니다보면 간혹 아찔한 광경도 나온다). 이렇게 주민들이 안전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때 염태영 시장은 무엇을 했는가? 내가 보기엔 그는 오로지 야구 창단에만 몰두했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공사로 인해 피해를 보는 영통동 주민들을 위해 안전방안 같은거라도 신경썼던 적이 있던가? 오히려 이 문제가 야구단 창단보다 더 우선시되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현재 수원시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야구단 창단이 아니라 다른 급한 사안들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문제들을 제껴놓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수원시민들의 원성만 사는 꼴이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동네에서만 벌어지는 사태만 봐도 내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세금을 내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회의감이 든다. 그렇게 염태영 시장은 남의 말에 귀기울여 듣지 않고, 수원 FMC가 성적부진과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는 별 시덥지 않는 변명으로 해체시켰고, 끝내 야구단 추진에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만 물어보자. 만약, 수원에 창단된 프로야구 제10구단이 수원 FMC를 해체시킨 사유처럼 성적부진을 겪고 있다면? 그때도 수원 FMC 처럼 해체시켜도 상관없다는 소리가 되는건가? 그렇지 않은가? 이미 수원 FMC 사건이라는 선례가 있지 않은가.
수원시는 생각을 잘해야 할 것이다. 공약도 지키지 않고, 소수를 보호하지도 않으면서 일을 무턱대고 추진한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를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식이라면 과연 누가 염태영 시장이나 수원시가 추진하려고 하는 사업에 찬성할까? 절차와 권리를 철저히 무시한 행정,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더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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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인용
수원FMC의 해체로 본 수원시의 이중적인 태도 - by 호이링싸커 http://blog.daum.net/wolf512/329
수원시장님, 그렇게서라도 프로야구팀 만들고 싶으십니까? - by 정기영 축구바보 http://chukbba.tistory.com/
[일간스포츠] ‘해체통보’ 수원 FMC 김결실 “한국서 여자축구 선수로 산다는 건..” - by 손애성 기자 http://isplus.joinsmsn.com/article/082/9646082.html?cloc=
[스포츠조선] 소녀들의 절규 "훈련장 빼앗더니 대책없이 나가라고?" - by 박상경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7&sid2=214&oid=076&aid=0002271010
[스포탈코리아] 수원 FMC 이성균 감독, 염 시장 정면 반박 - by 정다워 기자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newsid=2012101917091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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