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클럽을 오랫동안 지키는 원클럽이 존재하는 반면에, 이와 달리 한 클럽에만 머무지 않고 여기 저기 수많은 클럽을 전전하는 일명 '저니맨'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충성심이 없다고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들 중에서도 유명한 저니맨들도 많다. 해외 선수로는 니콜라스 아넬카가 유명한데, 그는 파리 생제르망에서 프로데뷔를 하여 아스날-레알 마드리드-리버풀-맨체스터 시티-페네르바체-볼튼-첼시, 그리고 상하이 선화 등 총 9개 클럽팀을 거쳐갔다. 현재 상하이 선화와 계약해지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는 열번째 클럽으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QPR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니콜라스 아넬카처럼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서도 저니맨들이 많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도 페루자 임대 생활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한 클럽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수많은 클럽들을 전전해야만 했었다. 박지성과 함께 2002년 월드컵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아직까지 K리그팬들 뇌리 속에 강하게 남은 이천수도 상당히 많은 팀을 전전했던 저니맨이다. 이렇게 떠돌이 인생을 살았던 선수들도 K리그 내에도 찾아보면 생각보다 의외로 많이 있다. 2012년 K리그 시즌도 끝난 겸 해서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한 번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K리그 역대 '저니맨'들의 일대기다. 너무 많아서 일단 대표적인 4명만 추려보았다.
1. 옥새라 불리는 그 이름 세글자, 남궁도
(남궁도를 얻는 자, 트로피를 차지할 것이어다. 'Mr. 옥새' 남궁도. 사진출처 뉴시스)
K리그 '저니맨' 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라고 하면 바로 이 사람, 남궁도다. K리그에 10년 이상 뛴 베테랑으로 큰 키에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서 최전방 이외에 윙으로도 소화가능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명단으로 뽑히고,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오랫동안 뛰면서 경기력면으로 팬들에게 상당히 큰 임팩트를 남겼던 적이 1년에 한 두 번 될까말까하다. 남궁도가 팬들에게 크게 기억이 남았던 점은 그가 다름아닌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옥새' 역할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크게 우승에 기여한 것도 거의 없으면서 말이다). 한 일화로 트위터로 저 멀리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의 클럽팀인 맨시티의 우승했음 좋겠다고 했던게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가 2001년에 전북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전남-광주 상무-포항-성남, 그리고 최근 대전까지 총 K리그 6개팀을 거쳐갔는데(벨기에 앤드워프 시절까지 합치면 7개 팀을 거쳤다), 전북에 있으면서 2003년 FA컵과 2004년 슈퍼컵 우승을, 2006/2007년 전남에선 FA컵 2연패를, 심지어 포항에서는 2008년 FA컵 우승을 넘어 2009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K리그 컵대회 우승을 거두면서 '옥새'라는 별명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성남으로 넘어와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개인 통산 아챔 우승 2연패를 이뤄내고, 2011년에는 FA컵을 다시 한 번 들어올렸다. 유일하게 광주 상무시절과 대전 시절만 무관에 그쳤을만큼, 그는 트로피를 불러들이는 일종의 부적과 같은 존재다. 현재 올시즌까지 대전으로 임대되어있는 상황이기에 내년에 어디로 가게 될 지 아직 장담할 수가 없다.
2. '액땜'을 극복하지 못한 풍운아, 김진용
(터질만 하면 장기부상으로 김진용은 전력이탈했다. 그것이 그를 '저니맨'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믿고 쓰는 울산산' 출신 중 한 명인 김진용, 그도 은근히 팀을 많이 옮겨다닌 케이스다. 2004~2005 울산에서 두 시즌 뛰었을 때만 하더라도 김진용은 장차 K리그에서 주목받을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당시 날라다녔던 박주영과 비교될 정도였다(그 여파로 올림픽대표팀, 국가대표팀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울산에서 주목받던 김진용은 자신의 고향(진주)을 연고로 하는 경남으로 2006년 이적하게 되는데, 3년 계약에 연봉 5억이라는 파격대우를 받았다. 2006년까지 30경기 출장하여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했었다. 허나 그 다음 2007년에 1년짜리 장기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어버렸다.
1년 장기 부상을 털고 2008년에 김진용은 돌아왔지만, 복귀 후 처음에는 주전이 아닌 조커로써만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26경기 6골 3도움을 기록했던 것을 본다면 그의 센스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FA 신분이 된 김진용은 2009년 성남으로 입단하였다. 첫시즌에도 김진용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시즌 도중 발목 부상으로 5개월간 결장하면서 다시 한 번 치명타를 입었다. 부상에서 돌아오긴 했지만, 김진용은 예전같지 않았고 두 번의 부상을 당하다보니 자연스레 기량도 떨어졌다. 2011년 이창훈과 트레이드 되어 강원으로 가면서 기나긴 부진 끝에 후반기에 살아나는듯 했지만, 올시즌엔 포항으로 1년 임대이적을 떠나며 다시 적응을 해야만 했다. 포항에서도 그닥 좋은 인상을 심어주진 못하면서 교체자원으로 밀려나 한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그 놈의 두 번의 부상이 김진용을 저니맨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K리그 공식 집계상 가장 많이 팀바꾼 진짜 저니맨, 서동원
(K리그 공식 기록 7번이나 팀을 바꾼 서동원. 그만큼 사연도 많다. 사진출처 http://helenadream.tistory.com/288)
서동원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선수였고, 연세대 재학 중에는 차범근 감독의 눈에 띄어 국가대표팀 승선까지 할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1998년에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대전에 입단하면서 이 뛰어난 신인의 프로생활은 마냥 밝을 것만 같았다. 참고로 첫시즌에 대전에서 확고한 주전자리를 다져놓았다. 대전에서 한창 주가를 올렸지만, 대전 스폰서 문제로 자금난을 겪고 결국 서동원은 팀 재정상 보탬을 위해 수원으로 이적해야만 했다(그 사이에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및 최후방 수비수 포지션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원에서 이렇다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반년만에 이적료 5억원으로 전북으로 이적했다. 전북에서도 자리 잡나 했지만, 2002년 조윤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새 개편의 희생양으로 2군으로 갔고, 그는 2003년 광주 상무로 군복무하러 떠났다.
그래도 상무에선 출전기회가 많아서 41경기를 소화했고, 제대하자마자 그는 인천으로 건너가서 장외룡 감독의 황금포메이션 한 축을 담당하며 이제는 자리잡는가 싶었다. 하지만 2006년 여름, 성남으로 이적하면서 또다시 팀을 바꿔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레알 성남'이라 불리는 화려한 스쿼드를 지닌 성남 11명 자리에 서동원이 파고들만한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전북시절에 이어 2군생활을 하게 되었고, 2008년에 부산으로 건너갔다. 부산으로 건너갔을 때 서동원은 어느새 서른 중반에 다다랐다. 그리고 황선홍 감독 밑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력을 펼치다가 201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그가 후에 고백하길, 2006년에 처음 FA 자격을 취득함과 동시에 K리그 특유의 이적료 때문에 제법 고생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팀을 많이 옮기다 보니 이러한 불합리함이 계약하는 데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올 때 두번째 FA 자격을 얻으면서 비로소 팀 이적에 자유로워졌다고. 이 제도가 K리그 저니맨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4. 전국팔도를 유랑하는 슈퍼서브, 이광재
(전국을 떠돌아다닌 슈퍼서브 이광재, 올시즌이 종료되자마자 내년에 새로운 팀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광재도 K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특이한 점은 이광재는 프로 데뷔를 광주 상무에서 치뤘다는 것인데, 당시 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러 클럽에서 그를 데려가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그는 2002년 군입대를 하였다가 2003년 광주 상무가 새로이 탄생하면서 거기서 데뷔한 셈이다. 광주 상무에서 5골을 넣으면서 2004년 전역하자마자 계약금 2억 5천만원에 5년 계약으로 전남으로 입단했지만, 체력 부족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R리그와 컵대회 등을 오가면서 포지션 가리지 않고 출전한 덕에 시간이 지날 수록 꾸준히 출장기회를 올리고 있다가 2007년 시즌 앞두고 포항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 포항으로의 이적이 이광재 인생의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라고나 할까.
그의 전설은 2007년 K리그 챔피언쉽이었다. 경남, 울산, 성남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면서 '특급 조커'라는 칭호를 받았고, 그의 결정적인 한 방으로 포항은 2007년 K리그 챔피언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때가 이광재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 이후, 포항의 정책이 바뀌어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그는 밀려나 2008년 전북으로 이적했다. 전북에서의 18개월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면서 중국 연변과 태국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계약기간이 끝나자 올 여름에 대구로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으면서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대구에서도 크나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대구와의 계약이 끝나고 내년 시즌에 2부리그에 참가하는 고양 Hi FC 입단을 확정지었다. 과연 고양에서 그는 포항시절처럼 터질 수 있을 지 한 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 이외에도 K리그를 수놓은 수많은 저니맨들이 많다. 예전 프로축구리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12년 동안 6개 팀을 옮겨다녔던 이경수도 있고, 실업팀까지 포함하여 총 6개팀을 거치며 국내를 떠돌았던 고기구도 있으며, 이제는 울산에서 완전히 자리잡은 주전 강민수도 저니맨 출신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충성심이 없어 여러 팀을 전전한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각자 다들 자기만의 사정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여러 팀을 오가는 경우도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위에 소개했던 인물들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마치 '역마살'이 끼어 옮겨다녔다랄까. 이들이 앞으로 걷는 길 또한 우리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참고 및 인용
서동원편 - http://helenadream.tistory.com/288
풋케위키 '저니맨' 편 - http://footballk.net/mediawiki/%EB%B6%84%EB%A5%98:%EC%A0%80%EB%8B%88%EB%A7%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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