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축구/태극기 휘날리며

이충성과 리 타다나리,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한 우리의 이중잣대

J_Hyun_World 2010. 12. 9. 21:54

 

 

 

 

 

  최근에 일본 아시안컵 국가대표팀 선발이 이뤄졌다. 그 명단 중에서 아주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리 타다나리'. 바로 재일교포 4세 이충성 선수였다. 그가 드디어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다는 자체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자이니치(재일교포)니까, 엄연히 일본 국적을 가졌음에도 단지 한국계라는 이유로 좀처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이유는 어쩔 수 없었던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버림받듯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사실 이충성 선수는 처음에 한국 국가대표팀으로 뛰고 싶어했다. 그래서 당시 팀동료였던 오장은 선수(現 울산)의 추천을 받아 2005년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으러 한국으로 날아갔다. 당시 한국 공격진에는 박주영, 이근호, 신영록, 김승용 등 내놓으라하는 유망주들이 즐비했다. 결국은 불합격 통보로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했다. 분명 이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도전할 수 있었던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괄시받았던 재일교포라는 이유가, 한국에서도 차별사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포애가 강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편으론 '재일교포=반쪽바리'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있었다. 간혹 그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괜한 견제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충성은 모국인 한국이 싫지는 않았으나, 재일교포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다. 그의 삼촌인 김종성 감독도 북한대표팀에서 뛸 때 느꼈던 장벽이 그에게까지 이어졌다.

  (북한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대세 선수도 이와 비슷한 언급을 했었다. 북한대표팀으로 뛰어도 내가 재일교포이기에 일본에서나 북한에서나 자기 자신을 곱게 보질 않는 시선들이 많아 매우 힘들었다는 것을...)

  결국 이렇게 바깥으로 돌게 된 이충성 선수는 눈물을 머금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본쪽에서의 끊임없는 귀화요청과 그가 활약하던 J리그에서의 외국인 제한규정과 싸늘한 시선으로 2007년 2월, '리 타다나리'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선수로 귀화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마치 추성훈 선수가 한국에서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귀화하면서 한국에서는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다. 어떻게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냐고 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계에게 어떻게 일본국가대표선수를 맡길 수 있느냐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일본 열도에서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을 결코 버리진 않았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게 되었지만, J리그에서 선수등록할 때, 여전히 이름을 "LEE CHUNGSON(이충성)"으로 등록한 상태고, '리 타다나리'라는 이름도 이충성을 일본어로 그대로 발음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으로 발탁하면서 머리를 금은동으로 염색함으로 자신의 처지(재일교포의 현주소)를 알아달라고 무언중에 알리곤 했다. 그는 지금도 말한다. "나는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몸에 흐르는 핏줄마저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에겐 뭐하나 확실한 국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도 아닌 그저 아웃사이더였을 뿐. 이렇게 택할 수 밖에 없는 이충성 선수에게 기회주의자라고 무조건 비난부터 하지 말자. 그저 한국말을 못한다고 해서 한국인 취급도 하지 않았으면서, 비난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애국심? 그들은 지금 일본에서도 조차 소외되어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뽑아든 셈인 것이다. 이번 아시아컵에서 이충성 선수가 그동안의 한풀이를 했으면 좋겠다.

 

참조 : [스포츠온] 축구를 위해 국적까지 버린 이충성의 축구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