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축구/태극기 휘날리며

크로아티아전 리뷰 : 중원의 수비가담 부족이 초래한 대참사

J_Hyun_World 2013. 2. 7. 08:00

 

 

 

(정예멤버로 나온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한국은 4대0으로 크게 패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대패인 듯 하다. 사진출처 OSEN)

 

  사실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을 치른다고 했을 때, 나는 처음부터 한국이 크게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채 경기를 봤다. 현재 크로아티아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이번 친선평가전에서 이들과 비긴다는 자체부터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와 평가전에서 크로아티아의 선발라인업은 이비카 올리치를 제외하고 현재 크로아티아 주전선수들을 전반전에 투입시켰고, 그 멤버들이 작년 6월에 있었던 유로2012에서 죽음의 C조 상대였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상대로 비등비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아쉽게 조별리그 탈락을 맛봤다. 참고로 스페인이 유로대회 우승을 거뒀고, 이탈리아가 준우승했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그들과 비등비등한 크로아티아의 전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 4대0 대패를 당했다고 해서 식음을 전폐할 만큼 충격을 받을 필욘 없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단 좀 더 많이 먹히긴 했지만서도(나는 2대0을 예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경기 하나로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을 무조건 쉴드를 칠 생각은 없다. 분명히 모든 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실점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로아티아 정예멤버를 상대로 아시아 최종예선을 맞이하기 전 해외파들을 대상으로 한 차례 실험해보긴 했지만, 이건 그래도 아니다고 싶다. 분명 오늘 경기를 본 사람들은 치킨과 맥주를 먹다가 도중에 체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갑작스럽게 경기력이 황당무계하게 전개되는 바람에 말이다). 분데스리가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마리오 만쥬키치의 헤딩 선제골을 시작하여, 주장 다리오 스르나의 감아찬 중거리골, 만쥬키치와 함께 크로아티아 주전인 니키챠 옐라비치의 세번째 골, 그리고 믈라덴 페트리치의 쐐기골까지. 이 중 모든 골장면을 살펴보자면,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수비수들이 집중력이 떨어져서 정신줄을 놨다고 지적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중원의 수비가담 부족이다.

 

(가장 문제점으로 떠오른 부분. 구자철-기성용의 조합이 또다시 실패했고, 이들의 수비가담력은 터무니없을 만큼 역부족이다. 사진출처 OSEN)

 

  물론 한국 수비진들에게서 문제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반전에 배치된 센터백 라인이었던 곽태휘와 이정수, 둘 다 30대 중반에 다다르며 공통적으로 나이를 먹다보니 발이 느리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기에 만쥬키치나 올리치 같이 발빠른 공격수들에게는 속절없이 역습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다(개인적으로 이정수는 이제 그만 불렀으면 한다. 2010년의 그 이정수가 아니다). 또한 신광훈이나 최재수의 경우에는 공격형 사이드백에 가깝기 때문에 이들에게 뛰어난 수비력을 가담할 순 없다(신광훈은 선방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보다도, 원래 수비라는 것이 플랫4로 배치된 수비수 4명 개인기량만으로 수비를 한다는 자체가 사실 무리에 가깝다. 아무리 뛰어난 카테나치오급 수비라고 하더라도 수비수들도 사람이다보니 90분 내내 1대1 마크로 상대 공격을 봉쇄하길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수다. 한국의 수비진이 크로아티아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을 때, 중원을 지키던 미드필더들은 크로아티아 공격시에 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현대축구의 핵심인 압박축구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부터 시작되어야 완성이 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한 수비진의 문제점을 알고 있던 최강희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신형민을 플랫4 앞에 배치했던 원래 의도는 바로 신형민이 포항시절부터 줄곧 중원의 중심을 잡아주는 터프한 기질과 때로는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뚫어버리는 중거리슈팅 능력, 거기다가 최근에 뛰고 있는 알 자지라에서 센터백으로서도 종종 기용되었던 점이 감안했다. 마치 유로2012 시절 스토퍼 역할을 맡으면서 호평을 받았던 다니엘레 데로시 같은 역할을 원했던 것 같다. 곽태휘-이정수 라인만으로는 커버하기엔 한계가 있었기에 신형민이 그들을 보좌하여 앞선에서 크로아티아의 공격흐름을 차단하면서 피딩까지 해주길 기대했지만 신형민에게 그 역할을 소화하기엔 좀 버거웠었다. 신형민 앞에 배치된 구자철-기성용이 점점 전진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형민도 라인을 맞추기 위해 전진해야만 했다. 그렇다보니 플랫4와 신형민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 간격을 모드리치나 라키티치 같은 창의성이 뛰어난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점령하면서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신형민이 전반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교체되어 나갔고, 최강희 감독은 4-4-2로 전환하면서 중원을 구자철-기성용 조합으로 그대로 끌고 간 것이다. 90분 내내 수비진들에게 수비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공격에만 치중하여 계속 "전진! 전진!" 만 외치고,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은 수비가담을 제때 해주지 않았다. 최소한 둘 중 한 명이 전진하게 되면, 그 파트너는 전진한 선수의 공간을 커버하면서 수비를 지켜줘야만 했는데, 구자철이나 기성용 둘 다 수비가담부분에선 낙제점이었고, 전혀 압박조차 해주지 않았다. 빠른 공수가담을 선보이면서 수비시에는 언제 왔냐는듯이 플랫4 앞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모드리치-부에코비치 라인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들이 무조건 전진만 하는데, 수비수들이 부담해야할 수비부담은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상아닐까? 구자철-기성용 뿐만 아니라 윙어들이나 공격수들의 수비가담도 영 좋지 못했다. 특히나, 김보경은 후반전에 대체 무엇을 하러 나온 것인지 납득이 안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은 플레이였다.

 

(크로아티아전을 보면서 이 인물이 간절히 그리웠다. 바로 이용래. 사진출처 SPN) 

 

  최강희 감독의 닥공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는 중원의 수비력과 수비가담이 확실히 뛰어나야한다. 전북시절 닥공을 회상해보자면, 최후방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볼을 배급할 때, 중원에 포진된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이 역습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수비가담하고 수비진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그들을 틀어막았다. 김상식-정훈-황보원의 플레이를 생각해보아라. 그들이 전북이 닥공모드로 나올 때, 어떤 역할을 수행했었는지를.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현재 한국 국가대표 미드필더들은 수비가담력이 부족하다. 구자철이나 기성용이 각 클럽팀에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클럽팀에서 공격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그러한 수비가담력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그리고 기성용은 활동량이 뛰어나고 수비력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둬야한다). 현재 국대에 필요한 중원을 꼽자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활약했었던 김정우라든지, 조광래 체제에서 핵심선수로 분류되었던 이용래다. 특히나 이용래가 많이 생각나게끔 만든 경기력이었다. 

 

  이용래의 경우에는 현재 최강희 감독이 필요로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좋다. 왕성한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협력플레이, 그리고 시기적절한 커버플레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공격적인 재능은 뛰어나지만, 수비력이 다소 미흡한 최재수가 오버래핑하고 난 왼쪽 측면까지 커버해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가 이용래이기도 하다. 이용래가 현재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력이탈하여 다음달이 되서야 컴백이 가능한 게 문제지만, 만약에 그가 제 폼을 찾게 된다면 반드시 그를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구자철이든 기성용이든 누구든지 간에 플레이메이커로 전진하게 되면, 반드시 그들이 기존에 차지했던 공간을 커버해야한다는 것이고, 수비수들의 수비부담도 덜어줘야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용래 이외에도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망주인 한국영이나, 포항에서 산소탱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장 황지수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중원에서 수비수들을 적극 도와주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선수라도 그렇게 크게 쓸모가 없으며, 유럽에서 뛴다고 하여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것이고, 수비는 한 명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같이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크로아티아전 대참사를 계속 낳게 되는 셈이기도 하다. 정 아니면, 확실한 수비형미드필더와 중앙미드필더를 같이 배치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형민의 부진이 좀 씁쓸한 면도 있지만, 확실히 수비형 미드필더가 중요하다는 것은 입증한 셈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원의 압박이 빈약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이번 크로아티아전이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그러한 중원 압박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구자철-기성용 조합은 또다시 실패했다.

 

 

P.S : 이번 경기를 통해 더이상 유럽에서 뛴다고 하여 그들이 더 뛰어날 것이며, 그들 위주로 맞춰야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태극마크 앞에선 K리그 클래식에서 뛰든 유럽 빅리그에서 뛰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가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는 출신을 떠나 정말 전력에 도움이 될 선수다. 유럽파라고 해서 그에 대한 환상을 축구팬들도 이제 깰 때가 되지 않았나? 2002년 월드컵 때를 생각해봐라. 우리가 유럽파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월드컵 4강까지 갔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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