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그 화려했던 포지션, 스트라이커. 허나 지금은...
1990년대 한국축구판을 기억해보면, 그당시는 정말 스트라이커들의 황금기나 다름없었다. 현재 K리그 클래식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면서 "대한민국 No.1 스트라이커" 자리를 고수했던 황선홍을 비롯하여, 최용수, 김도훈, 노상래, 김현석, 고정운 등 당대 슈퍼스타들이 프로축구를 점령하고 있었고, 90년대 후반기엔 그들의 계보를 이어 이동국, 김은중 등이 등장하며 그들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대형 스트라이커들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고 그 아무도 예측못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축구판을 돌아보았을 때, 그 넘치고도 남았던 '대형 스트라이커'들이 사라져버렸다. 상당히 희귀해진 셈이다. 현재 이동국을 제외하곤 대형 스트라이커, 혹은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손꼽을 만한 스트라이커들이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현재 한국을 대표할 공격수가 누가 있냐?"고 물어봐도, 이제 대답이 손쉽게 안나오는 게 지금 현실이다.
(현재 한국을 대표할만한 스트라이커가 누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이동국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대체 왜?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이번 크로아티아와의 대표팀 소집명단 보더라도 그렇다. 24명 선발명단 중에서 공격수로 뽑힌 선수는 단 세 명, 이동국, 박주영, 그리고 김신욱 뿐이다. 공격수로도 활용가능한 손흥민이나 지동원도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무게감을 비교하자면, 오랫동안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줘왔던 이동국 이외에는 뭔가 조금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박주영은 모나코를 떠난 이후부터 폼이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고(셀타비고에 많은 출장을 부여받고 있지만 골결정력이 예전같지 않다), 김신욱이 연계플레이 등 전술적 활용도는 높지만, 골결정력이 뛰어나진 않다. 지동원의 경우에는 그동안 오랫동안 경기를 뛰지 못한데다가 김신욱처럼 전술적 활용도론 다양하나 그도 역시 골결정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나마 최근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지만, 현 소속팀에선 최전방 스트라이커보단 윙포워드 형태로 나오고 있다(그렇기에 대형스트라이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조금 애매한 케이스다). 이것이 현재 한국 대형 스트라이커 품귀현상이다.
왜 대형 스트라이커의 품귀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어느날 하루 아침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문제는 아니다. 예전부터 조금씩 우려되어왔던 상황이었지만,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간과가 결국 이러한 한국을 대표할 대형 스트라이커 품귀현상을 불러일으켜왔던 것이다. 내 나름대로 보았을 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본다. 첫번째는 현재 포지션 선호의 흐름이 공격수보다 미드필더(특히 중앙 미드필더)로 바뀌었고, 두번째는 국내리그 스트라이커 자리에 외국인 선수로 가득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1) 현재 포지션 선호의 흐름 : 스트라이커 → 미드필더, 특히 중앙 미드필더를 선호하는 현상
(현재 공격수보단 미드필더, 특히 중앙미드필더를 많이 선호하고 중요포지션으로 여긴다. 그 대표주자인 구자철과 기성용. 사진출처 베스트일레븐)
첫번째 이유는 바로 현재 가장 많이들 선호하고 중요시 여기는 포지션이 공격수에서 미드필더, 특히나 중앙 미드필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축구 전술의 흐름과도 깊은 연관성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10여년 전인 1990년대에도 미드필더들의 중요성은 여전히 컸지만, 당시 전술에서는 미드필더들의 창조성과 중원장악력보다도 스트라이커들의 개인 기량을 통해서 골을 결정지어 승부를 갈라놓았던 경기들이 훨씬 더 많았다. 즉, 수비는 두텁게 하면서 어떻게든 스트라이커들에게 공을 전달하여 그들의 발 끝으로 승부를 가르는 전술이 많았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 EPL에선 킥앤러쉬가 유행이었고, 그것이 한 때 축구계의 흐름이기도 했었다. 그러한 전술 속에서 펠레, 호나우도같은 불세출의 스트라이커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고, 한 사람에 의해서 경기가 속칭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선수 한 명으로 경기 흐름이나 결과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기 힘들어졌거나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선수 한 명의 개인기량에 의존하기 보다는 선수 11명 전원의 조직력이 더욱 더 중시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한 전술들이 탄생하며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축구라고 불리는 전진압박 수비와 짧고 많은 패싱으로 점유율을 높혀가는 축구, 이것은 한 사람이 아닌 11명 모두를 요구하는 전술이기에 이를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11명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허리가 중요시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중앙미드필더들이 현대 축구에서 많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트레콰르티스타부터 수비형 미드필더인 레지스타까지 탄생한 것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점점 중원을 점령할 수록 상대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가지 않던가. 그만큼 스트라이커는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팀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 현대축구의 흐름이 고착화되다보니 요즘 축구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스트라이커보단 미드필더를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았으면 너도나도 스트라이커를 하겠다고 했지만, 요즘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포지션을 뛰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주로 미드필더 쪽이나 수비수 쪽을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시작부터 육성하는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셈이다. 물론 도중에 포지션 변경이 가능하겠지만, 현재 국내 지도자들의 성향도 미드필더들을 키우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는 게 대세다. 그래서 최근에 중앙미드필더 경쟁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현재 국가대표팀 핵심이라 불리는 구자철-기성용이 동시에 빠져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들이 넘쳐난다는 소리와도 같다(경쟁력이 그만큼 치열해졌다).
2) 외국인 선수들로 채워지는 스트라이커 자리
(2012년 K리그 선수최종순위 리스트. 탑10에 국내 선수는 겨우 3명 들어있을 만큼, 외국인 선수 천지다.)
대형 스트라이커 품귀 현상이 일어나게 된 또다른 원인은 국내 클럽들로부터 찾아낼 수 있다. 지난시즌만 하더라도 군특성상 외국인 선수를 사용할 수 없는 상주 상무를 제외한 나머지 15개팀 중 외국인 선수의 의존도가 높았던 팀들이 상당했고, 대부분 그 외국인 선수들을 스트라이커에 포진시켜 득점을 담당하게 만든다. 그것을 함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2012년 K리그 선수최종순위 리스트다. 탑10만 보더라도 국내 선수들 이름보다도 외국인 선수들 이름을 찾기가 훨씬 쉬울 정도다. 상위 10명 안에 들어가 있는 국내 선수들은 이동국, 김은중, 그리고 김신욱이 고작이며, 이 상위 10명에 들어있는 국내파 3명 이외에 두 자리수 득점대를 기록한 스트라이커(포지션 구분 기준)로는 2,3명 뿐이다. 그리고 30대 중반인 이동국, 김은중을 제외하고 앞으로도 계속 뛸 수 있는 젊은 공격수 중에는 김신욱이 유일하다.
물론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와 스트라이커로 기용했던 일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90년대에도 샤샤와 데니스, 라데, 마니치 등이 있었고, 2000년대 접어들어선 나드손, 모따 등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적어도 한국 스트라이커들의 입지가 이렇게 위태위태할 정도는 아니었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젊은 국내파 스트라이커들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밀려 기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포지션 선호 흐름변화와도 일종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클럽들의 요즘 추세를 본다면, 확실히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은 웬만하면 국내 선수들 위주로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대신 득점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라이커의 경우에는 국내 선수들보다 해외 경험이 많은 스트라이커들을 데려다가 사용하면서 다소 육성하는 데 소홀한 면을 보였다. 그것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까 오늘날 이러한 스트라이커 품귀현상에 크게 한 몫 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사우디 알힐랄로 이적한 유병수를 국내에서 보지 못한다는 게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작년 시즌 중에 모 축구팬이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얼마나 심한 지에 대해 외국인 선수들로 인한 공격포인트를 제외하고 상주상무를 제외한 15개팀의 승점과 승무패를 계산해본 실험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 결과를 보면, 올시즌 상위스플릿에 속해있던 팀들 절반 이상이 중하위권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엿볼 수 있었다. 그나마 울산이나 포항의 경우는 외국인 선수 의존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을 데려다 쓰는 것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클럽성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반대급부로 국내 스트라이커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큰 한계점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그러한 여파는 결국 국가대표팀 선발에게까지 미쳐 스트라이커를 구성하는 데 있어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아무리 경기 내용이 좋다한들, 결국 승부는 누가 골을 넣느냐, 골을 얼만큼 넣느냐고 갈리기 때문이다.
외국인 골키퍼 영입 금지정책을 내린 이후, 국내 골키퍼들의 기량은 예전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김병지-이운재-최은성 세대가 너무나 영향력이 커서 그렇지, 지금 국대에 명단을 올리는 김영광이라든지 정성룡도 상당한 역량을 지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대형 스트라이커 품귀 현상을 막기 위해서 무리수를 둬서까지 외국인 스트라이커 영입 금지정책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항상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꼽는 이동국만을 바라보기엔 그도 어느새 30대 중반이다. 거기다가 그의 뒤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도 현재까진 없다. 이러한 품귀현상을 극복할만한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우리도 국내 스트라이커들 육성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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