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 브라질에서는 "펠레" 라고 답변하지만(브라질 사람들은 펠레 이외에 자국을 상징하는, 대륙을 상징하는 선수들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 라고 말한다. 물론 이 답변은 남미를 넘어 전세계로 넘어가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펠레와 마라도나, 두 사람이 축구계에 끼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그들의 플레이를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 후세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 절대적인 두 사람의 위상에 리오넬 메시가 도전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이 두 사람은 아직까지는 "넘사벽"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내에선 마라도나는 신으로 불리우는 사나이이자,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를 "에비타" 에바 페론과 탱고의 거장이자 국민가수인 카를로스 가르델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여긴다. 즉, 아르헨티나에 있어서 축구, 그리고 마라도나라는 존재는 그들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축구와 마라도나의 교집합이자 대변하는 상징물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보카 후니오르스다(흔히 '보카 주니어스' 라고 말하는데, 이것 또한 맞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남미의 대표적인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낭만과 예술의 상징이기도 하다. 축구 또한 이 나라,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변하는 두 클럽이 연고지를 두고 있는데, 하나가 리베르 플라테, 나머지 하나가 바로 소개하려는 보카 후니오르스이다. 두 클럽은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의 슬럼지역인 라 보카(Lo Boca)에서 탄생하였는데, 리베르 플라테는 1920년대 이후 부유층들이 밀집하고 있는 지역인 라 플라타(La Plata)로 연고지를 옮겼다. 보카는 오늘날까지 라 보카 지역에 남아있고, '라 봄보네라(La Bombonera)' 라고 불리는 에스타디오 알베르토 J. 아르만도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보카의 홈구장이 있는 라 보카 지역이 탱고의 발상지인 '엘 카미니토(El Caminito)' 도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지만, 슬럼지역이다보니 소매치기 및 무장강도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방문하기 전 날에도 한국인 관광객 3명이 라 보카 지역을 돌아다니다 길을 잘못 들어 무장강도를 만나 모든 소지품을 빼았겼다고 했다.
라 봄보네라를 가기 위해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버스 34번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아니면 지하철을 이용하여 C 라인의 Constitucion 역까지 이동하여 그 뒤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라 보카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3명의 일행과 함께 후자를 택했다.
(도보로 Constitucion 역부터 경기장까지 이동했다. 주의할 점은 반드시 간편하게 가야한다)
우리는 파란색으로 표시된 루트로 우리는 도보로 이동했는데, 가기 전 주의할 점을 알려준다면 반드시 간편하게 가는 것을 권장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라 보카 지역이 슬럼지대에 소매치기 및 무장강도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관광객이다', 혹은 '나는 돈이 많습니다' 라고 드러낸다면 쉽게 타겟이 되기 쉽상이다. 그렇기에 정말 안전하게 가길 원한다면 오벨리스코가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만약 자신이 묵고 있는 숙소 근처에 34번 버스가 지나간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4명이서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경기장까지 이동했고, 돌아올 때는 34번 버스를 타고 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복귀했다. 30분 가까이 걷다보면, 주거 및 소규모 상점 건물 색깔이 보카의 상징색인 파랑과 노랑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라 봄보네라 근처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쁘게 칠해진 아담한 건물들을 지나다보면, 어느새 거대한 경기장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보카 후니오르스의 홈구장, 라 봄보네라의 모습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보카의 엠블럼이 박혀있는 경기장 입구와 함께 위로 솟아오른 경기장 외벽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엠블럼은 6번째이자 1970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엠블럼인데, 파란색 방패 안에 새겨진 별의 수는 보카가 타이틀을 추가할 때마다 별의 숫자 또한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보카의 별은 총 52개를 새겨놓았다고 한다(현지에서 직접 구매한 레플리카를 통해 숫자를 세어봤다).
(흔한 경기장 주변의 물품 가게. 보카를 대표하는 마라도나, 리켈메, 테베즈 등이 맞이하고 있다)
경기장 맞은 편에 위치한 가게들을 보다가 가장 눈에 띄는 한 곳이 있었는데, 입구에 보카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실물사이즈와 비슷하게 제작하여 손님맞이용으로 전시해두고 있었다. 왼쪽부터 카르로스 테베즈,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틴 팔레르모, 그리고 후안 로만 리켈메다.
먼저 맨유시절 박지성의 절친으로도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카를로스 테베즈(여기선 애칭으로 '칼리토'라 불린다), 그는 대표적인 보카 유스 출신으로 유럽의 빅클럽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뿌리치고 마지막 선수생활을 자신의 고향팀인 보카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을 직접 실천할 정도로 보카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실제로 이전 팀인 유벤투스는 팀의 창조성과 공격을 업그레이드 시켜준 테베즈를 붙잡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나, 그의 보카로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못해 대체자 겸 차세대 에이스로 파울로 디발라를 영입했을 정도다. 11년만에 보카로 돌아온 그를 환영하기 위해, 보카 서포터즈들은 테베즈의 입단식에 전 좌석을 꽉채워서 열렬히 반겼다. 마라도나 이후 팀 내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의 위엄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입단식이었고, 그는 배번 10번을 받음과 동시에 주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도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여전히 유럽 빅리그에서 오퍼를 보내고 있고, 중국리그에서도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그는 은퇴할 때까지 보카에서만 뛸 것이라고 모든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자면, 마라도나는 메시만큼 테베즈에게도 애정이 각별하다고 익히 알려져 있는데(이유는 같은 클럼팀 출신, 그리고 자신과 닮았다고 여겼다),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이미 드러난 사실이기도 하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보카를 더불어 아르헨티나, 나아가 전세계 축구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영웅이다. 비록 처음 선수생활을 아르헨티노스 후니오르스에서 시작했고 실제로 보카에서 뛰었던 기간이 오래되지 않지만, 마라도나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워너비 클럽을 보카라고 말하곤 다녔다. 그리고 19~21살에 보카에서 뛰었을 당시, 그는 브라질의 세계적인 선수들(지쿠, 팔카우, 소크라테스 등)과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경쟁할 정도로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했고, 좋지 않았던 말년이었지만 마라도나의 마지막 클럽팀은 보카 후니오르스였다. 그의 등장을 기점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전도유망한 어린 선수들(오르테가, 리켈메, 아이마르, 사비올라, 테베즈, 아게로, 메시 등)이 등장하면 모두 다 '포스트 마라도나에 적합한가?' 라는 시험을 받을 정도로 마라도나는 위대했고,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마르틴 팔레르모,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지에서는 테베즈, 마라도나, 리켈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보카의 레전드다. 현재 보카 후니오르스의 최다 골기록의 주인공이 바로 팔레르모이며(236골), 역대 최장 출장기록 4위(404경기)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팔레르모는 아이러니하게도 리베르 플라테가 있는 라 플라타 지역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보카 선수로 뛰었으며,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 더비에서 '리베르 플라테 킬러'로 불릴만큼 많은 골을 뽑아냈다. 보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 겨울에 야심차게 스페인 무대로 진출했으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2004년 여름에 보카로 컴백했다. 보카로 돌아온 이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줄곧 이 클럽에서만 뛰었고, 뛰는 동안 보카의 모든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팔레르모가 단순히 골만 잘 넣었을 뿐만 아니라 큰 경기에서도 그의 오른발로 결정지었던 적이 많아 그로 인해 들어올린 트로피 수도 제법 많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보카의 역사에서 마르틴 팔레르모라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겠다.
마지막으로 후안 로만 리켈메, 현대 축구를 역행하는 반역자이자 이시대의 마지막 클래식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리나라 내에선 '농부형' 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가수 김흥국씨의 별칭이기도 한 '흥켈메'의 어원). 198,90년대에서 볼법한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스타일로 탁월한 볼키핑과 패싱능력, 그리고 데드볼리스트 기질까지 갖추고 있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10번에 최적임자였다. 참고로 리오넬 메시가 국가대표팀에서 10번을 달기 전 주인이 리켈메였다. 그래서 '남미의 지네딘 지단' 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테베즈처럼 보카 유스출신으로 보카에서 프로데뷔를 한 리켈메는 다른 아르헨티나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해외진출이 늦었지만, 대신 가장 빨리 아르헨티나로 돌아오기도 했다(국제대회 경험이 없는 비야레알을 이끌고 챔스 4강까지 끌고 올라갔던 1등공신이었지만, 불화로 팀을 떠났다). 그렇게 친정팀으로 돌아와 자신의 남은 축구인생을 다 바쳤다가, 2014년에 아르헨티노스로 옮긴 뒤 1년 뒤에 은퇴선언을 했다.
(경기장 주변 인도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 프린팅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리켈메)
라 봄보네라 경기장 주변 인도를 따라 걷다가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보았는데, 보카에서 뛰었던 유명 선수들의 발자국 프린팅을 기념으로 새겨놓았다. 나는 우연히 내려다보았다가, 내 발 앞에 리켈메의 발자국 프린팅이 놓여져 있었고, 프린팅에 맞춰서 나의 오른발을 들이밀어 보기도 했다. 4년 전 토리노에서 유벤투스 스타디움을 투어할 당시, 경기장 주변 인도에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던 모든 선수들을 작은 별로 새겼고 그 중에서 한 획을 그었던 레전드들은 큰 별로 새겼던 것이 문득 생각났었다. 발자국 프린팅에 써있는 문구를 보았을 때, 아마 보카 창단 10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팀을 빛냈던 선수들을 기록한 것으로 보였다. 마라도나의 발자국 프린팅을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보카 메가 스토어 입구, 유럽 클럽들에 비해 출입구나 내부는 다소 아담해보였다.)
발자국 프린팅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메가 스토어 입구까지 왔다. 보카 유니폼은 사실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에서도 구매할 수 있고, 심지어 플로리다 거리에 가면 보카 후니오르스 전문 매장이 따로 있고 그 곳이 훨씬 더 크다. 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 내에선 라 봄보네라에 있는 메가 스토어만이 유니폼에 직접 마킹 프린팅을 해준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테베즈 마킹으로 올시즌 보카 홈 유니폼을 구매했는데, 가격은 1290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만원 정도다. 현재 뛰고 있는 보카 선수들 중에 축구팬들이 알만한 사람으로는 테베즈 이외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페르난도 가고, 이번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 콜롬비아 대표팀으로 출전한 세바스티안 페레즈와 프랑크 파브라가 있다. 보카 경기장 투어 입장 티켓도 여기 메가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일행과 함께 엘 카미니토 및 산 텔모를 둘러보기로 했기에 유니폼만 사고 자리를 옮겼어야만 했다.
라 봄보네라에서 2~3블록 지나가면 탱고의 발상지인 '엘 카미니토(El Caminito)' 가 나온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조그맣게 몇블록씩 지정하여 관광 구역으로 설정하여 이것저것 예쁘게 꾸며놓고 있지만, 이 곳 또한 보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보카 유니폼을 입거나 그와 관련한 물품을 들고 다니면(심지어 보카 엠블럼이 박힌 종이가방을 들고 다녀도) 현지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팀이다 보니 격하게 반기는 모습을 보았다.
(엘 카미니토의 흔한 장식물. 마라도나(왼쪽)와 보카 후니오르스는 엄연히 이 곳의 일부이자 상징이었다)
(보카가 탄생하고, 오늘날의 보카의 상징색깔이 정해졌던 라 보카 지역의 작은 항구)
보카는 1905년 이 곳 라 보카 지역에서 거주하던 다섯명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에 의해 탄생했는데, 당시 라 보카 지역에는 제노바 출신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카의 지지자들을 'Los Xeneizes(제노바 사람들)' 라 불리며, 홈페이지에서 '제노바어' 서비스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 보카의 유니폼은 핑크색이었다가 흑백 줄무늬 유니폼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보카는 흑백 유니폼을 입고 계속 경기에서 패하게 되자, 사람들은 유니폼을 바꿔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라 보카 항구에 처음 온 선박의 국기색상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스웨덴 국적의 선박이 항구에 들어와, 스웨덴 국기 색깔인 파란색과 노란색을 따서 새 유니폼으로 만들었다. 이후에는 십자무늬를 없애고 가로 줄무늬로 대체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보카의 유니폼 디자인으로 탄생하게 된 셈이다. 유니폼을 바꾸자마자, 보카의 성적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마치 가난에 허덕이는 라 보카 사람들을 정신적으로나마 배부르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보카가 1925년 유럽 투어를 떠났을 때, 서포터즈들은 유럽까지 따라가 그들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면서 돈독하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만들었다. 마치 혈육에 버금가는 관계로 말이다. 오늘날, 보카에서 가장 큰 서포터 조직이 'La Doce(12번째 선수)' 가 된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테베즈와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새 보가 유니폼을 입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를 이곳저곳 누볐다. 전혀 동질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눈동자의 동양인이 보카의 주장 이름이 새겨진 홈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녔는 게 상당히 이색적이라고 느꼈는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하루동안 나를 보고 보카 서포팅곡을 외치면서 함께 흥을 돋우던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났고, 나는 그럴 때 마다 "테베즈 짱" 이라고 화답하면서 한순간에 동지가 되었다. 테베즈 때문에 아르헨티나 현지인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게 되었고, 그 날 저녁에 같이 리우 올림픽 경기를 TV로 보기도 했다. 나중에 현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보카 서포터즈들은 경기 당일날 이외에도 자신의 유니폼을 밖에서 입고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반면에, 그들의 라이벌인 리베르 플라테 서포터즈들 중 일부는 경기장 밖에서 유니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말했다.
천하의 리오넬 메시도 압박감을 견뎌내기 힘들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것만큼 축구에 미쳐있는 나라 아르헨티나, 그 심장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과연 축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만큼, 이 사람들의 일부이자 생활이다. 심지어 이들은 시위를 할 때에도 경기장에서 주로 쓰던 음악과 박자를 인용하여 시위인지 카니발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 중심에는 보카 후니오르스가 뿌리 깊게 내려 있었고, 아르헨티나를 넘어 국제대회에서도 위용을 떨쳤으니 어느덧 아르헨티나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중 한 명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에 했던 말인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 를 10여년이 지나 이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와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그들이 지치고 힘들 때에도, 축구는 언제나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히.
2016년 8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J-Hyun의 남미축구체험] 01. 남미 현지인들을 통해 본 '코파 아메리카' 후일담
※ 다음 편은 축구에 미친 나라, 브라질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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