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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yun의 남미축구체험] 03. 축구에 미친 나라, 브라질 : (上) 브라질 축구의 시작점, 상파울루 축구박물관

J_Hyun_World 2016. 9. 13. 22:59





 역대 월드컵 최다 우승팀(5회)이자,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전 대회 본선 진출 달성한 팀. '선택받은 자(Seleção)' 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으며, '축구' 가 가장 먼저 연관검색어로 나타나는 독보적인 팀. 바로 브라질이다. 비록 2002년 월드컵 우승을 끝으로 카나리아 군단의 위상과 아우라가 예전같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선수들이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들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2015년 10월 스위스 국제스포츠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한 브라질 축구선수는 2784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브라질을 넘어서 축구에 미쳐있는 나라를 찾기는 참 힘들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특이하게 주별 리그가 가장 잘 활성화되어있으며, 상위리그격인 브라질레이랑(브라질 통합리그 : 세리 A부터 D까지 총 4부리그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남미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FA컵까지 포함하면, 자국리그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들은 한 시즌동안 평균 6,70경기를 소화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한 클럽이 더블이나 트레블 달성한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이며, 네이마르가 산투스에서 뛸 당시에도 세리A 우승을 단 한 번도 이뤄내지 못했을만큼 살인적인 일정을 브라질 클럽들이 치르고 있다. 라이벌이자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도 이정도까지 죽기살기로 리그 운영을 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축구에 미쳐있는 이 브라질 땅에, 누가 '축구'를 심어놓았을까?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상파울루에 있는 축구박물관을 찾아가보았다. 위치는 상파울루의 Estação Paulista do Metro 역에서 내린 후에 10~20분 도보로 걸으면 나온다.


(Paulista 역에서 파란색 점선을 따라 걸으면 상파울루 축구박물관이 나온다)


(축구박물관으로 탈바꿈한 파카엥부 스타디움 외곽. 철조망 등이 왠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이 곳은 코린치안스의 홈구장이었으나, 지금은 상파울루 시 소유의 주인 없는 경기장이 되었다.)


  축구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경기장의 공식 명칭은 파카엥부(Pacaembu)이며, 1938년에 건립되어 상파울루의 3대장 중 하나인 코린치안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어왔다. 브라질의 레전드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가 생전에 뛰었던 경기장이며, '황제' 호나우두의 은퇴식을 치른 경기장이 바로 이 곳이었다. 하지만 코린치안스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으로 인해 신축된 코린치안스 스타디움으로 경기장을 옮겨감으로써, 현재 이 경기장은 상파울루 시가 소유한 채로 주인없는 집이 되었다. 상파울루에서는 대신 이 경기장에 축구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꿔서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는 2016년 8월 기준으로 9헤알이다. 이 축구박물관 주소를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 이름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브라질로 축구를 처음 들여온 영국인인 찰스 밀러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과연 축구의 나라다운 발상이었다. 2년 전에 브라질 월드컵이 끝났고 현재 올림픽은 상파울루가 아닌 리우에서 하고 있지만, 여전히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이 곳은 성지이자 축구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방문해야하는 버킷리스트로 꼽히고 있다.


  축구박물관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누가 브라질을 축구에 미치게 만들었고, 축구가 무엇이며, 축구가 브라질에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운좋게도 이번 리우 올림픽을 맞이하여, 축구박물관 또한 올림픽 특별전시와 더불어서 하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된 액자들 또한 구경할 수 있었다.


(표를 끊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2층까지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 하나하나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펠레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브라질 축구의 상징 이미지이기도 한 "Pe na Bola", 어릴 때부터 공과 브라질 사람들은 한 몸이라는 의미다)


  이 이미지가 브라질의 축구의 상징인 "Pe na Bola", 우리말로 직역한다면 "발 위의 공" 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공과 함께 자란다는 말이 나올만큼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운명처럼 접한다는 의미이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펠레, 호나우두 등을 포함한 위대한 브라질 레전드들의 모습이었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를 꼽으라고 하면, 가장 힘든 결정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브라질 출신이자 세계에 이름 석 자를 남긴 브라질 스타플레이어는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그 중에서도 위대하다고 판단되는 선수들을 골라서 여기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브라질 내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펠레와 가린샤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지쿠, 호베르토 카를로스, 히바우두, 호나우두 등이 있고, 여자 축구선수도 2명씩이나 이름을 올렸다. 유일하게 현역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여제' 마르타 또한 이 '명예의 전당' 과도 같은 이 공간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브라질 리그에서 유명한 클럽들의 서포터즈 영상들을 한 데 모아둔 곳이다. 17분 22초짜리 영상)


(1800년대 말, 브라질에 축구가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담긴 사진들이다)


  브라질 축구팬들의 열띤 서포팅을 본 뒤에 등장한 것은 1800년대 말 찰스 밀러에 의해 브라질에 축구가 도입할 때부터 1930년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브라질 축구의 모습을 담은 400장의 사진앨범들이었다. 찰스 밀러, 브라질 축구의 아버지이자 선구자였던 그는 영국인이지만, 브라질 상파울루 태생이었다. 1874년에 태어난 그는, 1884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축구와 크리켓을 배운 뒤 10년 후인 1894년에 2개의 축구공과 심판복을 들고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1888년에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상파울루 애슬래틱 클럽을 창단하여 파울리스타 주 리그에 참가시켰고, 그는 그 팀의 스트라이커로서 1902년부터 1904년까지 우승을 함께 했다.찰스 밀러의 영향으로 상파울루 주를 연고로 한 축구 클럽(상파울루 FC, 코린치안스, 팔메이라스, 산토스 등)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재 브라질 축구리그의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파울루 시는 축구박물관이 있는 주소와 경기장 앞 공원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시대별 정리가 압축되어있는 TV관)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TV관인데,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각 월드컵 대회를 TV 모니터로 통하여 압축하여 정리하고 있다.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한 해에는 해당 연도 우측 구석에 별을 표시해놓고 있다. 대회별 활약했던 브라질 선수들과 베스트11 만 전시되어있었다면 이 공간은 특별하다고 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이 잘했든 못했든 모든 월드컵 대회를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축구 이외에 다른 스포츠 종목, 나아가 사회, 정치, 경제 분야 등 다른 분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 또한 TV 모니터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에 문외한인 사람들 또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단체로 견학을 오는 것도 브라질의 근현대사를 눈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라서다.


(브라질의 위대한 거물, 마네 가린샤와 펠레)


(축구의 역사와 기록, 그리고 규칙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서 '축알못'도 금방 배울 수 있다)


  이 축구박물관의 또다른 장점은 바로, 비록 '축알못' 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축구의 역사, 기록, 그리고 규칙을 배울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있다는 점이다. '축구강국' 아니랄까봐, 이러한 세세한 내용까지 빼곡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잘 쓰지 않는 축구용어도 여기서 배울 수 있다. 만약 축구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하루동안 여기서 지내는 것도 추천한다. 그러면 축구에 대한 배경지식을 많이 쌓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당시 리우올림픽을 맞이하여,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의 도전기가 담긴 영상을 볼 수도 있고, 이웃편에는 축구서적이 전시된 공간도 있었다.


(각 포메이션별로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 축구. 자기 입맛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실제로 키커가 되어 페널티킥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2일 뒤에 기념사진도 홈페이지에서 찾아갈 수 있다)


  눈으로 지식을 쌓았으면, 몸으로 체득하는 체험의 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테이블 축구를 통해서, 혹은 내가 직접 키커가 되어 페널티킥을 찰 수도 있고, 패스 플레이를 해볼 수도 있다. 테이블 축구의 경우, 자기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포메이션별로 다양한 테이블 축구가 세팅되어 있어서 포메이션을 게임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페널티킥 체험의 경우, 무료로 기념사진 촬영이 가능하며 2일 후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사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중립경기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축구성지로 존재하고 있는 파카엥부)


  오늘날 이 곳 파카엥부는 중립경기장이 되어 더이상 홈구장으로 쓰는 팀은 없지만, 간혹 주 리그나 FA컵 같은 일부 몇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이 곳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곳이 지금은 없어져버린 동대문운동장이었다. 동대문운동장 또한 잠실주경기장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잠실과 상암이 존재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축구의 중심지는 동대문 운동장이었고, 옛날부터 축구를 봐왔던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동대문을 향한 향수가 남아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동대문 운동장 또한 서울의 근현대사와 함께 해왔던 상징물이자, 한국 축구에 있어서 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를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 손으로 없애버리고 그 터에 새로운 건물을 올렸다. 과거에 차범근 해설위원이 DDP를 거닐면서 동대문 운동장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안타까웠다.


  서울시와 달리, 상파울루는 코린치안스가 떠나간 후에도 자신들의 축구 성지를 보존하고 그것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앞으로 브라질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브라질에게 있어서 축구는 인생의 일부이기에 가능한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 종목이더라도, 그것 또한 인간사다. 장르엔 등급이 없다. 상파울루 축구박물관을 보면서 옛 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낸 동대문 운동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웠다.



2016년 8월 1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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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에 미친 나라, 브라질 하편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