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최고 명문 중 하나로 꼽힌 성남의 강등. 그 어떤 것보다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2016년 11월 20일, 성남 탄천 종합운동장. 작년 2015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이어 이번에도 충격적인 결과물이 나왔다. 작년에는 리그 4회 우승에 빛나던 부산이 강등이라는 쓴 잔을 맛본 데 이어, 이번 2016년 시즌은 리그 최다 우승기록(7회)을 보유하고 있는 성남이 주인공이 되었다. 반년 전만 하더라도 성남의 리그 순위는 전북보다 더 높은 위치를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남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꼭대기에 서있던 그들은 끝없이 추락하여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기세등등한 강원과 상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2013년부터 시작한 3차례의 승강제에서 단 한 번도 K리그 클래식팀이 승리해서 잔류하는 전례가 없었기에(2013년 강원, 2014년 경남, 2015년 부산이 차례로 당했다) 성남의 입장에선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두 번의 승부에서 성남은 강원에게 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지도 못했다. 수비수들의 실수로 강원의 한석종에게 내준 선제골이 성남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왔고, 원정다득점 원칙에 의거하여 성남은 강원에게 판정패 당한 것이다. 자신들의 홈에서 상대팀인 강원은 승격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성남은 강등이라는 충격과 함께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과거 2010년에 아시아 정상에 오르면서 위용을 떨치던 성남에게 이런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016년 올 한 해를 기준으로 하여, K리그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던 성남의 2016년 흥망성쇠를 되돌아보자.
2016년 4월 : 잘 끼운 첫 단추, 내친김에 리그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까치군단
(모두의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좋은 기세로 선두까지 올라섰던 성남)
2016년 3월 12일, 리그 시작과 함께 성남은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웠다. 성남은 라이벌인 수원을 탄천으로 불러들여 주장인 김두현과 티아고의 연속골에 힘입어 2대0 완승을 거두었다. 짜릿한 라이벌전에서 승리를 시작으로 성남은 연이어 수원FC, 포항, 인천 등을 상대하면서 3승 1무로 리그 선두까지 올라서는 기염까지 토했다.지난 시즌 15골을 넣으면서 팀 득점을 책임지던 황의조와 주장 김두현, 그리고 성남이 야심차게 영입한 왼발의 플레이메이커 황진성 등 다른 팀에 밀리지 않는 알째배기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성남이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올꺼라고 예측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1위를 전북에게 내주긴 했지만, 리그 한바퀴를 순환할 때까지 성남의 전적은 6승 3무 2패 승점 21점을 쌓으면서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초반에 성남이 상승기류를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올시즌 포항에서 성남으로 건너온 브라질 명가 산토스 유스 출신인 티아고의 화력이었다. 포항에서는 4골 밖에 넣지 못했지만, 한국 환경에 적응하고 난 뒤 그의 모습은 확연히 남달랐다. 남다른 개인기와 드리블, 순도 높은 골결정력으로 성남을 이끌고 있었다. 특히나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보여줬던 티아고의 원맨쇼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 뒤에서는 어느덧 팀 내 수비핵심으로 떠올랐던 윤영선이 버티고 있었던 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원래 올해 4월 상주로 입대 예정이었지만, 재검문제로 인해 입대가 연기되었기에 김학범 감독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성남이 아무리 못하더라도 최소 상위스플릿에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6년 7월 : 티아고와 윤영선의 연이은 이탈, 날개 꺾인 까치의 곤두박질 시작
(성남 공수의 핵심이었던 윤영선(위)과 티아고(아래)의 이탈, 성남은 이때부터 끝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이라는 건 참으로 알 수 없었나보다. 더운 여름이 찾아오면서 성남에게는 시련의 계절로 바뀌었다. 6월 말, 성남의 득점 절반 이상을 책임지던 티아고가 알와흐디로 이적한다는 오피셜 기사가 등장하면서 성남의 팀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7월 2일에는 입대연기로 인해 성남에서 뛰고 있던 윤영선이 상주로 떠나기 전 고별경기를 치뤘고, 곧이어 일주일 뒤에는 티아고가 성남에서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하루아침에 공수 핵심을 모두 잃어버린 성남은 마치 저주라도 걸린 듯 마냥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윤영선과 티아고 없이 수원 빅버드 원정에서 승리한 이후, 성남은 8경기에서 겨우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티아고 이적은 예상치 못했다고 치더라도, 성남이 이 두 선수의 공백을 메울만한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윤영선의 입대는 올시즌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예견되어있던 상황이었음에도 성남은 윤영선을 대체할 센터백 자원이 없었다. 지난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인 임채민은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되어 경기력이 썩 좋지 않았으며, 다른 센터백 자원들 또한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다. 또한 티아고의 맹활약 속에서도 보이지 않은 그림자가 존재했는데, 성남이 지나치게 티아고 의존도가 높았다. 황의조는 슬럼프로 침묵했고, 박용지나 김현 등 다른 공격수들도 득점에 있어선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급하게 영입한 실빙요도 크게 도움이 안됐다. 성남의 플랜B가 없었던 치명적인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여름이었다.
2016년 9월 : 지휘봉을 내려놓은 김학범. 선장까지 잃은 성남, 분위기는 최악으로.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난 김학범, 선장까지 잃은 성남은 암초에 부딪쳐 표류했다.)
무너지는 성남에게 있어서 반전의 기회가 필요했다. 성남은 수원을 다시 홈으로 불러들이는 9월 10일 경기를 전환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올시즌 리그에서 이미 두 차례나 승리를 거뒀으며, 수원이 극심한 부진으로 하위권으로 추락한 상태였기에 모든 조건은 갖췄다. 하지만 수원이 2대1 역전승을 거두면서 오히려 성남에게 카운터를 날렸고, 이 계기로 성남 서포터즈들은 경기 끝나고 장외에서 김학범 감독과 부진한 성적에 대한 대화를 가졌다. 이틀 뒤, 김학범 감독은 성적 부진이라는 명목으로 사임했고, 기자들은 앞뒤사정을 다 잘라버리고 지난 10일에 있던 서포터들의 행동을 꼬투리 잡아 그들 때문에 감독이 쫓겨났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면서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까지 흘러갔다.
성남 프런트는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수원과의 라이벌전에서 패배와 성적 부진이라는 표면적 이유로 김학범 감독을 비롯하여 1군의 대부분 코치들을 싹 다 바꿔버렸다. 그리고 일천 프로감독 경험이 없는 구상범 유스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끌어올렸다. 아무리 팀 성적이 부진한다한들 시즌 중에 아무런 대책없이 1군 스태프를 대부분 물갈이해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리그를 포기하겠다는 행동인데 프런트의 안일함이 사고친 것이다. 그런 와중에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서포터들의 행동이 논란거리로 수면 위로 떴으니 프런트의 문제는 보기좋게 묻혀버린 것이다. 성남 팬들이 언론과 구단을 불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고, 구상범 체제의 성적도 수원FC와의 홈경기 승리가 유일했다.
2016년 10월 : 황의조가 쏘아올린 축구공, 그것이 불러온 막대한 대참사.
(10월 2일 포항과의 홈경기, 황의조가 허무하게 날려버린 슈팅은 막대한 대참사를 몰고 왔다)
울산과 전북원정에서 연이어 패배를 기록한 성남, 상위스플릿으로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포항과의 홈경기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패배했으나 경기력 부분에선 좋았기에 비슷하게 하락세를 겪고 있는 포항전은 충분히 해볼만 했기 때문이다. 2대1로 뒤지고 있던 후반 30분, 포항의 공격을 끊고 역습 찬스를 맞이한 상황에서 황의조는 수비 1명과 포항 골키퍼 2대1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고, 뒤이어 실빙요를 비롯해 성남 선수들이 공격가담으로 거의 올라오던 상황이었다. 기다렸다가 패스만 하더라도 2대2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황의조는 무리하게 없는 각도에서 슈팅을 하면서 허무하게 기회를 날려버렸다. 황의조가 무의미하게 쏘아올린 축구공은 뒤이어 엄청난 대참사를 불러왔다.
유일한 반등의 기회가 사라지자, 전의상실한 성남은 경기가 끝나기 전에 포항에게 더 얻어맞으면서 4대1 대패와 함께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졌다. 하위스플릿이 시작되고 성남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득점은 단 1골에 그쳤다. 운명의 장난처럼, 마지막 경기에서 포항 원정을 떠난 성남은 양동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최종 리그 11위를 기록했고, 성남 팬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경기 끝나고 선수단 버스를 둘러싸는 행동까지 벌이게 되었다. 구상범 감독대행 또한 포항 원정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고, 변성환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성남의 와해된 분위기를 수습해야만 했다. 변성환이 나서기엔 이미 성남은 너무나 늦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전에 강등됐던 팀들 경우에는 시즌 중 언제부턴가 강등될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나 위험성이 어느정도 감지되었으나, 성남은 의외였다. 30년이 넘는 K리그 역사를 들춰봐도 성남처럼 한 시즌에 1위까지 찍었다가 강등까지 겪는 경우는 아마 최초일 것이다(해외 리그에서도 이런 사례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축구팬들의 전문용어 중 하나인 '리즈시절'의 대명사 리즈 유나이티드도 성남처럼 한시즌만에 훅 가진 않았다. 운명의 여신이 성남을 외면했다는 말 이외에는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2017년에는 성남을 2부리그에서 봐야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승강제의 잔인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2016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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