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유럽 챔피언스리그 10/11시즌 16강 1차전의 키워드는 '이변'과 '프랑스 클럽'이다. '이변'은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준 AC밀란과 바르셀로나가 북런던 라이벌 두 클럽(토트넘과 아스날)에게 패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프랑스 클럽'은 이번 챔피언스리그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무승부를 만들어낸 올림피크 리옹과 올림피크 마르세유 이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두 클럽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1차전에서 일어난 '이변'보다도 이 '프랑스 클럽'이란 키워드가 더 끌리고 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프랑스 클럽들이 알게 모르게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1차전서 프랑스 클럽 2팀이 일궈낸 경기결과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1. 올림피크 리옹의 등장
(챔피언스리그에서 본격적인 프랑스 돌풍의 시초, 올림피크 리옹)
챔피언스리그에서 대표적인 프랑스 클럽을 손꼽자면 당연히 떠올리는 것이 바로 올림피크 리옹. 이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클럽은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저그런 중소클럽에 불과했던 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론트의 집중적인 투자와 비례하면서 마침내 01/02 프랑스 리그를 제패하여 무려 7년연속으로 디펜딩 챔피언으로 자리잡았고, 덕분에 챔피언스리그에 자동진출하는 영광까지 누리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올림피크 리옹을 거치면서 슈퍼스타로 떠올랐던 선수들 또한 많다. "무회전 프리킥의 원조" 주닝요를 시작으로 하여, "첼시의 완소" 마이클 에시앙, 레알 마드리드로 건너간 카림 벤제마와 마하마두 디아라, 맨유를 조별탈락시키게 만들었던 장 마쿤, 그 외 프레드, 킬 칼스트롬, 크리스, 제레미 툴라랑, 시드니 고부 등이 리옹 출신이다. 이런 알짜배기 선수들을 이끌고 수년동안 챔스 내공을 쌓아둔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 킬러'라는 타이틀도 얻었고, 클럽 역사상 최고 성적인 챔스 4강까지 진출해내는 결과를 이뤄냈다.
2. 2003/04 AS 모나코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올림피크 리옹이 꾸준히 챔피언스 리그 단골손님으로 입지를 굳히며 꼬박꼬박 좋은 성적을 냈다면, 한 시즌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프랑스산 클럽도 있었다. 바로 현재 박주영이 소속되어 있는 AS 모나코다. 현재 리그 강등권을 허덕일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나, 7년 전만 하더라도 AS 모나코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위용을 떨쳤다.
(03/04시즌 모나코에세 챔스 준우승을 선사했던 현재 마르세유 감독인 '프랑스 레전드' 디디에르 데샹)
그 당시 모나코의 스쿼드는 상당히 화려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군림하고 있는 파트리세 에브라, 스페인 거인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서 임대해온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모나코를 대표하던 윙어 듀오인 루도빅 지울리와 제롬 로탱, 반니와 반바스텐, 셰브첸코와 나란히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경기 4골을 기록한 다도 프르소, 프랑스 국대 출신 수비수인 가엘 지베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아데바요르는 당시 벤치멤버로 두고 있었다).
(03/04 AS 모나코를 이끌었던 모리엔테스, 레알 마드리드 주전에서 밀려난 한을 맘껏 풀었던 시즌이었다.)
이러한 멤버들을 이끌고 프랑스 레전드로 칭송받던 디디에르 데샹은 03/04시즌에 유럽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데포르티보와 함께 조별리그를 통과한 모나코는 16강에서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8강에서 레알 마드리드, 4강에서 첼시를 격침시키는 이변을 낳으며 클럽 역사상 최초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렸지만, 결승에서 무리뉴의 포르투에게 3대0 완패를 당하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성적으로 인해 데샹은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6년 뒤 마르세유 감독으로써 보르도와 리옹을 제치고 프랑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래서 주전 선수들이 모조리 부상 병동에 가 있었다는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거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구장으로 불러들여 무승부를 기록했던 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라 데샹 감독의 능력이었다는 점이다.
3. 프랑스 리그의 치열한 경쟁과 리그 특성상 스타일
리옹과 마르세유 이외에도 보르도나 릴 등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나름 한 획을 긋기도 있다. 릴은 05/06 시즌에 맨유를 챔피언스리그 조별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고, 보르도도 10여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자마자 토너먼트에 진출할 만큼 좋은 전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클럽들의 돌풍은 언제 한 번 또 터질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2011년 2월 10일자 프랑스 리그 "리게 앙" 리그순위표. EPL과 세리에A, 분데스리가 못지 않게 치열하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는 강력한 믿음은 바로 프랑스 리그 "리게 앙" 리그순위경쟁에서 비롯된다. 07/08 시즌 이후로 올림피크 리옹의 독주가 막을 내리면서 춘추전국시대로 도래했다. 이 말은 곧,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소리이며 치열하게 순위경쟁에 덤벼들기 떄문에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한 리옹이나 마르세유도 여차하면 다음 시즌 챔스 진출 티켓을 잃게 될 수도 있다(마치 작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성남이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 이번 시즌 아챔에서 볼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정조국의 소속팀이자 이번시즌 챔스에 진출했던 옥셰르는 강등 위기까지 갔다.
이런 리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연스레 택하게 되는 방법은 바로 수비력 강화가 된다. 실제로 프랑스 리그인 "리게 앙"은 유럽 각 나라 리그를 통틀어 수비력이 가장 두텁기로 소문났다. 오죽하면 리게 앙에서 10골을 기록하는 것이 다른 리그에선 15골을 기록하는 것으로 동등하게 쳐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서 말하건대, 박주영이 골 수가 적다는 게 절대로 박주영이 못하는 게 아니라 리그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 출신인 아스날의 마루앙 샤막도 보르도 시절에 한시즌 20골을 넘기지 못했으니까.
이러한 짠물 수비는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에서는 절대적인 무기가 된다. 이번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선보였던 리옹과 마르세유의 수비를 보면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물론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너먼트에선 한 발의 실수가 크게 파장이 오기 때문에 누가 더 단단하게 지키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 효율적으로 지키면서 한골 차 승부로 끝장내는 축구를 구사하는 것이다.
다음달 초에 있을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 리옹과 마르세유가 원정길에 올라 어떤 경기를 보여줄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 두 클럽들이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따라 기존 빅4 리그(EPL, 라리가, 세리에A, 분데스리가)의 카르텔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시즌 리게 앙에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프랑스 클럽들이 다음 시즌에 어떠한 한 획을 그을 지도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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