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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암은 빅버드 스타디움이었다", K리그 서울vs수원 직관 후기

J_Hyun_World 2011. 3. 6. 20:21

 

 

 오늘은 개구리가 날씨가 따뜻해서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하지만, 아직 서울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대낮 경기라서 얇게 입고 나왔던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마냥 차가운 바람이 종종 불어대서 감기 걸릴뻔...). 아직 날씨가 덜풀렸지만, 축구팬들의 뜨거운 열기를 잠재울 순 없었다. 오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던 K리그 개막전 서울 vs 수원 경기는 더더욱 그러했다.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 이제 K리그가 개막했다는 게 어느정도 실감이 난다)

 

  사실 서울과 수원, 이 K리그 최고의 라이벌 더비를 리그 개막 경기로 잡았다는 건 흥행적인 요소로는 좋겠지만, 솔직히 두 팀의 리그 시작을 맞이하는 경기치곤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 첫단추를 잘끼워야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 첫단추가 너무나도 크기에 자칫 잘못했다간 남은 일정에도 부담감을 더 지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일정은 이미 이렇게 나왔으니 더이상 어쩌겠는가? 두 팀은 오늘 경기에서 사생결단을 내야겠지(나처럼 수원이나 서울 팬이 아닌 제3자 입장에선 맘놓고 편히 보면 그만이니깐).

 

  이 두 팀은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상암월드컵경기장 입장료 책정부터 두 팀 서포터즈간에 싸움이 붙었고(서울측에서 원정석 입장료를 무려 14,000원으로 책정하면서 그랑블루를 자극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에도 서울은 지난 시즌 상암에서 수원을 3대1로 이겼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내내 틀면서 수원을 또 다시 자극했고, 서울의 태도에 대한 그랑블루의 야유는 장난 아니었다.

 

(몸을 풀기 시작한 수원(위)과 서울(아래))

 

  그리고 이 날 상암에서는 서울의 신임감독인 황보관 감독, 서울로 돌아온 김동진과 '콜롬비아 에이스' 몰리나의 환영식을 가지기도 했다.

 

 

 

(작년 K리그 통합챔피언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FC 서울의 K리그 챔피언 마크)

 

  이제 경기 시작하기 몇분을 남겨놓고, 장내 아나운서는 미리 준비한 플랜카드문구를 만들기 위해 북측과 동측에 준비해놓은 큰 색도화지를 들어올려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뜻은 이러했다.

 

(서울의 키워드 "K-자존심")

 

(질 수 없다, 수원의 그랑블루)

 

(드디어 대망의 KICK-OFF!!)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수원은 홈팀 서울을 매섭게 몰아쳤다. 며칠 전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줬던 수원의 모래알 조직력은 온데 간데 없었다. 수원은 전반부터 오범석, 염기훈을 이용한 오른쪽 측면 돌파가 유난히 돋보였고, 그 덕분에 결국 서울의 왼쪽 풀백이었던 현영민은 교체되어 나갔다. 특히 오범석은 수비시엔 오른쪽 풀백에 위치하면서 공격이나 역습시엔 윙어로 올라오는 등 활발한 오버래핑을 보여주면 초반부터 수원의 공격활로에 엄청난 힘을 불어넣어줬다(아아...호르곤 이인간아... 저런 인물을 강민수랑 트레이드라니....).

 

(오늘 서울의 왼쪽을 완벽하게 구멍을 내버린 오범석(파란색 14번))

 

  서울의 왼쪽 측면 공격이 철저하게 봉쇄당하자, 제파로프나 몰리나의 활동 폭이 상당히 좁아지면서 서울이 공격을 전개하는 데 큰 문제를 겪었다. 게다가 중원싸움에서 수원의 중원라인 오장은-이용래가 서울의 패스를 일선에서 차단함과 동시에 최성국-염기훈 등이 대기하고 있는 측면으로 빠른 패스를 공급하게 됨으로써 서울은 수원의 계속 몰아치는 역습을 막아내느라 급급했다.

 

(수원이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니까 수원의 프리킥 or 코너킥시 전광판에 뜨는 부부젤라 타임)

 

  이렇게 밀어부치던 수원은 전반 41분, 지난 아시안컵 3,4위 결정전에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두 골을 꽂았던 우즈벡 골잡이 게인리히의 선제골로 서울을 기세를 누르는 데에 성공했다. 그 이후에도 수원은 왼쪽에 최성국, 오른쪽에 염기훈을 이용해 측면돌파로 측면수비가 빈약한 서울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그리고 중원을 점령해버린 오장은-이용래 라인 덕분에 서울의 공격은 번번히 차단당했고, 수원의 포백마저도 오늘 경기에선 '통곡의 벽' 모드였다. 게다가 후반 15분경에 오장은의 헤딩골이 들어가면서 전세는 완전히 수원 쪽으로 기울어지며 결국 수원의 완승으로 상암벌 전투는 막을 내렸다.

 

  오늘 경기의 BEST PLAYER : 오장은(수원)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울산 호랑이의 주장완장을 차던 그가 올시즌부터 다른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나에게 폭풍 슬픔을 안겨다 주었다(흐엉엉 ㅜㅜ).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원 파트너인 이용래와의 호흡이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대세였으나, 오늘 경기에서 완전히 그 전망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오늘 이용래와 함께 중원에서 서울의 패스를 거침없이 끊어버림과 동시에 측면으로 쉴새없는 볼배급을 전달함으로써 수원의 살림꾼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오늘 이승렬은 존재감이 없는 사람처럼 지워졌고, 서울의 특급 용병 F4(데얀-몰리나-제파로프-아디)도 조용했다. 거기다가 수원의 완승을 장식하는 헤딩골(리그 첫경기에 데뷔골이라니!!)까지 기록했으니 오늘 경기에서 최고가 아니었겠는가? 오장은을 수원으로 보내놓고 오늘 홈경기에서 대전한테 발린 울산이 참 멍청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호르곤 감독의 판단이 또 한 번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이외에도 오범석의 오른쪽 측면 점령 및 동분서주 중원을 누볐던 이용래, 수비와 골키퍼를 제치고 선제골을 기록한 게인리히도 돋보였다.

 

(오늘의 MVP 오장은(파란색 9번). 그의 활약이 오늘 수원의 완승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 경기의 WORST PLAYER : 이승렬

 

  나는 오늘 서울 경기를 보고 어느 정도 실망했다. 수원과 함께 맞불작전을 놓으며 화력전을 예상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수원의 반코트 게임이 되어버렸다. 물론 주장인 박용호와 허리를 책임지던 하대성이 오늘 결장했음을 감안했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특히 오늘 서울에서 가장 부진했던 건 염기훈과 오범석에게 내내 당한 현영민보다도 이승렬이라고 생각된다.

 

  올 시즌부터 공격수로 기용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이승렬은 오늘 경기에서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전광판에 교체되는 선수 이름으로 뜨기 전까지 그가 뛰었었나라고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오늘 철저하게 지워졌다. 이승렬은 공을 잡자마자 바로 커트 당하거나 태클당하여 제대로 움직이는 모습조차 보여주질 못했다. 이렇게 이승렬이 지워짐으로써 서울은 11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10명이서 플레이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결국 이승렬은 후반 10분경에 교체되었다.

 

  오늘 경기의 분위기 : 상암 경기장이 아니라 마치 빅버드 스타디움에 온 듯 했다.

 

(오늘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원정석에 자리잡은 그랑블루가 전세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분명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왔는데, 오늘 경기 분위기는 완전히 수원 빅버드 스타디움 분위기였다.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부친 수원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서포터즈 간의 기싸움에서도 그랑블루가 압도적으로 수호신을 눌렀었다. 재작년에 수도권 더비를 보러 상암을 방문했을 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랑블루는 90분 내내 높은 데시벨을 찍으면서 푸른 물결을 이뤘던 반면에, 수호신은 전반 중반 이후부터 그 무서운 기세는 어디가고 침묵해버렸다.

 

  개막전에서 그것도 라이벌에게 완벽한 패배를 당한 서울. 그리고 개막전에 라이벌에게 완승을 거두며, 아챔에서의 분위기를 완전 뒤바꿔놓은 수원. 이 더비 경기의 후폭풍이 얼마나 미치게 될 지 참으로 기대해 볼만하다. 특히 황보관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드러나 측면 수비의 문제점과 F4의 침묵을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P.S : 오늘 상암 경기장은 K리그 개막전 관중 역대 최대 인원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K리그를 향한 기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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