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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첼로티 감독 경질을 통해서 본 첼시의 사정

J_Hyun_World 2011. 6. 3. 09:24

 

 

 

  2010/11 잉글리쉬 프리미엄리그(이하 EPL)는 맨유의 19번째 우승으로 잉글랜드 구단 중 리그 최다 우승을 기록하면서 막을 내렸다. 맨유는 올시즌에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은 반면에, 2위를 기록한 첼시는 무관에 그친데다가 3위인 맨시티한테까지 막판추격을 허용해 하마터면 뒤집힐 뻔 했다. 모두가 우려했듯이 첼시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리그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첼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많은 사람들은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무관에 그친 첼시의 성적에 실망한 나머지 성적부진의 명목으로 안첼로티 감독을 경질시켰다고 믿는 분위기다. 물론, 그 점도 경질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여기서 로만 구단주가 결코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내친거라곤 보지 않기 때문이다.

 

 

 

1. 무관에 그친 첼시, 하지만 이것이 어느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면?

 

(초반에 막강화력을 자랑하면 선두로 치고나오던 첼시, 엔딩은 무관에 그쳤다)

 

  09/10시즌 접전 끝에 맨유를 따돌리고 리그 우승을 제패함과 동시에 FA컵 우승을 일궈내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첼시에서 성공적인 첫시즌을 보냈다. 첼시는 이 시즌동안 어떠한 빅사이닝도 없이 더블크라운을 달성했었기에 안첼로티의 가치가 더더욱 높게 평가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했고, 그 사이에 첼시는 데코, 미하일 발락, 줄리아노 벨레티, 조 콜을 계약 만료로 떠나보냈고, 베나윤을 리버풀에서 데려온 것 이외에 첼시는 그들의 공백을 메꿀 영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월드컵 기간이었으니, 월드컵 기간동안 활약했던 선수들을 나중에 데려오는 줄로 첼시팬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 이적시장이 점점 닫혀갈 수록 첼시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브라질리언 미드필더인 하미레즈 한 명을 추가로 더 영입하는 것에 그친 것이다. 사실 첼시는 근래에 기존 주전들이 노쇠화에 접어들기 시작했기에 리빌딩을 시작해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지난 여름이적시장에선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결국 그렇게 여름 이적시장의 문은 닫혔고, 첼시는 나간 만큼 선수보강을 하지 않은 불안한 전력보강에서 새 시즌을 맞이했다(그 사이에 첼시 수비의 핵인 히카르두 카르발료는 무리뉴가 있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되려 안첼로티 감독은 첼시는 보강할 필요가 없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더욱 더 불안감만 가중시켰다(정말 첼시는 리빌딩 해야할 시점이 맞는데도 말이지...)

 

  리그 초반에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구단은 단연 첼시였다. 8월 리그개막과 함께 웨스트 브롬위치와 위건, 스토크시티, 웨스트햄, 블랙풀을 상대로 5경기 동안 무려 21골을 뿜어내는 막강한 화력을 선보이면서 이러한 리빌딩 시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리그 선두로 치고 나왔다(반면, 경쟁상대인 맨유는 초반부터 고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기결과는 전혀 의미없는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왜냐하면 첼시의 다득점은 첼시의 전력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약팀들을 상대로 양민학살을 했던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은 맨시티전이야말로 진정한 우승레이스의 향방을 예측할만한 경기라고 평했다.

 

  결국, 전문가들이 지목한 9월 마지막주의 맨시티와 첼시의 경기. 첼시의 수비진은 테베즈 한명에게 철저히 유린당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중원에서 숨막히는 압박과 점유율, 그리고 장악력을 자랑하는 첼시 미드진은 맨시티 미드진에게 무너지고 말았으며, '드록신' 디디에르 드록바마저 '드록인'으로 전락해버렸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첼시는 조금씩 흔들리는 조짐이 보였고, 11월 리버풀 원정에서 훗날 첼시로 이적하는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크게 당하면서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맨유와 아스날에게 선두 추격을 허용해버렸고, 맨유가 선두로 치고 나가는 것을 따라잡지 못했다.

 

 

 

2. 첼시의 소극적이고 비효율적인 이적시장 움직임

 

(지난 시즌 첼시의 주역이었으나, 올시즌엔 첼시의 최악의 카드였던 플로랑 말루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지난 1월에도 한 번 지적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첼시의 공격진 노쇠화만 꼬집었으나, 이번에는 공격진 뿐만 아니라 첼시 전체가 노쇠화로 인해 폼이 무너졌다는 것을 지적하겠다. 일단, 공격진부터 보자면, 안첼로티 감독은 폼이 좋든 나쁘든 간에 죽어라 아넬카-드록바-말루다 라인을 가동했다. 특히, 나는 여기서 말루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문제였다고 생각이 된다.

 

  플로랑 말루다, 분명 히딩크 감독에 의해 부활에 성공하여 지난 시즌에 첼시의 더블 크라운의 주역 중 한명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클래스를 인정하는 바였지만, 올시즌은 냉정하게 말해서 가히 '최악'이었다. 심지어 첼시 팬들마저도 그를 계속 기용하는 안첼로티 감독의 의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밥장군' 훌리우 밥티스타의 별칭을 빗대어 그를 '말장군'이라고 조롱까지 했다. 그리고 항상 슈퍼서브로 나오던 살로몬 칼루. 오히려 말루다보다 칼루가 더 심하다 싶을 정도 최악의 모습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부진과 삽질을 거듭하면서 첼시에게 도움은 커녕 오히려 민폐만 끼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하며 다음 여름시장에서 방출 1순위로 올려야한다고 나올 정도다. 사람들은 이 최악의 폼을 보여줬던 말루다와 칼루를 싸잡아 "말칼족"이라는 별칭까지 만들어내면서 그들의 부진을 비꼬았다.

 

  그리고 카르발료가 떠난 수비진의 붕괴도 적잖은 문제로 지목되어왔다. 물론, 존 테리와 알렉스, 애슐리 콜, 그리고 블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남아있긴 했지만, 첼시 수비진은 부상신 강림으로 차례차례 쓰러져 갔고, 그들을 대체할 자원이 빈약한 상태였다. 만약 카르발료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주지 않았다면, 혹은 진작에 여름시장에서 카르발료 공백을 메울 수비수를 데려왔더라면 첼시의 수비진이 최악의 상황까지 갔을까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러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첼시는 오버페이를 감행하면서까지 벤피카에서 다비드 루이즈를 거액에 데려왔다. 하지만, 다비드 루이즈도 후반으로 갈수록 안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적료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토레스의 영입은 최악이라고 폄하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논젯거리는 당연 900억원을 리버풀에게 지불하고 데려온 페르난도 토레스에 대한 평가다. 첼시는 900억원을 들여 EPL 이적료 최다지출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급한 불을 끄려고 했지만, 토레스는 900억원의 값을 하지 못하고 첼시에서 겨우 1골 2도움을 기록해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골닷컴에서도 최악의 영입 1위로 토레스를 꼽았다. 수치상 평가로 본다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토레스에 대한 평가는 이번시즌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조금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첼시의 수석코치인 로날드 에메날로는 토레스가 부진했던 원인에 대하여 밝혔다. 에메날로가 지적한 문제점은 바로 토레스 본인의 문제보다도 첼시의 미드진의 지원이 빈약했다는 점을 꼽았다. 에메날로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토레스는 드록바처럼 경기를 주도하는 플레이메이커기질을 가진 선수가 아니기에 혼자서 경기를 해결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의 능력이 극대화되려면 첼시 미드필더진이 리버풀의 제토라인처럼 막강한 지원이 있어야 같이 살아날텐데, 첼시 미드진은 그러지 못했다. 람파드도 올시즌 유난히 전력이탈 기간이 길었던데다가 기량이 예전같지 않았고, 에시앙의 활동량도 예전처럼 넓게 커버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하미레즈나 미켈도 좀처럼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주었다. 크랙형 스타일인 요시 베나윤이 장기 부상에서 복귀하니까 그제서야 토레스도 조금씩 살아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기에 토레스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자면, 확실히 다음 시즌을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막대한 이적자금을 제공했는데도 안첼로티 감독이 여름이적시장에서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인 탓이 첼시의 부진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로만 구단주의 지나친 간섭만 문제있다고 꼬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3. 안첼로티 감독의 유스 선수들 기용능력 미숙

 

  또 하나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안첼로티 감독이 유스 선수들을 기용하는 능력이 다소 미숙하다는 점이다. 첼시는 데코나 발락, 벨레티 등의 노련한 베테랑 백업들을 과감히 방출시키고, 올시즌부터 첼시 유스선수들을 전격 기용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첼시 유스선수들도 요즘 들어서 EPL 소속 클럽들 중에서 주목받고 있긴 하다.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 중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우는 조쉬 맥키크란이나 수비 유망주인 샘 허친슨, 네덜란드 듀오인 빈센트 반안홀트와 제프리 브루마, 그리고 가엘 가쿠타 등이 포진되어 있으며, 이번에 유스 대회에서도 맨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었기 떄문에 첼시 프론트진은 그만큼 자신들이 길러내는 유망주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이러한 유스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기용하는 능력이 미숙했다. 주전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다른 팀에 비해서 높은 편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분명히 문제가 오기 때문에 다소 비중이 없는 경기에선 유스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적절한 로테이션을 돌렸어야 했다. 그러나 안첼로티는 유스들에게 끝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고, 주전선수들만 줄기차게 기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첼시 프론트진을 실망시켰다(첼시가 자랑하는 유망주들은 거의 대부분 출장기회를 받지 못해 다른 팀으로 임대를 가야만 했다).

 

(안첼로티는 밀란 감독시절에도 베테랑을 애용하는 대신, 유망주를 잘 사용하질 못했던 걸로 유명했다)

 

  안첼로티의 유망주 기용에 대한 미숙은 첼시 이전에 AC밀란 감독직을 맡을 때도 이미 드러났던 부분이다. 안첼로티 감독시절에 AC밀란은 당대 유럽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며, 그가 부임하는 동안에 챔피언스리그도 2번이나 우승했고, 1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안첼로티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베테랑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밀란의 스쿼드진은 한때 '노인정'팀이라 불릴 정도로 주전의 평균연령대가 매우 높았지만, 그만큼 그들의 기량을 잘 끌어낼 줄 알았기에 그 멤버로도 유럽을 제패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젊거나 어린 유망주들을 키워내는 능력을 부족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요앙 구르쿠프다. 요앙 구르쿠프는 당시 '포스트 지단'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AC밀란으로 이적했고, 카카와 함께 최고의 호흡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지만, 구르쿠프의 밀란 생활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물론, 구르쿠프 본인의 적응력 문제와 부상 문제도 영향을 끼쳤지만, 안첼로티는 그 젊은 선수를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고, 구르쿠프 대신에 노장인 쉐도르프에게 전적으로 출장기회를 주었다(이것이 구르쿠프가 밀란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보르도로 완전이적했던 원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영국의 가디언지는 안첼로티 경질의 사유로 지적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떄, 나는 단지 안첼로티 감독이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짤린 것일까라는 의문점이 든다. 앞서 얘기했듯이, 성적부진이 경질의 큰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성적부진에 대해서 안첼로티 감독이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결정적인 순간의 판단미스들이 누적되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현재 첼시는 터키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다시 스탬포드 브릿지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안첼로티 경질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어차피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것이 부당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나름 일리가 있는 이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첼시가 마냥 그를 부당하게 짜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첼시도 이제 오일머니로 성장한 일시적 빅클럽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도 맨유나 리버풀처럼 수십년 넘게 오랫동안 호령하는 명문클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안첼로티 감독을 안고 가는 것에 대해서 그들도 엄청나게 고민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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