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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다시 순풍이 불 것인가?

J_Hyun_World 2011. 7. 16. 14:12

 

 

  1980년대 한국프로축구가 개막한 이래에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수많은 팀들이 뜨고 지고 옮겨가고 했다.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명문클럽을 손꼽자면 성남, 포항, 수원, 울산 등을 말하곤 한다. 지금은 예전만큼의 명성과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 또한 K리그의 한축을 담당하는 명실공히 명가다. 1990년대말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은 스포츠의 도시였다. 흔히 부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야구 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다 해당되었다.

 

  구덕운동장은 축구팬들 사이에 있어서 축구성지나 다름없던 구역이었다. 그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명성을 드날렸던 부산대우로얄즈. 박창선, 정용환 등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슈퍼스타들을 영입하여 1984년 최초 챔피언에 등극한 이래로 그들의 전성기는 시작되었다. 그러한 화려한 전성기 사이에 박창선, 정용환, 조광래, 장외룡, 김주성, 하석주, 안정환, 마니치까지. 숱한 슈퍼스타들의 산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로얄즈의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망하고,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건립된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옮김과 동시에 부산은 미스테리하게 성적이 점점 하락세로 치닫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대그룹이 인수하고 난 뒤, 서울로 연고이전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부산 사람들에게 점차 외면받으며, 실망해버린 팬들은 야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부산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살아왔던 부산 아이파크는 요 몇년간 다시 옛날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보였고, 그에 비례하여 한동안 떠났던 팬들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엇이 부산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인가?

 

 

 

부산을 다시 재건하려는 데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안익수 감독

 

  사실 이러한 부산의 부활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황선홍 감독(現 포항 스틸러스)이 부산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였다. 황선홍 감독이 맡았을 당시의 부산은 정말 열악했다. 재정은 빈약하지, 선수층은 얇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위닝 멘탈리티가 한참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황선홍 감독은 고군분투하며 선수비 후역습의 현실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오며 재임기간 동안 리그컵과 FA컵 준우승, 그리고 리그 성적도 중상위권에 도약하는 등 기대 이상의 좋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산 팬들의 바람을 채우기엔 너무 부족했다. 팬들 기억 속에는 아직도 부산로얄즈의 향수가 남아있었으니깐 말이다.

 

  이렇게 황선홍 감독이 포항으로 떠나고, 그 자리에 서울의 수석코치였던 안익수 코치가 감독으로 오게 되면서 부산은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안익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 부산은 무려 안익수 감독에게 4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K리그 감독 계약 사상 최장기간을 보장하는 셈이었다!! 헉!!). 안익수 감독은 WK리그에 소속된 대교 캥거루스와 한국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 그리고 FC서울 수석코치로 지내면서 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고, 이것이 부산 프론트진이 눈여겨 본 것이다.

 

  황선홍 감독이 부산을 이끌 때, 수비와 팀밸런스를 맞추는 데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안익수 감독은 이와 약간 다르게 공격에 좀 더 치중하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비를 간과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포백을 세워서 실험을 해보려 했으나, 뜻하지 않게 잘 안풀리자(수비진의 줄부상크리도 있었다) 그는 재빨리 쓰리백으로 전환하여 위기상황을 손쉽게 넘기며 전술의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베테랑 김한윤을 통하여 리더가 없는 부산의 중심을 잡는 데 성공하며, 한상운, 임상협을 필두로 한 측면에서 파고 드는 플레이는 매 경기마다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분히 채워주었다.

 

  그리고 안익수 감독은 선수들 하나하나를 자기 자식처럼 아끼듯이 다 '내 자식', '우리 자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만큼 감독과 선수간의 벽을 허물어뜨려 좀 더 친밀해지면서 끈끈한 단결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리그컵 결승전에서도 울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경기를 종료휘슬이 불때까지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3대2까지 따라가며 상대를 괴롭히는 모습을 봤을 때, 부산은 확실히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스쿼드라는 한계를 지니고도 이 정도의 성과를 뽑아낸다는 점을 봤을 때, 안익수 감독은 분명 부산의 구세주가 되어줄 것이라고 강력하게 믿는다. 이런 페이스라면 이번 시즌에 어쩌면 그들이 염원하던 6강 플레이오프에 안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는야 부산의 아이콘, '한페르시' 한상운의 활약

 

(이제는 부산을 상징하는 아이콘, '한페르시' 한상운)

 

  부산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꼭 빠져선 안될 인물이 있다. 바로 팀의 핵심선수로 거듭나고 있는 '한페르시' 한상운이 있다. 사실 한상운도 황선홍 감독 시절에 황선홍이 아끼던 애재자 중 한 명이었으나, 그당시에는 지금처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대표선수는 한상운이 아니라 정성훈, 이승현(이상 전북), 그리고 박희도였다. 올해로 입단 3년차인 그는, 첫시즌에 31경기 3골 5도움을 시작으로 하여, 지난시즌에는 7골 5도움을 기록, 올시즌에만 무려 총 21경기 10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그가 올시즌 목표로 잡았던 시즌 15골을 현재 페이스로 봤을 때, 달성할 것처럼 보인다.

 

   한상운의 별명은 '한 마리아'. 레알 마드리드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출신인 앙헬 디마리아와 비슷한 플레이를 구사한다고 팀동료들 사이에서 부르는 별칭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 들어오는 움직임이나 날카로운 왼발 슈팅은 흡사 디마리아의 움직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에는 디마리아보다는 오히려 로빈 반페르시에 가깝게 느껴진다.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경기에 해결사로 등장하여 팀의 승리를 가져다주는 해결사기질(최근 부산의 리그경기에서 결승골 중 3골은 한상운이 만들어냈다)이나 정교한 프리킥 능력, 물오른 골감각과 드리블능력은 반페르시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이거 때문에 그를 '한페르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꽤나 많다).

 

  리그에서 두드러지는 활약 덕분인지 최근 한상운은 다음달에 있을 한일전에서 한국 대표로 차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거의 압도적이다. 그리고 한상운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조광래 감독 또한 직접 관찰하러 오기도 했었다. 현재 한국국가대표팀에도 염기훈 이래에 왼발잡이 크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상운의 국대승선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끝으로 한상운의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다른 클럽에서 한상운을 눈독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은 앞으로도 계속 상승무드를 타기 위해선 한상운을 반드시 잡아야한다.

 

 

 

베테랑의 김한윤의 투지는 빛났다

 

  올해 만 37살. 이제 축구화를 벗고 은퇴한다고 해도 놀랍지도 않은 나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축구선수들을 통틀어도 이 나이까지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는 선수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는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 못지 않게 혈기왕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김한윤이다.

 

  지난시즌까지 FC서울에서 활약하던 김한윤은 사실상 작년을 끝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선수생활을 끝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안익수 감독을 따라 부산으로 날아갔다.

 

  중원을 잡아줄 선수가 없었고, 수비가 빈약했던 부산에게 있어서 김한윤이라는 존재는 엄청난 큰 수확이었다. 또한 안익수 감독의 축구가 부산에 빠르게 정착하게 된 것도 바로 김한윤의 역할이 컸다. 부산에서 그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지만, 역할은 '또다른 센터백'이었다. 그가 중원에 서있음으로 인해 부산의 수비라인이 빠르게 안정화되었고, 그의 지시 하나하나에 의해 부산의 공격전개도 흐트러짐없이 진행되었다. 즉, 벤치에서 안익수감독이 지시하지만, 필드 위에서는 김한윤이 또다른 감독이 되는 셈이다.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 바로 울산과의 리그컵 결승전이었다. 김한윤이 부상으로 전반전에 조기교체되자 팽팽하게 울산과 맞붙던 부산의 수비라인과 중원이 삽시간에 무너져버리면서 울산에게 순식간에 두 골이나 내줬다. 필드 위에서 진두지휘하던 노장이 갑자기 빠져버리게 되니, 대장이 없는 진영이 한 번에 훅가버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그만큼 김한윤이 있고없고의 차이는 부산, 아니 안익수 감독의 전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한상운, 임상협, 양동현 등 젊은 선수들이 상대 진영에서 자유롭게 공격을 하는 데에는 그만큼 김한윤이 묵묵히 뒤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힘찬 날개짓을 시작하는 두 청년, 양동현과 김창수

 

  이 두 선수는 예전에 울산 유니폼을 입고 뛸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다른 팀 선수가 되어버렸다. 특이하게도 이 두 선수는 울산시절부터 현재 부산으로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암울했던 시기 또한 제법 길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산의 차기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동시에 따라왔다. 지난 베스트일레븐 3월호에서 이 두 선수를 부산의 차기 에이스들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들의 인터뷰를 실었던 것을 읽었었고, 4달이 지난 지금 봤을 때, 베스트일레븐의 눈이 정확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다. 바로 양동현과 김창수다.

 

   양동현이라는 이름에 줄기차게 따라오는 것은 바로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 그렇다. 그는 2002년이 끝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시행했던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의 1기 멤버였다(설기현은 프로토 타입이라고 하지). 그가 스페인 바야돌리드로 입단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치는 대단했었다. 하지만, 힘든 해외생활과 매번 그의 발목을 잡는 부상으로 인해 그는 해외유학을 청산하고 국내로 쓸쓸히 복귀했다.

 

  울산에 입단한 그는 울산의 영광에 함께 있었다. 울산에서 뛰면서 리그 우승도 맛보았고, 슈퍼컵, 리그컵, A3 챔피언스컵 우승까지 누렸다. 하지만, 그는 울산에서 주연이 아닌 액스트라였다. 국내로 돌아왔음에도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부상 때문에 울산에서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여 '미완의 대가'라는 별명까지 붙게 되었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그는 2009년 부산으로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하지만, 부산에 가서도 그렇게 중용받지는 못했다. 울산시절에 비해서 경기출장수는 많았지만, 주전이 아닌 서브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위기가 있으면 기회도 온다듯이, 안익수 감독 체제 하에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양동현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에 움켜쥐었다. 현재 한상운의 뒤를 이어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그 어느때보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번시즌을 기점으로 하여 양동현은 이제서야 '미완의 대가'라는 별명을 벗고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김창수 또한 양동현 못지 않게 굴곡이 꽤나 많았던 선수였다. 김창수도 2004년 울산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김정남 감독의 플랜에는 그는 없었다. 그당시 그 포지션에는 이종민이나 박병규 등이 있어서 그가 낄 자리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울산에서는 겨우 컵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치며 프로데뷔 첫시즌부터 좋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다음 시즌 대전 시티즌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K리그 데뷔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적하자마자 그 해 부상을 입어 재활치료에 전념하면서 2005년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가 1년을 부상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전소속팀인 울산이 리그 챔피언이 되는 광경을 그냥 TV로만 지켜봐야만 했다.

 

  그 다음해인 2006년, 본격적으로 김창수는 최윤겸 前 대전 감독에 의해서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100m를 12초대에 끊는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력으로 비롯된 적극적이고 재기 넘치는 오버래핑과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싱이 주무기이며, 수비 지역에서의 전술 이해도가 높고, 안정적인 볼 간수와 패스 공급, 경기 조율로 극찬을 받는다. 꾸준함과 성실함 또한 김창수의 강점 중 하나이다.

 

  이런 장점을 가진 김창수는 경기수를 차츰 늘려나가다가 부산으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산에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의 본래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지만,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는 자신의 주포지션이 아닌 왼쪽 풀백과 스위퍼를 오가는 등 생소한 포지션에 많이 기용되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낯선 포지션에서 계속 뛰다보니 그의 기량과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좀처럼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올시즌에 다시 오른쪽 풀백으로 돌아온 김창수는 '라인 브레이커' 답게 줄기찬 오버래핑을 선보이며 부산의 새로운 공격옵션을 제공함과 동시에 빠른 공수전환으로 수비가담에도 적잖은 활약을 보이며,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김창수의 활약으로 인해 또다른 공격 옵션을 지니게 된 부산이다.

 

 

 

  이외에도 전북에서 건너와 안정환 이후 '오빠부대'를 이끌면서 부산의 비주얼을 맡고 있는 임상협이나, 승부조작과 부상으로 인해 대거이탈한 빈약한 중앙수비자원 중에서 뒤늦게 빛을 보고 있는 호주출신 용병 이안의 활약도 눈여겨볼만 하다. 임상협의 경우, 한상운이나 양동현의 활약에 자극을 받았는지, 올시즌에만 6골 2도움을 올리며 전북에서 펼치지 못했던 한풀이를 부산에서 맘껏 쏟아내고 있다. 이안의 경우에도 호주출신 센터백들의 취약점인 느린발과 뒷공간을 내줄 수 있다는 문제를 적극적인 커버와 적절한 위치선정 등으로 커버하면서 부산 수비에 힘을 실어다주고 있다.

 

  안익수호의 돌풍은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전남이 인천의 돌풍처럼 다음시즌에 더더욱 무섭게 변모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팀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의 리그순위는 5위. 중위권 다툼이 가장 치열한 K리그이기 때문에 한경기 한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부산의 현재 전력을 감안한다면, 쉽게 와르르 무너질 팀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익수 감독의 전술적인 운용과 부산 선수들의 포텐 대폭발. 지금 이것이 잘 아우러져있기에 후반기에 부산의 역습에 한 번 기대해봐도 될 것 같다. 이 효과로 인해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다시 동남풍이 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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