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축구/태극기 휘날리며

조광래호의 양날의 검, 포지션 변경

J_Hyun_World 2011. 8. 12. 08:00

 

  2011년 8월 10일. 우리나라에게 또 하나의 굴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최대의 난적이자 앙숙인 일본을 상대로 3대0 완패를 기록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을 '삿포로 대참사'라고 명명하였고, 3대0 굴욕적인 패배에 대해서 조광래 감독, 그리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일제히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가차없이 철퇴를 날렸다. 사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조광래 감독과 한국대표팀들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을 것이다. 한일전이 단순히 스포츠경기를 뛰어넘어 그간 양국의 역사가 반영되어, 두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대립의 연장선상이라 봐도 무방했기에 이 경기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경기 패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서 또다시 조광래 감독의 '포지션 변경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날 경기에서 한국의 패배의 요인은 정말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물론 일본이 허접한 팀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들은 반년 전 아시안컵 준결승 때처럼 자기들만의 플레이를 보여줬고,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반년 사이에 무너졌다. 사람들이 지적하는 숱한 문제점 중에서도 도마 위에 제일 많이 오른 것은 '조광래 감독의 포지션 변경술'이었다.

 

  일본전에서 조광래 감독은 윙어로 기용되는 이청용이나 손흥민 등이 부상으로 인해 전력이탈한 점과 아직도 이영표의 대체자원을 구하지 못해 누굴 쓰길 난감한 왼쪽 풀백 자리를 메꾸기 위해 양쪽 윙어 자리에 이근호-구자철을 기용했고, 왼쪽 풀백 자리에는 지난 6월달 평가전처럼 김영권을 그 자리에 집어넣었다. 결과는 대참패이고, 최악의 전술로 기록되었다. 윙어로 뛰어본 적 없는 이근호-구자철은 역대 최악의 플레이를 선사하면서 패배의 주범으로 리스트에 올랐고, 김영권은 조기 부상으로 일찍 교체되어 그가 나간 이후 왼쪽 풀백은 블랙홀이 되어 3대0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물을 놓고, 팬들이나 전문가들은 조광래 감독의 병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는 '포지션 변경술'이 대참사를 만들어냈다고 대부분 입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주포지션이 아닌 포지션을 다른 경기도 아니고 한일전에서 첫투입되었는데, 당연히 소화하겠느냐는 것이다.

 

 

 

조광래 감독은 왜 포지션 변경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 경기에서 포지션변경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깊이 파헤쳐본다면, 확실히 납득하거나 공감할 만한 부분들이 꽤나 많다. 현대축구에 접어들 수록 수비수, 정확하게 말해서 풀백들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공격수는 골만 잘 넣어서만 되는 것은 안되고, 수비수가 공만 잘 걷어낸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도 전술에 더욱 더 중심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공격수도 상황에 따라서는 적극적인 수비가담이 필요하고, 수비수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현대 축구에서 강팀들이 강하고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것도 전부 다 수비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수비진에서 빌드업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해당 포지션에 부상으로 구멍이 생긴다면, 다른 자리 또한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고, 요즘에는 멀티플레이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조광래 감독의 포지션변경 시도가 결코 무모하거나 말도 안되는 행동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광래 감독의 이러한 포지션 변경 사례로 인하여 크게 대박난 케이스들도 여럿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꼽자면 바로 하석주와 이정수가 되겠다. 1992년 당시 부산로얄즈 감독으로 있던 조광래 감독은 공격수로써 명성을 떨치던, 우리나라 최고의 왼발잡이 중 한 명인 하석주를 윙백으로 기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공격수로 날리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수비수라니.... 대부분의 반응은 그의 포지션 변경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대다수의 예상을 과감하게 뒤집어엎었고, 하석주는 공격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왼쪽 윙백으로 뛰면서 날카로운 패스와 오버래핑을 선보이면서 대표팀에까지 승선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안양치타스 시절에 최전방 공격수였던 이정수를 보더니 갑작스레 수비수로 기용하면서 또 한 번 반발을 일으켰다. 고등학교 득점왕 출신을 수비수로 기용하다 선수를 아예 망칠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또 한 번 대다수의 예상을 뒤집었다. 과감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적 성향을 마음 놓고 뽐내며 공격수 못지 않은 수비수가 됐다. 이후 측면은 물론 중앙 수비수로 나서면서 이제는 대표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수비수로 변신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공격수 이정수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공격수로 이미 이름을 날렸던 그는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공격수 한 명이 더 뛰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직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포지션 변경 사례로 성공한 케이스가 더 있다.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박주영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였던 구자철을 세컨탑으로 배치시키면서 최전방에 있는 지동원과 함께 끊임없는 스위칭을 하면서 최전방을 풀어나가는 방향을 택하여 결과적으로 구자철이 득점왕에 올랐고, 그 힘을 발판으로 구자철이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홍정호의 포지션변경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비록 승부차기로 패배했다곤 하지만, 홍정호를 기존의 중앙 수비가 아닌 홀딩으로 전진 배치시키면서 일본 미드필더진에 적극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경기의 흐름을 다시 한국 쪽으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포지션 변경 성공 사례는 아니지만, 최태욱의 윙어로 변신한 것도 결과적으로 조광래 감독이 윙백으로 기용함으로 인해 발견한 포지션이다. 최태욱은 조광래 감독으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윙어로 새롭게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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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새롭게 눈을 뜬 구자철, 이정수, 하석주, 그리고 최태욱)

 

  조광래 감독은 포지션 변경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펼쳤다. "공격적인 축구를 하기 위한 시도다. 공격수가 수비 능력만 갖춘다면 수비수들이 측면에 있는 것보다 훨씬 공격적인 전술을 쓸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쯤은 자기 포지션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는 공 좀 찬다 싶으면 중학교 시절부터 다들 공격만 시킨다. 그때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몰라도 성인이 되면 한 번 더 적합한 포지션 찾기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차두리의 예가 이렇다. 그도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지만, 공격수로써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로 아버지인 차범근 해설위원처럼 성공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위르겐 클롭 감독이 없었더라면 그는 지금처럼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광래 감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이 선수가 스트라이커로 더 클 수 있는 상태인가. 아니면 측면에 세우는 게 더 클 수 있는 상태인가' 를 고민해봐야 한다. 일단 후자라면 당연히 측면에서 훈련을 해보고 여기에서 재능이 발견되면 직접 경기에도 투입해 본다. 측면 수비수로 써보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시 원래 포지션으로 돌려세운다. 두 번 정도 기용해보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집 부려서까지 이러한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포지션과 어울리지 않는 선수는 다시 그 포지션에 쓰지 않는다."

 

조광래호의 양날의 검 : 포지션 변경

 

  이러한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 실험이 계속되면 될수록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다. 조광래호에서 매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풀백자리인데, 조광래 감독은 이 풀백 자리에 중앙 미드필더인 김재성이나 윙어인 조영철을 끼워맞춰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도 지나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클럽 감독이 해당 선수를 상대로 클럽이 치르는 경기 동안 훈련 등을 통해서 계속 적응시켜 변경하는 방법이라면 어느정도 리스크는 줄일 수 있겠지만, 국가대표팀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1년에 A매치 경기 수가 클럽경기의 한 시즌보다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국가대표는 매 경기마다 소집하는 선수 명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나친 포지션 변경은 일종의 도박이 되는 셈이다. 클럽에서 실컷 자기 주포지션에서 뛰다가 갑자기 국가대표팀에서 전혀 엉뚱한 포지션에서 뛰게 된다면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못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러한 조광래 감독의 실험 때문에 해당 포지션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최효진, 최재수 등이 기회를 잃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포지션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선수들에게까지 자연스레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주에서 뛰고 있는 최효진이다. 최효진의 경우, 포항과 서울을 거치면서 이미 K리그에서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허정무 감독에게서도 국가대표로서 인정을 받았던 선수였다(비록 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공격적인 오버래핑과 패싱능력, 이것은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적인 축구, 그리고 현대축구에서 필요한 풀백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최효진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바뀐 이후에도 대표팀과의 인연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시안컵 대표팀으로 뽑히긴 했지만, 차두리에 밀려서 벤치만 달구다가 왔고, 그 이후에도 최효진은 조광래 감독에게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왼쪽 풀백자리도 다를 게 없다. 현재 K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는 왼쪽 풀백인 최재수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수비능력에서 문제받았지만, 올시즌에 접어들면서 울산의 왼쪽을 혼자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어느덧 K리그에서 손꼽히는 왼쪽 풀백으로 성장했다. 어제 일본에게 탈탈 털리던 검증 안된 박주호를 뽑느니, 차라리 이미 검증된 최재수가 훨씬 나았다.

 

  윙어 문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제 윙으로 출격했던 이근호-구자철은 전혀 윙어의 스타일과 거리가 먼 선수들이다. 그리고 두 선수는 현재 대표팀에서 뛸 만한 기량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광래 감독은 무리하게 그들을 윙어에 두는 무리수를 택했다. 윙어 자원으로 이미 김보경이나 남태희를 선발해놓고선 그들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건 다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애초에 이근호-구자철을 쓸 것이라면 차라리 그 두 선수들에게 알맞는 전술을 택했었거나, 아니면 윙어에 적합한 선수들을 기용했어야 했다. K리그 선수들을 관찰한다고 말하면서 윙어로써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한상운, 이승현 등을 기용하지 않는 건 그의 말에 어패가 있다(해외파가 무조건 능사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들은 만능이 아닌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광래 감독의 포지션 변경에 대한 실험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를 신뢰하고 있고, 조광래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한국 대표팀의 스타일에 긍정적인 변화들도 많았다. 그는 공격적인 측면 수비수들을 앞세워 90분 내내 보다 강력한 공격력을 선보이기 위한 의지를 직접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광래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항상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았다. 그는 지난해까지 경남에서도 미드필더 김영우를 측면에 내세워 공격 축구를 구사하기도 했다. 몇 번의 실패가 있다 할지라도 결국엔 조광래 감독의 선택이 보다 공격적인 축구로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이러한 도박은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한 두 선수의 보직 변경이 실패할 경우 "그것보라. 내가 뭐라고 했느냐." 고 주장할 전문가들은 많다. 실패는 도드라져도 성공은 그만큼 도드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이정수와 최태욱을 스트라이커로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선수의 재능을 살피고 한 번 더 포지션을 고민하는 일, 보다 공격적인 팀을 만드는 일. 적어도 축구 감독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도 이러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너무 무리한 시도는 안하는 것만도 못하다. 귀국 후 인터뷰 중에서 김영권이 시일 내에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용래를 왼쪽 풀백으로 기용해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자꾸 선수들을 무리하게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해당 포지션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어 폼이 최절정에 올라와있는 선수들도 꽤나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신은 있으되, 때로는 융통성에 맞춰서 플랜B, 플랜C를 마련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하니깐 말이다. 이제는 해당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어느정도 기회를 부여해야 할 때가 왔다.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해서 당신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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