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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랑하는 그녀들! 대구 여성 서포터즈 예그리나 스토리

J_Hyun_World 2011. 9. 18. 08:51

 

 

 

여성과 축구, 엇갈렸던 첫 만남

 

  축구를 즐기다보면 간혹 "축구=남성의 스포츠이자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되어 뜻하지 않게 남녀차별을 두는 경우가 생긴다. 사실, 우리나라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남녀가 술자리에 만났을 때,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 Best 3에 "3위는 축구한 이야기, 2위는 군대 이야기, 1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꼽았을 정도로 축구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남성들만 즐기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했다(이러한 문제는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들도 그당시 비슷한 행보였다). 이러한 남성의 전유물(아니 로망?)으로만 여겨졌던 축구에 대한 시각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차츰 바뀌어가기 시작했고, 전국적인 붉은악마 응원을 겪고 난 뒤로 부터, 여성들도 축구에 대한 매력에 차츰차츰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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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팬들을 신도로 만들어 그녀들을 축구장으로 이끌었던 90년대 K리그 트로이카.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2년 월드컵 이전에도 일부의 여성들은 축구장을 찾아가 축구경기를 관람하곤했다. 90년대말에 K리그 내에서는 이동국-안정환-고종수로 이어지는 꽃미남 트로이카가 형성되면서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을 단번에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를 본 일부 남성들은 "여성팬들은 축구가 아닌 축구선수의 외모만 보고 쫓아다닌다"고 싸잡으면서 축구장에 몰려드는 여성팬들을 일명 '얼빠'로 몰아세우면서 그녀들에게 감히 "축구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등, "너희는 오프사이드 룰이 뭔지 아느냐"는 등으로 여성팬들을 깎아내리며 비하하기에 바빴으며, 그녀들이 쫓아다니는 것은 마치 아이돌그룹을 보고 쫓아다니는 소녀팬들과 다를 게 없다는 식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버렸다. 요즘 경기장에 찾아오는 여성 팬들 중에서 순수하게 축구경기를 보러 오는 유형도 제법 많은데 말이다. 예를 들어, 축구보는여자 작가이자 내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륜(@tyc00nj)"양이라던지... 응? 현재 K리그에서 윤빛가람이나 임상협 등 일부 선수들을 쫓아다니는 소녀팬들에 대해서도 일부는 아직도 못마땅한 눈길로 그녀들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여고생팬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 경남, 하지만 이 소녀들이 일부에 의해 얼빠 취급 당한다는 사실이 참 못마땅하다)

 

 

 

 

남성들의 잘못된 편견을 깨기 위해 탄생하게 된 대구 여성 서포터즈 "예그리나"

 

(우리나라 최초 여성서포터즈인 예그리나)

 

  이러한 남성들의 잘못된 편견을 깨기 위해서 한 20대 여성이 직접 서포터즈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대구 FC의 여성 서포터즈인 "에그리나"였다. 예그리나 1기 대장인 정은영씨가 예그리나를 창단하게 된 계기도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었다. TV등 매체로 해외축구만 접하던 그녀가 직접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2006년부터 대구 월드컵스타디움을 찾았고, 그녀의 고향팀인 대구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소위 울트라스(Ultras : 강성) 성향을 띠는 남성들은 그녀를 그닥 곱지 않은 시선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축구를 보러 온 그녀에게 "선수 얼굴 보러 쫓아다닐 바에 차라리 아이돌 그룹이나 쫓아다니라"는 등의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되는 남녀차별이 어디있는가? 스포츠 경기를 즐기러 오는 것에 있어서 남녀구분이 없으며, 이유야 어찌했든 간에 그 누구도 경기를 보러 온 이들에게 뭐라고 감히 욕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남의 의도를 모른 채, 자기멋대로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여 남을 매도하는 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잘못된 일은 정은영씨 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여성 축구팬들도 이러한 오해와 차별을 당했던 것이다. 이런 사태가 계속 되면 안되겠다 싶었는지 2008년, 정은영씨를 필두로 하여 대구 N석에서 응원하는 대구 여성팬 분들을 중심으로 여성서포터즈 "예그리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대구 서포터즈 출신이자, 소모임회장직을 맡았던 정은영씨를 필두로 2008년에 탄생한 대구 여성 서포터즈 예그리나)

 

  '사랑하는 우리사이'라는 순수 고유어인 예그리나. 예그리나의 가입 조건은 간단하다. 여성이고 축구를 좋아하면 굳이 대구에 살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가입할 수 있다. 다만, 통과의례로 정식회원으로 인정받기 전에 반드시 3차례동안 함께 서포팅을 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사실 축구경기에서 서포팅하는 것은 상당히 체력적인 면을 요구하며, 여성들이 하기에는 자칫 거칠어보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잘 아는 수원서포터즈인 그랑블루만 하더라도 그들은 90분내내 빅버드 N석에서 서 있는 채로 미친듯이 뛰면서 수원을 목터져라 응원한다. 그만큼 서포팅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여성들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야 기존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예그리나의 응원은 이미 K리그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에 속한다. 응원의 폭발력이 크다고 해서 '울그리나'(울트라+예그리나)로 불리고 있는데, 한 사례로 작년(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ㅠㅜ) 전북 원정길에 오른 대구 서포터즈 중에서 예그리나 멤버는 단 4명이었다. 전북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상대팀 전북 서포터즈인 MGB와 대등하게 맞불을 놓아 일당백 응원을 펼쳐 '익룡소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도 예그리나의 포스에 대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마, 울산과 대구 경기에서 원정온 예그리나 10명이 문수경기장 내에 쩌렁쩌렁 울려라식으로 샤우팅했던 적이 있었고, 과장 조금 보태서 순간 울산 문수경기장이 아닌 대구인줄 착각할 뻔 했다. 예그리나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 5월 초에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기도 했다.

 

(강렬한 대구의 태양빛도 예그리나의 익룡 샤우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재 대구에게 있어서 예그리나라는 존재는 더이상 손가락질 받는 존재가 아니다. 되려 단순히 여성팬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하던 소위 '울트라스'라 자칭하던 남성대구팬들은 그녀들보다 먼저 축구장을 떠났다. 그리고 현재 대구 서포터즈인 '낭띠' 들에게 있어서 예그리나는 천군만마, 혹은 비타민과 같은 존재로 오히려 그녀들 덕분에 서포팅에 더더욱 힘이 난다고 할 정도다.

 

'얼빠' or '순수축구팬'? 그러한 이분법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성 서포터를 보는 선입견에 대한 저항으로 창단되었던 예그리나지만, 그들은 서포터즈라는 정의에 대해 상당히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예그리나 대장인 정은영씨는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것과 선수가 좋아서 시작한 것은 순서의 차이 일 뿐 모두 축구 팬이다. 우리 같은 여성 서포터가 마음을 닫는다면 어떤 팬도 서포터가 되기 힘들 것이다. K리그 발전을 위해 누가 진정한 팬이냐에 대한 다툼은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그녀의 말은 매우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이 말은 비단 축구에만 한정시킬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모든 스포츠종목에 팬이 되기 시작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단순히 선수 개개인이 좋아서 챙겨보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그 스포츠종목 자체가 좋아서 챙겨보기 시작했거나다(이것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팬분들도 대부분 이렇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어떤 계기로 접했든지 간에 결과론적으로는 해당 스포츠종목에 빠져들고 다같이 응원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되면 서포터즈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서포터즈는 말 그대로 팀이나 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하지, 거기에 대한 자격요건은 애초부터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예그리나로부터 또하나 본받을 만한 점은 바로 그녀들의 태도다. 보통 자신이 지지하는 팀을 서포팅하다보면 해당 팀이 운이 지독하게 나쁠 정도로 경기력이 안풀려 연패를 거듭하는 경우가 있고, 그러다보면 부진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보면 자연스레 그 팀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면서 점점 멀리하게 되는 경향도 생긴다. 하지만, 예그리나는 이와 다르다. 물론 그녀들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구가 승리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 승리에 항상 목매달리는 건 아니다. 대구가 비교적 K리그 내에서 약체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알고 있기에, 대구의 승패여부를 떠나 그들이 항상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어줄 것을 우선으로 하여 열띤 서포팅을 한다. 이러한 예그리나의 마인드에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이며, 그녀들에게서 하나를 또 배웠다.

 

  그동안 우리는 서포터즈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들고 나와서 누가 더 순수팬이냐는 식의 순수혈통을 갈라보자는 식으로 '순수팬 아니면 얼빠' 라는 이분법으로 말도 안되는 장벽을 구축해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예그리나를 통해서 서포터즈라는 정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더이상 순수팬이니 얼빠니 나눠야하는 태도를 지양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빠로 시작하더라도 그 사람이 계속 깊게 빠져들다보면 오히려 순수팬이라 자칭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깊은 안목을 가지는 경우도 제법 된다. 이제 우리도 예그리나의 오픈 마인드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오픈 마인드가 더욱 널리 퍼지기 위해서, 예그리나가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대구 여성 서포터즈 예그리나 홈페이지 : http://www.yegrina0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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