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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법을 택한 맨유, 속공법을 택한 리버풀을 압도하다

J_Hyun_World 2012. 2. 12. 08:00

 

 

 

 

(수아레즈가 에브라에게 악수를 거부하면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레즈 더비)

 

 

Prologue : 수아레즈의 악수 거부, 도리어 맨유의 사기만 올려놓는 꼴이 되다

 

  1992년 프리미엄리그로 새로 출범한 이후, 40번째 맞이하는 레즈 더비(맨유 vs 리버풀), 진정한 붉은색의 주인을 누구인가를 가리는 경기였지만, 사실 이 경기는 그것보다도 다른 데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있었는데, 바로 에브라와 수아레즈가 이번 더비의 주인공이었다. 지난 10월에 가졌던 레즈 더비에서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즈는 맨유의 파트리세 에브라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되었고, 그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결국 수아레즈는 FA로부터 8경기 출장징계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징계를 받고 난 뒤, 수아레즈는 여전히 자신의 발언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전혀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만난 오늘 레즈 더비에서 수아레즈가 에브라에게 악수할 것이라는 케니 달글리쉬 감독의 예상과 달리 수아레즈는 에브라를 무시하고 바로 옆에 있던 데헤아에게 악수를 청하려했다. 이를 본 에브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데헤아에게 악수를 청하려는 수아레즈의 팔을 뿌리치면서 항의했다. 에브라를 무시하고 데헤아에게 악수를 청하려했던 수아레즈를 본 리오 퍼디낸드 또한 자신의 동생인 안톤 퍼디낸드가 이러한 차별을 당해서였는지, 수아레즈가 청한 악수를 거절했다. 프로답지 못한 수아레즈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맨유의 팀전체 사기는 고조되었고, 마치 전쟁터에서 목숨바칠 각오로 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되었다.

 

 

 

Review 1 : 지공법을 택한 맨유 vs 속공법을 택한 리버풀

 

(지공법을 택한 맨유 vs 속공법을 택한 리버풀, 결과적으로 스콜스를 앞세운 맨유의 승리였다)

 

  이 경기에서 가장 재밌는 사실은 기존의 두 팀이 이 경기에서는 평소와 전혀 상반된 스타일을 들고나왔다는 것이 관건이었다. 측면 윙어들을 중심으로 속공플레이를 펼치던 맨유가 이번 홈경기에서 점유율과 패싱게임을 중심으로 하는 지공법으로 들고 나왔고, 평소에 중원을 강화하여 천천히 밀고 올라가던 리버풀은 그 반대로 측면을 바탕으로 하여 맨유의 뒷공간을 노리려는 속공법으로 들고 나왔다. 서로가 상반된 플레이를 들고 나온 만큼, 그만큼 감독의 지략대결이 한층 돋보이는 경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순간, 맨유가 일방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면서 리버풀을 사정없이 그들의 골대 안으로 밀어부치면서 반코트 경기를 보여주었고, 이 경기내용은 보는 모든 이들을 놀랍게 만들었다(내가 술집에서 봤을 때 대다수를 차지하던 리버풀 팬들이 집단 멘탈붕괴에 걸릴 정도였으니까). 맨유는 4-4-2가 아닌 긱스-캐릭-스콜스로 중원을 꾸리는 4-3-3으로 변형하면서 일방적인 패싱게임이 시작되었다. 특히나 스콜스의 넓은 시야와 캐릭의 전진 패스는 리버풀의 중원을 사정없이 난도질 하는 데에 충분했고, 전방에서 움직이는 루니나 웰벡, 발렌시아의 움직임까지 좋으니 말그대로 '뭘 해도 되는 경기'였고, 후반에 루니가 연속 2골을 몰아쳤던 것도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4-2-3-1로 들고 나와 수아레즈와 다우닝, 카윗으로 속공을 해보려고 했던 리버풀은 일방적으로 맨유에게 얻어맞으면서 제대로 된 속공 한 번 해보질 못했다. 특히나, 발렌시아-하파엘이 도맡았던 맨유의 오른쪽 라인은 시종일관 내내 다우닝과 엔리케를 괴롭혔고, 그 덕분에 리버풀의 왼쪽 라인은 초토화되면서 오른쪽 측면에만 의지하게끔 만들었다. 한쪽이 막히게 되니, 리버풀의 속공은 더더욱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카윗의 컨디션 또한 최악이었기에 도리어 카윗은 에브라의 오버래핑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Review 2 : 최근 11경기 10어시를 기록하는 EPL 대세, 안토니오 발렌시아

 

(요즘 EPL에서 발렌시아를 막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번시즌 전반기에 맨유를 여러번 구한 사람이 루이스 나니였다면, 2012년으로 접어들고 나서 맨유를 이끌고 나가고 있는 선수는 바로 안토니오 발렌시아다. 전형적인 클래식 윙어로서 크랙형인 나니나 애슐리 영에 비하여 다소 상대방에게 읽히기 쉬운 패턴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오른발에 비해 왼발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발렌시아를 위시로 하여 공격을 이끌기엔 다소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법 많았다(발렌시아도 박지성처럼 밸런스형이라서 공격모드에서 얼만큼 해줄 지도 약간 의구심을 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올시즌에 한단계 더 성장하면서 단순히 오른쪽 윙이 아니라 예전 전성기시절의 마이콘을 보는듯한 '오른쪽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누구나 읽기 쉬운 일명 '툭툭탁'으로 드리블을 치고 들어오지만, 발렌시아가 자랑하는 스피드와 유연성이 이에 더해지면서 그를 상대하는 풀백들이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풀백으로 내려가서 움직일 때도 변함이 없다는 게 상대팀 입장에선 골치아프다.

 

  오늘 리버풀을 상대로 발렌시아의 움직임은(다른 경기에서도 최고의 모습들을 선보였지만) 최고였다. 쉴새없이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면서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호세 엔리케에게 제대로 악몽을 선사하면서 그를 경기장 안에서 지워버렸고, 측면에 모자라 중앙까지 진출하면서 리버풀 중원을 사정없이 흔들어놨다. 그러다가 수비전환시, 어느새 수비로 들어오면서 다우닝의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해버렸으니 리버풀 입장에선 발렌시아가 그저 악령과도 같은 존재였다. 발렌시아 때문에 리버풀은 90분내내 한쪽이 봉쇄당한 채로 경기를 했으니, 이정도면 발렌시아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루이스 나니가 복귀하게 된다면, 좌나니-우발렌시아의 측면 돌파는 상상만 해도 상대방에게 끔찍할 것이다.

 

 

 

Review 3 : 속공의 옵션을 잘못 선택한 달글리쉬의 패착

 

(수아레즈를 중심으로 속공을 택한 리버풀, 하지만 수아레즈를 받쳐줄 옵션을 잘못 택했다)

 

  리버풀이 택했던 속공법은 완벽한 실패로 끝이 나면서 수아레즈가 만회골을 넣긴 했으나, 경기내용면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평소에 입지도 않은 옷을 갑자기 입으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자신들의 페이스를 잃어버린 것이다. 원래 리버풀은 캐롤의 높이를 버리고 움직임과 빠른 발을 지닌 루이스 수아레즈를 최전방에 배치하고 그의 뒤를 다우닝-제라드-카윗으로 보좌하는 역습형을 택했다. 하지만, 수아레즈와 달리 다우닝이나 제라드, 카윗은 역습형에 특화된 선수가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 양쪽 측면을 담당하던 스튜어트 다우닝과 디르크 카윗은 속공에 적합한 선수들은 아니었다. 스튜어트 다우닝은 치달 등의 돌파로 측면을 휘젓는다기 보단 베컴처럼 정확한 얼리 크로스 등으로 최전방에 연결해주는 타입에 가깝고, 디르크 카윗도 활동량과 활동범위가 넓은 선수이긴 하지만, 그의 스피드가 그렇다고 해서 속공을 하기엔 빠른 편은 아니다. 오히려 카윗은 쉴새없이 뛰어다니면서 상대 수비를 달고 다니면서 동료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내는 쪽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선수들로 측면을 공략하려고 했다가 괜히 발렌시아-루니 등에게 역풍을 맞았으니 될 턱이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속공을 택하려했다면, 스피드에 능한 크레이그 벨라미를 선발로 기용하면서 수아레즈와 함께 투톱을 형성하여 맨유의 수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어야했는게 더 정확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풀백인 글렌 존슨을 공격적인 롤을 부여하면서 오른쪽 측면을 그에게 맡기면서 수비나 중원이 그의 자리를 커버하는 식으로 나왔어야했던게 아니었나 싶다. 달글리쉬가 옵션을 제대로 선택했더라면, 리버풀의 속공도 이렇게 실패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Epilogue :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맨유의 승리

 

  올드트래포드에서 펼쳐진 40번째 레즈 더비는 퍼거슨 감독의 전략이 제대로 맞물려가면서 일찌감치 맨유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끌고 갔던 것이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스콜스의 조율을 중심으로 긱스-캐릭이 뿌려주는 패스는 가히 아름다웠다). 이런 와중에 수아레즈의 프로답지 못한 행동과 이에 나비효과처럼 번진 리버풀 선수들의 냉정을 유지하지 못함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긴 했다. 결국, 이 경기는 에브라가 최종적으로 웃는 경기가 되어버렸다. 맨유는 이번경기를 통하여 시즌초반에 화려했던 모습으로 거의 되돌아온듯하고, 반면 맨유를 잡으며 분위기 반전을 했던 리버풀은 맨유에 의해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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