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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클럽', 그리고 '슈퍼매치'. 현재 K리그에 필요없는 단어들

J_Hyun_World 2012. 4. 3. 08:00

 

 

 

 

(언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단어 "슈퍼매치" 수원 vs 서울. "더비"라는 단어도 있는데 왜 슈퍼매치라 불러야 하는가?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슈퍼매치', '슈퍼클럽'에 집착하는 한국

 

  4월 1일, K리그 경기 중 가장 치열한 경기로 손꼽히는 "ㅅㅇ더비"가 수원 빅버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다(언론은 이것은 "슈퍼매치"라고 일컫는다). 치열한 열기와는 달리 수원의 일방적인 공세로 2대0 완승을 잡으며 서울이 수원에게 이겨본 지 최소 753일로 미뤄지게 되었다(FA컵에서 마주치지 않는 한 8월 18일 상암에서 이 두 팀이 격돌한다). 경기 내용이나 그 두 팀 서포터즈 사이가 얼마나 극악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이 매치가 왜 "더비"가 아닌 "슈퍼매치"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불리우는 지 매번 불만스럽다. 물론, 수원이나 서울이 K리그에서 소위 말하는 강팀 대열에 속해있다고는 하나 이 두 팀만 그렇게 특별하게 띄워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슈퍼매치"라는 어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 두 팀간의 대결만 가장 특별하고 그 외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강팀 간의 경기(예를 들어 울산-포항의 동해안 더비라던가, 성남-수원의 마계대전, 그리고 전북-포항이나 성남-포항 같은 경기)는 그냥 그저 그런 경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의외로 한국 축구팬들 대다수가 "슈퍼클럽", 혹은 "슈퍼매치"에 상당히 집착하는 것 같다. 이런 걸 느낀 것이 어제오늘일이 아니라 제법 오래된 현상이다. 그러한 바람이 밑에 깔려있다보니 축구 칼럼니스트인 존 듀어든씨가 "한국에서 슈퍼클럽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칼럼을 쓰기도 했었다(존 듀어든 - 한국에서 슈퍼클럽이 나올 수 있을까?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314n16961?mid=s1000 참조). 우리가 흔히 말하며 동경하는 '슈퍼클럽'으로는 전세계적으론 딱 3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바르셀로나 만 해당할 것이다. 물론, 슈퍼클럽이라는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맨유나 레알, 바르샤처럼 전세계적으로 지배하는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클럽(존 듀어든은 보카 주니어스나 LA 갤럭시를 예로 들었다)이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슈퍼클럽이라는 존재가 K리그에 나타난다면 분명히 아시아를 대표로 하는 클럽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고, 이것이 K리그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에 있어서 제법 많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조건 슈퍼클럽이나 슈퍼매치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K리그의 리그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속한 라리가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라리가는 우스갯소리로 신(神)계와 인간(人間)계로 나뉘어져있고, 언제부터인가 리그 우승은 레알 아니면 바르샤가 독식해왔다. 그렇다고 다른 라리가 클럽팀들이 경쟁력이 형편없다고 볼 순 없으나, 두 거인과 벌어지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매 해마다 제기되어왔는데, 라리가의 중계권료 배분문제도 레알+바르샤가 가지고 가는 중계권료가 나머지 18개팀이 받는 중계권료의 합보다 훨씬 커서 부익부 빈익빈은 심해지고 있다. 세리에A는 더하다. 최근에 나폴리, 라치오가 치고올라오곤 있다하지만, 세리에A는 뚜렷한 강팀과 약팀의 경계선이 그어진 지 오래고, 국제대항전에 나간 세리에A팀들이 전멸하는 것도 이러한 격차를 줄이지 못한 탓이 크다. 매번 우승하던 팀들이 타이틀들을 다 쓸어가는 마당에 과연 중위권 팀들이 리그에서 뛰어야할 목표의식이 있을까? 슈퍼클럽, 슈퍼매치로 특정지었다가는 훗날 우리도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리그 내 팀끼리의 경쟁력에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엘클라시코 같은 슈퍼클럽들의 맞대결도 좋지만,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면만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K리그에 필요한건'슈퍼클럽', "슈퍼매치"가 아니라 '전체적인 리그 상향 평준화'다.

 

(우리가 닮아야 하는건, 바로 분데스리가처럼 매시즌마다 우승팀을 예측하기 힘든 리그다. 이것이 진정한 재미 아닌가?)

 

    K리그가 닮아가야 할 이상향을 꼽자면 다름 아닌 독일의 분데스리가다.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다 관중수를 기록하고 있고(도르트문트의 한시즌 평균관중 수가 세계1위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분데스리가는 매시즌마다 우승팀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 분데스리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절대강자 바이에른 뮌헨도 다른 17팀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추고도 매시즌마다 우승하지 못했고, 그들이 2시즌 연속 디펜딩챔피언을 했던 적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항상 바이에른 뮌헨을 견제하는 도르트문트라던지 샬케04, 그리고 최근 돌풍의 팀으로 떠오르고 있는 묀헨글라드바흐나 하노버96까지 매번 풍성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올시즌만 하더라도 그렇다. 마이스터 샬레에 올라섰던 도르트문트가 초반에 부진을 겪음과 동시에 바이에른 뮌헨이 다시 선두로 달라니 싶었으나, 묀헨글라드바흐 돌풍에 맥을 못추며 선두자리에서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 또한 도르트문트와 4대4까지 물고갔던 슈투트가르트의 맞불작전도 상당히 볼만했다. 즉, 특정팀이 계속 우승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리그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는 것이야말로 리그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슈퍼클럽의 영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유럽 3대리그(EPL, 라리가, 분데스리가) 자리까지 올라서지 않았던가?

 

(현재 K리그 16개 구단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레이스가 내가 보기에는 훨씬 더 바람직하고 좋은 이상향이라고 본다)

 

  다시 K리그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당신은 이미 결말을 다 아는 영화를 보는 게 더 재밌는가, 아니면 다음 장면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영화를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가? 후자 쪽이 오히려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 지 상상하면서 더욱 재미를 가중시킬 것이다. 현재 K리그 구도가 그렇다. 강팀들은 있지만, 그들이 언제나 이길 것이라고 장담 못하는 경기. 이런 경기를 보면 침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애간장은 타고하는 그러한 스릴이 있지 않는가. K리그는 2002-2003 성남의 2연패 이후에 매번 우승팀이 수시로 바뀌었음에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지 않았던가? 그러한 혼돈 속에서 매시즌마다 돌풍을 일으켰던 시민구단들의 활약 또한 상당히 재밌고, 큰 이슈였다. K리그는 이미 '슈퍼클럽', '슈퍼매치' 없이도 충분히 재밌는 볼거리를 많이 만들고 있지 않는가? 올시즌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올해 K리그에 참여한 지 이제 겨우 2년차 밖에 되지 않은 시민구단 광주, 지난시즌에 처음 리그에 참여할 때만 하더라도 그들의 목표는 '꼴지만 하지말자.'였으나, 그들은 리그 후반기에 6강 플레이오프 팀을 결정짓는 칼자루를 쥐면서 부산, 전남, 울산 등을 상당히 골탕먹이면서 리그 또한 최종순위 11로 끝내면서 예상 외의 선전을 펼치며 첫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올시즌, 광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현재 리그 2위(3승 2무 승점 11점, 8득점 5실점)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광주는 유일한 무패팀이며, 특히나 광주의 홈에서 그들을 이기기란 상당히 불가능해보였다. 당시 통산 400승에 목말라 있던 포항조차도 광주 원정에서 광주를 상대로 승점 1점을 겨우 따냈을 정도로 광주의 진화는 예사롭지 않다. 광주 못지 않게 'K리그의 혁명군단'으로 불리고 있는 대구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올시즌 브라질 출신의 모이사르를 감독에 앉히면서 강팀 킬러로 변모하고 있다. 개막전에서 서울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펼치며 서울의 기를 어느정도 죽여놓았고, 무패행진을 달리던 울산을 홈으로 불러들여 그들을 쓰려트렸다. 또한 작년 디펜딩챔피언인 전북을 전주성에서 3대2 펠레스코어로 눌러버리면서 K리그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러한 대구와 광주의 매서운 돌풍이 눈 앞에 떡하니 보이고 팬들조차도 체감하고 있는데, 정작 언론들은 그저 '슈퍼클럽', '슈퍼매치'로 포장하기에 급급해보인다. 대구의 역전드라마가 메인이 될 수 있음에도 스포츠뉴스 보도는 이동국의 골신기록이 제목으로 나왔다. 그렇게 강팀 위주로 방송해야만 했나(물론 이동국의 골신기록은 대단한 일이지만, 대구의 역전승이 더 흥미거리 아닌가)? '슈퍼매치'라 불리우는 ㅅㅇ더비 수원 vs 서울 경기도 언제부턴가 라이벌이라기 보단 수원이 서울의 천적관계로 바뀌고 있기에 그들이 포장해놓은 슈퍼매치라고 하기엔 이제 무색할 지경이다(서울 vs 전북 경기가 수원 vs 서울 경기 시청률보다 더 잘나왔다고 하던데?). 그렇게 상업적인 이름이 가득한 '슈퍼매치'에 집착할 시간에 차라리 대구나 광주같은 시민구단에 관심을 기울여줘야 하고 그들을 집중조명해줘서 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K리그를 진정 알리는 방법은 슈퍼클럽으로 강팀과 약팀을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시민클럽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주면서 전반적인 리그 수준을 상향평준화 시키는 것이 지속적인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슈퍼매치', '슈퍼클럽'이라는 단어, 오로지 상업적인 냄새만 가득한 단어로 K리그를 포장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표현을 할꺼라면 '더비'를 사용해라. 물론, 더비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기에 여기에 목숨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론들이여, 그리고 팬들이여. 슈퍼클럽과 슈퍼매치가 K리그를 국제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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