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데뷔전에서 재능을 발휘한 18세 골키퍼
(충격과 공포의 데뷔전을 보여준 무서운 재능, 김승규의 플레이오프 승부차기는 잊을 수 없다.)
2008년 11월 22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K리그 플레이오프전인 울산 vs 포항의 경기에서 새로운 신성이 탄생했다. 동해안 라이벌팀답게 울산과 포항은 120분을 모두 다 썼음에도 0대0 팽팽한 균형을 깨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접어들어야만 했다. 당시 김정남 울산 감독은 승부차기에 돌입하기 전에 김영광 대신 다른 골키퍼로 교체하는데, 이 때 당시만 하더라도 19살짜리 어린 선수가 대형사고를 칠꺼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중요한 경기에 급작스럽게 데뷔전을 치룬 19세 골키퍼는 노병준과 김광석의 PK를 막아내는 놀라움을 보여주면서 K리그 팬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정확하게 3년 뒤인 2011년 플레이오프인 동해안더비에서 똑같은 일이 실현되었다. 이 골키퍼는 황진성과 모따의 PK를 모두 막아내면서 포항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 이전경기였던 수원과의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도 승부차기 때 등장하여 수원을 상대로 골문을 지켰다. 1990년생 골키퍼이자 울산 로컬보이이기도 한 김승규라는 남자의 프롤로그다.
울산에서 태어나 오로지 울산에서만 자란 김승규는 프로선수로 데뷔하기 전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는 유망주, 아니 구단에서 특별관리대상에 올라와있던 핵심유망주였다. 울산 전하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현대중-현대고를 거쳤는데, 울산의 유스팀인 현대중-현대고는 수많은 축구꿈나무들이 들어가길 원하는 워너비 학교였고 많은 이들이 입단테스트를 받곤 한다. 하지만 김승규는 이례적으로 구단 측에서 직접 스카우팅하여 데려온 케이스였다. 게다가 현대중-현대고라는 코스만 밟은 게 아니라 현대중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구단에 입단하였고, 입단 후, 현대고를 다니면서 학업까지 병행했다. 10대 시절부터 남다른 동물적 감각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PK 선방능력이 소문나있었기에 골키퍼 왕국으로 불려왔던 울산의 역대 골키퍼 계보(최인영-김병지-서동명-김영광)의 뒤를 잇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구단에서 주목받는 이 유망주는 당연히 청소년대표팀으로도 선발이 되었고, 거기서도 주전골키퍼 장갑을 꼈다. 2007년 U-17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9년 U-20,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연령대별로 차근차근 밟아올라왔다. 그렇지만 김영광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고, 2011년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전력이탈하면서 출격대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그가, 2011년 플레이오프 수원전 승부차기와 포항전 2번의 PK 선방으로 다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단 2경기로 K리그 팬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고, 김승규의 등장으로 2012년 울산 주전 골키퍼로 누가 뛰게 될 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골키퍼 로테이션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김승규
(김영광과 김승규, 이 두 선수를 동시에 조련하기 위해 김호곤은 골키퍼 로테이션 카드를 뽑아들었다. 사진출처 스포츠동아)
김영광과 김승규, 두 재능있는 골키퍼를 보유하고 있음에 반해, 골키퍼 자리는 한 자리다. 게다가 2012년 연초에 김승규가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 울산을 떠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렇기에 김호곤 감독은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고민이었다. 사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웬만하면 확실한 주전이 고정되어있고, 무엇보다도 골키퍼는 안정감이 있어야 했기에 잦은 골키퍼 교체는 일종의 도박이라 볼 수 있었으며 자칫 잘못했다가는 수비까지 불안정해지는 나비효과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해당 팀 골키퍼들의 기량이 불안정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한 사람이 시즌 전체를 책임지고 끌고 가는 것이 통상이었다. 하지만 김호곤은 이러한 틀을 깨고, '골키퍼 로테이션'이라는 카드를 뽑아들면서 두 골키퍼를 조련하기로 결정했다.
이 골키퍼 로테이션 카드는 확실히 김승규 입장에서는 혜택을 받는 쪽이었다. 김승규의 경우,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팀에 선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량을 홍명보 감독에게 선보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경기출장이 보장되어야만 했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동갑내기 포지션 경쟁자였던 이범영(부산)을 앞서야만 했었다. 결과론적으로 이범영에게 밀려 런던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지만, 오히려 위상이나 실력은 이범영보다 한 수 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왜 김승규가 런던올림픽에 가지 못했던 것인가?" "김승규가 이범영보다 무엇이 못하다는 것인가?" 등의 반응을 유도하면서 김승규 나름대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리고 수원을 비롯하여 서울, 포항, 전북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오는 등 12경기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선발출장임에 비해 다소 비중이 큰 경기에 출장했다. 이정도면 김승규가 팀내에서 얼만큼 주목받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고, 김호곤의 선택이 좋았던 셈이었다.
반대로, 이 로테이션 카드는 김영광에게 있어서 손해나 다름없었다. 2012년에 김영광이 김승규에 비해 많은 경기를 선발출장(32경기 선발출장)을 했으나, 그의 자존심에 다소 상처를 입힐 만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울산의 주전골키퍼이자 부주장으로 선임될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이러한 주전경쟁구도가 펼쳐지면서 김영광 입장에서는 얻을 게 없었다. 물론 김영광 또한 2012년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울산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패우승을 하는 데 있어 든든하게 골문을 지켜주었고, 안정감을 바탕으로 울산의 단단한 수비력을 구축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김영광은 사우디로 떠난 곽태휘의 주장완장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김영광은 김승규에게 주전자리를 내주는 일이 발생하였다.
주전골리 김영광의 부상, 그리고 넘버원 장갑을 차지하다.
2013년 3월 14일, 김영광이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한 달을 결장하게 되었다. 시즌이 시작한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울산은 걱정할 일이 크게 없었다. 김영광이 부상으로 빠지더라도, 김승규가 그 자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승규 입장에선 김영광의 전력이탈이 되려 기회였기 때문이다.
(김영광의 부상이 김승규가 주전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영광이 부상으로 나가있는 동안, 김승규는 2013년 시즌에 32경기 선발출장하여 27실점을 기록하는 등 한 경기당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이 사실상 주전으로 한시즌을 마감한 것이 처음이나 다름없었음에도 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실점률은 K리그 골키퍼들 중에서 가장 적은 실점으로 1위를 기록하였고, 국가대표 주전골키퍼인 정성룡(수원)보다도 훨씬 웃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좋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경기력이다. 이전에 김승규는 경기 기복이 제법 심했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야신 부럽지 않은 모습이지만, 종종 멍때리다가 실점하는 등 주로 정신적인 부분에서 문제점을 보이곤 했었다. 물론 이 부분이 이번시즌에 100% 극복한 것은 아니나, 이전의 모습에 비하면 경기 기복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라운드였던 동해안더비에서 95분에 골을 내줘 포항에게 더블 달성을 허용한 것이 옥의 티가 되었으나, 신화용(포항)과의 베스트11 경쟁에선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2013년 최우수 골키퍼가 되었다.
김승규가 한 시즌만에 완벽하게 주전으로 자리잡게 되자, 가장 큰 위기를 느꼈던 이는 다름 아닌 같은 팀동료이자 주장인 김영광이었다. 허벅지 근육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왔으나, 김영광이 물이 오른 김승규를 다시 벤치로 내리고 주전 골키퍼 장갑을 차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6월에 있었던 대구 원정에서 대구에게 5실점이나 내줬던 것이 김승규와의 주전 경쟁에 있어 상당한 타격으로 작용하였고, 그것이 결국 김승규가 주전을 확고히 다지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영광은 그 이후에 다시 발가락 부상을 당하면서 2013년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려버렸다. 김영광은 2013년 시즌에 6경기 선발 출장하여 10실점 기록하는 등 다소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에 3년 재계약을 맺었으나, 김영광은 현재 김승규에게 주전 경쟁에 밀려 이적을 요구한 상태다(전북이 김영광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김영광 자기자신이 얻은 부상이 결국 이적요청을 하게 된 나비효과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호곤에서 조민국 체제로 들어선 현재에도, 울산이 선택한 첫번째 골키퍼 옵션은 김승규다. 김승규는 벌써부터 2014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1일에 조민국 감독이 처음으로 가졌던 연습경기에서 그는 경기는 뛰지 않았지만, 휴가를 반납하고 훈련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장갑을 목표로 삼는다!
(김승규는 울산을 넘어 이제 한국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자리에 도전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2013년 한 해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었기에, 김승규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야한다는 여론은 당연히 나오게 되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승규는 작년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 선발과정에서도 팬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던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나 이범영과의 구도에서 김승규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김승규가 런던 올림픽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나도 김승규가 런던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았던 한 사람이었다).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딱 1년 만에 '김승규 대세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올림픽 대표팀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국가대표팀이다. 김승규가 국가대표팀 차기 수문장으로 거론되었던 건, 그가 리그에서 보여준 모습도 있었지만, 기존의 주전골리 장갑을 끼고 있던 정성룡이 예전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한 몫 했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정성룡은 이운재로부터 국가대표 주전골키퍼 자리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해왔었다. 하지만 이운재에 비해 안정감이 없다, 판단력이 좋지 않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등 적잖은 비판도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작년까진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2013년 A매치를 치르면서 정성룡의 기량이 떨어진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실점한 것이 수비진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막아내지 못하고 실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노출되었고, 지난 수원 vs 포항전에서 정성룡이 일명 슬램덩크슛으로 실점했던 것이 그가 주전에서 밀리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버렸다. 국가대표 넘버원 골키퍼 타이틀을 지키고 있던 그가 한순간에 이런식으로 이미지가 실추되어 추락될 줄은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승규는 8월 14일 페루와의 친선경기에서 깜짝 선발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는데, 페루 선수들의 기습슈팅을 전부 막아내면서 0대0 무승부를 만들어 MOM이 되었다. 고작 한 경기를 통해 김승규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물론 정성룡과 현재 돌아가면서 선발출장을 하고 있으며, 현재 김승규가 정성룡보단 조금 앞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정성룡을 누르고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A매치 경기에선 스위스전에선 김승규가 선발로, 러시아전에선 정성룡이 선발로 나왔었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까진 6개월 가량 남아있기 때문에 주전경쟁이 어떠한 양상으로 끝날 지 아직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을 쟁취하기 위해선 이번 달에 있을 전지훈련이 본격적인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0년생으로 올해 만 24세가 되는 김승규, 2014년이 자신의 띠기도 한 말띠이며,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하여 울산과 대한민국 국가대표 등번호 1번을 과연 달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모아지는 부분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스 출신으로 1군 주전장갑에 이어 스페인 국가대표 주장완장까지 찬 이케르 카시야스처럼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 선수로 생활한 김승규 또한 그와 같은 행보를 걸을 수 있을 지 한 번 지켜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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