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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최초 강등'을 피하기 위한 함부르크의 처절한 사투

J_Hyun_World 2014. 3. 1. 08:30

 

 

 

 

분데스리가 클럽 중 유일하게 강등된 적이 없는 구단, 함부르크 SV

 

(함부르크 홈구장인 임테크 아레나에 걸려있는 1부리그 잔류시간 테이블. 함부르크는 유일하게 분데스리가에서 강등 경험이 없다.)

 

  국내에선 손흥민의 친정팀이자 유럽리그 첫 데뷔팀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부 독일의 맹주로 불리우는 함부르크 SV, 사실 함부르크만큼 매력적인 팀을 찾기란 어렵다. 지금은 분데스리가가 바이에른 뮌헨을 기준으로 하여 역사가 쓰여지고 있지만, 그들은 바이에른 뮌헨이 가지지 못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클럽이며(설립연도 1887년), 1차 세계 대전 이후론 줄곧 1부리그에 머물고 있으며 분데스리가가 정식으로 출범한 이래에 1부리그에서만 머물고 있는 역사를 쓰고 있는 팀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경우에는 하부리그에서 1부리그까지 올라왔기에 함부르크 같은 기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기록이 위대했기에, 함부르크는 자신들의 홈경기장인 임테크 아레나 한 곳에 큼지막한 전광판을 걸어놓았다. 바로 그들이 1부리그에 얼만큼 머물고 있는지 알려주는 이른바 "1부리그 잔류시간 테이블"이었다. 이런 전광판을 걸어놓은 팀은 함부르크가 유일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전성기라 불리우는 1970~80년대 시즌(리그 3회 우승, 유러피언 컵 1회 우승, UEFA 위너스 컵 1회 우승, 포칼 컵 2회 우승)만큼은 아니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 바이에른 뮌헨에 못지 않은 스쿼드를 구축하면서 "남부엔 바이에른 뮌헨이라면, 북부엔 함부르크" 라는 수식어를 이어갔다. 함부르크는 2002년부터 7년간 다니엘 반바이텐을 시작으로, 표트르 트로초프스키, 칼리드 블라루즈, 라파엘 반더바르트, 나이젤 데용, 벵상 콤파니, 구이 데멜, 마르셀 얀센 등을 시즌별로 영입하면서 호화로운 스쿼드를 구축했고, 그 사이에 챔피언스리그도 진출했다(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마이스터 샬레에 등극하기엔 매번 2% 부족했으나, 그래도 분데스리가 내에서 꾸준히 중상위권 이상의 순위를 기록하면서 북독일의 맹주의 자존심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챔피언의 영광을 채 맛보지도 못하고, 위기가 다가왔다. 함부르크가 전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혹독한 위기의 계절을 맞이한 함부르크, 처음으로 강등 걱정에 직면하다

 

  분데스리가의 명가 함부르크에게도 위기의 계절이 찾아왔다. 많은 이들은 함부르크가 위기에 빠진 시점을 첼시의 단장을 역임했던 프랑크 아르네센이 함부르크 프론트진 합류라고 알고 있다. 물론 아르네센이 합류한 시점부터 함부르크는 말도 안되게 급격하게 추락하긴 했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서 위기의 계절을 맞이했던 시점이 있었다. 2008/09 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부르크는 당시 토트넘 감독직을 맡았던 마틴 욜을 감독에 앉혔고, 그는 함부르크를 UEFA컵(당시 유로파 리그)과 포칼 컵을 4강에 올려놓는 역량을 과시하면서 최종 리그 성적도 5위로 끝내면서 나름 괜찮은 시즌으로 마감하는가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멀쩡하게 감독직을 수행하던 마틴 욜이 1시즌만에 돌연 아약스 감독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여기서 마틴 욜이 떠나버린 것은 함부르크의 베른트 호프만 운영이사회장과의 마찰이 결정적이었다. 욜은 묀헨글라드바흐의 초특급 유망주였던 마르코 마린의 영입을 강력히 원했고, 사실상 함부르크 선수로 확정되기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막판에 호프만의 반대로 이 이적은 결렬되었고, 마린은 함부르크의 최대 라이벌인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호프만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디트타 바이어스도르퍼 단장 또한 환멸을 느끼면서 함부르크를 떠나버렸다. 유능한 인재 두 명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2009년이 함부르크의 몰락을 예견한 해였을지도 모른다. 

 

(함부르크에게 위기를 가져다 준 장본인, 베른트 호프만 운영이사회장)

 

  그 이후로 함부르크는 거짓말처럼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틴 욜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 이후, 함부르크는 무려 4명의 감독을 교체했으며(거의 매시즌마다 감독을 갈아치운 격이었다), 별 탈 없던 함부르크 선수들이 잇따른 부상이 신음하면서 스쿼드 또한 급격하게 무너져버렸다. 여기서 호프만은 이제 막 선수생활에서 은퇴를 선언한 바스티안 라인하르트를 단장자리에 임명하는데, 신출내기 프론트진은 아직 구단 운영에 대해 배우지도 못했는데 단장직을 맡았으니 사실상 호프만의 꼭두각시 역할이었던 것이다. 자기가 간섭한 것에 비해 구단이 늪에서 영 빠져나오지 못하자, 2011년 2월에 함부르크 클럽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만들었다. 바로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함부르크의 위기의 근원인, 프랑크 아르네센의 함부르크 프론트에 합류하는 사건이었다. 이것이 함부르크의 2차 몰락이라고 봐도 좋다.

 

  프랑크 아르네센이 함부르크에 합류할 때만 하더라도 반응은 꽤나 호의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무리뉴와 함께 첼시의 황금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그가 합류하면서 호프만이 드디어 정신차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물론 호프만은 아르네센이 합류하고 1달 뒤에 쫓겨났지만). 아르네센은 함부르크에 오자마자 세대교체를 부르짖었는데, 이 때 핵심선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요리스 마테이센, 제 호베르투 같은 중요한 베테랑까지 모두 떠나보냈다. 그대신 첼시 유스 출신 선수들(제프리 브루마, 마이클 맨시엔, 야코포 살라, 괴칸 테레 등)로 메웠다. 여기서 아르네센의 선택이 엄청난 실수였고, 구심점이 없고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들만 데려온 함부르크가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유망주들에게 적잖은 이적료를 사용한데다가 성적부진으로 인한 잦은 감독 교체로 발생한 보상금, 마지막으로 아르네센의 높은 연봉까지 합쳐지니 함부르크는 재정적인 타격까지 입었다. 2011/12 시즌에는 49년만에 최악의 순위인 15위를 기록했고, 부채도 2800만 유로에 다다랐다. 부채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스쿼드 보강을 위해 외부의 손을 빌려 라파엘 반더바르트, 밀란 바델리, 페트르 이라첵 등을 영입하는 데, 2350만 유로를 쏟아부었으니 함부르크의 잔고는 텅텅 빈 셈이었다. 

 

(베른드 호프만에 이어 함부르크에서 사고를 친 프랑크 아르네센. 그의 실책으로 함부르크는 더욱 힘들어졌으며 그는 2013년에 함부르크에서 도망쳤다)

 

  아르네센의 실책으로 타격을 크게 입은 함부르크인데 여기에서 또다른 결정타를 얻어맞게 되는데, 바로 구단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여 HSV 캠퍼스(HSV-Campus)를 건설한 일이었다. 유소년 센터를 새로 짓고 기숙사를 확충하여 유스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시기적으로 옳지 못했다. 이 시설을 짓는데 팀은 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고, 건설을 위해서 채권을 대량 발행하였는데, 그 액수가 1750만 유로나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게 보통 우리는 해당 구단 재정이 열악하면 "팀에 돈이 없다. 따라서 유망주를 키워야 한다." 라는 명제가 성립이 되는데, 그 유망주를 육성하는 데에 돈이 전혀 안드는 것이 아니며 거대한 이적료를 사용하는 만큼 돈을 쓰게 된다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모순을 지금 함부르크가 저지른 셈이다. 결과적으로 2012/13 시즌이 끝나고, 팀의 부채 총액은 5900만 유로로 늘어났다.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된 점도 손흥민 본인의 이적의사도 있었겠지만, 함부르크의 재정이 악화되어 함부르크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차원에서 팔아야만 했던 것이다.

 

 

함부르크의 리그 잔류를 위한 처절한 사투, 헤피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그리고 현재 2013/14 시즌,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채 되지 않아 함부르크는 감독을 교체했다. 기복이 심한 경기력으로 의구심을 받던 토르스텐 핑크는 함부르크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경질되었다. 그 대체자로 함부르크로 합류한 이가 과거 남아공월드컵 때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유로 2012에서 네덜란드 몰락의 주범으로 추락한 베르트 반마르바이크였다. 그는 함부르크 지휘봉을 잡으면서 유로 때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반마르바이크 뜻대로 시나리오가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함부르크의 현재 수비라인 자체가 문제가 있었고, 반마르바이크 이전에 벌어졌던 사태로 인해 함부르크 스쿼드가 온전치 못한 점도 있지만, 발이 느린 수비라인을 굳이 끌어올려서 발빠른 상대팀에게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기존 선수들의 역할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책임은 반마르바이크에게 있다.

 

  감독 교체 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는 함부르크는 리그 8연패를 기록하면서 리그 17위라는 함부르크 역사상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자칫했다가 그들이 자랑하는 1부리그 잔류 최다시간이 멈추게 생긴 것이다. 지난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3대0 패배로 끝난 직후, 화가 난 함부르크 팬들은 함부르크 선수들을 덮쳤고 프론트진 퇴진 시위를 펼쳤다. 함부르크 프론트들은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으며, 한참 후에 주장인 반더바르트가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등장했고, 그제서야 팬들이 비로소 감정을 누그러트렸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로 함부르크는 곧바로 베르트 반마르바이크를 감독직에서 경질시켰다. 이번 시즌에만 함부르크는 감독만 2번 바꿨고, 함부르크 감독직을 前 하노버96 감독이었던 미르코 슬롬카에게 넘겼다. 

 

(슬롬카 체제로 바뀐 이후 가졌던 첫경기인 도르트문트와의 노르데 더비에서 3대0 완승을 거둔 함부르크)

 

  슬롬카 체제로 바뀌고, 함부르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노르데 더비를 치뤘다. 그것도 함부르크 정신적 지주이자 주장인 라파엘 반더바르트가 부상으로 3주 결장한 시점에서 말이다. 강등을 직면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분투의 노력인지, 즉각적인 감독 교체라는 충격요법이 통한 것인지, 함부르크는 도르트문트에게 3대0 완승을 거두면서 분위기 대반전에 성공했다. 도르트문트가 주전 센터백들의 줄부상으로 수비가 얇아졌고 경기 도중에 스벤 벤더가 부상으로 나가면서 밸런스가 무너진 것도 있지만, 함부르크가 그동안 보여줬던 경기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함부르크는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역습과 다이렉트 패스에 집중하였고, 또한 상대팀의 빌드업시 공간을 철저하게 막아내면서 완벽하게 승점 3점을 받아냈다.

 

  이러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함부르크는 다음경기에 또다른 더비경기이자 북독일 맹주를 가리는 브레멘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리그 순위 16위이며, 15위인 슈투트가르트와는 골득실 차에 뒤쳐져 있는 상태이다. 또한 라이벌인 브레멘은 14위로 승점 3점차이기에 이번 노르데 더비에서 승리한다면 리그 잔류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이어질 경기에서도 함부르크가 탄력을 받아야 리그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이제 함부르크는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후반기 사투로 해피엔딩으로 시즌을 종료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발췌 및 인용 : "혹독한 위기의 계절을 맞이한 함부르크, 처음으로 강등 걱정에 직면하다" 부분 → [분데스매니아] 함부르크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by 메롱나라http://bundesmania.com/xe/fuss/107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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