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국내 부동의 스트라이커, 박은선
(때아닌 '성정체성 논란'으로 주목받았던 박은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대한민국 여자축구계에서 박은선이라는 존재는 한 획을 그었다해도 솔직히 과언이 아니다. 180cm 76kg이라는 웬만한 남자 축구선수들과 맞먹는 피지컬을 소유하면서 타고난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아시아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하는가 했었다. 하지만 20대에 접어들면서 그녀는 방황을 하기 시작하면서 팀 무단이탈로 자격정지 처분도 받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무적선수 신세를 겪기도 했다. 그 후, 소속팀인 서울시청으로 복귀하여 다시 잘 지내는가 했지만, 무단이탈과 복귀를 반복하면서 졸지에 트러블메이커가 되어버렸다. 외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지만, 박은선의 기량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방황의 종지부를 찍고 돌아왔던 2012년 시즌에는 10골을 넣으면서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했고, 그 다음해인 2013년 시즌에는 19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오르며, 소속팀인 서울시청을 정규리그 시즌 2위로 마감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이제 선수생활에 전념할 수 있을줄만 알았던 박은선,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터져버렸다. 2013년 시즌이 끝난 직후인 2013년 11월 5일,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박은선의 그녀의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다른 6개 구단의 감독들이 박은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시즌부터 박은선을 WK리그에 참가시켜선 안되며, 그녀가 계속 리그에서 뛸 경우 리그참가를 거부하겠다는 보이콧 선언을 발표했다. 박은선의 건장한 체격과 저음의 목소리로 인해 성별 논란 의혹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다른 클럽팀 감독들이 연합하여 그녀의 경기 참가를 반대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논란이 사실 말도 되지 않은 것은, 그녀는 2005년 WK리그에 참가하기 이전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으로도 활약했었고, 그녀의 성별이 남성이었다면 그전에 국가대표경기 등 국제대회를 애초에 뛸 수가 없었다. 이 말도 안되는 사건에 대해 서울시청 측에서는 선수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노발대발하고 있으며, 박은선 본인은 자신의 SNS에서 분노와 참담함을 감추질 못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여자 축구계는 지난 2012년 수원 FMC 해체사태 때 이후로 도마 위에 올라섰고, 이 보이콧 사건의 원인제공자였던 수원의 이성균 감독은 사적인 자리에서 농담으로 했을 뿐, 이것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발뺌하다가 보이콧 결의가 연맹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공식 문서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아울러 이성균 감독과 마찬가지로 박은선의 성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폈던 한국여자축구연맹 또한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다. 축구계 외 인사들도 박은선 사태를 접하면서 유감을 표했다. 서울시청팀의 구단주이기도 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선수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고, 민주당의 전병헌 원내대표도 "조직적으로 특정 선수를 향해 헌법상 직업의 자유까지 침해하면서 인간적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고 인권위원회에서도 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진상조사에 나섰다.
인권위 발표 그 후, 아무도 그녀에게 사과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인권위에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그 이후, 가해자들 아무도 박은선에게 사과 문자 하나 안남겼다. 사진출처 스포츠동아)
박은선에게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한 한국여자축구연맹과 다른 여자축구팀 감독들에게 화가 난 서울시청은 인권위에게 인권침해 아니냐면서 제소하였고, 한참 후인 2월 24일이 되어서야 인권위에서 내린 결정은 "박은선 성별 진단 요구는 성희롱이다" 었다. 인권위는 "'여성 축구선수 진단'의 의미는 의학적 방법으로 여성인지 남성인지 명확하게 판단해 달라는 것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는 점을 볼 때, 6개 구단 감독들이 박은선에 대해 여자가 맞는 지 성별진단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며, 이로 인해 선수 본인이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반 평균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성별진단 발언에 대해 성적 굴욕감과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어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장, 대한축구협회장,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에게 제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며, 축구협회 측에서는 이 사태가 벌어진 후부터 지속적으로 법률 검토 등을 하고 있다면서, 3월초 인권위의 공문이 접수되면 내부 회의를 거쳐 의견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FIFA나 IOC의 성별 관련 규정을 국내로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후속 조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박은선의 상처는 여전히 채 아물지 않고 있다.
그 사태가 있은 후, 3달 동안 박은선은 엄청난 충격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었다. 경남 합천으로 서울시청팀이 전지훈련 기간 내내 박은선은 불면증으로 하루에 3시간도 잘 수 없었으며, 스트레스가 심해 정신과 진료도 생각했지만, 기록이 남을까봐 심리 상담만 받았다고 밝혔다. 놀라운 건, 이러한 충격적인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은 그녀에게 사과나 미안함의 뜻을 아직까지 전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은선이 그 사태의 당사자였던 감독들과 전혀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서울시청이 제주도에서 훈련할 당시, WK리그 2개 팀과 우연히 동선이 겹친 적이 있었는데, 해당 팀 감독들은 박은선에게 아무런 메시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박은선은 자신의 가족들은 그 사건으로 피눈물까지 흘렸는데, 감독들은 그 흔한 사과 문자 하나 남겨주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마주쳐야 할 지 막막하다고 밝혔다. 그 후에 한국여자축구연맹 측에서 뒤늦게 중재로 감독들이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박은선이 거부했다.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박은선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주나
최근 여자 축구대표팀은 여자 아시안컵 겸 FIFA 여자 월드컵 예선전을 앞에 두고 치뤄지는 키프로스컵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명단 속에서 박은선의 이름은 없었다. 성별 논란이나 인권위의 결정에 의해 그녀를 반대했던 세력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써서 일종의 보복차원에서 뽑지 않은 것이냐는 거센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윤덕여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박은선의 컨디션이 아직 최고조가 아니었기에 차출하지 않은 것이며, 박은선 이외에 여자축구대표팀의 핵심인 심서연, 전가을 등 또한 제 컨디션이 아니어서 뽑지 않았다고 못박아두었다. 윤덕여 감독의 결정을 제쳐두더라도, 현재 박은선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기엔 아직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남은 생채기가 남아있기에 정신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박은선은 구단과의 대화에서 WK리그를 떠나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고 밝혔다. 1986년생이라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더 늦기 전에 한 번 해외무대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박은선이 입은 상처는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 지가 의문이 든다. 이미 그녀가 당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해외뉴스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었고, 전세계가 한국여자축구협회와 WK리그 다른 감독들에게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주위에서 잘못했다고 끊임없이 지적하고 나서야, 사건의 가해자들은 사후약방문격으로 박은선에게 사과하려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한다면 한 번의 중재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박은선과 대화시도를 통해 화해무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한 번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우리는 할 일 다했는데, 그녀가 우리의 성의를 안받아주었다." 고 변명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것은 박은선 이외에 다른 여자 운동선수들도 박은선 같은 사태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박은선 못지 않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등의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까지 미비하다. 그렇기에 여자 운동선수들이 이러한 일, 혹은 유사한 일을 당했을 시에 받는 상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며, 한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는 박은선이 마음의 상처로 인해 우울증이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누가 그녀의 상처를 낫게 해줄 것인가, 답답하고 화가 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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