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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대결 Pt.2 : 데이비드 베컴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대중 언론에 의해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이들.

J_Hyun_World 2014. 9. 1. 23:21

 

 

  "오늘날의 영웅들이 그에 대한 기대와 명성에 부응하려면, 젊은 팬들에게 더 많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 <우먼스 렐름> 에 실린 금주의 독자 편지 1997년 2월 6일 -

 

  스포츠 스타가 청소년의 도덕적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언론뿐 아니라, 공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도 자주 꺼내곤 한다. 요컨대, 스포츠 스타는 청소년의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포츠 스타의 행실이 "부정적인" 이유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가장 최근의 예로는 마리오 발로텔리가 거론되곤 한다), 이 때 그들은 대체로 "훌륭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는다. 하지만 "역할 모델"로서의 스포츠 스타라는 개념은 청소년, 매체, 스포츠 스타 간의 관계라는 허술하면서도 자니치게 단순화된 모델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의 이미지는 오히려 남성성 및 도덕성 담론의 복합적인 응축물을 수반하고, 이러한 응축물은 '유명인사성'의 자기지시적이고도 간텍스트적인 구성물에 의해 형성된다.

 

(현대 축구계의 '가장 큰 유명인사'를 꼽으라고 하면 데이비드 베컴이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스포츠 산업의 중심이라 일컫는 미국에서는 1990년대 마이클 조던에 이어 2000년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가장 큰 상품적 가치를 지닌 선수였다. 그러나 미국을 벗어나 전지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2000년대 스포츠산업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당연히 영국이 낳은 '전세계적 축구계 유명인사' 데이비드 베컴이다. 잘생기고, 공 잘차고, 영국 최고의 걸그룹이라 일컫는 스파이스 걸스 출신인 빅토리아 아담스가 그의 부인이며, 모든 남성들의 패션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흔히 말해 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남자들 중 하나다. 우리는 데이비드 베컴 같은 존재를 흔히 "행운아(Golden Boy)"라고 부른다. 전세계 언론은 언제나 베컴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왔고, 지금도 그의 행동 모든 것을 쫓고 있다. 그동안 보수적인 영국 사회 내에서 베컴 이전의 축구선수들은 베컴만큼 언론에서 상당히 오르내리진 않았다. 한 예로 리버풀의 레전드로 불리는 로비 파울러 또한 그저 영국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신식처럼 보이는 구식 남자의 전유물이었을 뿐, 크게 상품성이 된 것은 아니다. 앨런 쉬어러 또한 뉴캐슬을 상징하는 인물에서 끝났을 뿐, 그 이상의 이미지는 없었다. 기존 잉글랜드의 축구스타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거친 건달이나 깡패같은 전형적인 남성성이 부각된 반면에, 베컴은 달랐다. 그의 상징성은 그동안 스포츠와 패션의 긴밀한 연결의 결합체나 다름없었고, 그동안 영국 축구선수들의 이미지로 각인되어왔던 노동자를 상징하는, 거친 남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베컴의 상업적인 이미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허나 베컴에 대해 언론은 상당히 조롱하였다. 사실 베컴이 언론의 타겟이 되는 이유가 3가지 정도 되는데, 첫번째 이유는 잉글랜드 축구판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점령하고 있는 분위기 때문에 형성된 일종의 안티-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움직임, 그리고 베컴이 상당한 고액연봉자라는 점, 그리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시메오네를 걷어찬 점이다. 1992년 프리미엄 리그(이하 EPL)로 새출범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리그 타이틀을 휩쓸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언제나 독식해버리는 바람에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있었고, 그러한 팀의 이미지 덕분에 베컴 또한 자신의 부와 패션을 과시하는 것이 그가 속한 클럽의 재력에 대한 환유로 비춰졌다. 이것은 맨유 뿐만 아니라 훗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난 뒤에도 이어져왔다. 마치 그가 피나는 노력을 거둠으로써 얻은 것이 아닌 단지 팀을 잘만나서 저러한 부를 얻은 행운아라고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시메오네를 걷어찬 것의 원인제공은 시메오네가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컴의 그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잉글랜드의 월드컵 탈락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멍청하고 아둔한 영국인이라고 비난까지 받았다(덤으로 그의 아내인 빅토리아 아담스까지 한 데 묶여서 비판받았다).

 

(베컴은 이미 단순히 "축구선수"라는 틀을 벗어나 이미 "데이비드 베컴" 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대변되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특히나 시메오네와의 사건으로 인하여 언론은 베컴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축구팬들은 베컴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베컴은 그의 아둔함을 꼬집는 내용이 대부분인 갖가지 농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고, BBC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농담 중 하나인 "베컴의 일기" 에는 '그가 멍청한데다가 우는 소리나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이라고 시사하면서 두뇌 회전이 느린 영국인의 대표 표본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어리석음이나 멍청함이라는 이미지는 위의 세 가지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베컴으로부터 생성되는 엄격한 남성성의 탈피도 적잖게 작용했다. 마치 그는 빅토리아 아담스가 입혀주는 옷에 따라 입는 인형이라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1998년 여름, 빅토리와와 보낸 휴가 기간에 찍혔던 베컴의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때 당시 베컴이 걸친 옷가지를 "사롱(sarong - 주로 인도/말레이 인들이 치마처럼 허리에 둘러입는 옷)" 이라 설명하면서 마치 그가 "거세"라도 당한 듯한 암시와 함께 남자들, 특히 노동자계급의 농담과 조롱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베컴은 흔들림없이 월드컵 때 들었던 비난을 만회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1998-99시즌 맨유의 트리플 크라운(FA, 리그,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스스로 "성숙함" 을 입증했고, 따라서 용서받고 "복권" 되는 일종의 착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 이후 베컴 부부가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평소에 스포츠에 대해 칼럼을 쓰지 않던 칼럼니스트조차도 베컴 부부를 분석하기 위해 펜을 집어들었을 정도였다. 특히나, 베컴 부부의 결혼식은 영국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으로 상당히 검소하게 치러졌던 영국 왕실의 결혼식과 대조적으로 베컴 부부의 결혼식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왕실의 위엄을 뿜는 화려함 그 궁극이었다. 이에 대해서 각종 언론들이 다뤄주는 표현도 제각각이었으나, 그만큼 그 두 사람의 결혼식이 몰고 오던 파장은 상당했다. 그리고 후에 베컴 부부가 공개한 적이 없었던 후한 기부와 자선 활동이 화제가 되었고, 베컴의 "아버지가 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는 발언으로 인해 그의 사치스러운 과시는 어디까지나 가족에 대한 책임과 부성애를 지니기 이전의 전례상 낭비이자 풍족함으로 용인되고 정당화되었다.

 

  데이비드 베컴은 탈근대적 명사이자, '신식 젊은이(=로비 파울러) 이후의 남자' 이다. 그는 각종 스타일 잡지(<아레나>, <GQ>, <FHM>)로 인해 패션, 스타일, 나르시시즘 대상화의 가능성 등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을 꾸준히 증가하던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또한 이 시기동안 스포츠와 패션이 점점 긴밀하게 연결되던 시점이었으며, 축구선수와 팝스타들이 서로의 매력에 강하게 이끌려 명성 자체가 상품화되었다. 즉, 베컴은 스스로의 이미지에 포섭되어, 그의 '스타 페르소나'는 곧 실체가 되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강력한 상품이 되었다. 말그대로 베컴은 스포츠 스타를 넘어서 하나의 상품,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단순히 축구에만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그는 '어떤 것을 걸쳐도 어울릴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개체가 되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건, 베컴의 존재 자체가 곧 하나의 트렌드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베컴을 후원하고 있는 아디다스는 스포츠 선수들 중 처음으로 베컴을 상품화시켜서 새로운 상품들을 만들어서 판매했고, 그것은 날개달린 듯이 팔려나갔다. 스포츠 용품을 떠나서, 정장, 구두, 향수, 심지어 속옷까지도 그러했고 베컴이 걸쳤다는 이유만으로 흥행하였다. 이러하기에 베컴은 지금까지도 독보적이고 상징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베컴이 남기고 간 7번을 물려받을 때부터, 어쩌면 호날두 또한 베컴의 전례를 받을 운명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베컴의 모습을 보면,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의 전례를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포르투갈 변두리 마데이라 섬이 고향인 이 젊은 포르투갈 소년은 2003년 여름,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남기고 간 등번호 7번을 물려받으면서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할 당시의 그의 모습은 베컴의 오마주를 연상케 하였는데, 전형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강인한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10대 소녀들이 음악채널을 틀어놓았을 때 연모하는 10대 아이돌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피치 위에서 그는 실속보단 화려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앞섰기에, 외국인 선수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은 영국 언론의 주 타겟이 되었고(베컴이 표적이 되었던 주요 2가지 이유 - 맨유 선수, 고연봉자 가 호날두에게도 적용되었다), 언론은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리고 같은 팀 소속이자 동나이대인 잉글랜드 선수인 웨인 루니와의 상징성과 비교대상으로 자주 떠올랐는데, 웨인 루니가 파울러, 쉬어러 이후 영국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라고 한다면, 호날두는 그 반대선상에 서있었다. 흔히 영국 자국출신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비교대상으로 놓고 올드 트래포드 밖에선 이 두 선수를 미묘하게 경쟁시키곤 했다.

 

  그러다 이 잘나가는 라이징 스타에게 크나큰 스캔들이 터졌으니, 당시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이었던 잉글랜드 vs 포르투갈 경기 당시 호날두가 루니가 퇴장당할 당시에 윙크를 날렸던 사건이었다. 루니가 히카르도 카르발류의 사타구니를 밟아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을 때, 호날두는 포르투갈 벤치를 향하여 윙크를 날렸던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이로 인하여 영국인들은 호날두가 당장 영국에서 떠나야한다면서 그를 향한 온갖 분노를 표출하였다. 실제로 호날두는 영국인들의 미움을 사서 2006년 영플레이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음에도 투표에 밀려 독일인인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영광의 자리를 내줬고, 월드컵이 끝나고 맨체스터를 떠나려고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퍼거슨 맨유 감독을 필두로 퀘이로즈 수석코치, 웨인 루니까지 설득하여 결국 유나이티드에 잔류하게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2007년 3월에 섹스 파티 스캔들이 터지면서 호날두의 이미지는 '문란하고 놀기 좋아하는' 이미지로 낙인찍히면서 영국인들 사이에서 가쉽거리 소재가 되어버렸다. 마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의 데이비드 베컴이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호날두도 베컴처럼 대중 언론과 대중들의 집중 포화 속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펼쳤다. 2006-07 시즌에 EPL에서 득점왕을 제외하고 개인이 수상할 수 있는 모든 상을 쓸어담았고, 맨유가 리그 우승하는 데 크나큰 일조를 하면서 영국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1년 뒤인 2007-08 시즌에 호날두는 유나이티드들 이끌고 유럽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고, 리그 및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골든 슈에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면서 만 23살에 전세계를 호령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마치 성숙해져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눈부신 활약과 함께 호날두의 어려웠던 가족사가 대중 언론으로부터 공개되면서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그라들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호날두의 이미지는 '문란하고 놀기 좋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자신들의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2009년 1000억원대의 이적료를 기록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그의 다큐멘터리와 2010년 남아공 이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공개되었을 때, 그 긍정적인 이미지에 플러스 요인이 되면서 그는 현재 연인인 이리나 셰이크의 최고의 남자친구로 부상하게 되었다.

 

(호날두는 현재 축구선수들 중 가장 근접하게 베컴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는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자기관리가 뛰어나고 가족들에게 따뜻하며, 여자들에게 섹시함을 어필하는" 이 남자는 축구 외적인 면에서도 데이비드 베컴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다. 마드리드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 그는 자신의 누나와 함께 자기자신을 브랜드화하여 "CR7" 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였으며, 나이키의 머큐리얼 시리즈는 이미 호날두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사실상 그는 나이키의 아이콘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르마니 매장에는 호날두의 환상적인 상반신이 노출된 사진이 전면에 걸려있으며, 그는 에미레이츠 항공을 이용하는 VIP 고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남성 전용 및 여성 패션잡지에 호날두의 사진을 보는 빈도가 심심찮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메시보다 호날두가 인지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는 단순히 축구에 한정되지 않고, 외적인 면에서 대중 언론에 의해 브랜드화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호날두와 함께 그의 여자친구인 이리나 셰이크의 화보 주가도 치솟고 있으니, 그야말로 벡스 부부 이후 최고의 브랜드 커플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 두 사람은 더 이상 축구선수라는 틀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대중 언론에 의해 실패자가 되었다가 영웅이 되었다가 쉽게 조절이 가능한 하나의 유기적인 브랜드이자 아이콘이다. 물론 아직까지 호날두의 영향력이 베컴의 영향력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 그만큼 베컴의 영향력은 전세계적이며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열광하는 수준이다(축구를 잘 모르는 여성들도 베컴하면 다 알고 있지 않던가). 그들은 이미 대중 언론의 입맛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됨과 함께 자신들의 이미지를 공공연히 판매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원문 : 저서 <스포츠스타(13인의 스포츠 아이콘으로 읽는 문화, 문화정치)> 中 데이비드 베컴 편. by 게리 워널 

 

본격대결 Pt.1 : 디에고 마라도나 vs 리오넬 메시. 영웅적 삶의 스펙타클 - http://blog.daum.net/manutdronaldo/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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