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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L의 새로운 신화를 만든 웨스턴 시드니의 드라마

J_Hyun_World 2014. 11. 6. 22:41

 

 

 

2012년 머나먼 축구 변방국에서 일어난 변방 클럽

 

  우리의 뇌리 속에 오세아니아의 중심부인 호주는 축구 변방국의 대표주자 중 하나이며,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호주 국가대표팀이 최근 2006년 독일월드컵 16강전 진출을 기점으로 꾸준히 월드컵 무대에 나오고 있긴 하지만, 국가대표팀을 제외한 호주 내 리그에 대해 잘 아는 이는 호주 자국민이나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이상, 그리 많지도 않으며 관심도 크지 않다(참고로 호주 A-리그는 2005년에 프로리그로 창단되었다). 호주가 AFC로 편입된 지도 어느덧 몇 년 흘러갔지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내에서 호주 클럽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비하며, 원정길이 지옥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2008년 시즌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가 이변을 속출하면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하긴 하였으나, 감바 오사카와의 홈&어웨이 경기에서 3대0, 2대0, 통합 5대0으로 패하면서 우승컵을 눈앞에 두고 좌절을 겪었다.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비롯하여 호주 클럽들이 가장 많이 아챔에 출전했던 2012년에도 애들레이드가 8강까지 갔던 기록을 제외하면, 호주 클럽들은 잘해봐야 16강전이 최고 성적에 불과했다.

 

  호주 클럽들이 국제 대회에서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 머무르고 있을 무렵인 2012년 6월 25일, 시드니에서 새로운 클럽이 호주 A-리그 참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바로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Western Sydney Wanderers FC)다.

 

 

(웨스턴 시드니를 연고로 하는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는 2012년 호주 A-리그 개막을 앞두고 창단하였다.)

 

   리그가 출범할 당시, 호주 프로축구 협회에서는 "한 도시에 한 클럽" 원칙을 내세우면서 시드니 연고로는 시드니FC 만 인정되면서 시드니의 다른 클럽 창단을 막았다. 리그가 어느정도 자리잡히자, 2008년에 협회측에선 리그를 확장시키고자 시드니를 연고로 하는 또다른 클럽 창단을 허용하였고,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 주 웨스턴 시드니에서리그 참가 계획을 세우면서 2009년에 현재 원더러스의 홈경기장인 패러매터 스타디움을 기반으로 한 "시드니 로버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였지만, 자금 융통 문제가 생기면서 참가 보류가 되었고, 결국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여 본격적으로 리그 참가도 못하고 해산되었다. 하지만 기회는 또다시 찾아오는 법, 기존 A-리그에서 활약하던 골드코스트 유나이티드가 2011/12 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협회측으로부터 라이센스를 박탈당하면서 사실상 리그에서 퇴출당했다. 이유는 골드코스트 유나이티드의 구단주인 클리브 팔머와 호주축구협회 사이의 갈등이 발단이었다.

 

  그로 인해 2012년 4월 4일,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클럽을 대체하기로 발표하였고, 시드니 서부지역을 기반으로 하라고 협회에서 발언하였다. 호주 축구의 대표적 인물들인 스콧 치퍼필드와 루카스 닐이 이 시드니 서부지역 클럽 창단 지원의사를 표명하였고, 5월 17일에 라이언 고만이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감독으로는 과거 잉글랜드 클럽인 크리스탈 팰리스 코치를 역임했던 토니 포포비치가 선정되었다. 이 시드니 클럽은 그 해 6월 25일,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라는 이름으로 2012/13 시즌부터 A-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창단 첫 해에 리그 우승', 그리고 처음 경험한 ACL 무대

 

  솔직하게, 프로 클럽이 창단하자마자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존 강팀이 해체하여 다른 팀으로 재창단하지 않는 한, 우승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 K리그만 하더라도 새롭게 창단하는 클럽팀들이 창단 첫 해부터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면서 도깨비팀 역할은 했었으나, 우승후보까지 갔던 사례는 없었다. 웨스턴 시드니도 리그 초반에는 1무 2패로 저조한 출발을 보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타 다른 신생팀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갈 지(之) 자 행보는 9라운드까지였고, 10라운드부터는 180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호주 리그를 뒤집어 놓았다.

 

  10라운드에서 브리즈번을 상대로 1대0으로 이기면서 그들의 순위는 8위에서 4위로 단숨에 뛰어올랐고, 이를 기점으로 27라운드가 종료될 때까지 15승 2무 1패를 거두면서 창단 첫 해에 전 시즌 챔피언이자 A-리그의 강자인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선 센트럴코스트 마리너스에게 2대0으로 패하면서 통합 준우승을 기록하긴 했지만, 창단 첫 해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는 호주 리그 역사상 최초였다. 더욱 재밌는 건, 이들의 행보가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2014년 아챔 진출권을 손에 넣은 그들은 다음 시즌인 2013/14 시즌에서 정규리그 준우승에 플레이오프 준우승을 거두면서 2015년 아챔 진출권까지 확정지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 우승팀인 브리즈번과 연장까지 가는 혈전을 펼치면서 신생팀의 편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두 시즌 연속으로 자국리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니, 국제 대회인 ACL에서 그들이 어떠한 성적을 거둘 지 호주 사람들이 기대를 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단 첫 해에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아챔 처녀출전하는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이 다크호스였다)

 

  처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은 웨스턴 시드니, H조에 편성되었으며 상대는 2013년 K리그의 준우승팀인 울산과 예전 정대세가 뛰었던 팀으로 알려져 있는 J리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 그리고 중국 슈퍼리그의 구이저우였다.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3대1로 격파당할 때만 하더라도 웨스턴 시드니는 무력했다. 하지만 그 뒤 4승 1패를 기록하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H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이들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패우승을 달성한 바 있는 울산이 조1위로 무난하게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조별리그에서 이미 시동이 걸린 그들은 토너먼트 체제로 들어서면서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이번 시즌부터 시작된 16강전 홈&어웨이에서 그들은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만나서 1,2차전 통합 3대3(3대1, 0대2)라는 호각을 펼쳤지만 원정 골 우선 원칙에 따라 1차전 히로시마 원정에서 득점한 것이 크게 작용하여 8강에 합류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를 넘어 만난 8강 상대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었던 광저우 헝다, 광저우와의 경기에서도 그들은 원정 골 덕분에 디펜딩 챔피언을 제압하고 4강전까지 쾌속질주하였다. 조별리그부터 8강까지 웨스턴 시드니는 한마디로 도장깨기를 이어갔던 셈이다.

 

  그리고 4강전에서 만난 서울과의 경기에서 원더러스는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무실점으로 통합 2대0 승리를 거두면서 결코 16강전과 8강전에 올라섰던 것이 운이 좋아서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과거 애들레이드가 세웠던 호주 클럽 역사상 결승전 진출과 타이기록을 세웠다. 결승전 무대에 올라서면서 웨스턴 시드니가 나아가는 방향은 두 가지였다. 애들레이드만큼 족적을 남기는 것이냐, 아니면 그들을 뛰어넘어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였고, 그러한 선택을 판가름해줄 팀이 바로 결승전 상대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명문클럽인 알 힐랄이었다. 알 힐랄과의 결승전 2경기에서 호주 클럽은 끈질기고 단단하여 마치 '울룰루' 와도 같았다. 이 거대한 바위산을 넘지 못하고 알 힐랄은 14년만의 아시아 정상을 원더러스에게 내주고 말았다. 처녀출전이었던 웨스턴 시드니는 제대로 사고를 쳤다.

 

 

 

신입생의 질풍가도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이제 겨우 3살이 된 웨스턴 시드니는 어린 나이(?)에 큰 것을 이룬 신동이 되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 시드니 클럽이 탄생한 지는 겨우 3년차, 사람 나이로 따지면 이제 걸음마를 떼고 엄마 아빠 이름을 부르면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때이다. 이런 나이에 원더러스는 성인이 해내기도 힘든 일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창단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년 연속 두 번의 플레이오프 준우승, 그리고 첫 출전에 아시아 정상에 올라섰다. 이 기록은 호주 클럽 역사상 최초이자, AFC 소속 클럽 역사상 최초이기도 하다. 무패우승을 이뤄낸 울산이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던 포항도, 막강한 총알을 장전하여 호화군단을 구축했던 광저우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참고로 많은 이들이 우승후보라고 지목했었던 광저우도 처음 출전했을 때 세웠던 기록은 알 이티하드와의 8강전이 최고 성적이었고, 다시 도전해서야 정복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국제대회는 변수가 많고 호락호락한 대회가 아님에도 웨스턴 시드니는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냈다.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스쿼드가 막상 그렇게 최고의 스쿼드도 아니었다. 이번 아챔 득점왕 리스트 상위권에 원더러스 선수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팀 내 최다 득점자인 토미 유리치가 기록했던 골을 4골이었다(참고로 득점왕이었던 아사모아 기안은 12골, 한국 선수 중 최다득점자는 김승대로 5골이었다). 즉, 웨스턴 시드니는 믿을만한 스코어러도 딱히 없었고, 기술이나 기동력이 뛰어난 팀은 아니었다. 그들의 장점은 호주 특유의 피지컬과 높이, 파워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면서 자신들에게 찾아오는 역습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성공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 개개인 기량보다 철저하게 팀조직력을 앞세워서 상대와 직접 맞부딪친다. 사람들은 이러한 바위처럼 우직한 이 팀이 클럽 월드컵에서까지 통할 지 지켜보고 있다.

 

  웨스턴 시드니는 아시아 클럽 대표팀으로 오는 12월 모로코에서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게 된다. 상대로는 유럽 챔피언이자 라 마시아를 이룩한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하여,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정복자인 아르헨티나 클럽인 산 로렌소, 북중미의 크루스 아술 등과 경합하여 월드 챔피언을 가리고자 한다.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의 다음 행보는 어디인가? 신입생의 돌풍이 무척이나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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