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 1-1 안양 : 잔치를 벌이려던 서울 E.는 하마터면 잔칫상을 뒤엎는 망신을 저지를 뻔 하였다.
(이번 K리그 챌린지의 강력한 우승후보들의 첫 대결, 하지만 경기는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렸다)
드디어 잠실 주경기장에서도 리그 경기가 열렸다. 올해부터 잠실 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하는 서울 E랜드가 창단하여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리그가 개막되기 전부터 2부리그 팀 답지 않게,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가장 높은 만큼 모든 이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김재성, 김영광, 조원희 등의 슈퍼스타들의 영입과, 마틴 레니라는 외국인 감독 선임까지, 모든 게 이 팀은 이슈 그 자체였다.
서울 E.의 첫 상대인 안양은 지난 홈 개막전에서 수원 징크스를 극복하고 3대0 완승으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그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잠실 원정에서는 조성준 대신에 박승렬을 선발로 투입시킨 것을 제외하고 동일한 라인업으로 나왔다. 특히나, 김선민-최진수 라는 '믿고 쓰는 울산산' 중원을 기반으로 하는 티키타카 스타일이 이번에는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지 관심이 모아졌다.
롱볼 축구 vs 티키타카
안양과 달리 서울 E.의 경우 올시즌 처음 리그에 참가하는 팀이었기에, 과연 이 팀이 어떠한 경기력을 보여줄 지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했었다. 짧은 패스로 상대방을 잘게 썰어가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안양에 대항하는 서울 E.의 스타일은 '롱볼 축구' 였다.
이 표범군단이 중원을 거쳐서 전개하는 방법을 전혀 서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차근차근 빌드업을 한다기보단, 최후방에서 간결하고 빠르게 최전방으로 이어주는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하였다. 라이트백인 윤성열의 양발 크로스나, 트리니다드토바고 대표팀 주전 센터백인 칼라일 미첼의 오른발에서 그들의 공격은 시작되고, 곧바로 최전방 쓰리톱에게 연결을 시도한다.
최후방에서 최전방으로 패스가 넘어올 때, 상대적으로 피지컬이 뛰어난 라이언 존슨이 공중볼 경합 등을 거치면서 공을 따내고, 곧바로 보비에게 이어지면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골문을 향해 슈팅을 한다. 이것이 이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주 공격루트이다. 마치, 전형적인 잉글랜드식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롱패스의 정확도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며, 안양 선수들의 쉽게 공략한다는 점이다.
(안양이 간격을 좁힘과 동시에 중원을 점령하는 숫자를 높히면서 자신들의 페이스로 경기를 이끌어갔다)
안양은 서울 E. 상대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라인 간격을 좁히면서 노른자인 중원을 빼앗아가는 방법을 택했고, 중앙에 배치된 김선민-최진수를 필두로 하는 티키타카로 상대의 빈틈을 짧게 썰면서 들어갔다. 중원을 지키는 두 선수가 라인 간격을 조율하면서 동시에 2선에 배치된 윙어들과 주장인 김태봉이 중원으로 가담해주면서 상대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덕분에 안양이 원하는 티키타카가 원활했다.
중원으로 최대한 상대를 끌어들였다고 판단되면, 안양은 곧바로 최진수의 날카로운 킬패스로 서울 E.의 뒷공간을 수차례 노렸고, 김영광의 신들린 선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승점 3점을 챙겨갈 뻔 했다. 서울 E.의 플랫4와 홀딩으로 배치된 신일수는 90분 내내 최진수의 패스를 지속적으로 놓쳤다. 경기 내용상으로는 티키타카의 승리였다.
김재성-조원희 의 개인 기량 의존 vs 김선민-최진수 중심의 연계플레이
이 경기의 메인 매치는 K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재성-조원희로 구성된 K리그 OB 라인과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김선민-최진수로 구성된 K리그 YB라인의 격돌이었다. 양 팀 다 이 중원에 무게중심을 쏟아부었는데, 결과물은 이렇게 나왔다.
(먼저 골문을 열어젖힌 쪽은 김재성-조원희 듀오였다. 조원희의 PK유도, 그리고 김재성의 마무리)
먼저 선제공격을 날린 쪽은 서울 E.였다. 전반 35분, 김재성은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쇄도하던 중, 페널티박스로 들어오던 조원희에게 패스를 연결하였고, 조원희는 패스를 받는 도중 박승렬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얻었다. 곧바로 주장인 김재성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팀 내 첫번째 골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조합이 빛난 것은 이 장면 한 번 뿐이었다는 게 아쉬웠다.
김재성은 종적으로, 조원희는 주로 횡적으로 움직이면서 안양과 중원 싸움을 펼쳤지만, 하나의 유기체라기보다는 각자 자신들의 개인기량에 의존한 채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였다. 그렇다보니, 안양의 조직력을 극복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활동량 면에서도 김선민-최진수에게 밀리는 페이스를 보였다.
(51분, 김선민의 환상적인 원더골로 안양은 잔칫상을 엎어버리면서 잠실을 정적으로 만들어버렸다)
후반전으로 넘어오면서 잠실경기장은 김선민과 최진수의 활동무대가 되어버렸다. 51분, 루즈볼을 따낸 김선민은 그림같은 드리블로 서울 E. 의 수비를 벗겨내면서 빠른 중거리슛으로 그들의 골망을 흔들었다. 서울 E.의 잔칫상을 엎어버렸고, 200명의 안양 원정팬들만 신났다.
동점골을 바탕으로 김선민과 최진수는 끊임없이 중원을 누비면서 서울 E.를 괴롭혔다. 최진수는 후방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모든 패스를 조율하면서 공격을 주도하였고, 김선민은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 연계플레이를 앞세워 안양의 수싸움과 공격 템포를 높히면서 안양 공격에 윤활유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수비시에는 두 선수 모두 적극적으로 전진 압박과 커팅을 하면서 뒷문 단속까지 확실하게 하였다.
사실 최진수나 김선민, 두 선수 전부 몸싸움과 터프함과는 동떨어진, 부드럽고 세밀한 패스에 능한 유형들이라 중원 싸움에서 다소 버거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이 김재성과 조원희의 저돌적인 모습을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색깔로 잠실 주경기장을 뒤덮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그들의 플레이가 없었더라면, 안양의 티키타카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양의 부족한 2%
김선민-최진수를 기반으로 중원싸움에서 내용상으로는 승리한 안양이지만, 경기결과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바로 안양의 2%가 문제였는데, 그것이 마무리였다. 빌드업부터 상대방의 페널티박스까지의 판단력은 좋은데,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에서 매번 안양은 막혀버렸다.
이 경기에서 개인적으로 안성빈의 플레이가 살짝 아쉬웠다. 수원전에서는 골까지 기록하면서 안양의 확실한 공격자원으로 손꼽혔지만, 잠실에서 보였던 그의 모습은 마지막 판단을 앞두고 마치 고민하는 듯했다.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서울 E.의 틈새공략을 노렸던 것까진 상당히 좋은 모습이었지만, 결정적인 킬패스라던지, 자신이 끝낼 수 있었던 마무리를 앞두고 항상 한 박자씩 늦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빠른 판단력만 갖추었다면, 그는 역전의 용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성빈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데에는 동료 선수였던 이효균, 주현재, 박승렬 또한 존재감이 부족했던 것도 적잖다. 조성준 대신 선발 출장했던 박승렬은 상대에게 PK를 헌납한 것 이외에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고, 오히려 교체 투입된 조성준이 끊임없이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쇄도하면서 공격 활로를 열어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현재 또한 김선민이 왼쪽 윙어로 들어가면서 활약했던 것에 비해 다소 임팩트가 부족했다. 이효균 또한 라스트 터치가 불안정하여 추가 득점을 올리는 데 연거푸 실패했다.
경기흐름에 크게 영향 없던 교체카드
(양 팀 다 승부수를 던지는 교체를 단행했지만, 승부를 뒤집는 데에는 실패했다)
김선민의 동점골 이후, 가장 먼저 승부수를 던진 것은 안양이었다. 수원전에 활약했던 조성준을 투입시키면서 부족했던 측면 공격을 강화시켰다. 조성준의 투입과 함께 안양은 김태봉-조성준의 오른쪽 측면 공격을 강화하였고, 반대측면은 안성빈으로 하여금 시도하였지만, 안성빈이 빠지면서 생기는 중앙에서의 공격 쇄도가 헐거워졌다.
보비가 번번히 안동혁-백동규를 뚫지 못하자, 몰타 리그에서 활약한 타라바이를 대신 투입시켜 공중볼보다는 발밑으로 움직이는 돌파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서울 E. 간격이 너무 벌어져있고, 안양에게 공간을 빼앗겨 제대로 된 역습 하나 이어가질 못했다. 타라바이가 간간히 공을 잡긴 했으나, 이렇다할 돌파가 없었다.
후반 종반으로 다다랐을 때, 안양은 정재용을 중앙으로 투입시켜 김선민을 왼쪽 윙어로 위치를 옮겨 좀 더 측면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서울 E. 는 라이언 존슨 대신 주민규를 투입시켜 공격에 더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늦은 조치였고, 이 카드는 크게 승부를 뒤집는 데 영향을 주지 못했다.
1대1 무승부로 끝났지만, 안양의 입장에선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끝냈고, 서울 E. 입장에선 하마터면 기념비적인 첫경기를 패배로 기록할 뻔 했으니 다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시작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안양의 페이스에 서울 E.가 휘말렸고, 행운의 페널티 골이 없었으면 영락없이 패배한 경기였다.
안양은 이미 2경기를 치뤘고, 그 이전에도 경기를 치뤄왔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할 지는 자기 자신들도 깨닫고 있을 것이다. 티키타카가 안양 스타일에 제대로 정착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고는 있지만, 경기는 골이 없으면 승패를 가를 수 없다. 최진수 같은 플레이메이커가 더욱 빛나려면 그의 패스를 마무리로 연결 지을 수 있는 확고한 승부사가 필요하다.
서울 E. 는 언론 등으로 홍보한 것과 달리 기대 이하의 모습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마틴 레니는 이 경기를 자신들의 5,60% 밖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하나,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사정 없는 팀은 없고, 프리시즌과 전지훈련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명문구단을 차저하고 싶다면,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홍보라는 거품보다, 알맹이인 자신들의 기량을 향상시켜야 한다. 다음 대구전에서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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