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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파산 사태를 통해 본 이탈리아 클럽들의 재정위기설

J_Hyun_World 2015. 5. 10. 07:00

 

 

 

'아 옛날이여', 파르마의 찬란했던 '세리에A 7공주 시절'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탈리아 세리에A는 르네상스라 불릴만큼 부흥기를 맞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르네상스 시절에 유럽 각지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에 몰려왔듯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슈퍼스타들이 이탈리아 반도에 몰려들었다. 그래서 축구팬들 사이에서 '스쿠테토를 차지하는 것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 당시 시절을 '세리에 7공주 시절'로 명명하기도 했다. 박지성이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던 당시 EPL처럼, 이탈리아 세리에A 또한 그만큼 여러 클럽들의 경쟁력이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파르마라는 팀은 세리에 7공주 시절에 가장 눈부시게 성장했고, 그 시절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본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파르마는 세리에 7공주로 분류되었던 다른 클럽들(유벤투스, AC밀란, 인테르, AS로마, 라치오, 피오렌티나)에 비해 스쿠테토를 단 한 번도 달성해본 적이 없었고, 1990년에 되어서야 세리에A로 승격의 기쁨을 누렸던 그저그런 중소규모의 클럽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르마 현지에 기반을 둔 식품회사 파르마 라트의 칼리스토 탄치가 구단을 사들였고, 그의 아들인 스테파노 탄치가 구단주 자리에 앉으면서 파르마는 지금의 첼시나 맨체스터 시티, PSG처럼 탄력을 받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파르마를 승격시킨 장본인 네비오 스칼라는 탄치 가문을 등에 업은 채 국제대회에서 소위 '날라다녔다' 할만큼 굵직한 업적을 거두었다. 코파 이탈리아 컵 우승(1991/92)을 비롯하여,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1992/93), 그리고 유로파 리그 우승(1994/95)을 거두면서 일약 세리에A의 한 축으로 당당히 성장했다. 불과 몇 시즌 사이에 괄목상대가 되어버렸다.

 

(유로파 리그를 두 번이나 정복한 파르마, 괜히 세리에 7공주의 한 축이었던 게 아니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파르마는 총 8개의 트로피를 챙겼는데, 이 10년이 파르마 클럽 역사상 거둔 우승의 모든 것이였으며,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에서 10번째 성공을 거둔 팀이자, 당시 유벤투스와 밀라노 클럽들에 이어 4번째로 굵직한 업적을 거두기도 했다. 10년간 보여줬던 활약상은 분명 '세리에 7공주' 의 한 축이라 불릴정도의 전력이었고, 당시 파르마를 거쳐갔던 스타플레이어들로는 파르마와 3번의 우승의 순간을 함께했던 스트라이커 에르난 크레스포를 비롯하여, 21세기 최고의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지안루이지 부폰, 수비수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의 영광을 누렸던 '작은 거인' 파비오 칸나바로, 완성형 풀백에 가까웠던 릴리앙 튀랑 등이 있었다. 선수 뿐만 아니라 명장들도 파르마를 거쳐갔었는데, 파르마의 황금기를 구가한 스칼라 이후로는 카를로 안첼로티, 알베르토 말레사니, 아리고 사키 등이 지휘봉을 잡았었다. 하지만 2002년을 기점으로 하여 세리에 7공주 체제도 해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파르마도 이 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7공주 일원에서 파산선고까지, 파르마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파르마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점은 바로 파르마의 모기업으로 존재하던 파르마 라트의 금융붕괴로 자금 지원 불가 선언이었고, 그 때문에 파르마는 2004년 4월부터 3년간 특별 관리까지 받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2년 연속 23골을 몰아치면서 팀을 견인하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있었지만,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파르마는 2004/05 시즌에 강등권 바로 위였던 리그 17위를 기록하면서 하루아침에 급격하게 추락하였고, 이전 시즌에 리그 5위를 기록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모양새였다(질라르디노는 다음 시즌에 AC밀란으로 이적하였다). 라트와 이별한 이후인 2007년 1월, 기계회사인 라 레오네사 SpA의 소유자인 톰마소 기라르디가 파르마의 지분 70% 이상을 사들이며 위기를 극복하려 했으나, 파르마는 2007/08 시즌에 19위를 기록하면서 세리에B로 강등당했다. 재정문제로 휘청거렸던 파르마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곧바로 다음시즌에 세리에A로 복귀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라르디가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아무도 몰랐다.

 

  파르마는 세리에A에 복귀한 이후, 발레리 보지노프, 세바스티안 지오빈코, 아마우리,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이샥 벨포딜, 마르코 파롤로, 안토니오 카사노 등을 데려오면서 7공주시절의 전력은 아니지만, 세리에A 중위권을 고수하면서 팀이 다시 안정화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2013/14 시즌 말미에 문제가 터져버렸다. 최종 리그 순위 6위를 기록한 파르마는 순위에 따라 유로파리그 참가자격을 획득했지만, 그 자격을 얼마 지나지 않아 박탈당하고 7위인 토리노에게 빼앗겨버리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박탈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UEFA 라이센스를 유지비로 내는 세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충분히 낼 여력이 있다고 말했던 파르마는 어찌된 일인지 계속 납부하지 않았고 결국 토리노에게 좋은 일 해버렸다. 이것이 파르마에게 재앙을 불러온 씨앗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톰마소 기라르디는 파르마의 운영에 완전히 손을 뗐다. 오너가 팀을 엉망으로 운영하자, 가뜩이나 전력이 약한 파르마는 2014/15 시즌 초반부터 곤두박질쳤고, 선수단 임금도 체불된 상태였다.

 

(올해 1월에 안토니오 카사노가 파르마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떠난 것이, 파르마 몰락의 징후였다)

 

  올해 1월 말, 파르마의 에이스인 카사노가 돌연 팀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떠났다. 카사노측은 구단이 7개월간 임금을 체불했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팀이 선수를 공짜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카사노 사태가 파르마의 현재 실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자, 이 팀이 얼마나 몰락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태였다. 기라르디가 손을 떼면서 카사노 뿐만 아니라 여러 선수들은 자신들의 주급을 몇달 간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유니폼까지 선수들이 손수 세탁하고 구단 버스를 운영할 돈이 없어서 원정버스도 선수들이 사비 털어가면서 직접 마련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톰마소 기라르디 이후에 구단주도 2번이나 바뀌었고, 재정문제로 승점 삭감까지 당했다. 급하게 러시아 자본까지 끌어들였고 임대 등을 통하여 선수보강을 대부분 이루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이었고 뒤에 닥쳐올 더 큰 화를 막아내진 못했다.

 

  지난 2월에 취임한 새 구단주인 잠피에트로 마넨티 구단주가 돈세탁 혐의로 체포되면서 파르마의 내리막길은 가속화되었다. 안그래도 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비품들과 라커룸, 구단 버스 등을 경매로 내놓았고, 선수들이 구단을 살리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인데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파르마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3월 19일(현지시각 기준), 파르마는 이탈리아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들이 갚아야 할 부채가 자그마치 2억 유로(약 2393억원)이며, 파산과 맞물려 파르마는 남은 경기 상관없이 자동 강등이 확정되었다. 다음이 더 문제인데, 파르마가 이 중 7300만 유로(870억원)부터 갚지 못하면, 세리에B가 아니라 세리에D로 떨어질 수 있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파르마의 주장인 루카렐리의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경기에 나서고 싶어한다." 는 인터뷰에서 보았듯이, 파르마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여전히 뛰길 원하는데, 팀은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제2의 파르마 사태'가 잠재되어 있는 여러 이탈리아 클럽들의 재정위기

 

('한 때 잘나갔던' 파르마의 몰락, 하지만 '제2의 파르마 사태'로 이어질 기미들이 보이고 있다) 

 

  2000년대에 한 때 잘나갔던 클럽의 파르마의 몰락은 비슷한 시기에 EPL을 주름잡았던 리즈 유나이티드의 추락을 보는 듯한 인상이다(물론 리즈는 파르마처럼 구단의 모든 물품을 경매로 내놓고, 온수까지 끊기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파르마 뿐만 아니라 다른 이탈리아 클럽들 또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으로 언제 또다시 '제2의 파르마 사태'가 터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디나탈레의 원맨팀인 우디네세는 매시즌마다 선수를 팔아야 할만큼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 2013/14 시즌 세리에A 클럽 재정 상태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 나폴리 뿐이라는 것을 염두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즌에는 흑자였다곤 하지만 아직 부채가 세리에A 내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라치오도 장담할 수 없다(그들은 이번시즌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리그 3위 안에 들어야 재정이 안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 외 하부리그에 속해있는 이탈리아 클럽들은 일일이 설명할 순 없지만, 상위리그 못지 않게 재정이 좋지 못하다.

 

  그들이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인데, 외부 자원의 유입,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는 방법, 나머지 하나는 긴축재정을 통해서 선수단과 운영계획을 줄이는 방법이다. 유벤투스는 꾸준히 국내리그를 제패하고 있고 이번 챔스에서는 4강까지 올라서는 등 호성적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인테르나 로마의 경우에는 외부 자원이 유입되어 그를 바탕으로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경우에는 빅클럽일 경우에나 현실성 있는 선택지일 뿐, 중위권 이하 클럽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긴축재정으로 팀이 순수흑자모드로 접어들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 이제 날은 점점 길어지고, 더위는 찾아오고 있는데, 이탈리아 클럽들에게는 아직까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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