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로 떠오른 혼다 케이스케, 그리고 그의 발언
(지난 4일 나폴리전 대패 이후 이뤄진 혼다 케이스케의 인터뷰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혼다 케이스케는 지난 2013년 12월 이탈리아 명문클럽인 AC밀란으로의 이적을 확정지으면서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토모 유토 이후 세번째로 일본인 중 이탈리아 빅클럽 입단을 치뤘다. 그리고 그는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인 10번을 받아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밀라노 생활은 순탄치 못했는데, 그의 데뷔전이었던 사수올로전은 상대팀 신예인 도메니코 베라르디의 4골 러쉬에 의해 완전히 묻혀버렸고, 2014년 4월 8일 제노아전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하기 전까지 부진과 질타 속에 시달려야만 했다. 2014/15 시즌에는 초반에 7경기 6골 2도움으로 팀의 엔진 역할을 해주는가 싶었으나, 그러한 선전을 이어가지 못하여 아쉬움만 더했다. 또한 시도르프 → 인자기 → 미하일로비치로 이어지는 감독 교체 속에서 그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였고, 2015/16 시즌도 벤치선수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AC밀란은 지난 10월 4일, 홈에서 나폴리에게 0대4 라는 대패를 기록하였는데, 경기에 뛰지 못한 혼다는 이례적으로 일본의 닛칸스포츠의 인터뷰에 응했고 여기서 그는 폭탄 발언을 남겼다.
(시합에 대해)
전반전은 제법 좋은 승부였고, 실점 장면은 우리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그 뒤에, 찝어말하자면 나폴리의 기세가 사그라들기 시작해서 동점을 만들 찬스도 몇번 있긴 했는데… 후반전은 전혀 다른 시합이 되어버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제점이 알기 쉬워졌을 뿐 문제점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데다, 문제점이 더 커져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마도 오늘 시합에서 팬이나 경영진, 선수들은 크게 상처받고 문제를 깨달을 것이다. 오늘의 패전에서 제대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재건은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째서 출전하지 못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이런 한심한 시합을 하면서 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게 이상하다. 이탈리아 언론에게는 대단히 큰 문제겠지만, 이 시합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논하는 시점에서 일단 넌센스다. 최근 3년 정도, 이대로는 누가 뛰든지 무리라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해결책에 대해)
맨체스터 시티나 PSG만큼 돈을 쓴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좀 더 구조적인 부분에서부터 고쳐가야한다. 선수가 깨닫는다고 해도 이 팀은 변하지 않는다. 역시 경영진이 깨닫고, 그리고 감독이 깨닫고, 그리고 선수들이 깨닫고, 동시에 팬들도 깨달아야 한다. 나는 팬들이 박수를 치는 타이밍을 보면서 오로지 승리에만 좌우되는 팬들이라고 느끼고 있다. 경기 내용따위는 보질 않고, 그냥 이기면 박수를 친다.
밀란은 3년간 여러 선수들을 실험해왔고, 이번에도 100억엔 정도를 써서 또 다시 새로운 선수를 실험하고 있다. 탑 플레이어는 아니라곤 해도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모여있는 집단. 그럼 어째서 시합에 나가는 선수가 맡겨진 포지션에서 활기있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좀 더 구조적인 부분. 이른바 평가기준이다. 평가기준을 언론, 팬, 감독, 경영진으로부터 전부 바꿀 수 있다면 커다란 재건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2년동안 생각해온건데, 반대로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묻고싶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벤투스까지 약해진다면…유벤투스도 지금 위험하지 않나. 정말로 이탈리아 전체가 위험하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언론에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달라. 어차피 나를 또 마구 까대겠지만.
혼다의 인터뷰 스타일이 거침없이 잘못된 것은 짚어내어 지적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기로 유명하긴 했지만, 자신이 뛰고 있는 클럽팀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혼다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AC밀란 팬들은 그의 경기력을 제치고 그의 발언 자체에 상당히 공감하면서 그를 향한 지지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고, 반면 로쏘네리의 레전드들은 혼다의 발언을 두고 상당히 엇갈리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혼다의 발언이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 - AC 밀란의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내다
(혼다의 말처럼 AC밀란은 현재 누가봐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나아질 기미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
과거에 우리가 알던 AC밀란의 화려함과 영광의 흔적은 일찌감치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로쏘네리의 라이벌 클럽인 유벤투스가 이탈리아 제왕으로 왕좌에 복귀하고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올라가는 동안,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기는 커녕 중위권 클럽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 시즌은 좀 다르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잠시 리그 4연패를 기록하였고(4경기 모두 무득점 패배였다), 더군다나 나폴리전은 홈경기에 4골차 대패를 기록했기에 모든 이들의 우려를 사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악화된다면 로쏘네리 지지자들은 실점을 허용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습관이 생겨버릴 것이다.
AC밀란은 2010/11 시즌 리그 우승 이후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런트는 감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막시밀리아노 알레그리를 경질시켰다. 하지만 그가 안토니오 콘테 후임으로 유벤투스 감독이 되어 보란듯이 리그 최다 승점으로 우승을 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AS모나코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점을 보았을 때, AC밀란은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다. 오히려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긴축재정이라는 명목 하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구 실바라는 기둥을 대책없이 뽑아서 PSG에 팔아버린 것을 시작으로 선수단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체자로 모든 면을 따지기 보단, 단순히 명성과 가격만을 고려하여 전술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들만 영입하는(예를 들다면 마이클 에시앙, 페르난도 토레스 등) 그야말로 무계획성 영입만 이뤄졌다. 이러한 영입에 감독 경력이라곤 일절 없고 단지 밀란의 레전드 출신이라는 이유로 클라렌스 시도로프와 필리포 인자기를 감독직에 앉혔으니, 밀라노의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암담한 암흑기로 빠져들었고, 그들은 퇴보를 거듭하였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덕분에 AC밀란은 무의미한 리빌딩만 수년째 거듭했고 그 사이에 팀의 핵심이었던 선수들은 밀라노를 떠났다. 올시즌 새로 부임한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감독이 시즌 초반부터 여론의 직격타를 맞고 있는 것도 과거의 패착 영향이 크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는 재정적인 여유가 많이 좋아졌다. 지난 3월, 태국의 금융재벌인 비 타에차우볼이 밀란의 주식 25%를 사들이면서 2020년까지 밀란의 대주주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번 여름이적시장부터 로쏘네리는 이전보다 많은 이적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 영입한 7명 중 3명이 무려 1000만 유로를 넘어섰다. 세비야에서 에이스 역할을 했던 카를로스 바카와 이탈리아 수비진의 차기 유망주로 각광받는 알렉시오 로마뇰리는 비싼 이적료임에도 밀란 내에서 제 몫 이상을 해주고 있으나, 그 외 합류한 선수들이 이적료값을 못하고 있다. 바카를 극대화 시키기위해선 섀도 스트라이커가 필요한데, 스타일이 겹치는 루이스 아드리아누나 마리오 발로텔리로는 상생효과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미드필더 영입은 매번 지적되어 왔는데, 이번에도 중위권팀 에이스였던 안드레아 베르톨라치에게 2천만 유로 정도의 이적료를 투자했으나 그가 곧장 팀의 에이스가 되어줄 지 물음표다. 주장인 리카르도 몬톨리보가 부상을 당하면 팀을 지휘할 플레이메이커가 딱히 없는 게 약점인 밀란인데, 실력이 월드클래스에 가깝거나 성장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선수들에게 이적료를 과감히 투자해야하는 데 이 대목이 매번 아쉽다.
(경기 후에 특정 선수의 문제를 끄집어냈던 미하일로비치의 고집스런 전술도 비판의 도마에 올라섰다.)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의 경우, 시도르프나 인자기와 달리 감독 경력이 어느덧 8년차에 접어들었고, AC밀란 이전에 삼프도리아 감독을 맡으면서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선수시절부터 보여주었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단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기에, 과거 시도르프나 인자기가 보여주지 못했던 선수단 장악에 있어서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혼다가 언급했듯이, 그는 경기가 끝나고 나면 패배의 요인을 되짚으면서 특정 선수들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언급한다. 하지만 매번 언론에 언급하게 되면 선수들의 잠재적인 불만이 쌓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것이 누적되면 결국 불만은 폭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하일로비치 또한 지나치게 4-3-1-2 전술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받고 있으니, 선수들에게 이것이 잘했고 못했다는 식을 지적하는 게 넌센스다.
현재 AC밀란의 전력으로 4-3-1-2 전술을 운용하기에는 턱없이 제한된다. 예전에 2선에는 카카가 있고, 3선에는 피를로가 있던 시절이라면 4-3-1-2 가 최적의 전술이었겠지만, 현재 밀란에는 카카도, 피를로도 없다. 창의적인 미드필더라곤 그나마 몬톨리보 한 명만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투박한 유형의 선수들이 전부다. 1,2선도 문제다. 수적 열세임에도 공을 지키고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트레콸리스타의 부재는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스코어러를 보좌할 섀도 스트라이커도 없다. 그렇다면 맞지 않은 옷을 입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하일로비치는 계속 고집하고 있다. 반면 나폴리의 경우에는, 신임 감독인 마우리시오 사리는 4-3-1-2를 고집하다가 맞지 않아 나폴리가 4-3-3에 최적화되어있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전술을 바꿨다.
혼다를 향한 로쏘네리 레전드들의 엇갈린 반응 - "너나 잘해라" vs "공감한다"
(혼다의 사이다 같은 발언을 두고 로쏘네리 레전드들은 하나같이 "너부터 잘해라" 고 질타하고 있다)
혼다의 발언이 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AC밀란을 거쳐갔던 레전드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상당히 엇갈리고 있다. 먼저 90년대 밀란의 빗장수비에 크게 기여했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를 비롯하여 과거 60년대의 스타였던 지오반니 로데티, 2000년대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는 그를 곱게 보이진 않는다. 일단 그가 AC밀란에서 그것도 에이스의 등번호인 10번을 받았음에도 이에 걸맞는 경기력과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그의 팀 내 입지가 근본적인 문제다. 코스타쿠르타의 경우, 그가 등번호 10번을 받을 당시 무렵부터 그가 과연 등번호에 어울리는 선수가 맞느냐고 지적해왔고 그가 밀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었다. 로데티는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력선수의 발언으론 적절하지 않다. 그가 90분 내내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밀란의 10번으로서 잘하는 게 우선이며, 아니꼬우면 다른 팀으로 가던지" 라는 비꼬는 말까지 곁들였다. 안첼로티는 팀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지 말라" 와 함께 "과거 밀란의 영광을 이끌었던 갈리아니를 비판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 면서 혼다의 발언에 심기불편해했다.
그렇다고 모든 밀란의 레전드들이 혼다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8,90년대 밀란에서 활약했던 마르코 시모네는 "밀란의 문제는 가장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이 문제" 라고 인터뷰를 남기면서 완곡적으로 혼다의 발언에 동조했다. 이어서 그는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가 과거엔 아이디어도 있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그 아이디어가 사라진 것 같다. 아이디어 없이 돈만 쓴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남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그 외 90년대 세리에A를 풍미했던 플레이메이커이자 로쏘네리 출신인 즈보니미르 보반 또한 현재 밀란이 이렇게 된 것에는 구단주가 문제라고 친정팀을 향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물론 보반의 경우에는 부진하고 있는 선수들도 문제라고 동시에 지적했다).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혼다 케이스케가 쏘아올린 공이 금기시 되어왔던 벽을 허물어버리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 아니 전세계에 퍼져있는 AC밀란 팬들에게 상당히 큰 이슈화거리를 제공해버렸고, 과거 AC밀란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부 레전드들에 이어 현역 선수까지 지적했다는 것에서 화력을 키워버렸다. 모든 이들은 구단의 액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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