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이제는 추억거리가 된 밀라노의 황금기
(유럽을 대표하던 이 밀라노 형제들이 언제부턴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버렸다)
최근 밀라노 하늘은 맑음보다는 구름이 잔뜩 끼거나, 비가 연이어 내리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토리노가 매일 맑은 것에 비하면 우울할 정도다. 물론 이탈리아 밀라노의 날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대표하던 밀라노 형제(AC밀란, 인테르)의 사정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4,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무대에서 AC밀란과 인테르는 주연급 클럽이었고, 언제나 존재감을 뚜렷하게 표출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강력한 경쟁자인 유벤투스가 부활하여 세리에A의 패권을 잡자, 묘하게 반비례 현상을 띄면서 밀라노 클럽들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벤투스야 리그 역사 통틀어서 가장 오랫동안 경쟁구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하는 AS로마와 나폴리에게까지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이 밀라노 형제의 현주소다. 심지어 이번시즌에는 그들이 자주 출석도장을 찍었던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못했으며, 대신 유로파 리그에 인테르만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의 전성기 시절 향수에 젖어있는 팬들에게는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다.
지난 주에는 세계 7대 더비라고 각광받던 밀라노 더비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예전같지 않다. 이탈리아 현지와 달리 국내에서는 세리에A 중계가 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도 없잖아 있고, 순위도 우승권에서 다소 멀어진 점도 상당부분 작용했다(12월 29일 기준으로 AC밀란은 7위, 인테르는 11위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점점 아웃사이더로 변해가고 있다. 11월 23일 올시즌 처음으로 펼쳐졌던 밀라노 더비에서는 1대1 무승부로 사이좋게 승점 1점씩 획득하는 것으로 조용히 끝났다. 참고로 그들의 오랜 라이벌인 유벤투스는 그들과 승점 무려 10점 이상이 난 채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어쩌다가 밀라노 클럽들이 아웃사이더로 밀려나버린 것일까?
AC밀란과 인테르, 왜 그들은 좌초해버렸나?
왜 이들은 초라해져 버렸던 것인가? 양 클럽의 최근 몇시즌 동안 모습을 보면 예전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AC밀란과 인테르는 클럽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1) AC밀란 : 애정이 식은 구단주와 분노한 팬의 끊임없는 대립 구도
AC밀란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막시밀리아노 알레그리를 경질시켜서 충격요법을 노렸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현재 알레그리가 유벤투스 새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비안코네리가 아무 문제 없이 세리에A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AC밀란은 보아라. 알레그리 이후, 로쏘네리의 레전드라 불리우던 두 명의 레전드의 손을 거쳐가고 있지만, 상위권 재도약은 커녕 중위권에서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단순히 알레그리 한 사람 탓으로 밀란이 추락했던 것이 아니다. 로쏘네리 부진의 근원은 프론트진에게 있다.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있는 베를루스코니 때문에 AC밀란은 상당히 뿔났다)
AC밀란의 공수 핵심축이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구 실바가 나란히 파리로 떠난 이후부터 AC밀란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들을 판 이적료로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알짜배기 선수들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음에도 AC밀란은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아니 사용하지 않은게 맞다. 물론 AC밀란이 자신들의 둥지인 산시로를 떠나 신축중인 새 경기장 자금 문제를 비롯하여 구단의 전반적인 재정이 황금기시절에 비해 좋지 않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이웃 라이벌인 유벤투스나 인테르, 멀리는 AS로마와 나폴리도 핸디캡을 안고서도 선수 영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기에 '돈이 없다'는 사유는 그리 적합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자금부족을 이유로 AC 밀란은 선수 영입에 있어서 웬만하면 큰 액수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계약 대상자이거나 계약 만료 예정인 선수들을 타겟으로 잡는 다소 현실적인 영입으로 스쿼드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영입 정책을 택한 이후 현재까지 성적은 썩 나아지진 않았다. 그들이 자유계약으로 데려오는 선수들 중 주로 네임벨류가 높은 선수들을 데려오곤 하는데 마이클 에시앙과 페르난도 토레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두 선수의 경우, EPL에서 최정상의 위치에 있던 월드클래스급 선수들이었지만 그것은 과거일 뿐, 첼시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낼 때에는 좋지 못했다. 그렇게 기량이 하락된 상태에서 런던을 떠나 밀라노로 연착륙(에시앙이 토레스보다 반시즌 먼저 합류했다)을 했고, 주전자리는 커녕 없느니만 못한 신세가 되어 팀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오히려 토레스와 이번 여름에 합류한 제레미 메네즈가 그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자금 마련을 해야된다는 이유로 기존 AC밀란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들을 팔아치우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번 여름에 마리오 발로텔리와 차세대 주전으로 손꼽히던 브라이언 크리스탄테를 이적시켰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스테판 엘샤라위까지 팔 것이라는 이적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런 AC밀란의 갈 지자 행보를 보고 있자니, 로쏘네리 팬들은 그야말로 뿔이 날 수 밖에 없다. 팬들은 분노하고 있음에도 구단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예전에 보여줬던 그 애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AC밀란에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그의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음에도 그는 여전히 '트러블메이커' 로 신문 1면 장식을 하고 있으며, 구단주의 스캔들과 맞물려 AC밀란도 영 힘을 못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올 3월즈음에 AC밀란을 인수하겠다고 접촉한 익명의 재벌들도 있었으나,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을 넘기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팬들의 원성을 또 한 번 샀다.
2) 인테르 : 트레블 달성 이후, 바뀐 감독 수만 무려 "6명"
AC밀란과 동거하고 있는 인테르는 자금 사용에 있어서 조금 형편은 나은 편이다. 하지만 그 자금을 활용하는 면에 있어서는 그들의 이웃 못지않게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과거 무리뉴 시절 트레블 달성 이후, 언제부턴가 인테르는 자신들이 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린 나침반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느덧 몇년째 겪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2010년 5월 유럽 정상에 오른 이후, 오늘날까지 5년동안 감독을 "6번" 씩이나 바꿨기 때문이다.
(5년간 무려 6번이나 감독을 바꾼 인테르, 그렇기에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인테르 감독들 중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이들이 드물다고 할 만큼 감독을 많이 갈아치웠고, 1908년 창단 이후 왈테르 마짜리까지 포함하여 총 60명의 감독이 인테르를 거쳐갔다(그 중 가장 오랫동안 감독직을 맡은 이는 엘레니오 에레라로 9년간 네라주리의 수장이었다). 특히나 조세 무리뉴가 트레블 달성이라는 영광을 안긴 후, 2010/11 시즌부터 그 타이틀은 네라주리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마시모 모라티 전 구단주는 새 감독들을 직접 데려올 때마다 은근스레 과거의 영광을 빌미로 압박을 넣었고, 새 감독들은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차례차례 낙오했다. 라파엘 베니테즈(2010)를 시작으로 레오나르두(2010~11), 장 피에르 가스페리니(2011), 클라우디오 라니에리(2011~12),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2012~2013), 왈테르 마짜리(2013~2014)까지 2시즌 이상을 넘기질 못했다. 이웃인 AC밀란은 5년 사이에 3명의 감독(알레그리-셰도르프-인자기)을 거쳐간 것의 2배나 되는 셈이다. 참고로 모라티가 처음 인테르를 인수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그가 갈아치운 감독만 12번이다.
잦은 감독 교체가 이뤄지다보니 당연히 스쿼드의 조직력이 좋아질 리가 만무하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해당 감독에 맞는 선수들이 영입되고, 그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선수는 임대나 이적으로 다른 팀으로 옮겨야 했는데 5년간 인테르를 거친 선수들만 40명 이상이다. 쉽게 말해, 인테르 스쿼드 전체가 바뀌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물론 감독들이 네라주리에 자신들의 철학을 녹아들게 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감독을 기다려주는 모라티의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마시모 모라티가 아버지인 안젤로 모라티의 뒤를 이어 2대째 인테르를 맡아왔고, 구단주로 역임하는 동안에 인테르에게 아낌없이 지원해주었으나, 성적이 부진한다거나 마음에 안들면 가차없이 감독을 내친다. 그러다 2013년 11월, 인도네시아 재벌인 에릭 토히르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테르 지분 70%과 동시에 구단주직도 넘겨주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AC밀란보다 나은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토히르의 경영과 인테르 감독인 마짜리의 지도능력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40대의 인도네시아 기업인이 인테르가 지고 있는 빚을 청산하는 데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디어 재벌 출신인 그가 인테르처럼 거대한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운영할 지 아직까지 미지수다(DC 유나이티드와 인도네시아 농구팀을 소유하고 있다지만 인테르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 그리고 마짜리의 답답한 전술철학도 인테르가 고꾸라지고 있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랫3를 기반으로 한 3-4-1-2 혹은 3-5-2 전술을 선호하다보니, 기존 팀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혀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신의 철학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팀의 색깔을 우선시하여 살리는 것도 중요한데 마짜리는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이 팀을 망쳐가고 있다. 그렇게 인테르는 11위로 추락했다.
무너진 밀라노 형제, 솟아날 구멍은 있는가?
2014/15 시즌 전반기가 끝난 무렵인 현재, 밀라노 형제는 선두권인 유벤투스, 로마와는 상당한 승점 차로 뒤쳐져 있는 상태(AC밀란은 승점 25점으로 7위, 인테르는 승점 21점으로 11위 기록중이다). 무너진 두 명문 클럽들은 짧은 휴식기간을 통해 예전을 명성을 찾고자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인테르를 이끌고 리그 3연패를 달성한 로베르토 만치니가 다시 주세페 메아짜로 돌아왔다)
마짜리의 답답함에 숨막히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 토히르 구단주는 성적부진을 이유로 지난 11월에 경질하고, 과거 인테르의 수장으로 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로베르토 만치니를 주세페 메아짜로 데려왔다. 2008년 여름 이후, 6년만에 그는 밀라노로 복귀했다. 물론 만치니가 복귀하자마자 인테르가 갑자기 상승곡선을 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 마짜리 시절처럼 인테르에 맞지 않는 전술에 억지로 선수들을 끼워맞춰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만치니는 천천히 인테르를 예전처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인테르는 공격력과 측면을 강화하기 위해 아스날의 공격수 루카스 포돌스키를 노리고 있으며, 이번시즌부터 시작된 리빌딩을 통해 새 팀으로 탈바꿈하려 한다. 과거의 영광을 함께했던 인테르와 만치니의 케미스트리가 2005-08년 시절의 인테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 한 번 기대해볼만 하다.
('이적시장의 사기꾼' 이라 불리는 AC밀란의 부구단주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다시 한 번 그의 협상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AC밀란 또한 반격의 움직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베를루스코니로부터 10원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로쏘네리에는 '갈기꾼' 이라 불리는 이적시장의 거물인 부구단주 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첼시로부터 데려온 페르난도 토레스가 밀라노에서 영 녹아들지 못하자, 때마침 마드리드에서 방황하고 있는 알레시오 체르치와 18개월 맞임대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면서 AC밀란-아틀레티코 간 Win-Win 트레이드를 만들며 다시 한 번 그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팀에서 겉도는 파블로 아르메로와 제노아에서 활약중인 밀란 유스출신인 루카 안토넬리와의 트레이드 준비를 하고 있으며, 보나벤투라나 디에고 로페즈 같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영입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번 겨울이적시장에서 갈리아니의 협상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AC밀란이 후반기에 추격할 기회는 얼마든지 생긴다(3위 라치오와 불과 승점 2점차다).
2015년이 다가오기까지 이제 하루 정도 남았다. 새해로 넘어가면 과연 무너졌던 밀라노 형제가 거병하여 유벤투스와 패권을 나눴던 예전의 세리에A 구도로 갈 수 있을 지는 이들의 대처법에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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