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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응원문화의 새로운 한 획을 긋고 있는 그녀들, '울산 큰애기'

J_Hyun_World 2015. 6. 2. 22:13

 

 

 

 

 

논쟁이 되었던 치어리더 문화 재도입,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비

 

  때는 2010년 시즌이 시작할 때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간 N석과 S석으로 항변되던 서포터즈 대결구도식의 응원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K리그에, 일반석을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치어리더를 도입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치어리더 문화는 K리그의 서포터즈 라는 단체가 탄생하면서 자연스레 세력을 잃어갔고, 1990년대 후반에 치어리더는 피치에서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던 존재들이었으나, 10여년이 지난 2010년, 서포터즈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는 K리그 바닥에 재등장한 셈이다. 이미 서포터즈 문화에 물들어버린 각 팀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다소 경계하는 야구의 응원문화를 왜 도입하느냐면서 자신들과 다른 응원방식에 융화되지 않기 위해 선을 그어버렸다. 게다가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한 유럽식 서포터즈를 동경하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던 국내 분위기였기에 성공보단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분위기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수원과 서울, 포항 등 일부 구단들은 치어리더 팀을 만들어 관중석에 투입시키는 과감한 한 수를 던졌다. E석에 치어리더를 위한 단상까지 만들고 그들을 위한 존(Zone)까지 만들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이 치어리더를 도입한 이유는 바로 극심한 흥행 부진이 원인이었다. 당시 K리그 관중은 전년도에 비해 13% 감소하는 굴욕을 겪었고, 관중 동원 1,2위를 자부하던 수원과 서울마저도 각각 22%, 19.6% 감소하면서 체면을 구긴 상태였다. E석을 활성화하여 일반관중 유치를 위해 갖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클럽 프론트들이 골머리를 썩히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서포터석이라 불리는 N석과 일반관중들이 밀집한 E/W석과의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다. 서포터즈 문화의 정착은 분명 팀에 대한 팬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해당 팀을 위해 뛰는 선수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좋은 활력제이지만, 클럽 입장에서는 서포터 뿐만 아니라 일반 관중 또한 놓쳐서 안될 부분이었다. 최원창 수원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야구팀의 롯데 자이언츠의 융합을 벤치마킹하여 모든 팬이 융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밝혔고, 실제로 이것이 대부분 클럽들의 입장이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수없이 경기장을 다니면서 목격한 치어리더들과 축구 경기는 서로 이질적으로 '따로따로 노는 분위기' 였다. 일단 서포터즈들이 사용하는 응원가나 치어리더들이 사용하는 응원패턴은 각개전투하는 것마냥 개인 플레이였다. 축구로 치자면 패스플레이가 전혀 안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보니, 서포터즈와 일반 관중들의 거리가 좁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치어리더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자, 클럽들은 오히려 유명인사 등을 시축하게 하거나 하프 타임에 축하 공연을 가지는 등으로 마케팅을 하여 관중몰이를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반응일 뿐, 그 효과가 지속적인 흥행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렇게 치어리더 도입은 무관심 속에 묻혀가며, '실패' 로 확정되어가는가 싶었다.

 

 

 

K리그 응원문화의 새로운 한 획을 그어버린 그녀들, '울산 큰애기'

 

  2015년 연초, 지난시즌에 부진하여 부활의 해를 선포한 울산이 윤정환 체제로 바꾸면서 새롭게 도입한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치어리더제 도입이었다. 그간 다른 K리그 클럽들이 연거푸 치어리더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패한 사례들만 보여줬던 터라, 울산 팬들은  무의미한 곳에 자금을 투자한다면서 일종의 낭비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울산은 이전 클럽들이 치어리더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선례를 제대로 학습한 것인지, 도입하는 부분에서 뚜렷하게 차별점을 두었다. 바로 치어리더들을 또하나의 독보적인 컨텐츠로 승화시킨 것이다. 여기서부터 울산은 다른 선상에서 출발하였다.

 

('치어리더계의 슈퍼스타' 인 김연정을 필두로 조민지, 이은지 등 4~6인조로 '울산 큰애기' 를 편성하였다)

 

  2015년 2월 중순, 울산 팬들 사이에서는 한 장의 프로필 사진이 SNS를 통해서 공유되었다. 바로 울산 치어리더로 '치어리더계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김연정이 울산 유니폼을 입고 촬영한 사진이었다. 김연정, 프로야구팀의 NC 다이노스, KBL의 LG 세이커스의 간판이자, 박기량과 함께 치어리더계의 양대산맥으로 손꼽힐 만큼,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슈메이커 그 자체인 여성이다. 호날두-메시 부럽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던 그녀가, 울산 치어리더의 메인 이벤터로 자리잡았으니, 울산의 치어리더는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울산은 김연정을 필두로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민지와 이은지 등까지 영입하면서 4~6인조로 활동하는 '울산 큰애기'를 창단하였다. '울산 큰 애기' 라는 이름은 마치 그녀들에 딱 어울리는 이름인데, 1966년 가수 김상희씨가 발표한 노래에서 따온 이름으로 '사랑스럽고 인물이 뛰어난 울산의 여인상(이렇게 표현하면 울산 사람들은 가장 먼저 울산의 자랑인 김태희를 떠올린다)'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울산 큰애기는 울산의 홈개막전을 앞두고 실제로 길거리로 나가서 손수 전단지를 돌리면서 경기를 홍보하면서 단순히 경기장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주었다. 그리고 서울과의 홈개막전이 열렸던 3월 8일 일요일, 울산이 문수 E석에 새로이 창설한 익사이팅존에 그녀들이 등장하자, 울산의 서포터인 처용전사들의 시선까지 빼앗아갔다. 피치 위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치어리더계의 연예인들이, 이웃 관중석에 등장했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날 하프타임 때 울산 큰애기의 축하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처용전사는 물론이겠거니와, 멀리 서울에서 원정온 서울 팬들마저 하프라인을 향해 넋놓고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울산이 개막전 승리를 거두었는데, 개막전 승리 못지 않게 울산 큰애기의 언론 노출도 제법 상당했다. 2010년 치어리더 재도입 이후, 축구장의 치어리더들이 이정도로 주목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타팀 축구팬들까지도 울산 큰애기가 소문이 났다.

 

  울산팬들 입 사이로 자주 오르내리는 울산 큰애기가 워낙 궁금해서 나 또한 지난 5월 황금연휴 때를 이용하여 문수경기장에서 열리는 동해안더비를 보러 직접 울산까지 내려갔었다. 그 당시 울산은 동해안더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부가적으로 울산 큰애기가 경기의 중요성과 비례하여 최정예 멤버 6인조로 출격한다는 홍보까지 하면서, 한동안 SNS와 온라인에서 축구팬들의 반응을 유도했고, 나더러 직접 사진을 찍어와라, 동영상 찍어와라는 식의 부탁을 했던 익명의 지인까지 있었다. 그래서 직접 울산 큰애기를 익사이팅 존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본 소감은, "아! 얘네 너무 좋다!" 로 어느 순간에 바뀌어버렸다. 치어리더 문화에 부정적이었던 나도 느끼지 못한 사이 어느 순간에 긍정천사로 바뀌어 있었다. 경기 끝나고 치어리더 조민지가 누군지에 대해 검색하는 나 자신이었고, 옆에서 나와 같이 경기 보러왔다가 울산 큰애기 사진만 수백장 찍은 지인도 막상막하였다.

 

 

 

사상 최초(?) K리그 원정 치어리더로 발돋움한 울산 큰애기

 

  비록 동해안 더비는 2대2 무승부로 승부를 가르지 못했고, 울산은 8경기 연속 승리를 달성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 내에서 반응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물론 구단 게시판 내에서 성적 부진을 놓고 끝없는 논쟁을 펼치는 양측 구도(좀 더 지켜봐야한다 vs 이대론 안된다)의 대립은 여전했지만서도 말이다. 동해안 더비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울산은 서울 상암 원정경기에 울산 큰애기를 대동한다는 내용을 SNS로 홍보하였고, 이것은 다소 구단의 신선한 시도였다. 내가 다른 클럽들이 치어리더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의 지인들 사이에서 치어리더들이 원정길에 올랐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러한 홍보 자체가 팬들에게는 또다른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되었다. 요즘 괜히 K리그 클래식 팀들 중 울산이 독보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친 김에 지난 주말, 나는 축구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내 동생을 억지로 끌고 상암 경기장을 방문했다. 경기 시작은 오후 4시였지만, 나는 한 시간 일찍 원정석으로 입장하였고, 내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산 큰애기 2명(김주하, 송재경)이 도착했다. 처용전사들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고, 일반 울산을 응원하는 관중들도 띄엄띄엄 들어오니 그녀들 또한 다소 어색하고 뻘쭘해보였다. 하지만 서포터즈들이 도착하여 S석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그녀들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전에 서포터즈와 함께 원정석을 찾아준 일반 관중들에게 응원용 부채와 유니폼을 나눠주고, 폴라로이드로 같이 즉석 사진을 찍으면서 팬들과 상당히 가깝게 다가갔다. 난생 처음, 그것도 원정석에서 서포터즈와 치어리더가 한 공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융화되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놀라웠고, 한 편으로는 좋아보였다. 하프타임 때 서울 측에서 자신들의 팬들을 대상으로 이벤트하는 동안, 원정석에서는 치어리더들이 소소하게 호응 좋은 사람들에게 사인볼과 유니폼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면서 일반 팬과 서포터즈, 치어리더들이 한 데 어울리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좋은 반응을 유도하고 있었으니, 원정석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나 방송국에서도 신기한듯 계속 자신들의 프레임에 담아갔다.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나, 울산은 9경기 연속 무승을 거두면서 아직까지 살아나기엔 다소 힘이 부치는 모습을 보였고, 윤정환 감독에게도 상당히 고민거리가 되는 경기로 남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과 관계없이 S석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처용전사들은 경기 끝나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가, 함께 했던 여리한 울산 큰애기 2명과도 단체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았을 때, 누가 치어리더이고 서포터즈인지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서포터즈나 치어리더나 양 측 다 한 켠의 좋은 추억거리로 남았고, 이것을 계기로 치어리더가 결코 K리그 응원문화에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반응이 바로 울산보다 먼저 치어리더를 도입하였던 클럽들이 바라던 게 아니었을까?

 

  이미 K리그 응원문화는 어여쁜 여성들로 이루어진 '울산 큰애기' 이전과 이후로 한 차례 변화하고 있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미 어느 한 기자는 원정 온 울산 큰애기를 주제로 한 기사까지 냈다.

 

 

 

참고 : [카드뉴스] '1인 5역' 축구장의 치어리더들 by 김형준 기자(한국일보)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lst&mod=read&office_id=469&article_id=0000066899&redirect=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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