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불모지'로 불리우던 미국,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축구황제'
세계에서 가장 스포츠에 열광하고 스포츠라는 컨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를 꼽자면, 미국을 따라올 국가가 없다. 스포츠강국이자, 엔터테인먼트를 상징하는 나라로 불리울 정도로 미국 인구 대부분이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스포츠인 야구를 비롯하여,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프로레슬링 등 수많은 종목들이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스포츠로 불리는 축구가 오히려 미국 내에서는 유독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다는 점이다. 신기한 점은, 미국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무대에는 꾸준히 출전하고 있으며(7회 연속 출전), 그 중 16강 이상 진출은 4번이나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 축구의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쉽게 정의하자면 바로 축구라는 종목이 미국식 스포츠와는 동떨어져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스포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점이 있는데 바로 자신들의 취향에 맞춰 종목의 규칙 등을 변형시켰다(크리켓에서 야구로, 럭비에서 미식축구로).
또 그들은 야구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들이 자신들이 투자한 만큼 곧바로 결과물로 반영되기 때문에, 철저히 스포츠를 상업화시키면서 자본과 연계된 그 이상, 혹은 그 이하로 보지 않았다. 반면 축구의 경우는 미국의 스포츠들과 달리 출발선상이 매우 달랐는데, 단순히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된 종목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선교 활동이나 외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의 친목도모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다소 껄끄러워하는 영국에서 시작된 스포츠이다 보니, 축구가 미국에 정착되는 데 다소 어려움이 많았고, 1950년대에 다다르면서 비로소 축구협회가 생겨났고, 미식축구와 혼동하지 않기 위해 축구를 "Football" 이 아닌 "Soccer"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축구는 유독 국가 아닌 FIFA 라는 국제기구에 의해 전체적인 일정이 결정되고 조율되는데,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미국 입장에선 자신들 위에 올라선 스포츠 국제기구의 존재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셈이다.
('축구불모지'로 불렸던 미국의 전환점은, '축구황제' 펠레가 미국땅에 발을 딛을 때부터였다.)
거의 '축구불모지'로 자리잡는듯했던 미국 축구 역사에 전환점이 있었으니, 바로 '축구황제' 펠레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첫 발을 내딛듯이 미국땅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미국 내에서도 나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월드컵 직후에 미국 프로축구팀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미국 내에서도 프로축구를 활성화시키려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 떄, 뉴욕 코스모스가 1975년 펠레와 사인하면서 전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펠레를 시작으로, '흑표범' 에우제비오(포르투갈)와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와 '폭격기' 게르트 뮐러(이상 독일), 맨유의 판타지스타인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수문장 고든 뱅크스(잉글랜드)까지 연착륙하였다. 그래서 1976/77년의 미국 프로리그는 르네상스로 불렸고, 1977년 코스모스 vs 스트라이커의 플레이오프 경기는 77691명이라는 경이로운 관중수치를 기록했다. 1980년까지 미국축구의 평균 관중 수는 4~5만명 사이를 왔다갈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당대 슈퍼스타들을 영입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막대한 자금력을 끌어다쓰는 바람에 1980년대 중반에 되어서 미국 내 축구클럽 절반 이상이 재정악화로 인하여 문을 닫았고, 다시 미국축구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펠레를 중심으로 했던 축구 붐은 미국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았고, '보는 스포츠'에 익숙해져있던 미국인들은 축구를 통해 '직접 하는 스포츠'에 눈을 떴고, 미국은 유럽의 유스시스템 못지 않게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는 데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4년에서 개최한 월드컵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리그를 다시 살려야한다는 반응이 쏟아져나왔고, 1996년 MLS(메이저리그 사커)라는 이름으로 리그가 재탄생하였다. 현재 미국 남자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여자대표팀이 세계최강으로 군림하는 것도 바로 펠레의 등장, 그리고 월드컵 개최가 가져다준 일종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슈퍼스타들, 왜 미국을 택한 것인가?
(2007년 여름,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미국진출을 하면서 또 한 번의 미국축구의 부흥기가 찾아왔다)
2007년 여름, 미국 축구계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축구계의 아이콘" 으로 군림한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미국 MLS의 LA 갤럭시로의 진출이었다. 5년간 1억 2800만 파운드(한국 돈으로는 약 2조 22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고, 그의 이적발표가 확정되었던 2007년 1월 당시, 많은 유럽 언론들은 그의 미국진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고, 이적의 주 목적이 바로 돈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당사자인 베컴은 이를 부정하였다). 확실한 것은 베컴이 미국으로 건너가 6시즌 동안 LA갤럭시 선수로 활약함과 동시에 비시즌에는 유럽무대에서 단기간 임대로 활약(AC밀란으로 두 번 임대생활을 하였다)하면서 적잖은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베컴의 행보를 조용히 지켜보던 다른 스타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미국무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베컴이 물꼬를 터준 덕분에, 현재 MLS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하고 있다. 베컴이 건너간 후,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로비 킨이 베컴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고, "하이버리의 왕" 티에리 앙리(뉴욕 레드불스)도 미국에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스페인의 No.7" 이자 마드리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라울 곤잘레스는 2부리그 팀인 뉴욕 코스모스로 합류하였고, 스페인을 상징하는 또다른 스트라이커인 다비드 비야(뉴욕 시티 FC)를 비롯하여, 잉글랜드 중원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우는 프랭크 램파드(뉴욕 시티 FC)와 스티븐 제라드(LA 갤럭시), 브라질의 판타지스타 히카르도 카카(올랜도 FC),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레지스타이자, 유벤투스를 챔스 준결승까지 이끌었던 안드레아 피를로(뉴욕 시티 FC)도 미국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 외 다른 MLS 클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로는 팀 케이힐(뉴욕 레드불스), 세바스티앙 지오빈코(토론토), 미국대표팀 출신 선수인 랜던 도노반(LA 갤럭시)과 조지 알티도어(토론토)까지 즐비한 상태다. 마치 1975년 당시 미국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포진이다.
(제라드, 램파드, 카카, 라울 등의 슈퍼스타들이 왜 미국행을 선호했던 것일까?)
슈퍼스타들이 축구의 중심지라고 여기는 유럽에서 뛸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변두리에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유럽에서 가까운 중동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북중미까지 진출한다. 그들을 영입하는 클럽들은 대부분 어마어마한 연봉으로 그들을 유혹하는데, 중동이나 아시아에 비해 최근 미국행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슈퍼스타들의 국적이 대부분 유럽이나 중남미 출신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나 중동이나 똑같이 거액의 급여를 준다고 하나, 환경면에서는 생전 다른 중동과 아시아와 달리, 유럽이나 중남미 쪽과 비슷한 환경을 지니고 있는 미국이 그들이 적응하기에 더 편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국제대회에서 보여주는 미국 축구의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는 점도 그들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였고, 이런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일부 선수들은 유럽의 빅리그에서 계속 뛸 수 없다면 차라리 미국쪽을 택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변함없이 기량을 유지하면서 잘 생활했던 것도 분명 그들은 참고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슈퍼스타들의 끊임없는 유입에 따라 MLS 리그 운영 또한 그들에게 맞춤형으로 바꾸고 있다. 이미 베컴이 LA 갤럭시로 입단하면서 새로이 제정된 지정선수 규정(일명 '베컴 룰'이라고 한다)제도로 하여금, 기존 샐러리캡 제도의 한계로 영입이 불가능할 것 같은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는 데 문제가 없어졌다. 그리고 현재 20개 클럽에서 추가적으로 신생 클럽이 4개 더 추가될 예정으로 MLS 파이가 점점 더 커질 예정이다(창단 계획인 도시 또한 존재한다). 아직까진 상대적으로 미국 내 4대 스포츠 반열에는 들고 있지 못하지만, 미국 내 2,30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스포츠 3위 이내에 들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미국 축구의 성장세는 무섭게 치고 오를 것이다.
과거 '축구 불모지' 라는 불명예스런 별칭도 이제는 다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1975년 이후,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으로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유입되고 있는 MLS, 그들이 왜 미국으로 향하는 지 이제는 어느정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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