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건너축구/서반국

'라리가 3강 구도' 판을 뒤흔드려는 자들의 이야기

J_Hyun_World 2016. 12. 9. 08:00



  예로부터 스페인 축구판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거대한 두 세력의 왕위 다툼으로 기억되었다. 스페인 20개 클럽이 시즌 레이스에 시작하여 바르셀로나 혹은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하는 리그가 라리가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말은 아니었다. 2000년대에도 크게 변함없었다. 2003/04 시즌 발렌시아의 우승을 끝으로 무려 10여년 간 두 클럽이 리그를 독식해왔다(바르셀로나 6회, 레알 마드리드 3회). 오죽하면 신계와 인간계라는 용어와 함께 사실상의 경계선에 생기지 않았던가? 그나마 코파 델 레이 우승클럽이 다양했을 정도다. 하지만 2013/14 시즌에 신계에 서 있는 두 클럽을 넘어 극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등장과 함께 신계와 인간계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 이후에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두 클럽과의 경기에서 어느덧 대등한 경기력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유리천장 같았던 라리가 양강체제를 깨고 3강구도를 구축하면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아틀레티코가 꾸준히 덩치를 키워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애쓴 점도 있지만, 바르샤와 레알 두 팀이 예전같은 절대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른 라리가 클럽들에게 번번히 발목이 잡히는 횟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라리가 클럽들도 그들이 더이상 절대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점차 벽이 허물어져가는 시점에 맞이한 2016/17 시즌, 어느덧 시즌의 1/3이 지난 현재, 2위인 바르샤와 6점으로 격차를 벌려놓은 선두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한 상위권 순위 경쟁이 재밌어졌다. 이 3강 구도마저 깨뜨리기 위해 판을 뒤흔드려는 클럽들이 발톱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라리가 3강 구도' 판을 뒤흔드려는 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유로파리그 절대강자' 세비야, 이제는 리그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다


(유로파리그 절대강자로 군림해왔던 세비야, 이제는 라리가까지 위협하려고 한다)


  '유로파리그 최다 우승(5회)' 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유로파리그 최강자로 군림한 세비야, 사람들에게 인식된 또다른 이미지는 '거상'이었다. 이는 알짜배기 선수들을 싼 값에 데려와서 레알이나 바르샤같은 빅클럽들 상대로 거액에 팔아넘기는 장사수완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그렇게 선수를 팔아도 세비야가 프리메라리가에서 거두었던 성적은 제법 좋았다는 점이다. 비록 2011/12~2012/13시즌에는 중위권으로 추락하기도 했지만, 발렌시아를 재건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우나이 에메리가 세비야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로는 최소 유럽대항전 진출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2015/16시즌 리그 성적이 다소 아쉬웠다. 세비야가 홈에서 14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홈에서 극강이었던 반면에, 원정에서는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한 게 치명타였다.


  우나이 에메리가 파리로 간 후, 새로이 세비야의 감독으로 부임한 인물은 칠레대표팀을 남미 정상에 올려놓은 호르헤 삼파올리. 삼파올리 체제에 들어서자마자, 세비야는 프리시즌에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이적시장에서 움직였다. 잉여선수들을 대부분 처분하는 동시에 코레아, 간수, 기요타케, 비에토, 나스리 등 적절한 가격에 알짜배기 선수들을 수급하는 데 성공했다. 삼파올리의 화끈한 공격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세비야는 리그 3위(12월 8일 현지 기준)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빅3로 불리는 팀들 중 아틀리테코 마드리드를 홈에서 제압했고, 바르샤와는 접전 끝에 석패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물론 세비야의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세비야의 경우, 수비를 보호해주면서 빌드업을 동시에 수행할 미드필더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삼파올리의 대처능력을 시험해 볼 문제가 주어졌다. 



'짠물수비 + 조직력 축구' 로 승부수를 띄우는 '노란잠수함' 비야레알


(오랜만에 상위권이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 1부리그로 복귀한 이래 줄곧 상위권이다)


  과거 클래식 플레이메이커 후안 리켈메의 원맨팀이자 후안 마누엘 페예그리니를 명장 반열에 올려놓은 데 밑바탕이 되었던 팀으로 알려졌던 비야레알, 한때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센세이션도 만들었으나 페예그리니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4년 사이에 감독은 6명이나 교체되었고, 그 와중에 지난 2011/12 시즌에 17위인 그라나다에게 승점 1점이 뒤쳐진 채 리그 18위를 기록하고 강등까지 겪는 지옥을 맛보았고, 심지어 세군다리그로 강등된 뒤에는 감독이 무려 3명씩이나 바뀌었다. 다행히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감독을 데려오면서 비야레알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마르셀리노는 부임한 지 반시즌 만에 비야레알의 선수들의 강점을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빠르게 안정감을 찾아갔다. 그 덕분에 비야레알은 강등된 지 한 시즌 만에 라리가로 복귀했다. 비야레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3/14시즌에 1부리그로 돌아온 그들은 리그 6위로 끝마치는 데 성공했고, 지난 시즌인 2015/16 시즌에는 무려 리그 4위를 기록하면서 예전 2000년대 초반의 모습으로 회복했고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까지 따냈다(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AS모나코에게 패배하면서 유로파리그로 진출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비야레알은 현재 두 가지 위기에 봉착해있는데, 비야레알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은 마르셀리노의 사임과 주포인 로베르토 솔다도의 장기부상이다. 이 여파 때문인지 최근에는 5경기 연속 무승(12월 8일 현지 기준)으로 승점 1점(1무 4패)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 비야레알의 탄탄한 수비조직력을 앞세워 최소 실점 1위로 잘 버티고 있으나, 5경기 1득점이라는 초라한 빈공을 메꿔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득점의 물꼬가 터져야, 비야레알이 레이스 마지막까지 선두권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자이언트 킬링'이 아니다, 선두권 진입의 기회를 엿보는 레알 소시에다드


('자이언트 킬링'이 아닌 이제 상위권을 정조준하는 레알 소시에다드)


  과거 이천수가 몸담았던 팀으로 잘 알려져있는 레알 소시에다드, 그들의 다른 이름은 '자이언트 킬링' 혹은 '의적팀'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시에다드가 비록 리그 순위가 롤러코스터처럼 들쑥날쑥했지만, 항상 레알이나 바르샤 등 강팀들의 발목을 번번히 잡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기도 하다. 특히나, 2010년 이후로 레알 소시에다드 홈구장인 아노에타에서 바르셀로나에게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을 만큼, 레알 소시에다드는 바르샤 킬러였다(2015/16시즌까지 아노에타에서 5승 1무). 이에 반해 소시에다드가 자신들과 동등하거나 약팀을 상대로는 제대로 승점을 뽑아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유는 소시에다드가 야심차게 영입해왔던 스트라이커들의 득점력 문제와 카를로스 벨라 같은 팀의 핵심들이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면이 많았다. 게다가 감독들의 전술이 뚜렷하지 못해 방황했던 점도 있었다. 


  이번 시즌 레알 소시에다드는 여태껏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포지션 구분없이 골고루 제 기량을 펼치며 다시 날개짓을 할 준비를 하고 있고, 미켈 오야르사발, 다비드 콘챠 등 소시에다드의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이 하나 둘씩 드러내고 있다는게 고무적. 게다가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복귀한 아시에르 이야라멘디가 전술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면서 중원을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근 50년간 레알 소시에다드의 리그 페이스 중 최고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까지 쏟아내고 있다. 이제 그들도 선두권을 향한 욕심을 내보려고 한다. 3강(레알, 바르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과의 대결에선 1승 1무 1패로 생각보다 좋다. 소시에다드의 문제는 이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해야할 수 있느냐다. 지난 14라운드에서 데포르티보 원정에서 5대1로 대패당했는데, 분위기를 반전해야 페이스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번외 : '한 때 잘나갔던' 발렌시아는?


(신은 왜 발렌시아에게 고통만 안겨주는가? 늪에 빠진 박쥐군단이 빠져나올 기미가 도통 안보인다)


  로날드 쿠만의 암흑기를 벗어난 이후, 발렌시아는 우나이 에메리 체제로 넘어가면서 과거 우승권을 다투던 시절로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메리 또한 팀을 떠나면서 발렌시아는 2년 사이에 수많은 감독들이 거쳐갔다. 그 와중에 지독하게 박쥐군단의 발목을 잡아왔던 자금난 문제 또한 2014년에 싱가포르 재벌인 피터 림이 발렌시아를 인수하면서 말끔하게 해결하였고, 안토니오 피찌가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시키면서 발렌시아를 리그 4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구단주인 피터 림의 독단적인 행동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최고 결정권자가되어버린 피터 림은 자기 입맛대로 구단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감독 또한 일천 경험없는 게리 네빌을 불러들이면서 발렌시아는 또다시 암흑기를 맞았다. 파코 아예스테란이 소방수로 투입되어 급한 불은 껐다고 하나, 2015/16 시즌 11위에 머물며 자존심을 구겼다. 


  그러나 피터 림의 악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로2016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인 루이스 나니를 빠르게 영입확정을 짓긴 했으나, 파코 알카세르, 안드레 고메스, 슈코드란 무스타피 등 팀 내 핵심선수들을 대책없이 팔아버린 후, 이적시장이 닫힐 때 즈음에서야 급하게 무니르 엘 하다디, 엘리아큄 망갈라 등을 임대하면서 메꿨다. 뒤늦은 합류 때문에 선수들의 조직력이 맞을 리는 없었고, 초반부터 부진한 발렌시아는 체사레 프란델리로 감독이 교체되었으나 크게 나아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프란델리 체제 이후 무실점 경기는 단 한 차례도 없어 표면상으론 수비진의 문제가 보이겠지만, 알카세르가 바르샤로 떠난 이후 득점력이 현저히 떨어진 게 가장 큰 문제다. 프란델리와 발렌시아 선수들은 희망을 잃고 있지 않지만, 외부에서 바라보기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강등권과의 격차가 크지 않다.


  

참고 : by 이야라 [이야라칼럼] 50년만의 최고의 스타트 레알소시에다드, 그 이유는? http://cafe.daum.net/ASMONACOFC/gYcV/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