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잘못 알아서 오늘 열렸던 챔스 2차전 맨유 대 첼시 경기를 40분 가까이 놓친 상태에서 부랴부랴 생중계방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천운이 있었는지 틀자마자 좁은공간에서 짧게 찔러주는 긱스의 패스를 곧바로 치차리토가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봤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새벽인걸 망각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질렀다(옆집 죄송합니다 _ _). 게다가 오늘 선발출장을 예고했던 박지성이 맨유를 챔스4강에 올려놓는 결승골을 작렬시키면서 오늘 하루를 '위아더월드' 데이로 지정하게 만들었다(싸이의 위아더월드를 틀어줘요~). 오늘 이 경기에서 맨유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경기였다.
1. 박지성의 득점포 재가동, 그의 지난 12월 포스를 완벽히 구현했다.
(박지성, PSV시절 이후 그는 이번에도 안첼로티 감독에게 제대로 물먹였다)
이 경기에서 박지성은 무려 네달여만에 공격포인트를 쌓아올리면서 작년 11월과 12월에 보여줬던 박지성 원맨쇼 포스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아시안컵 이후 햄스트링 부상으로 2달 가까이 빠져있으면서 맨유의 우승 레이스에 큰 힘이 되지 못했기에 국내 언론에선 박지성의 위기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도 잠시, 복귀전이었던 웨스트햄전에서 비록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아주 좋은 컨디션과 무브먼트를 선보이면서 '나 건재합니다'라는 눈도장을 찍고 곧바로 첼시와의 챔스 2연전에 모두 선발 풀타임을 기록하였다(1차전에는 94분에 스몰링과 교체됐지만, 이건 거의 풀타임이라고 봐야..).
첼시와의 2연전을 치르는 동안, 그는 첼시 수비진을 완벽하게 농락하였다. 지난 1차전과 달리 오늘 2차전에서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그는 시종일관 애슐리콜의 뒷공간을 노리며, 그의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봉쇄시켜는 데 성공했다. 박지성이 오른쪽에서 애슐리콜을 묶었는데다가 왼쪽에서 에브라-나니 조합이 빠른 발을 이용하여 이바노비치의 단점인 느린 발을 철저히 공략했으니 완전히 맨유의 페이스로 몰고 갔다. 애슐리콜을 묶어놓은데다가 측면에서 수비의 틈을 침투해 긱스의 패스를 골로 성공시킴으로써 박지성의 컨디션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다음 경기로 예정되어있는 맨시티와의 FA컵 준결승에서 필승의 카드로 떠오르게 되었다.
2. 바르샤 축구의 유일한 대항마, "맨유스타일"
이번 경기에서도 맨유는 다른 때처럼 첼시의 뒷공간을 철저하게 노렸고,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다비드 루이즈가 챔스에 출장할 수 없었으니 첼시 입장에선 빠른 스피드와 역습으로 한방을 날리는 맨유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만한 발빠른 수비수가 없었기에 당하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번 맨유의 경기 스타일이 매번 사용하던 방식이였고, 이것을 차단하는 팀이 여태껏 없었다는 점이다.
맨유는 올시즌에 측면에 배치된 윙어들의 스피드와 최전방에 배치된 치차리토의 공간침투능력, 그리고 매 순간마다 킬패스를 찔러대는 긱스와 루니의 패싱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여태껏 맨유가 중요하게 여겼던 경기에서 승리했던 장면을 보면 거의 흡사할 정도로 똑같다. 윙어인 나니와 박지성, 그리고 발렌시아가 측면에서 수비를 흔들며 상대 수비의 간격을 벌려주고 그 벌어진 틈으로 긱스나 루니의 킬패스가 매번 소름끼칠 정도로 들어갔다. 그 킬패스를 최전방에 위치한 치차리토는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킴으로써 상대 수비에게 있어선 맨유의 경기 패턴은 거의 악몽과 같은 수준이다.
현재 유일하게 바르셀로나를 견제할만한 팀으로 맨유가 손꼽히는 것도 바르셀로나의 점유율과 적극적 압박에 뒤지지 않는 압박수비와 효율적 축구를 선보인다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맨유와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이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물론, 두 팀 다 결승까지 올라가야겠지만 말이다.
3. 첼시, 사실상 이번시즌 무관으로 끝났다
(오늘 첼시가 건진 거라곤 그동안 골침묵이었던 드록바가 득점포를 재가동한 것?)
첼시는 이 경기에서 패함으로써 유일하게 들어올릴 가능성이 있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마저 날려버림으로써 사실상 올시즌은 무관으로 끝났다라고 감히 말한다. 솔직히 오늘 경기에서 나는 첼시가 베나윤을 선발로 기용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지난 주에 열렸던 위건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던 선수가 바로 요시 베나윤이었고, 그가 현재 첼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유일한 '크랙'카드였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안첼로티는 4-3-3을 택함과 동시에 말루다-토레스-아넬카 3톱을 다시 가동했고, 최근에 부진하던 3톱은 오늘도 퍼디낸드-비디치가 이끄는 맨유의 포백에 막혀 존재감이 없었다. 차라리 베나윤이 오늘 선발로 나왔다면, 맨유의 촘촘한 수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수비를 몰고다녔을 것이고 거기서 빈틈이 생겼을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900억을 주고 데려온 페르난도 토레스의 오늘 플레이는 정말 첼시에게 전혀 득이 되는 영입이 아니었던 것을 보여줬다. 지난 맨유와의 챔스 1차전과 위건전에서 그나마 보여줬던 위협적인 모습도 오늘은 도무지 찾아볼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클로킹되어버렸으니 토레스는 오늘경기까지 합쳐 11경기 0골의 골침묵을 계속 이어갔고, 어떻게든 토레스 중심으로 끼워맞췄던 안첼로티 감독의 판단이 엄청난 큰 실수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던 한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드록인으로 전락했던 드록바가 골을 터뜨리면서 그동안 골가뭄이었던 첼시 공격진의 숨통을 트게 만들었다는 점이다(교체로 나왔는데 움직임이 쩔더만;;). 오늘 선발이 드록바였다면.... 어후 상상도 하기 싫다.
다비드 루이즈가 빠진 수비진도 답은 없었다. 특히나 첼시의 블랙홀이었던 오른쪽 수비는 오늘도 대활약(?)을 펼쳤다. 1차전에선 보싱와가 제대로 사고치더니 2차전에서는 이바노비치가 수모를 당했다. 한쪽 측면이 자꾸 뻥뻥 뚫리게 되자, 총공격을 가동해야 할 첼시 입장에선 공격에 집중할 리가 없었고, 더군다나 계속적으로 한쪽만 노리고 때리기에 맞을때마다 아플 수 밖에 없었다. 다비드 루이즈가 만약 뛸 수 있었다면 그의 넓은 활동반경으로 커버가 가능했겠지만, 화분에 물주는 알렉스나 좋은아빠 존 테리가 오른쪽 측면까지 커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하미레즈마저 빨간딱지를 받았으니, 이를 어쩌겠는가...?
첼시는 오늘 맨유 경기 이후부터 그동안 써왔던 전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토레스 중심으로 억지로 끼워맞추다가 오히려 공격수간의 부조화, 상대 수비를 흔들어놓을 만한 크랙이 없어서 공격이 매끄럽지 못한 점, 그리고 어떻게든 메꿔지지 않는 오른쪽 측면 구멍까지... 안첼로티 감독의 고민은 갈수록 더해져만 간다.
4. 맨유의 깨지지 않는 홈무패 기록, 그들의 사기를 한껏 올려주다
이 경기에서 하나 주목할만한 했던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과연 첼시가 맨유의 홈 무패행진을 저지할 수 있을까였다. 맨유는 지난시즌 후반부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패한 적이 없었고, 많은 팀들이 맨유의 홈무패행진을 깨뜨리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보기좋게 물만 먹고 씁쓸하게 돌아갔다.
오늘 첼시에게 승리한 맨유 입장에선 다음 경기를 치르는 데 있어서도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바로 다음 경기는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FA컵 준결승인데, 이 경기는 중립지역인 뉴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뤄진다. 게다가 퍼거슨 감독의 터치라인 징계와 루니의 출장정지 징계의 효력이 발동된다는 핸디캡까지 안고 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계속된 연승행진으로 그들은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자신감을 많이 축적하게 되었다. 게다가 어제 리버풀에게 완패를 당했고 핵심전력인 테베즈마저 잃어버린 맨시티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승리를 할 것처럼 보인다.
퍼거슨 감독은 이번 시즌은 98/99 시절에 자신이 일궈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있는 어투로 인터뷰를 했다. 오늘경기력을 보면 확실히 그의 말은 곧 진리요,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만 같다. "Alex is Well!!!!!". 맨유가 리그와 FA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다 싹쓸이 할 지 자꾸 흥분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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