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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왜 침묵했던 것일까?

J_Hyun_World 2011. 7. 6. 15:28

 

 

충격적인 무승부 기록

 

  당초 이번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코파 아메리카는 언제나 그랬듯이 개최국인 아르헨티나와 2회 연속 디펜딩 챔피언인 브라질, 이렇게 우승팀이 2파전으로 압축되었던 것이 전형적이었고 이번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는 선수들 구성만 보더라도 이 두 팀이 가장 압도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첫경기는 그들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축구공은 둥글다고 했던가? 일방적인 경기로 끝날 것 같던 경기가 되려 비등비등한 경기력을 연출하기도 했고, 결국엔 무승부로 끝나는 이변까지 나왔다. 과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어디가 어떻게 문제였던 것인가?

 

 

 

겉모습만 화려했던 아르헨티나, 속은 알차지 못했다

 

(이번 코파 아메리카 참가국 중 가장 화려한 스쿼드를 들고 나온 아르헨티나, 하지만 경기력은 그에 반비례)

 

  24년만에 정상탈환을 노리는 아르헨티나는 이번에 홈그라운드를 등에 업고 이번에야말로 우승할 것이라고 크게 자신했다. 유럽을 수차례 정복한 리오넬 메시를 선봉장으로 하여, 인테르 트레블 달성의 주역인 하비에르 자네티와 에스테반 캄비아소, 무리뉴사단의 일원인 곤살로 이과인과 앙헬 디마리아, 그리고 EPL 득점왕 2위를 기록한 카를로스 테베즈, 마라도나의 사위이자 AT 마드리드의 히어로 세르히오 아게로까지 이르는 초호화군단을 꾸려서 나왔다. 이 초호화멤버를 들고 나왔으니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당장에라도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기대는 개막전 경기에서부터 철저히 부숴졌다. 약체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하여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답지 않게 오히려 무기력한 경기를 보여줬고, 아게로의 천금같은 동점골이 없었다면 하마터면 아르헨티나는 개막전부터 망신 아닌 개망신을 당하며 충격패를 기록할 뻔 했다. 대체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1. 볼리비아 수비진의 약점을 파고들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들의 강점을 허용했다

 

  약체로 평가받던 볼리비아 수비의 가장 큰 약점은 전반적으로 신체가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공중볼에서 크나큰 취약점을 지녔다(코파 아메리카를 중계하는 해설진들도 볼리비아의 약점으로 공중볼이 약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 대신에 볼리비아는 밑에서의 움직임은 매우 민첩했고, 수비진이 기본적으로 발이 빨랐다. 그렇기에 제공권이 아닌 단신+속공으로 나오던 아르헨티나의 공격패턴에 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날 선발로 나왔던 테베즈-라베찌 투톱은 참혹스러울 정도로 대실패를 거두었다. 이 투톱의 특징이라고 하면 빠른 발과 거침없는 돌파력을 무기로 하는데, 볼리비아 수비진에게 있어서 그러한 공격은 이미 면역이 되어있었고, 볼리비아의 한 발 빠른 움직임과 커트로 인해 테베즈-라베찌 투톱은 속수무책이었다(어느 순간부터 테베즈-라베찌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투톱이 막히자, 메시가 직접 공격으로 올라왔지만, 메시 또한 볼리비아의 민첩성과 적극적인 압박에서 벗어날 틈이 없었고, 오히려 볼리비아의 역습 때문에 미드필드 진영 깊숙이 내려오게 되는 현상까지 초래했다.

 

  만약 바티스타 감독이 테베즈-라베찌 투톱이 아닌 최소한 공중볼에서도 능한 곤살로 이과인이나 디에고 밀리토 중 한 명을 선발로 투입시켰더라면 적어도 볼리비아 수비진의 압박 속에 무기력하게 당하지만 않았을 것이다.

 

 

2. 선수들의 개인플레이로 인한 불협화음, 그것이 모래알 조직력으로 이어지다

 

  아르헨티나의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선수들의 개인플레이가 여전히 심하다는 것과 중심을 잡아줄 중추가 없다는 점이다. 에베르 바네가는 영 팀 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하고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고(결국 볼리비아에게 내준 실점을 바네가가 제공해버렸다), 캄비아소가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보니 미드필더진에서 시작되는 빌드업이 영 순탄치 못했다. 그리고 교체되어 나온 디마리아도 활약은 테베즈-라베찌보단 좋았지만, 너무 지나친 개인플레이로 일관하다보니 때때로 템포가 끊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아르헨티나 포백의 움직임도 90분 내내 불안불안한 움직임이었다. 정신적 지주인 자네티가 돌아온 것은 분명히 아르헨티나 수비진에게 있어서 플러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자네티가 합류한 대신에 왈테르 사무엘이 빠져버렸다. 물론 G.밀리토-부르디소 라인이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사무엘만큼 현재 아르헨 수비진 중에서 위치선정이 뛰어나고 커팅능력과 1대1마크 능력이 뛰어난 센터백은 없다). 게다가 왼쪽 수비수가 비교적 무게감이 떨어지다 보니 양쪽 풀백 밸런스가 그리 좋진 못했다.

 

  아르헨티나 팀 자체가 너무 공격적이고 개인플레이 성향이 강한 선수들이 많다보니 결과적으로 조직력이 잘 맞지 않으며, 1+1=1/2 이 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골결정력 부재를 떠앉게 되버린 브라질

 

(호비뉴를 중심으로 한 유럽파와 네이마르를 중심으로 한 국내파를 조합한 브라질, 방패에 비해 창이 너무나도 무뎠다)

 

  아르헨티나 못지 않게 이번 코파 아메리카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며, 2번 연속 코파 아메리카 디펜딩 챔피언에 올랐던 브라질. 그들의 스쿼드가 아르헨티나에 비해서 네임벨류는 조금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브라질 리그에서 명성을 떨치며 브라질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마노 메네제스가 감독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브라질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친선평가전을 통하여 유럽파 뿐만 아니라 실력있는 국내파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네임벨류에 상관없이 이번에도 우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브라질도 뚜껑을 열어보니, 친성평가전에서 선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물을 나타냈다. 이번 대회에 약체로 평가되는 베네수엘라를 맞이하여 무득점에 그치며, 0대0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대회 개막 전부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네이마르도 이 날 경기에선 전반전에만 눈부셨을 뿐, 후반전에선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다. 브라질의 센터백 듀오(루시우-티아구 실바)와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루카스 레이바만 빛났던 경기라고 할 수 있겠다.

 

 

1. 마법사의 멸종이 낳은 비극

 

  사실 대회 시작 전부터 브라질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이 바로 경기의 흐름을 한 번에 뒤집는 능력을 지닌 '마법사'의 부재였다. 단순히 베네수엘라 한 경기만으로 전체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무리수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날 경기에서 브라질은 결정적인 흐름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즉, 브라질 고유의 삼바리듬을 그라운드 위에서 펼치는 화려한 플레이어가 멸종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브라질산 마법사'라고 하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호나우딩요였다. 그의 바르셀로나 시절만 보더라도 브라질 삼바축구가 어떤 것인지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팀플레이보다는 자유분방하면서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움직임과 슈팅, 화려한 발놀림. 하지만 세계축구의 중심인 유럽무대에선 더이상 브라질의 개인플레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철저히 팀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만을 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무대에서 날뛰던 마법사들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유럽을 떠나 고국인 브라질로 귀환하게 된다.

 

  호나우딩요 이후로 화려한 드리블러이자 삼바리듬을 지니고 있던 호빙요만 보더라도 그렇다. 더이상 호빙요에게서 드리블이나 힐킥을 볼 수 없다. 그는 철저히 AC밀란을 위해 팀플레이만 하는 팀플레이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팀플레이에 충실하다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다만, 브라질 고유의 색깔까지 버리면서까지 유럽식 스타일에 맞춰진 것에 대해서는 조금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카카의 대체자로 등번호 10번을 배정받은 간소도 아직은 무리였다. 어찌보면 간소 또한 마법사와는 조금 거리가 멀 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외성으로 상대를 놀래키는 선수가 없기에 브라질이 베네수엘라를 잡아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2. 전형적인 골게터의 부재

 

  또 하나 브라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바로 전형적인 골게터가 없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호나우두가 있었고, 2004년 코파 아메리카와 2006년 독일월드컵 때에는 아드리아누가 있었다. 또, 작년 남아공 월드컵 때까지는 루이스 파비아누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수많은 골을 뽑아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말해서 전형적인 골게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브라질의 크나큰 약점이다.

 

  베네수엘라와의 경기를 보면 확실히 브라질의 수비력은 코파 아메리카 참가국 중에서 단연 넘버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탄탄한 방패에 비해 창은 너무나도 무뎠다. 4-2-3-1 전술로 나온 브라질은 최전방에 파투를 배치하고 2선에 네이마르-간소-호빙요를 두는 방식을 택했지만, 5대 리그 득점 랭킹 10위 안에 드는 브라질 선수는 파투, 호빙요, 그리고 네네 밖에 없을 정도로 브라질 공격수들의 득점력은 빈곤했다. 특히나, 파투나 호빙요는 요 몇년간 득점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브라질 리그, 아니 남미대륙에서 끝판왕으로 올라선 네이마르도 브라질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만한 재목은 아니다. 분명, 그의 현재 기량이나 잠재성은 역대 선수들과 견주될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리고 국제대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에 비해 후반전에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만 보더라도 그렇다. 또한 조커로 투입된 프레드 또한 리옹시절만큼 슈퍼서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식의 골가뭄이라면 브라질의 3번 연속 디펜딩 챔피언에 등극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제 코파 아메리카 첫경기들이 모두 끝났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쓰는 문제점이 어찌 보면 지나친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두번째 경기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호비뉴가 다음경기에선 반드시 승리해 보이겠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인터뷰를 했다). 허나 확실히 이번 대회는 강팀들에게 있어 쉬운 경기는 없을 것이다. 약체로 평가받고 있는 팀들이 이번 대회에 아주 작정하고 적극적으로 덤벼들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결승전에서 만나 남미 최강 자리를 놓고 다투려면, 그들이 떠앉고 있는 문제점을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고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대회에서 그들이 우승할 확률은 점점 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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