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펠레 예언따라 아르헨티나를 따라 코파 아메리카 8강에서 탈락한 브라질)
우려는 결국 현실로 이루어졌다. 코파 아메리카 출전 역사상 최약체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코파 아메리카 2011 브라질 국가대표팀. 조별리그 내내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가까스로 8강행 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개최국인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에서 패배하여 탈락한 지 겨우 하루 지난 뒤에 뒤따라서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3회 연속 디펜딩챔피언의 꿈은 날아가버렸다. 전후반 연장전 합쳐 120분동안 한 골도 넣지 못하며, 승부차기에서까지 4번 연속 실축이라는 치욕까지 겪었으니, 축구 최강국이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로 남게 된 대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브라질의 이러한 행보는 이번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계속 겪어왔었고, 2009년 남아공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최종 우승 이후로 점점 하락세를 겪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카를로스 둥가 감독 체제 이후부터, 그들 특유의 삼바 리듬(정확하게 말하면 징가 리듬)을 버리고, 철저하게 대세로 떠오른 유럽식 현대축구에 억지로 자신들을 끼워맞추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브라질이 항상 우승후보로 떠올랐던 것은 유럽 명문 클럽에서 다 한자리씩 차지하는 화려한 선수들로 수놓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브라질이 다른 팀과 달리 특별했던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의외성'이 있었다. 그 '의외성'의 정점에 있던 선수들이 흔히 우리가 '마법사'라고 부르던 선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 하나하나에서부터 브라질의 독창성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의외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호나우딩요였다. 그의 전성기는 역대 브라질의 한획을 그었던 레전드들에 비해 비교적 짧았지만, 그 기간(특히, 바르셀로나 시절)에 보여주었던 그의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반대 방향으로 패스를 주는 플레이나 힐킥, 그리고 엉덩이를 좌우로 두 번 흔들어 슈팅타이밍을 만들어내는 능력. 현재 브라질 국대 내에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플레이다.
이런 호나우딩요같은 스타일을 앞세워서 축구를 즐기면서 독창성과 과감성으로 무장했던 브라질은 스스로 현대축구 흐름에 너무 맞춰버린 나머지, 그들의 색깔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호나우딩요가 올초에 브라질로 떠나버린 뒤, 현재 유럽에서 손꼽는 플레이메이커나 슈퍼스타들 중에서 브라질 국적 출신 선수는 빅클럽에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해졌다. 그나마 호나우딩요처럼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호빙요마저도 이제 브라질 특유의 색깔을 씻어내고, 팀플레이에 일관하는 선수로 돌변했다.
작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네덜란드에게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 호나우딩요와 대등한 클래스인 카카가 버티고 있었지만, 카카는 유럽형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웠고, 소속팀에서 입은 부상이 채 완쾌되지 않음으로 인해 브라질은 좀처럼 힘을 쓰질 못했다.
이번 코파아메리카 대회도 어찌보면 그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대회에서 유럽파를 무려 16명이나 차출했지만, 공격진은 대부분 브라질 국내파 출신이었고, 브라질 내에선 마법사 기질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검증받지 못한 선수들이었다(즉, 유망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꽤나 주목바던 간소나 네이마르 등이 부진했다고 혹평한 것도 어찌보면 그들의 경험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분명 브라질 내에선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호나우딩요나 카카처럼 유럽에서도 검증받은 것이 아닌 유망주였으니깐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을 지목하자면, 바로 전문 골게터가 없다. 브라질은 매 대회마다 그 대회를 책임지던 득점 담당 선수들이 있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호마리우, 90년대 후반을 넘어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호나우두, 코파 아메리카 2004의 우승주역인 아드리아누, 그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까지 득점을 책임지던 루이스 파비아누까지. 전부 골을 넣는데 믿을 만한 구석이 다 한 명씩 매 대회때마다 존재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네이마르는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처럼 전문 골게터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브라질의 골을 책임질 스코어러가 없었다. 리베르타도레스의 슈퍼스타로 등극한 네이마르, AC밀란의 브라질리언 듀오 호빙요와 파투, 한때 리옹시절에 최절정기량을 뽑냈던 프레드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4명 모두 전문 스코어러는 아니었다. 호빙요는 이미 레알시절 독창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넣는 선수가 아닌 팀플레이에 철저하게 맞춰진 드리블러로 바뀐 지 오래되었고, 파투는 이상하게 국가대표와는 큰 인연이 없을 정도로 득점력에서 부진하고 있다. 그리고 프레드의 경우에는 슈퍼서브로 투입되어 이번 브라질 8강 진출에 적잖은 공을 세웠지만, 선발 풀타임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기량이 예전같지 않다. 네이마르의 경우, 아무래도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다 보니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수차례 보이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아직 만 20세도 채 되지 않은 선수에겐 너무 가혹한 메이저대회 데뷔전이었을 것이다).
현재 브라질 내에서는 코파 아메리카의 굴욕적인 탈락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마노 메네제스 감독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하지만, 브라질 축구협회는 일단 그의 경질을 두고 일단 유임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메네제스 감독을 잘라야한다느니, 다시 둥가를 감독을 앉혀야 한다느니에 대해 현재 감독 유임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 진행중이다. 하지만, 브라질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 단순히 100% 감독 탓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둥가 감독을 데려온다한들, 그도 이미 남아공 월드컵에서 8강문턱을 넘지 못했지 않았던가?
이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브라질 축구의 정체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외성과 독창성을 앞세우며 삼바리듬에 맞춰 축구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이상, 브라질 축구 앞에 붙는 수식어인 '축구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날도 이제 머지 않은 것 같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면서 대세의 흐름에 억지로 끼워맞춰나가고 있는 브라질. 시대는 돌고 돈다고, 브라질산 마법사들이 다시 활개칠 날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대, 현재는 확실히 아니다. 현재 브라질에서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감췄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당신의 착각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은 이 가혹한 서식지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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