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건너축구/국가대항전

필리핀은 이미 축구신드롬으로 가득차있다

J_Hyun_World 2011. 7. 28. 08:00

 

 

  나한테 있어서 필리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특정되어 있다. 조기영어유학으로 싼 가격에 택할 수 있는 곳, 세부, 산다라박(응?), 그리고 종종 우리나라 음악카페에서 팝송을 부르는 외국인 밴드들의 출신국. 이것이 내가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필리핀과 스포츠...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를 꼽자면 아무래도 복싱 아닐까 싶다. 전체급별 챔피언으로 세계를 정복한 매니 파퀴아오가 바로 필리핀 출신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필리핀에서 복싱을 제외하고 그들을 상징하는 스포츠가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거의 기억이 없다고 해야 맞겠지).

 

  그런데 요즘들어서 필리핀에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름아닌 필리핀 전역이 축구열풍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여태껏 필리핀 축구 경기를 직접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있어도 거의 희미할 거다본인도 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나라와도 1978년 이후로 단 한 번도 축구를 통해 만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거다(만날래야 만날수가 없었다). 그들이 대회에 나오기나 해야 만날 수 있는 거 아닐까? 대부분 아예 불참하거나, 또는 우리는 참가하지 않는 1차예선에서 일찌감치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이니 상위 0.0001% 축덕 고렙들도 그들의 경기를 못봤을껄?

 

 

 

(FC 바르셀로나 레전드인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국적이 사실 필리핀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아이러니한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축구협회가 생기고 가장 먼저 국가대표 축구팀이 조직된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고, 1917년 일본을 상대로 15-2로 이긴 기록도 가지고 있고, 같은 시기에 FC 바르셀로나의 역대 리그최다득점 기록 TOP 10 안에 드는 레전드 파울리노 알칸타라라는 선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헌데 무슨 이유인지 언젠가부터 필리핀은 축구와 담을 쌓게 되었고, 정확히 50년후인 1967년 필리핀은 일본에게 0-15로 대패를 당했다. 이 두 기록은 여전히 필리핀축구의 최다골차승 및 최다골차패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필리핀 축구의 역사는 한마디로 '동네북 인생'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약체 그룹인 동남아에서조차도 동네북 신세였으니 무슨 수식어가 필요한가? 2002년 인도네시아에게 당한 1-13 대패가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참담한 필리핀 축구를 대변했다. 전반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이 국제축구계에서는 경쟁력이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축구 열기 하나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데 반해(이번 리버풀 동남아 투어때 맨유 유니폼 입고 싸인회 간 어떤 동남아 사람이 다른 동남아 리버풀팬들에게 테러당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실력여부를 떠나 아무도 축구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나라였다나라 안에 조직적인 자국 리그따위도 없고,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예선에는 아예 참가조차 하지않는 등 협회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이랬던 필리핀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는 아주 희한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선 동남아시아 게임(South East Asian Games, 줄여서 SEA Games)이나, 축구 동남아시아 챔피언십 등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열기는 장난아니다(동아시아 3국이 모여 열리는 경기의 열기와 차원이 다르다).

 

  2005년의 SEA Games의 주최국은 필리핀이었는데(참고로 이 대회는 올림픽/아시안게임과 마찬가지로 축구 종목에서는 23세이하 팀이 참가한다), 홈에서 개망신을 당할수는 없는 노릇이라 필리핀 축구협회는 U-23 대표팀의 구성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체계적인 리그시스템이나 유소년육성 시스템이 없다보니 U-23 대표라는게 있을리 없고, 때문에 무작정 필리핀 전역을 뒤지며 대표선발 트라이아웃을 개최하는 무식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런걸로 갑자기 하늘에서 호날두나 메시 같은 신동이 짠하고 나타날 리는 없었다그러던 와중에 어떤 당돌한 초등학생이 필리핀 축구협회에 결정적인 제보를 하게 되었는데, 축구 게임을 하던 이 초딩은(분명히 그 게임은 FM이다), EPL 첼시 유소년팀에 있는 어떤 형제선수들의 프로필을 보니 어머니가 필리핀인이라며, 필리핀 대표로 소집할수 없냐고 메일로 문의했던 것이다.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필리핀도 우리나라처럼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어 어디서 태어나든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출생당시의 국적이 필리핀 국적이라면 출생과 동시에 필리핀 국적을 받게되고, 또한 복수국적이 허용되므로 태생 현지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필리핀 국적을 유지하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 이 첼시 유소년팀의 형제선수들이 출생당시 어머니가 필리핀국적을 가진 상태였다는 것만 확인되면 아주 간단한 여권발급 절차만 거쳐도 바로 필리핀 대표팀으로 뛰는것이 가능했다.

 

  그 형제는 영허즈번드(어린남편? 응?)라는 재미있는 성을 가진 형 제임스와 동생 필립으로 당시 각각 불과 18세와 17세였다. 형은 윙어, 동생은 포워드를 주포지션으로 하고 특히 동생은 첼시 유스 내에서 한때 팀내 득점왕을 할 정도로 꽤 주목을 받아온 선수였다(FM 해본 사람들이라면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두 형제 모두 U-23에서 뛰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첼시라는 손에 꼽히는 명문클럽의 유스 소속인 이 형제를 능가할만한 20대 선수가 필리핀에 존재할 리 없었다. 협회는 직접 영국으로 날아가 형제와 그 부모를 만나 필리핀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렸다허나 모친의 고향이라한들, 살면서 형제가 전혀 가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전세계에서 축구와는 가장 거리가 먼 나라중 하나인 변방 중의 변방의 대표팀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첼시 유스에서 뛰고있는 만큼 잉글랜드 청소년대표 등도 도전해볼만한 입장이라 당사자들에게나 그 부모들에게나 필리핀 축구협회의 갑작스런 방문과 제안은 끌리지 않을 법도 했지만,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려 이 형제는 필리핀 U-23에 합류했다

 

  당시 이 사건은 필리핀 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국민 절대다수가 '첼시' 하면 런던의 축구클럽보다는 미국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딸인 첼시 클린턴을 떠올리는 나라에서 이만한 일로 갑자기 축구 자체가 큰 이슈가 될 리는 없었다. 이 사건이 이슈가 된 것은 바로...

 

 

  이 형제의 비주얼 때문이다!!! 축구팬보다는 소녀팬들을 다수 몰고다니며(거의 아이돌급이지) 형제는 SEA Games에서 맹활약했다.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겨룬 조별예선 3경기에서 필리핀은 6골을 넣었는데 두 형제는 4골을 합작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고, 비록 필리핀은 1 2패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두 형제 덕분에 홈에서 전패 개망신을 면했다. 형제는 이후 첼시 시니어팀에 올라가지 못하고 임대생활을 전전하다 2008년에 계약이 만료되면서 가족 모두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이 형제의 선전에 고무된 필리핀 축구협회는 이 형제와 비슷한 케이스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고소수의 필리핀 축구팬들도 이에 동참했다. 영허즈번드 형제를 제보한 초딩들처럼, 축구게임과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며 전세계 어딘가에서 뛰고있을 필리핀혈통의 선수를 색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리핀은 재외국민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략 천만명 또는 통계에 따라서는 그이상이 전세계에 퍼져있다고 하는데, 물론 그 대부분은 북미와 아시아지역에 몰려있지만 유럽에도 아시아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이주자들이 필리피노들이다. 그리고 그 이주자들과 그 자손들은 대부분 복수국적으로서 필리핀 국적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어머니가 필리핀계로 알려져있는 네덜란드 미드필더 조나단 데구즈만)

 

  실제 유럽 곳곳에서 부모 중 최소 한사람이 필리피노인 선수들이 속속 발견되는데, 그 중에는 조나단 데구즈만(네덜란드/마요르카)이나 다비드 알라바(오스트리아/바이에른 뮌헨) 같은 월드클래스 재능들도 있지만(한때 '김실바 소동'으로 한구계 의혹을 샀던 다비드 실바도 외조부가 필리피노다) 대부분은 유럽 하부리그나 혹은 작은 나라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후보군으로 리스트에 오른 선수들만 수십명에 달했으나 영허즈번드 형제와는 달리 쉽게 진전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의 대표를 노려볼만한 재능들은 데구즈만이나 알라바처럼 애초에 필리핀 대표에 흥미를 가질 리가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시아에서조차 변방인 필리핀 대표로 뛰는것이 본인 커리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있으니 필리핀축구협회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부분 후보들이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도 필리핀 유니폼을 입는 소수의 선수들은 조금씩 늘어났고, 그 결실은 영허즈번드 형제의 등장 후 5년이 지난 지난해 2010 동남아시아 챔피언십에서 보게 되었다동남아시아 챔피언십은 동남아 축구협회(AFF)의 주관으로 1996년에 시작해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대회로, 싱가폴의 맥주회사가 스폰할 때는 Tiger Cup으로 불렸고, 현재는 일본의 Suzuki가 스폰서로 Suzuki Cup으로 불린다. 동남아에서는 가장 열기가 뜨거운 대회다.

  

(2008년 7회 대회에서 베트남이 태국을 꺾고 우승할 당시, 베트남은 이미 축제도가니였다)  

  6회대회까지는 태국이 3, 싱가폴이 3회로 두 나라가 패권을 양분하다싶이 했는데, 2008년 7회 대회 결승에서 베트남이 태국에게 종료직전 극적인 골을 터뜨리며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양강체제를 무너뜨렸다. 당시 베트남 거리의 모습은 2002월드컵 한국 대 이탈리아전 골든골 당시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않는 축제도가니였다.

 

  이렇게 2년마다 한번씩 동남아를 뒤집어놓는 대회지만, 필리핀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네북'이었다. 총 6번 참가하여 거둔 성적은 1119,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강호들은 물론이고, 브루나이나 동티모르에게도 고전하는 팀이 필리핀이었다. 동남아에서 인구가 두번째로 많은 나라인데도 말이다(마치 중국이 인구수 많다고 해서 축구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하지만 2010 12월에 열린 제8회 대회에서 필리핀은 '태풍'이었다. <캄보디아-라오스-동티모르>와 그룹을 이뤄 치른 1차예선에서 12무로 조2위를 차지하며 본선에 오른 필리핀은, 다시 <싱가폴-베트남-미얀마>와 조를 이뤄 본선 그룹라운드를 치르게 됐는데, 이 조는 디펜딩챔피언 베트남과 3회 우승경력의 싱가폴이 무난히 조1,2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싱가폴과의 첫 경기에서 0대1로 뒤지던 후반 인져리타임에 극적인 동점골로 승점 1점을 따낸 뒤, 디펜딩챔피언이자 주최국인 베트남을 상대한 두번째 경기에서 그 누구도 예상못했던 2대0 승리를 거두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가 현재 필리핀 축구열풍의 터닝포인트였다. 

 

  필리핀은 결국2위로 사상 처음 토너먼트 4강에 진출하게 됐고, 4강에 쏠린 필리핀인들의 관심은 100년 가까이 된 필리핀 축구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4강 상대는 인도네시아. 원래는 홈&어웨이 방식이나, 필리핀에 대회기준을 충족하는 스타디움이 없다는 이유로 두 경기 모두 인도네시아에서 치르는 코미디가 벌어졌고(사실 필리핀 축구협회조차도 자국의 조별예선통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필리핀은 두 경기 모두 0대1로 패하며 합계 0대2 4강에서 탈락헸다

 

  비록 필리핀의 도전은 4강에서 끝났지만, 그들은 '영웅'으로서 대대적인 환대를 받으며 필리핀으로 귀국했다. 어디를 가든 괴성을 지르는 소녀팬들이 몰려다녔고, TV쇼 출연이나 광고촬영등이 이어졌으며, 연예인과 스캔들을 내는 선수들도 등장했다.

 

(4강신화로 인해 필리핀 국가대표팀은 자국에서 슈퍼스타로 추앙받고 있다)

 

  대표팀의 애칭인 아즈칼스(Azkals : 길거리 투견)는 필리핀의 핫클립이 됐고, 기존의 필리핀 농구팬과 새롭게 떠오르는 축구팬이 서로의 종목이 달성한 성적을 놓고 대판 싸울 정도로 필리핀 축구는 전국민의 주목을 끄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그리고 아즈칼스의 질주는 그동안 협회의 제안을 고사해온 다른 필리핀계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 러쉬를 일으키게 될뿐 아니라 '나도 필리핀 사람이다.'라며 스스로 대표팀 트라이아웃 참가의사를 보이는 선수들도 몰려들 정도가 되었다

 

  독일출신 감독을 새로 영입해 업그레이드한 필리핀은 지난 봄 AFC Challenge Cup(AFC에서 축구 3류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끼리의 경쟁으로 우승팀은 차기 아시안컵 출전권이 주어진다)에서도, 필리핀은 일단 조별예선을 통과해놓고 내년 본선행티켓을 따놓은 상태다. 또한 현재 필리핀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예선을 치르고 있다. 한국은 톱시드라서 예선 3라운드부터 참가하지만, 예선 1~2라운드는 이미 시작되었다(제파로프와 게인리히가 우즈벡 국대호출로 리그도중 차출되었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선 예선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던 필리핀은 1라운드에서 스리랑카를 만나 통합전적 5대1 대승을 거두고 2라운드에 진출한 상황이다. 이번달 말 쿠웨이트와 다시 홈&어웨이로 2라운드를 치르게 되는데, 쿠웨이트는 물론 지금까지 필리핀이 상대해온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팀이니만큼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지만, 현재 필리핀 스쿼드 중 최소 일부는 개인기량 면에서 쿠웨이트 선수들에 전혀 뒤지지않는 선수들이고 지난달부터 독일 장기캠프 등을 소화하며(이거 마치 2002년 우리나라를 보는듯 한데..?) 조직력을 다져왔기 때문에 만일 쿠웨이트가 방심한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현재 필리핀 스쿼드의 주요선수들을 보자면,

 

Neil Etheridge  (21/GK)  EPL 풀햄 소속으로 팀내 3번째 골키퍼. 

Stephan Schrock (24/DL)  독일 2부리그 Greuther Furth 붙박이 주전. 독일 청대 출신.

Dennis Cagara (26/DR)  독일 헤르타 베를린에서 뛴 경험이 있고, 현재는 덴마크 1부리그 소속. 덴마크 청대 출신

Jerry Lucena (30/DM)  덴마크 1부리그 300경기 이상 경험, 덴마크 청대 출신.

Paul Mulders (30/AM)  네덜란드 1부리그 ADO Den Haag 소속

Angel Guirado (26/AM/ST)  스페인 4부리그팀 소속

Manuel Ott (20/MF)  독일 2부리그 FC Ingolstadt 리저브팀 소속

James & Phil Younghusband (24/23, ST/SMF) 필리핀으로 이주한 뒤 유소년 축구아카데미 운영 등의 활동만을 해온 영허즈번드 형제는 여전히 대표팀 공격의 핵심이다. K리그에서 한 번 영입시도 해볼만한데..? 

 

 

그 외에도 수십명의 해외파자원풀을 형성하고 있고, 각급 U대표에도 나이에 맞는 많은 해외파 자원들을 소집 중이며, 이와는 별도로 필리핀 내부 자체적인 인프라 개발, 유소년육성, 리그육성 등의 축구진흥 프로젝트들도 속속 착수되고 있다

 

  재밌는건 필리핀의 이러한 해외파를 이용한 급속도의 축구발전을 지켜본 이웃 동남아 국가들이 너도나도 해외파 영입에 적극 뛰어들고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에 많은 동포들이 살고있는 인도네시아, 프랑스나 체코 등에 많은 이민자들이 있는 베트남 등이 그러한데, 문제는 이들 나라들은 필리핀과는 달리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아서 적격선수들을 찾더라도 대표팀에 소집하기 위해서는 출생지 국적을 포기시켜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최근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움직임까지 보이며 적극성을 띄고 있으며, 실제 현재 호주 A리그 득점왕인 네덜란드계 인도네시아 혼혈 선수가 인도네시아 대표팀 입성을 앞두고 있다

 

  필리핀 대표팀의 Dan Palami 단장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이 목표라는 다소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필리핀 내부에서조차 축구전문가들 입에서는 '터무니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다소 급진적인 목표지만, 단장은 "실패해도 잃을게 없다. 꿈꾸는게 죄는 아니다" 라며 국민적인 서포트를 당부하고있고 미디어들도 이것을 공식적인 아스칼스의 슬로건으로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현재 필리핀의 축구열풍은, 자체적인 축구발전에 의한게 아닌 전적으로 해외자원에 기댄 인스턴트 경쟁력과 이로 인한 이런저런 작은 무대에서의 좋은 성과, 그리고 그로 인한 유행에 편승해 우루루 몰려든 밴드웨건 인기라고 봐야할 것이다. 실제 필리핀의 축구중계를 보면 해설자가 따로 오프사이드 룰을 설명해주는 모습을 거의 매경기 볼 수 있을 정도다. 쉽게 말해 냄비처럼 끓어 오른 것이고, 따라서 만일 강팀을 만나 한번 대패라도 하고 '환상'이 깨어지는순간 이 열기는 금방 식어버리고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이러한 필리핀의 작은 날개짓 덕분에 주위에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자국팀, 자국리그에 대한 경쟁력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6,70년대에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동남아였지만, 현재 그들은 아시아 축구에서 중동과 동아시아 및 호주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 아웃사이더의 외톨이신세다. 이러한 이들이 그동안 해외축구에만 가 있던 시선을 자국 내로 다시 끌어오게 된다면, 6,70년대에 누렸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또한 그들의 발전으로 인해서 그동안 빈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아시아 국제 대회의 파이가 커지게 된다는 장점도 있으며, K리그에서도 1980년대 풍미했던 태국 용병 피아퐁 이후로 다시 한 번 국내에 동남아 출신 용병을 기용할 수 있다. 이들의 기량이 발전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남미쪽(특히 브라질쪽)에 의존하지 않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점과, 이에 맞물려 K리그가 국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중계권 등이 수출되어 동남아에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잠재적 시장가치 또한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박지성이나 이청용 등 영국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로 인해 국내에서 평가되는 EPL 시장가치가 매우 높지 않은가? 더이상 우리도 해외로 중계수출하는 일이 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리핀의 이 작은 날개짓이 훗날 어떠한 효과로 10여년 후에 나타날 지...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파급력으로 되돌아올 지, 아니면 일시적인 냄비현상에서 그치게 될 것인지... 좀 더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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