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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의 아성에 도전하는 독일 청년, 메수트 외질

J_Hyun_World 2011. 9. 8. 08:00

 

 

 

 

 

  지난 주 A매치 데이에서 독일 유로2012 조별예선경기인 오스트리아와의 홈경기에서 6대2 대승을 거두며 가장 먼저 유로2012 본선 티켓을 확정지었다. 현재 독일은 1조에서 전승기록을 찍으며 감히 독보적인 팀으로 변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2004 때 '녹슨전차군단'이라고 조롱받던 떄와는 180도 바뀌었고, 현재 독일만큼 가장 강력한 팀이 어디있겠냐는 평까지 나올 정도로(독일과 스페인이 다시 붙으면 스페인이 질 것이라는 말까지 많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전력은 현재 세계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팀이다.

 

  독일 선수들도 대체적으로 자국리그인 분데스리가를 기반으로 하여 선수들을 구성하고 있어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한 편이다. 게다가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수인 미로슬로프 클로제를 제외하면 독일 국가대표팀 평균 나이가 2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젊다. 또한, 요아힘 뢰브 감독은 끊임없이 독일의 슈퍼 탤런트들을 국제무대에 차례차례로 등장시키고 있고, 그의 선택에 의해 최근에 마리오 괴체, 루이스 홀트비, 토니 크루스 등 신에 선수들도 독일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하지만, 이런 끊임없는 변화를 거치고 있는 독일 대표팀 내에서도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선수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메수트 외질(Mesut Ozil)이다.

 

(요즘 유럽에서 가장 대세로 군림하고 있는 "대세" 메수트 외질)

 

 

"현재 독일 국가대표의 실질적인 공격첨병"

"카카를 벤치로 밀어내버린 스탯파괴자, 그의 스탯쌓기는 호날두와 필적할만하다"

"지네딘 지단의 재림이다"

 

  요즘 메수트 외질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대충 이러하다. 메수트 외질,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독일의 신성으로 등장하면서 독일 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긴 했지만, 2년 사이에 엄청난 슈퍼스타까지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분명,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을 이렇게나 단기간에 최고치로 끌어올릴 줄 전혀 몰랐다. 확실히 그의 움직임은 축구팬들의 환호성을 지르게 만들만한 플레이다. 왼쪽 측면과 중앙을 재빠르게 오가면서 상대를 교란시키는 화려한 드리블, 반박자 빠른 패싱과 너른 시야, 그리고 필요한 순간마다 빛나는 그의 왼발 킥까지. 왜 요아힘 뢰브 감독이 조율에 능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혼자 홀딩 미드필더로 박아놓기만 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터키계 이민자 출신으로 태어난 메수트 외질은 겔젠키르헨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겔젠키르헨의 빅클럽인 샬케 유스를 거치면서 플레이메이커로써의 역할을 배워가게 되었다. 메수트 외질은 독일 청소년대표팀으로 뛸 때부터 터키 축구협회로부터 끈질긴 러브콜을 받았다. 터키게는 누리 사힌이나 아르다 투란 같은 차세대 에이스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을 외질이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투란-외질-사힌 이 세 명의 선수가 중원을 장악하게 된다면 터키는 유로2008을 기점으로 터키의 부흥을 다시 한 번 일으키려했었다. 하지만 외질은 부모의 조국인 터키를 져버리자, 터키는 그를 '배신자'라 비난하면서 그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욕을 가했다.

 

(1년 반 동안 베르더 브레멘에서 보냈던 시간은 그를 단숨에 슈퍼스타로 만드는 큰 디딤돌이 되었다)

 

  2008년 1월, 외질은 자신의 커리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첫번째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베르더 브레멘으로의 이적이었다. 당시 샬케에서 외질은 링콘을 대체할 유망주로 떠올라 구단은 전폭적으로 외질을 밀어주려고 했으나, 그는 샬케가 아닌 브레멘행을 택했다. 브레멘도 당시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에이스 디에구의 부침과 최전방의 침묵, 국제대회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해버린 브레멘 입장에선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었다. 토마스 샤프 감독 아래에서 외질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였는데, 브레멘에서 왼쪽 윙어로 자주 기용되었던 것이 그 요인이었다.

 

  토마스 샤프 감독의 조련 아래에서, 메수트 외질은 단기간에 그의 잠재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브레멘은 이러한 외질의 빠른 성장 덕분에 구단에게 거금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토리노로 떠나버린 디에구를 금방 잊어버렸다. 분데스리가 내에서 외질의 활약이 매우 독보적이다 보니 요아힘 뢰브 감독은 2009년 2월,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교체출장시키며 독일의 차기 에이스의 등장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은 비상사태에 걸렸다. 다름아닌 독일의 에이스인 미하일 발락이 부상으로 최종엔트리에서 탈락되어야했던 것이다.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뤄내면서 남아공월드컵에서 스페인과 함께 우승후보 0순위로 지목된 독일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며, 전문가들도 발락이 빠진 독일이 8강이라도 가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비관적인 전망을 하였다.

 

(하지만 발락이 빠진 독일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외질의 플레이 하나로 인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독일은 전문가들의 전망을 보란듯이 비웃었다. 바로 외질의 플레이가 발락의 존재감을 순식간에 잊혀지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는 루카스 포돌스키와 미로슬로프 클로제 투톱, 중원에서 조율하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주장인 필랍 람 등 슈퍼스타들이 존재했지만, 사실 이들만 모아놓고 보았을 때, 독일은 그저 '실리축구'였다. 하지만, 외질이 추가되면서 독일은 순식간에 '화려하고 우아한 축구'로 변모하면서 남아공월드컵에서 가장 멋진 경기를 펼친 팀으로 극찬을 받았다.

 

  총알처럼 빠르고 경쾌한 드리블, 그리고 신기에 가까운 외질의 볼컨트롤은 독일이 마법을 부리기에 충분한 마력을 만들었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잉글랜드 수비진을 농락하는 플레이나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리오넬 메시에게 대굴욕을 선사한 외질은 독일을 3번 연속 4강까지 끌어올려놓는 데 가장 큰 공헌을 세웠다. 만약 외질이 88년생이 아닌 89년생이었다면 남아공월드컵 신인상은 토마스 뮐러가 아니라 메수트 외질에게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월드컵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쳤으니, 외질을 탐내는 빅클럽들이 꽤나 많았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맨유, 바르샤, 인테르 등이 물량공세를 퍼부었지만, 그가 선택한 행선지는 다름아닌 조세 무리뉴 감독이 있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입단 당시 외질에 대한 기대치는 불투명했다. 과연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레알 마드리드에서 외질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지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수 보는 눈이 깐깐한 무리뉴 감독 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출전시간조차 보장받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맞는 말이다. 외질은 22살에 불과한 풋내기였다. 2006년 샬케04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해 이제 막 풀타임 주전 3년차를 맞이한 선수에 불과했으니까. 반면 레알 마드리드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앙헬 디 마리아 등 외질과 포지션과 역할이 겹치는 슈퍼스타들이 존재하고 있다. 외질은 더군다나 스페인 라 리가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리함까지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무리뉴는 망설임 없이 외질을 주전으로 선택했다. 홈개막전 승리에서도 무리뉴의 애제자인 히카르도 카르발료보다도 외질이 먼저 중용되었고, 그가 먼저 레알 마드리드에서 데뷔하였다. 외질은 데뷔한 이래로 한 번도 주전자리에서 밀려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마드리드로 넘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카백업용'이라고 듣던 소리가 어느새 '이제 카카가 외질 백업이 되었다'라는 말로 바뀌었으니, 이정도 반응이면 더이상 외질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거나 다름없었다. 2010-11시즌에 외질이 쌓은 스탯 기록만 하더라도 53경기 출장 11골 26도움, 레알 마드리드 에이스인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와 필적할만한 기록이었다.

 

  분명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 호날두다. 그건 당연했다. 왜냐하면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였고, 그의 플레이는 그의 득점은 화려함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호날두 뒤에서 외질은 조연을 자청하면서 그에게 더욱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끔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리고 호날두를 도우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까지 장악했다. 그래서 이제는 레알 마드리드가 '호날두 마드리드' 뿐만 아니라 '외질 마드리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유럽에선 벌써부터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과 메수트 외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첫시즌부터 팬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남는 모습을 선사했으니 마드리디스모들은 벌써부터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레전드인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플레이나 역할, 활약상 등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단도 외질처럼 90년대 중후반, 2% 부족한 프랑스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프랑스를 본격적인 '아트 사커'로 이끌어나가며 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거인 클럽을 거치면서 그의 화려하고 우아한 축구는 절정에 치달으면서 두 거인 클럽을 유럽의 대표클럽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큰 공헌을 세웠다.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최근에 우승했던 챔스대회인 2002년 5월, 아직도 지단의 발리슛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는 은퇴한 뒤에서도 우리의 뇌리 속에 박혀있다.

 

  외질도 어찌보면 '독일판 지단'이라고 보여진다. 그의 등장과 함께 독일축구계 또다른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축구 르네상스를 구축하면서 독일을 최고의 자리에 끌어올렸다. 또한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2000년대 초반에 초강세를 띄었던 것처럼 외질의 합류 또한 그동안 라리가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레알 마드리드에게 본격적인 힘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레알 마드리드 단장으로 있는 지네딘 지단 또한 외질의 플레이에 매료된 나머지, 그를 극찬하면서 레알의 차세대 에이스라고 치켜세웠을 정도다.

 

  이번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외질에게 등번호 10번을 부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번을 달게 되면 두 번 다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땅을 밟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는데(일명 10번의 저주?), 그러한 속설을 떠나 원래 등번호 10번의 가치는 전통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들을 상징하는 번호다. 레알 마드리드에선 푸스카스, 벨라스케스, 시도르프, 호빙요, 스네이더가 거쳐갔다. 그에게 10번을 준 것은 외질의 팀내 공헌에 상업적 마케팅까지 더하려는 페레즈 회장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이제 외질의 플레이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독일 국대 내에서는 외질 없이는 안될 정도다. 레전드인 지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지단과 비교되고 있는 20대 청년 메수트 외질, 과연 그의 종착점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한 번 지켜볼 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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