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축구/호랑이의 집

2연전에 대처하는 울산과 수원의 자세

J_Hyun_World 2011. 8. 27. 08:00

 

 

 

(화끈한 빅버드의 수요일 밤, 하얗게 불태우고 결국 수원이 승리하는 시나리오였다)

 

 

하얗게 불태워 버린 수요일 그 날 밤, 그리고 양 팀이 입은 상처

 

  수요일 그 날 밤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는 밤이었다. 물론 여자친구와 단 둘이서 보냈던 그런 화끈하고 황홀한 그런 밤은 아니니깐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라. 빅버드 스타디움에서의 수요일 밤은 정말이지 당장에 비바K리그 엔딩에 나오는 전설의 K에 이 경기가 나온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던 명불허전 경기. 연장전 120분까지 써가면서 양 팀이 펼쳤던 경기는 FA컵 4강전이라는 걸 잠시 잊을 정도의 열기를 뿜어댔고, 마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는 듯한 스펙타클한 경기였다.

 

  전반전까지만 하더라도 양 팀은 서로 몸풀기에 불과했으나, 후반전에 접어들고 나서 후반에만 무려 4골이 터지며 극장경기로 연장전 끝나기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결승골이 터지면서 결국 수원의 극장경기로 마무리지었다. 스코어도 모든 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펠레 스코어 3대2. 울산이나 수원이나 수요일 밤을 아주 하얗게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하얗게 불태워버린만큼 그들이 입은 상처또한 매우 깊었다.

 

 

1) 울산의 상처 : 올인하면 왜 쫄싹 망하기 쉬운 지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 + 게다가 설기현도 잃었어요

 

(호곤씨가 올인빵 걸고 난 뒤에, 설기현이 미친듯이 날라다녔다, 하지만 그가 교체되고 나서 거짓말처럼 역전패 당했다)

 

  경기 시작 전, 호곤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번 FA컵 4강전 경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 모든 걸 걸어보겠다."고. 난 이미 그렇게 느꼈다. '아, 오늘 확실히 졌네...'. 울산은 호곤씨의 올인빵 발언 때문인지 수원을 상대로 그동안 사용해오던 4-2-3-1 전술 대신에 강민수-곽태휘-이재성 쓰리백을 두면서 수비문을 메우 두텁게 걸어잠궜다. 그 앞에 "코리안드림을 꿈에 안고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가장" 에스티벤을 중원에 풀어놓고 최전방에서 설기현, 김신욱 등이 수원의 센터백을 압박하면서 밀어부치는 전술로 들고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설기현의 최전방에서 지속적으로 수원 후방에 압박을 가하게 되니까 오범석-마토라인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범석이나 마토가 공을 잡으려고 할 때면 설기현이 그때그때 달려와서 마치 때릴 것처럼 위협을 주면서 그들의 잦은 실책을 유발하였고, 그 틈을 틈타서 2골을 꽂아넣으면서 빅버드 관중 전체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으며, 이제서야 설기현이 몸값만큼 하는가 싶었다. 그리고 에스티벤은 나홀로 수원의 미드필더 4명을 상대로 4대1 싸움에서 1이 이기는 말도 안되는 각본을 연출하면서 중원을 정복하는 정복왕이 되어버렸다. 에스티벤 하나 때문에 박현범은 물론이고, 이상호, 이용래마저 중원 밖에 튕겨나가는 현상도 보았다(내가 축구를 20년 가까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 프리뷰에서 언급했듯이 정말 내가 호곤씨를 형님으로 모시게 생길 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적★은 이루어진다"는 고슬기의 토스가 철저하게 망쳐놓았다. 안그래도 그 날 경기에 핸드볼에 대한 심판 판정이 상당히 애매해서 그 심판판정에 득 보던 울산이었는데, 고슬기의 대놓고 "성님 받아요 리시브' 가 결국 퇴장을 불러왔고, 한 명이 퇴장당하는 바람에 울산의 밸런스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두 골 넣은 설기현이 골넣자마자 다리에 쥐나서 교체되는 바람에 울산은 잠그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잠그기가 문제였다. 에스티벤이 중원에서 열심히 수원 미드필더를 구석으로 튕겨내느라 전진하는 사이에 수비와 미드필더의 공간이 커져버린 것이다. 공간이 커지다보니 수원의 역습에 무리하게 반칙으로 끊는 상황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데드볼리스트인 염기훈에게 자원봉사한 꼴이 되었고, 그렇게 동점골 2골을 내주며 종료 3분 전에 주도권을 홈팀 수원에게 반납했고, 결국 박현범의 결승헤딩골로 울산은 다 날렸다.

 

  안그래도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이 자주 생겨서 매번 이것이 문제됐음에도 울산은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은 채, 올인에 임한 것이다. 에스티벤이 두 명이었다면 맘놓고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호나 고슬기는 에스티벤에 비해 중원장악력이나 커팅 능력, 패싱이 너무나도 후달렸던 게 문제였다. 그렇기에 에스티벤이 제아무리 중원을 혼자 씹어먹었다고 해도 패스가 짧게 짧게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고, 계속 최재수나 곽태휘가 롱패스로 전방으로 툭 차주는 킥앤러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명이 퇴장당해버렸으니 중원의 밸런스는 그냥 와르르 무너진다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수원전에서 날라다닌 설기현이 정작 리그경기에선 경고누적으로 결장하는 상황이기에 측면의 무게가 한 쪽으로 심하게 쏠리게 생겼다.

 

 

 

2) 수원의 상처 : 마토, 마토, 마토... 심하게 떨어지는 중원 압박능력, 그리고 배터리 방전

 

(수원이 역전승 하긴 했지만, 이 경기에서 마토의 존재가 상당히 계륵이 되어버렸다는 걸 느꼈다)

 

  수원이 안방에서 극강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3대2 펠레스코어로 울산의 올인을 무너뜨렸다. 확실히 수원의 해결사인 염기훈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고, 그의 어시 해트트릭이 수원이 밀리던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키는 반전카드로 발동되었다. 하지만, 수원도 경기에서 이기긴 했지만, 울산전을 통해서 꽤나 많은 출혈을 하였고, 이 경기에서 너무나 많은 약점을 노출시킨 게 문제다.

 

  일단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마토다. 마토, 수원에서 마토라는 존재는 '통곡의 벽'으로 불리며 한 때 K리그를 대표하는 센터백이었고, 그의 벽을 넘어서기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또한 수원이 화력쇼를 맘껏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뒤에서 그가 든든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마토는 이미 오래 전의 마토였지, 지금의 마토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곽희주의 부상, 최성환의 경고누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중앙 수비 자원에 마토는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소방수로 나섰으나, 되려 수원에 불질러버리는 꼴이 되었다. 그는 경기 내내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에, 울산의 전면 압박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TV에 자주 잡혔다. 마토가 흔들리기 시작해버리니 옆에 있던 오범석까지 물들면서 수원의 센터백은 늪 속으로 빠지게 생겼다. 그리고 설기현의 2골을 넣는 데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도 바로 마토. 후에 2대2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구세주가 되긴 했지만, 그가 이미 계륵이 되어버렸다.

 

  두번째는 바로 중원 싸움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알바하면서 몰래 컴퓨터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이 날 경기에서 박현범을 비롯하여 이용래, 이상호 등이 카메라에 거의 잡히지 않았다. 나는 순간, 얘네 전부 교체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에스티벤 한 명을 상대로 수원 미드진 전부가 쩔쩔매면서 중앙에서 구석으로 다 튕겨난 것이다. 수원의 중원의 네임벨류만 따져서는 어떠한 다른 K리그 팀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지만, 의외로 가까이에서 타이트하게 압박하는 모습에선 너무나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박현범이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긴 하지만, 박현범은 패싱부분에서 좋지만, 압박능력이나 활동량 부분에서는 조금 부족한 모습이었고, 이상호의 경우, 활동량은 왕성하지만 오히려 공격쪽에 능하기에 수비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이용래 또한 공격적인 성향이 짙다보니 에스티벤처럼 전형적인 홀딩 미드필더가 압박을 가해오기라도 하면 맥을 못추린다. 이거 때문에 최전방 스테브에 연결되는 패스도 짧고 간결하다기 보단 롱패스 위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원의 또 하나의 문제점 이 경기에서 주전 선수들 모두 FA컵에서 체력을 다 쏟아부은 상태다. 정말 선수단 전부 하얗게 불태워버린 나머지 방전되어버렸다. 마음같아서는 수원 선수들 등짝에 에너자이저를 끼워 충전시키면 참 좋겠지만, 수많은 선수들이 줄부상에 전력이탈해버리는 바람에 울산전에 뛰었던 선수들이 그동안 계속 뛰어온 것이다. 아무리 수요일 경기였다고 3일간의 여유가 있다곤 하나,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마일리지 적립 포인트처럼 계속 쌓여있는 수원이기에 울산 원정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히 부담스럽기 그지없다(KTX가 있다해도 장거리 여행은 원래 피곤하잖나). 그냥 울산원정경기 포기하고 집에서 쉬고 싶을 것이다.

 

 

 

2연전에 대처하는 울산과 수원의 자세

 

 

1) 울산의 자세 : 목표상실, 우리는 이제 뭐 어떻게 해야하죠?

 

  이미 울산은 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도 사실상 멀어졌다. 아직 반전의 여지가 있고 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산술대로 남은 경기 다 이기면 가능하지), 8월달에만 울산은 승점 1점조차 쌓아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 서울이나 성남전은 그럴 수 있다고 친다 하더라도, 약체인 대전에게 1대0으로 패배했으니 울산은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상황이다. 겨우 허울뿐인 종이컵에 전력을 다 쏟아부었고, 감독마저 종이컵 우승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니 사실상 리그 경기에서 더 잘하고자 하는 의욕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FA컵 마저 탈락했으니, 울산은 아무래도 다음시즌에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아챔은 포기한다"라는 말이 왤케 맴도냐..).

 

 

  목표를 잃은 리그 경기에서 그나마 수원전에서 울산의 키플레이어라고 꼽자면, 나는 최재수를 꼽는다. 설기현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하기 때문에 최전방으로 이어지는 패스 공급루트는 더욱 더 줄어든 셈이다. 그렇기에 유일한 공급책인 최재수의 왼발이 매우 무거울 것이다. 상무를 제대하고 2009년 울산에 입단한 이래, 구단의 충실한 일꾼으로 활약한 최재수는 현재 울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기록하고 있으며(9도움), 수원에 염기훈 못지 않게 날카롭고 정교한 왼발을 장착하고 있다. 더군다나 김호곤 감독이 이 경기에서 또 킥앤러쉬 혹은 롱볼패스로 경기를 운영한다면, 최재수의 크로스에 높은 의존도를 보일 게 분명하다(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울산이 이길 것 같진 않아).

 

 

2) 수원의 자세 :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전부 다 노릴 것이냐?

 

  윤성효 감독도 이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현재 수원이 노리고 있는 대회는 FA컵, 리그, 그리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인데, 모든 대회를 다 소화하기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턱없이 모자르며, 에너자이저 백만돌이들이 한 네다섯명씩 필요한 상황이다(충전요망). FA컵, 리그, 아챔 모두 다 정복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대회의 우선순위를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원의 핵심선수들이 월드컵 조별 3차예선에 차출되기 때문에 더더욱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원은 울산 원정경기에서 무리하게 풀전력을 가동할 필요가 있을 지 생각해봐야 한다(로테이션으로 나와도 수원이 이길꺼야 아마).

 

 

  아무리 수원이 로테이션으로 일부 선수들을 교체한다고 해도, 수원 주장인 염기훈은 그대로 선발출격할 것이기에 수원의 키플레이어로 꼽았다(사실 스테보를 꼽으려고 했으나, 게인리히가 선발로 나올 것이라는 반응이 제법 많아서 내 의견은 그냥 접어두었다). FA컵 기록까지 포함하여 올시즌 10-10 클럽을 넘어선 염기훈의 포스는 여태껏 보여줬던 모습보다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장완장까지 차서 그런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그가 뭔가 하나 해줄 것만 같은 그러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실제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편이 많다). 수원의 모든 공격흐름에 있어서 그를 거쳐가지 않는 경로는 없다. 무조건 염기훈을 거쳐야만 골이 터진다. 문수경기장에서 과연 그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조금 겁난다.

 

 

 

  이번주 2연전으로 아주 상대를 질리도록 보고 있는 울산, 그리고 수원. 그 2연전에 대처하는 그들의 마지막 자세는 어떻게 끝날 것인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이 경기 안볼꺼다. 괜히 울산 경기 봤다가 또 혈압 오를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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