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살다 아챔결승전을 홈에서 보다니!! 으어니!!)
옛날 마야인의 예언처럼 지구가 올해 멸망할 징조인가? 내가 울산빠 20년을 하면서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감히 예상하지도 못했다. 울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을 넘어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전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것에 모자라 아챔 결승전을 무려 울산의 홈경기장인 문수 호랑이굴(문수 경기장의 다른 별칭)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반도 전역(아, 해외에 계시는 내가 아는 울산빠까지 포함)에 있는 모든 울산빠들이 극도로 흥분상태다. "살다살다 아챔결승전을 홈에서 보다니!!" 현재 울산 구단 공식 계정이 마케팅 홍보를 하면서 위의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내걸도록 유도한 덕분에, 내가 트위터를 켜면 김신욱 등짝을 플픽(트위터 프로필 사진의 준말) 때문에 혼란스럽다(대체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글쓴이 또한 이번 주말에 열리는 아챔 결승전을 보러 가기 위해 고향 울산을 4년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울산이 아챔결승전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은 제3자들이 왈가왈부하고 있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언제부터 울산을 그렇게도 빠삭하게 알았다고, 울산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도 적잖게 나왔다. 주로 나오는 말이 '울산에는 왜 이리 관중이 없는가?', '울산은 축구 열기가 없는 도시인가?', 심지어는 이틀 전 아침 기사에는 울산더러 서울로 연고이전하라는 말같지도 않는 기사까지 나왔다. 울산이라는 명문팀 타이틀에 비해 요근래 관중이 많이 안왔다는 수치 하나만으로 오만가지 억측과 루머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불편하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울산을 향하여 네거티브 공격을 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울산에게 무슨 뒤통수라도 맞았던가?). 타지역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이런 반응이니, 내가 직접 나서서 울산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한 번 깨뜨려보려고 한다.
1. 울산은 원래 관중이 없는 팀이다?
(울산이 원래 인기가 없는 팀? 그렇다면 1990년대 공설운동장 시절과 2006년까지 울산은 어떻게 설명할래?)
가장 많이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울산이라는 구단이 연고지인 울산에서는 인기가 없는 팀이고, 관중 동원이 참 안되는 팀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전문가들도 그런 늬앙스로 보도한 적이 참 많았다. 심지어는 옛날부터 울산은 관중없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천만의 말씀, 울산은 전혀 그러한 클럽이 아니다. 1998년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예시로 한 번 들어보려고 한다. 당시 포항 원정에서 역전패를 당해 반드시 홈경기에서 승리를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울산과 포항의 라이벌 경기를 보기 위해, 혹은 울산의 역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울산 공설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나도 그 현장에서 김병지의 헤딩골을 보면서 흥분했었다.
그렇게 포항을 꺾고 올라간 울산은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공설운동장에서 치뤘다. 당시 공설운동장 최대수용인원은 대략 2만명에서 3만명 사이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챔피언결정전이다 보니 수많은 울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관중석이 꽉 차다 못해 경기장 바로 근처에 있는 육상트랙까지 관중들이 점거하고 경기를 봤다. 당시 공설운동장 바깥 부분 중 일부가 잔디로 언덕을 만들다보니 그쪽으로 이용하여 올라가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울산의 인기는 상당했다. 비록 경기는 신홍기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대0으로 패배했지만, 당시 관중은 4만명을 넘겼다. 1990년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5년 챔피언결정전으로 가도 그러하다. 당시 인천과의 경기에서도 수많은 울산 시민들이 호랑이굴 일반석을 가득 채워 울산 경기를 지켜보았고, 1,2차전 합계하여 울산은 6대3으로 리그 챔피언에 올라섰다.
(2005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의 문수 호랑이굴 일반석 모습. 이래도 지지기반이 없나?)
이 정도만 하더라도 과연 울산의 지지기반이 없다라고 말을 꺼낼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관중 수야 성적만 꾸준히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고, 구단이 조금만 더 신경쓰면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울산 지역적 특성 때문에 평일 저녁 관중 수가 적게 오는 점(문수 호랑이굴이 울산 중심가에서 다소 거리가 있고, 공설운동장시절 매번 찾아오던 현대자동차/중공업 근로자 분들의 퇴근 시간을 고려한다면 좀 힘들긴 하다)도 있지만, 분요드코르전에 무려 8000여명이 왔다. 솔직히 평일 저녁 관중수로만 비교한다면 다른 구단의 홈경기장도 그렇게 많이 오질 않는다. 관중동원력 1위인 수원도 평일저녁엔 1만명 겨우 겨우 넘겼던 적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과연 울산의 잘못일까?
관중 드립을 운운하면서 서울로 연고이전하라는 시덥지 않은 글을 보면서 한마디 하자면, 서울로 연고이전한다고 해서 과연 울산이 서울에서 사랑받는 팀이 될 것이고, 팬층이 갑자기 늘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팀들도 서울로 연고이전한 케이스가 많지만, 그들이 서울로 옮겨가서 단번에 인기있는 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서울로 옮겨갔던 야구팀 히어로즈나 농구팀 삼성 썬더스와 SK 나이츠만 보더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종목에서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연고이전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축구팬들이니 서울로 연고이전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기존에 서울을 연고로 두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니 멀쩡한 지역구단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삼가하길 바란다.
2. 울산에서 축구는 인기 없는 종목이다?
그리고 울산에 대한 오해와 편견 중 하나는 울산에서 축구는 전혀 인기가 없는 종목이라고들 한다. 글쎄, 내가 생각하기엔 울산만큼 축구가 일상생활화 되어있는 곳은 한국에서 울산이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여러 도시에서 축구수도, 축구특별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정작 프로축구 팀 이외에 축구가 일상생활화 되어있지 않다. 내가 현재 수원에 거주하고 있지만 수원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더라도 축구를 일상생활화 하진 않는다. 인구가 가장 많다는 서울에서도 이정도는 아니다. 울산의 축구 인프라가 어느정도인지 한 번 소개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현대스리가'다. 현대중공업 내에서는 한 때 이 리그를 사내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울산의 경우에는 K리그 팀인 울산 이외에 내셔널리그 팀인 울산 미포조선도 있다. 축구팀에 모자라 울산 사람들은 '보는 것에만 성이 안차서 내가 직접 공을 차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현대중공업에서 주관하던 현대스리가라 불리는 리그도 있고, 울산 사람들이 참가하는 아마축구 울산리그도 존재한다. 또한 선수출신이 아닌 초중고 학생들이 팀을 짜서 만드는 리그도 존재하고 있다. 한 때, 이 학생들이 리그 참가할 때 만들던 팀 이름이 매우 재밌어서 한동안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울산과 축구는 수어지교 관계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먼저 현대스리가라고 불리는 현대중공업 사내 축구대회는 계열사까지 포함하여 무려 230개의 팀들이 참가할 만큼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농담삼아 나오는 말이 현대중공업에서 축구를 잘하면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중공업 내에서 축구열기는 상당하다(유럽 여행 중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다니는 형님도 실제로 증언했다. 공 한 번 삽질할 때, 회사업무처리 못할 때보다 더 욕 먹었다며...). 그저 단순히 사내에서 하는 축구대회인데도 나름대로 리그 승강제가 존재하고 실제로 3부리그까지 존재한다. 70개팀 씩 묶여서 예선에서 탈락하게 되면 강등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냥 시즌만 치르는 게 아니라 비시즌기간에도 전력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젊은 신입사원 확보는 물론이겠거니와, 단합을 위해 MT도 간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 현대중공업 사내방송인 HHBS에서도 경기 중계를 해준다고 한다.
(흔한 한국의 어느 도시 아마추어 리그 순위표 및 리그 일정. 한국에 있는 도시 중 울산만큼 축구에 미친 도시는 없다. 사진출처 아마축구 울산리그 홈페이지)
현대스리가만 치열한 것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밖으로 나가면 아마축구 울산리그가 존재한다. 아마축구 울산리그는 2000년 9월에 8개팀으로 처음 개최되어 올해로 벌써 13년차를 자랑할 만큼 내실이 탄탄한 리그다. 이 리그는 특이하게도 추춘제로 운영(이번 2012시즌은 춘추제로 하는 것 같다)하면서 매월 1경기~2경기를 주말에 치른다. 2000년에 8개팀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덧 참가하는 팀이 26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울산 구단에서도 운동장을 제공해주고, 울산과 더불어 메인 스폰서인 KB 국민은행이 리그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을 정도다. 물론 여기에 참가하는 건 반드시 울산에 소속된 팀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울산 외부에 있는 타지역 출신 팀들도 언제든지 참가할 수 있을 만큼 참가조건이 상당히 간편하다(20명만 모으면 만사 OK라 할 정도). 여기에도 3부리그까지 존재한다.
아마축구 울산리그의 또다른 특징을 꼽자면, 이 사이트를 통해서 내셔널리그, 챌린저스리그를 포함하여 중고등학교+대학교 축구리그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무려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도 지원이 된다). 이정도면 과연 울산이라는 도시에서 축구가 인기없는 종목이라는 말이 더이상 나올 수 있을 지가 의문이고, 축구기반이 부실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가 의문이다. 게다가 울산 동구로 가면 잔디가 깔린 경기장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공차러 오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그렇기에 더이상 울산에 대해 축구의 부정적인 늬앙스는 삼가하길 바란다. 아직까지 울산 구단이 이러한 지지기반을 100% 살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아마축구 리그에서도 지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역과 연계가 없진 않다.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단계일 뿐이다.
3. 울산은 스타플레이어 혹은 이야기가 없다?
(한 때, 울산은 스타플레이어 혹은 이야기가 없다는 식으로 표현되면서 수도권 팀들에 비해 다소 주목을 덜 받았던 적도 있었다)
요즘에는 아챔효과 덕분인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한 때 울산에게 따라붙던 수식어가 있었다. 명문 팀이라는 네임밸류에 비해 스타플레이어나 스토리가 없다는 식으로 언론에서 보도하곤 했다. 그만큼 울산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수도권 팀들에 비해 그닥 높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구단 측의 언론플레이가 부족한 측면도 있겠지만, 언론에서 지나치게 수도권 팀들 위주로 밀어주는 경향도 제법 많았었다. 그렇게 지나치게 특정 팀, 특정 지역 위주로 언론에서 보도가 많이 나가다보니 졸지에 울산이라는 명문 팀이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 팀, 또는 그저 그런 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울산과 포항의 더비경기인 동해안 더비만 하더라도 수원과 서울의 슈퍼매치보다도 상당히 열기가 덜하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하는 것이다(정작 슈퍼매치는 언론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더비임에도 말이다).
사실 까놓고 말해 울산은 K리그가 처음 창단할 때부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이야기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낸 명문클럽이다. 하지만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소 주목을 덜받아왔다. 이 문제는 사실 울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포항이나 부산같은 명가팀들도 물론이겠거니와 지방팀, 시도민구단들이 대부분 겪고 있는 문제이다. 항상 이들이 주요 언론에서 오르내리려면 해당 구단의 부정적인 사건이라든지 아니면 큰 대회에서 이뤄진 성과물이 아닌 이상은 웬만해선 찾기 힘들었다. 일부에서는 특정 클럽을 밀어주는 것이 리그의 발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단기적인 리그 성장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선 기형적인 리그 구조를 만들어내고 부익부 빈익빈 리그로 바뀔 것이다.
한 달 전에 각 구단별 흥행도 등을 측정하는 기사가 나왔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지나치게 수도권 특정 팀 편향기사로 써놓고 아예 지방클럽들을 싸그리 무시하여 평가질 했다(실상 오히려 지방클럽들이 뛰어난 마케팅을 들고 나왔음에도 말이다). 실상은 분명 그렇지 않음에도 이런식으로 기사가 나가게 된다면 아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새로 유입되는 국내 축구팬들은 이러한 오보가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울산도 재미없는 축구니 뭐니, 관중이 없다느니 뭐니로 언론의 근거없는 소문과 전문가들의 깊이없는 평가로 숱한 곤욕을 치뤘다. 작년 챔결 1차전에 무료관중 동원도 실상 연맹과 방송사의 배려없는 일방적 통보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에도 무료로 2만명 끌고왔다는 것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만큼 언론의 보도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는 소리며, 그들에게 좀 더 정확하고 깊은 분석을 요구하고 싶다.
내일이면 울산은 클럽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문수 호랑이굴에서 치르게 되며, 나 또한 경기 당일에 N석에서 보고 있을 것이다. 우승하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울산이 결승전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내심 기쁘다. 아챔도 아챔이지만,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울산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이 많이 깨졌으면 한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울산팬들이 소수이다 보니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오해와 편견들이 쌓이고 쌓이는데, 아니라고 대답해주는 이들이 많이 없었다. 이 글이 널리널리 퍼져서 울산에 대한 이상한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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