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건너축구/국가대항전

'차세대 레블뢰 스타'로 불렸던 그들,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J_Hyun_World 2013. 1. 23. 08:00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화려했던 레블뢰의 황금 라인업

 

(당시 세계최강 브라질과 대등한 전력을 갖추면서 세계 축구계의 한 획을 그었던 프랑스 국가대표팀)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패트릭 비에이라, 마르셀 드사이, 디디에르 데샹, 윌리암 튀랑, 로베르 피레, 유리 조르카예프, 파비앙 바르테즈, 다비드 트레제게, 비센테 리자라쥐.... 이름 하나하나가 별이나 다름없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레블뢰 군단을 수놓았던 화려한 이름들이다. 전설인 미셸 플라티니가 축구화를 벗은 이후, 프랑스는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진출 실패를 하면서 한동안 침체기에 빠지는 듯 했다. 1998년 절치부심한 프랑스는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하여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올라가면서 16강 파라과이전에선 블랑의 골든골로 승리, 8강에선 라이벌 이탈리아와 승부차기 접전끝에 이기면서 승승장구했다. 4강에선 돌풍의 크로아티아를 잠재우면서 끝끝내 결승전에 올라간 프랑스, 우승후보 0순위인 브라질을 상대로 3대0 완승을 거두면서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알렸다. 이것이 레블뢰 군단의 새로운 전성기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유럽 각지 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프랑스 선수들은 유로 2000에 출전하여 다시 한 번 유럽의 챔피언은 프랑스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결승전 상대는 98년 8강에서 승부차기 접전까지 치뤘던 이탈리아였고, 그들을 또 한 번 꺾고 우승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 프랑스에게는 큰 시련을 주었고, 본선조별리그 탈락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심점인 지네딘 지단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유로 2004에서 만회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8강에서 탈락하면서 프랑스는 우승후보라는 체면을 구겼고, 설상가상으로 지단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긴 했으나, 그들을 잡아줄 구세주가 없었기에 지단은 극적으로 복귀했다. 그들이 가까스로 조별리그 통과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는 이제 끝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16강에 접어들면서 프랑스는 <AGAIN 1998>을 외치는 듯이 토너먼트에서 보기좋게 부활하였다. 당시 최고의 공격진을 구축한 스페인을 상대로 프랑스는 3대1로 격침시키면서 그들을 떨어뜨렸으며, 백전노장인 지단이 쐐기골까지 성공시켰다. 그리고 8강에서는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딱뜨렸던 브라질, 티에리 앙리의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경기는 사실상 '지단 vs 브라질'의 경기나 다름없었으며 지단 혼자서 브라질 국가대표팀을 철저하게 농락했던 경기로 꼽힌다. 준결승전에선 포르투갈을 만났고, 이때도 지단의 PK골이 결승골이 되어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결승전 상대는 재밌게도 이탈리아였다. 비록 라이벌 관계지만 최근 이탈리아에게 패하지 않았던 프랑스였고, 이탈리아가 연장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입장이기에 어느정도 프랑스에게 우세한 경기로 점쳐졌으나, 지단이 마테라치의 도발에 참지 못하고 머리박치기로 퇴장당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고, 다비드 트레제게가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바람에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우승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그렇게 프랑스의 전성기는 2006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차세대 레블뢰 스타'로 불렸던 프랑스 유망주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네딘 지단이 은퇴한 이후, 프랑스에서는 그를 대신해 줄 유망주들을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단이 축구선수로서 은퇴를 완전히 선언한 이후, 프랑스는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9할이 지단의 존재감 덕분이었지,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의 첨성술 영향이 결코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단이 은퇴한 후, 새롭게 꾸려나간 유로 2008 대회. 여기서 프랑스는 죽음의 C조(네덜란드-이탈리아-루마니아-프랑스)에 걸려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골을 넣는 데 그치면서 꼴지로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다. 팀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조직력도 엉망이고, 감독의 무능력함이 드러났던 대회였다. 이럼에도 정신 못차린 프랑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앙리의 핸드볼 사건으로 아일랜드와의 플옵에서 석연찮게 올라갔던 프랑스는 2002년 월드컵 악몽이 재현되어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A조 꼴지로 광탈했다. 거기다가 항명사태와 파벌싸움까지 나타나면서 겉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러한 프랑스가 암흑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들은 지단을 대체할, 나아가 프랑스를 이끌어갈 수 있는 차세대 유망주가 나타나길 기도했고, 매시즌마다 프랑스 자국리그인 리게 앙에선 '포스트 지단' 혹은 '포스트 앙리' 라는 수식어가 붙은 숱한 프랑스 유망주들을 배출해내고 있으니, 그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허나, 이러한 수식어가 붙은 선수들 중에서 현재 프랑스 국가대표선발에 입성하기까지 과정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매우 많고, 이제 몇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편에 '차세대 레블뢰 스타'로 불렸던 유망주들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에 대해 한 번 조명해보고자 한다.

 

 

 

1) 카림 벤제마(1987년 12월 19일생, FW, 레알 마드리드)

 

(클럽에서도, 국대에서도, 프랑스 선수들 중 가장 최상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카림 벤제마)

 

  '차세대 레블뢰 스타'로 불리던 선수들 중에선 카림 벤제마가 그 명성값 이상을 해내고 있지 않나 싶다. 벤제마는 어릴적부터 주목받아 9살에 리옹 아카데미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전 소속팀인 올림피크 리옹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워낙 재능이 뛰어나고, 평소에도 예의가 바르고 신중하다는 평을 듣던 그는 빠른 속도로 모든 단계를 거쳐 2004/05 시즌에 리저브팀으로 데뷔하여 4부 리그 경험도 하였다. 리옹 1군에 합류할 당시에는 마이클 에시앙, 플로랑 말루다, 에릭 아비달 등 리옹의 슈퍼스타들 앞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면서도 "웃지마라, 난 너네 자리를 차지하려고 왔다."는 말을 남기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알랭 페렝 前 감독의 지시에 따라 양쪽 윙포워드와 센터 포워드까지 소화하기 시작하였고, 2006/07 시즌에 리그 37경기 24골을 넣으면서 확고한 주전자리를 굳혔다. 그 덕에 등번호도 다음 시즌에 10번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2007/08 시즌에는 51경기 31골(리그+챔스+쿠프 드 라 리게+쿠프 드 프랑스 합산)을 기록하였고, 리게 앙의 모든 상을 싹쓸이함과 동시에 2008년 발롱도르 후보에도 오르기도 했다(퍼거슨 감독이 그를 탐내기도 했다).

 

  그런 활약을 보상받아 2009년 7월 2일, 벤제마는 35M 유로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 등 슈퍼스타들을 긁어모으면서 뉴 갈락티코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첫시즌의 벤제마는 영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방출설과 트레이드설로 온갖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부진에 시달리던 그를 구제해준 사람이 바로 조세 무리뉴였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벤제마 길들이기에 나섰고, 그 결과로 벤제마는 2010/11 시즌 후반기부터 폭발하면서 레알의 또다른 해결사로 우뚝섰다. 그 다음시즌이었던 2011/12 시즌부터는 동갑내기 동료인 곤잘로 이과인을 제치고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총 52경기 32골을 뽑아내면서 호날두 다음으로 많은 득점력을 뽑아냈다. 그러한 활약은 유로 2012에서도 나타났다. 비록 유로대회에서 득점을 뽑아내진 못했으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상대수비를 벗겨내거나 연계플레이 등을 통하여 팀의 구심점이 될 수 있겠다라는 가능성을 내비쳐줬다. 지단에 이어 등번호 10번을 괜히 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어쩌면 이제 벤제마 위주의 프랑스 대표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앙리 혹은 트레제게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2) 사미르 나스리(1987년 6월 26일생, MF, 맨체스터 시티)

 

(포지션이나 출신지, 그리고 지단과 같은 마그레브인의 후예라는 점에서 많이 닮아있는 사미르 나스리)

 

  사미르 나스리는 "포스트 지단"이라 불렸던 선수들 중에서 닮은 점이 가장 많다. 지단과 똑같이 알제리계 마그레브인(마그레브 : 북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이고, 고향도 똑같이 마르세유라는 점도 지단과 똑같다. 나스리도 벤제마처럼 9살에 마르세유 아카데미에 들어간 이후, 7년간 마르세유 유스생활을 거쳐 2004/05 시즌 마르세유 1군으로 데뷔식을 치뤘다(그당시 나스리를 주시한던 잉글랜드 클럽들이 많았다). 2005/06 시즌 주전멤버로 분류된 이후, 그는 당시 슈퍼스타였던 프랑크 리베리와 지브릴 시세의 뒤를 받쳐주면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르세유에서 166경기를 뛰는 동안, 올해의 젊은 선수상과 올해의 팀 베스트 11 안에 선정되는 등 자신이 쓸어갈 수 있는 개인 타이틀은 다 쓸어갔다. 그리고 2008년 7월 11일, 오랫동안 나스리를 지켜보왔던 아르센 벵거의 손에 의해 그는 아스날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12M 파운드. 등번호 8번을 부여받음과 함께 데뷔전이었던 슈투트가르트와의 챔스 플옵전에 데뷔를 시작하였고, 리그 개막전이었던 WBA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면서 그의 잉글랜드 생활은 순로조웠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페르시 등과 함께 아스날의 공격을 책임져가던 나스리, 마르세유에 비해 아스날에서 뛰면서 몰라볼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아스날의 슈퍼스타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마치 로베르 피레를 연상케끔 했다. 하지만 아스날이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함과 그에 대한 우승의 갈증을 참지 못했던 나스리는 2011년 여름 맨시티로 돌연 이적해버리면서 "아스날의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 시즌에 맨시티가 리그 챔피언이 되어 그도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으로 개인적인 만족을 충족시켰을 지는 몰라도 상당수의 안티지분을 얻어가는 대가도 치뤄야만 했다. 국가대표에서 나스리의 생활은 롤러코스터였다. 세대교체의 중심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보이긴 하나, 2010년 월드컵 당시 윌리엄 갈라스와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현재도 진행중이다), 마그레브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내에서도 그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제법 많다(지단도 한 때 마그레브라는 점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유로 2012 때는 자국기자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여 징계까지 받은 적도 있다. 확실히 뛰어난 재능을 지닌 슈퍼스타인건 분명하나, 외부의 적 때문에 나스리 자신도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

 

 

 

3) 아템 벤아르파(1987년 3월 7일생, MF, 뉴캐슬)

 

(한 때, 악동으로 불리었지만 뉴캐슬에서 날개를 활짝 편 벤아르파. 이젠 어엿한 프랑스의 슈퍼스타다)

 

  벤제마나 나스리와 달리 벤아르파는 좀 다른 유형이다. 뭐랄까,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를 벤제마나 나스리가 가지고 있었다면 벤아르파는 전형적인 악동기질을 지닌 유망주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프랑스에서 가장 남다른 클래스를 지닌 초특급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기량은 그 어떤 부분에서 폄하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마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카사노같은 "악마의 재능" 소유자였다. 그랬기에 그가 리옹으로 입단하기 전에 첼시와 아약스에서 그를 노리고 영입하려고 공을 꽤나 들이기도 했다. 벤제마와 함께 리옹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간 벤아르파, 알랭 페렝 前 감독 밑에서 벤제마와 함께 리옹의 세대교체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파괴력넘치는 크랙기질을 선보여 리옹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맨유나 레알 마드리드까지 그를 잡으려고 액수를 준비 중이었다. 허나, 벤아르파는 2008년 여름 마르세유로 이적했다. 바로 절친했던 벤제마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마르세유로 이적해서 잠잠해질줄 알았지만, 팀을 옮기고 나서도 벤아르파는 감독 및 구단과의 불화를 만드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트러블메이커로 찍히다보니 마르세유에서 주전이 아닌 로테이션이나 후보선수로 전락해버렸다. "차원이 다른 유망주"라고 평가받던 리옹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하기에 짝이 없었다. 마르세유에선 "더 큰 클럽으로 이적하고 싶다."고 말썽을 일으키면서 당시 디디에르 데샹 감독과 갈등을 빚어 결국 선임대 완전이적 조건으로 뉴캐슬로 떠났다. 영국으로 날아간 벤아르파, 나이젤 데용의 살인태클로 시즌아웃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나, 다음 시즌 섀도스트라이커와 윙어로 번갈아 활약하면서 단숨에 예전의 기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리옹시절의 그 크랙커 모습말이다. 그 활약을 사서 유로 2012 국가대표팀 명단에 뽑히긴 했지만, 그 악동기질이 국가대표에서 발동되었다. 당시 로랑 블랑 前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과 크게 마찰을 빚어 징계까지 먹으며 다시 문제아로 찍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블랑 후임으로 대표팀 감독으로 앉은 사람이 하필이면 마르세유 시절에 벤아르파와 충돌했던 디디에르 데샹이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고 천명하였으니, 과연 벤아르파는 프랑스 대표팀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최근에 벤아르파가 PSG로 이적하고 싶다는 말을 남겨 뉴캐슬을 흔들어대고 있다. 

 

 

 

4) 요앙 구르퀴프(1986년 7월 11일생, MF, 올림피크 리옹)

 

(또다른 '포스트 지단'이라 평가받는 미남 미드필더, 요안 구르퀴프. 사진출처 알레리옹님 블로그)

 

  벤제마, 나스리, 벤아르파 이외에 또다른 '차세대 레블뢰 스타'로 평가받는 이가 있으니 바로 미남 미드필더인 요안 구르퀴프이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축구선수다(아버지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로리앙 감독). 출신지나 마그레브인 점에서 나스리가 지단과 똑같다면, 구르퀴프는 플레이스타일면에서 지단과 똑같다(그는 지단처럼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아버지 밑에서 축구를 시작했다가 렌스로 이적한 그는 일찍부터 남다른 재능을 선보이며 2006년 여름에 이탈리아의 명문클럽인 AC밀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구르퀴프는 밀라노 생활이 영 즐겁지 못했다. 절반은 부상으로 날리고, 나머지 절반은 주전자리는 커녕 서브 멤버로도 명단을 올리기 힘들었다. 카카를 비롯하여 동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의 입지가 워낙 컸던 탓이다. 그러다 2시즌만에 밀라노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복귀했다. 블랑 감독이 있던 보르도였다. 블랑이 구르퀴프 중심으로 보르도를 새롭게 재편하면서 구르퀴프는 '포스트 지단'으로 불리던 시절로 되돌아왔다. 마치 보르도 시절 지단을 연상케했다.

 

  구르퀴프를 앞세운 보르도는 결국 2008/09 시즌 리게 앙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면서 6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구르퀴프는 생애 최초로 프랑스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 그는 왕따를 당했다. 도메네크 감독이 지나치게 구르퀴프를 편애한 것이 화근이 되었고, 지단과 달리 개성이 강한 프랑스 대표팀을 다스리는 데 부족한 면모를 보였던 구르퀴프였기에 아넬카, 리베리와 불화를 일으키면서 프랑스의 조직력은 완전히 콩가루가 되어버렸다(결국 도메네크의 무모함에 구르퀴프가 희생된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그는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했으나, 그 생활도 그리 즐겁진 못했다. 당시 전술의 중심이었던 피야니치가 있었고, 부상에 계속 시달리면서 첫시즌부터 먹튀 소리까지 들었다. 다행히 부상을 완전히 털어버렸고, 이번시즌에 리옹에서 꾸준한 활약으로 예전 기량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구르퀴프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인간관계가 좁다는 것이 어떻게 다시 발목을 잡을 지 걱정이 되긴 한다. 그가 한단계 더 성장하려면 자신의 성격을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프랑스 국적의 선수들 중에서는 분명히 탁월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 많고, 그 선수들이 전국 각지에서 맹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하지만 각 클럽 소속으론 빛날 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라는 국가대표팀 안에서는 자신들의 기량보다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전혀 팀플레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지네딘 지단은 화려한 플레이만 갖춘 것이 아니라 뛰어난 리더쉽까지 겸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랑 블랑 前 감독이 A매치 21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워놓고 경질된 이유와 디디에르 데샹 現 감독이 고민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프랑스 캡틴 출신인 블랑과 데샹이 이들이 지금 선수생활을 했더라면 이런 고민은 없었을텐데). 앞서 소개했던 스타플레이어들 중에서 구심점이 나올 지, 아니면 새로운 제3의 인물에서 나올 지, 이것이 향후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다 읽으시고, 밑에 있는 VIEW를 눌러서 추천해주시면 저에게 크나큰 도움이 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