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유럽 팀 최초로 남미대륙에서 월드컵 우승을 기록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4번째 우승을 만들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6월 11일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하여 장정 한 달 넘는 시간동안 펼쳐졌던 2014 브라질 월드컵, 결국 독일이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연장 접전 끝에 1대0으로 잡고 AGAIN 1990를 외치면서 그들이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유럽팀 최초로 남미대륙에서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팀이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32개팀들 중 그 어느 팀보다도 막강하고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였고,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7전 6승 1무 18득점 4실점이라는 스탯이 독일이 얼마만큼 강력한 우승후보였고, 그러한 기대치를 증명했는지를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독일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단순히 독일 한 팀만 치켜세우고 정리하기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많았고, 그 요소들이 이번 대회에서 모든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월드컵을 되돌아보면서 그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 되짚어보자.
1. 전술의 유연한 변화만이 살아남았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전술의 유연함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줬던 대표적인 두 팀이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가장 먼저, 이번 대회에서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전술보다는 상황에 따라, 혹은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연하게 대처한 팀은 살아남았고, 끝까지 자기철학만을 고집하던 팀은 가차없이 탈락해버렸다. 전자는 네덜란드였고, 후자는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스페인이었다. 특히나, 두 팀이 맞붙었던 B조 1차전 경기는 전술의 유연함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줬던 한 판이었다.
월드컵 본선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네덜란드는 플랫4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인 4-3-3 을 추구하던 팀이었고, 4-3-3 이 네덜란드 고유의 색채라고 해도 사실 무방했다. 하지만 주전급 선수였던 케빈 스트루트먼과 라파엘 반더바르트 등이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으로 시즌아웃 당했는데, 이것이 도리어 네덜란드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첫경기인 스페인을 상대로 자신들의 스타일인 4-3-3 을 버리고, 3-4-1-2 를 사용하면서 스페인의 고유 스타일인 티키타카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면서 5대1 대승을 거둠으로 전대회 결승전의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했다. 반대로 스페인은 월드컵 대표팀 선발과정부터 지나치게 4-2-3-1 에 끼워맞추면서 플랜B가 없다는 평가까지 듣는 등 우려의 반응이 많았는데, 그것이 네덜란드전 대패를 겪으면서 현실이 되었다. 그 후 스페인은 칠레에게도 패하면서 일찌감치 조별리그 탈락을 결정지었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전 승리를 발판으로 독일과 함께 유이하게 월드컵 무패를 기록했다(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했지만, 승부차기는 공식적으로 무승부로 기록된다).
독일 또한 전술의 유연성을 여실없이 보여주었다. 조별리그 내내 주장인 필립 람을 바이에른 뮌헨에서 하듯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였으나 중원이나 수비진이 그리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고,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 중 한 명을 벤치로 앉혀야 하는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게 되자 뢰브는 람을 다시 사이드백으로 돌리고, 슈바인슈타이거와 케디라를 중원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발이 빠른 제롬 보아탱을 사이드백에서 센터백으로 두어 마츠 훔멜스와 파트너를 만들어 놓았다. 그 뒤로 독일은 귀신같이 경기력을 되찾았고, 토너먼트에서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연거푸 잡는 모습까지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술의 유연성과 플랜B 하나 없이 월드컵에 임했다가 1무 2패라는 씁쓸한 결과물을 가지고 귀국했다. 물론 홍명보호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변명하기엔 그 전 감독들이 남기고 간 숱한 실험과 조합들을 단 한 번도 참고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고집이 되려 팀 전체를 망쳐버렸다.
2. one Spirit, one Team
(이번 월드컵에서도 증명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 한 명이 있어도, 위대한 팀 하나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사진출처 연합뉴스, 게티이미지)
이번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 훨씬 이전에 홍명보는 one Spirit, one Team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그 당시 말했던 것처럼 이번 월드컵도 하나의 정신으로 단결되었던 하나의 팀이 엄청나게 강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물론 홍명보는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긴 했지만).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사람은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네이마르 같이 독보적인 축구천재들이 이번 월드컵을 좌지우지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과거 펠레나 마라도나, 지단, 호나우두처럼 단 한 명의 선수가 한 대회를 뒤바꾼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현대 축구에선 그만큼 한 명의 천재보다 하나의 팀이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메시가 이끌었던 아르헨티나는 오로지 리오넬 메시 한 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공격과 수비가 전혀 따로 따로 플레이하는 분리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4강전이었던 네덜란드전과 결승전이었던 독일전에서 아르헨티나는 한 명에게 의존한 채로는 결코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터득했을 것이다. 메시가 봉쇄당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어떻게 공격을 이끌어가야할 지 방향을 잡지 못했고, 되려 네덜란드와 독일의 유연한 전술과 파상공세를 막아내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제아무리 축구계를 좌우하는 리오넬 메시도 과거 아르헨티나 전설인 디에고 마라도나처럼 AGAIN 1986 를 재현하기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개최국인 브라질도 네이마르 한 사람에 너무나도 크게 좌우되었다. 8강전인 콜롬비아전에서 네이마르가 후안 수니가에게 니킥을 맞고 부상으로 실려나가기 전까지는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4강전인 독일을 상대로 7대1 대패를 당했고, 이어 3-4위전에서 네덜란드에게 3대0으로 완패를 연거푸 당했을 때, 브라질 또한 네이마르 한 사람을 향한 의존도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입증해버렸다. 네이마르가 빠진 공격진은 득점은 커녕, 슈팅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공격을 풀어나가질 못했다. 네이마르가 빠진 이후 브라질은 2경기에서 겨우 1골을 넣는 데 그쳤고, 네이마르가 A매치 52경기에서 35골을 기록해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간 브라질이 다시 제 궤도에 올랐다고 한들 네이마르 원맨팀에 가깝게 변모했다는 사실 또한 숨길 수가 없었다.
이와 반대로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강팀들 이외에도 코스타리카나 콜롬비아처럼 이번에 월드컵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팀들은 한 명의 선수보단 하나의 팀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모든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코스타리카가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접전까지 가던 그 투혼은 이번 월드컵의 최고의 열정이라 할 수 있겠고, 23인의 모든 선수들을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게 한 네덜란드는 월드컵 최고의 미덕을 남겼다. 또한 독일은 메시를 뛰어넘는 하나의 위대한 팀으로 단결하면서 월드컵 우승과 함께 세계축구 중심을 자기네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3. 30도를 넘어서는 무더운 날씨, 그리고 쿨링 브레이크의 등장
(이번 월드컵에 새롭게 적용된 쿨링 브레이크, 이 제도가 상당한 변수를 끼칠 줄 누가 알았을까? 사진출처 NEWSis)
월드컵을 개최하는 브라질이 평균 기온 30도 이상을 웃도는 무더위를 자랑했기에 브라질 노동법원이 선수들 보호차원에서 FIFA를 상대로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 도중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선수들에게 약 3분간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쿨링 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하도록 지시했고, 이 시간에 선수들은 물을 마시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쿨링 브레이크를 월드컵 64경기에 모두 의무적으로 적용시키지 않았고, 경기하는 경기장 온도가 32도를 넘어서야만 시행하도록 법원에서 판결내렸다. 그래서 경기장 기온이 32도가 되지 않는 한, 쿨링 브레이크를 맛보기란 쉽지 않았고 이 브라질의 무더위에 유럽과 아시아 팀들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반대로, 중남미 팀들은 이러한 무더위가 자신들의 환경이었기에 브라질 무대가 마치 자신들의 홈경기를 연상케 하였고, 유난히 이번 대회에서 중남미 팀들이 강세를 보였던 것도 바로 이 날씨 때문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네덜란드와 멕시코의 16강전에서 쿨링 브레이크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후반 30분, 네덜란드가 멕시코에게 1대0으로 끌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주심은 경기장 기온이 높다고 판단하고 쿨링 브레이크를 지시하였다. 단순히 선수들의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네덜란드는 이 쿨링 브레이크를 거친 이후, 후반 막판에 2골을 몰아치면서 2대1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어내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루이스 반할 감독은 이 쿨링 브레이크를 120% 활용하여 선수들에게 전술을 지시하였고, 그 덕택에 네덜란드가 재정비하여 멕시코를 몰아부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도입된 쿨링 브레이크였고, 네덜란드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던 셈이다(멕시코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지만).
쿨링 브레이크가 앞으로 있을 FIFA 주관 모든 메이저대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쿨링 타임은 축구계에 새로운 혁명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주면서 야구, 농구 뿐만 아니라 축구에서도 작전타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4. 자국리그 선수들의 성장세는 곧 메이저대회에서의 경쟁력이다
(독일이 이렇게 월드컵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리그 선수들의 성장 덕분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다른 변수는 바로 각국의 자국리그 선수들의 성장세다. 독일이 이렇게 우승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불과 유로 2000 이 끝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은 '더이상 회생불가능한 녹슨 전차군단' 이라는 악평을 들으면서 세대교체의 기미가 안보인다고 했다. 그때 독일 자국리그인 분데스리가도 당시 유럽의 3대리그(EPL, 라리가, 세리에A)에 다소 뒤쳐졌던 상황이었다. 유로 2000 에서 상당한 심각성을 느꼈던 그들은 자국리그 선수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분데스리가에 끊임없이 투자하여 내실을 다졌고, 2002년 월드컵 준우승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유망주 발굴에 박차를 가하면서 자국 인프라를 키웠다. 그 결과,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때, 2번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고,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을 하는 기염까지 토했다. 특히 2012/13 챔스 결승전은 분데스리가의 잔치가 되었을 정도다.
독일에 비해 자국리그의 규모는 작지만, 네덜란드 또한 자국리그 유망주 발굴에는 끊임없이 투자했다.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그 어떤 메이저 대회에 비해 네임밸류가 떨어져(특히나 수비수들은 거의 에레디비지에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알 정도의 네임밸류였다) 무게감이 떨어져 크게 활약못할 것이라고들 했으나, 네덜란드는 그러한 예상을 뒤집어 엎었고, 다른 팀들보다 탄탄한 수비력을 앞세워 이번 대회가 끝날 때까지 4실점을 달성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중원과 공격진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이번에도 16강까지 진출한 멕시코 또한 자국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국가대표팀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또한 자국리그를 기반으로 하여 일궈낸 성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대표팀이 끊임없이 건재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해외 진출하는 선수보다도 자국리그의 경쟁력과 자국리그 선수들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육성시키는 데 주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처럼 K리그가 B급 리그라느니의 점수를 주면서 덜 기용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도 않으면서 등급을 정하는 것은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등급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소수의 천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상향평준화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2002년 4강신화와 2010년 16강 진출로 빚어진 향수에 더이상 젖어있다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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