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축구/클래식&챌린지 그리고

3년만에 이뤄낸 광주의 1부리그 귀환

J_Hyun_World 2014. 12. 7. 09:00

 

 

 

 

2011년 창단, 2012년 강등... 2년 사이에 극과 극을 달렸던 광주

 

(2011년에 K리그에 가입한 광주는 창단한 지 2번째 시즌만에 2부리그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스포츠동아)

 

  2011년 광주FC가 탄생하기 전까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는 월드컵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축구팀이 없었다. 그 이전까지 상주상무(그당시에는 광주 상무)가 광주에 차후 시민구단이 탄생할 때까지 광주를 임시연고지로 삼아서 경기를 치르곤 하였는데, 광주인들에게 있어서 상무팀은 자신들의 팀이라기보단 그저 잠시 광주를 거쳐가는 나그네팀으로 여겼기에 큰 애정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루빨리 자신들의 클럽을 창단하여 프로리그에 뛰는 모습을 보길 열망했다. 마침내 2010년 10월 12일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광주 시민프로축구단 창단을 승인받았고, 탄력을 받아서 그 해 12월 16일 광주 FC 창단식 및 엠블럼을 공개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16번째 구단이 되었고, 시도민구단으로써는 대전, 대구, 인천, 강원, 경남에 이어 6번째이다.

 

  2011년 광주의 첫 시즌은 생각보다 나름 신선한 행보를 보여왔다. 개막전에서 2010시즌 꼴지팀인 대구를 맞이하여 3대2 펠레스코어로 승리하면서 기분좋은 스타트로 시즌에 임하였고, 16개 팀들 중 11위를 기록하면서 예상 외의 호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승기라는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면서 그저그런 중소클럽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그 해 이승기는 다른 빅클럽의 신예들과의 경쟁을 따돌리고 프로데뷔 첫시즌에 신인상을 받았다). 이승기를 비롯하여 김동섭, 박기동은 클럽팀에서 보여줬던 활약상을 바탕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까지 누렸고, 이들의 국가대표 승선은 광주 팬들의 자부심을 드높여주는 데 한 몫 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12년 시즌에선 광주는 '2년차 징크스'를 제대로 겪었다. 시즌 중반으로 넘어갈 수록 승점을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클럽들보다 순위가 계속 뒤쳐지기 시작했고, 2013년 시즌부터 새로 생기는 2부리그의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던 상황이었다.

 

  하위스플릿으로 분류되었던 광주, 상주가 AFC 라이센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연맹으로부터 '강제 2부리그 강등' 이라는 결과물이 나온 상태에서 강원과 강등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정적인 승부처였던 43라운드, 광주는 당시 대구 원정을 떠났던 상황이었고, 강원 또한 생존하기 위해 성남 원정 경기가 잡혀있었다. 생존하기 위한 절실함을 보였던 두 팀이었지만, 광주는 홈에서 편안히 경기를 치르던 대구 앞에서 조급함이 앞서서 자신들만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고 오히려 대구에게 두 골을 헌납하면서 2대0 패배를 기록했다. 반면 대구보다 30분 늦게 경기를 시작한 탄천에서는 강원은 대구에서의 소식에 좌우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치뤘으며, 백종환의 골로 광주는 강원과 승점 4점 차이로 벌어지면서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창단한 지 2년만에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광주의 강등이 확정되면서 선수단 축소 및 예산 삭감으로 몇몇 스타플레이어들은 다른 클럽들의 타겟이 되어 하나둘씩 떠났다.

 

 

 

승격을 위한 광주의 고군분투의 연속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이후, 광주는 다시 1부리그로 돌아가기 위한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강등이 확정된 후, 광주의 에이스였던 이승기는 이웃동네인 전북으로 이적하면서 광주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이승기의 이적은 시작에 불과했다. 광주의 득점을 도맡았던 김동섭은 성남으로, 박기동은 제주로, 주앙 파울로는 대전으로, 외국인 스트라이커였던 복이는 같은 챌린지 리그 소속인 수원 FC로 이적하면서 사실상 광주의 공격진은 초토화되어버렸다. 최후방을 맡았던 베테랑 골키퍼인 박호진은 강원으로 떠났고, 신인왕 후보에 올랐던 수비수였던 이한샘은 이적시장이 닫히기 막판에 경남으로 새 둥지를 옮겨 후방까지 비상이 걸려버렸다. 리그가 개막되기도 전에 광주의 시련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최만희 감독은 2012년 시즌이 종료되기 이전에 박병모 전 단장과 갈등을 빚어 사퇴를 하여 감독 자리가 공석이었던 상황이었고, 그 자리를 여범규 수석코치가 이어받아서 광주의 2대 감독이 되었다.  

 

  강등된 이후 첫 시즌이었던 2013년 시즌, 광주의 페이스는 강등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영 올라오질 못했다. 5월까지 중위권을 맴돌다가 6월에 가까스로 리그 4위까지 올라서긴 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기가 영 힘들었다. 성적이 더이상 나아지질 못하게 되다보니 여범규는 시즌 도중 광주의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고, 광주는 또 한 번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범규에 이어 수석코치였던 남기일이 감독 대행으로 광주를 맡게 되었고, 그는 루시오, 김은선, 김호남을 앞세워서 광주를 챌린지 3위로 마감하는 등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2013년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광주의 운영예산은 여전히 적자를 허덕이고 있었기에 이듬해인 2014년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광주는 주장이었던 김은선을 수원으로 이적시켜야만 했고 그 뒤를 이어 김수범, 유종현, 박희성까지 팀을 떠나면서 광주의 스쿼드는 자꾸만 얇아져 갔다. 게다가 2013년 반기 총수익이 25억원인데 반해 총지출이 44억을 기록하는 등 예산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없어보였고 부도 걱정까지 할 판국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시작하게 된 2014년 시즌, 챌린지로 내려와서 독주 체제를 굳히면서 무쌍난무를 보이던 대전과 반등의 기회를 노리는 강원, 그리고 상주에 이어 승격의 기회를 노리는 안산의 상승세, 안양의 출사표 등으로 챌린지 내에서 광주의 입지는 눈에 띄게 축소되었고, 순위 또한 입지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경기력 또한 기복이 심하여 팬들은 남기일 감독대행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품으면서 사퇴를 촉구하였다. 실제로 그당시 남기일 감독대행의 성적표는 좋지 못했고, 그런 와중에 정식감독 요청을 했었으니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렇게 상위권 도약이 힘들어보였던 광주, 승격의 기회를 또다시 날아가는가 싶었던 찰나에 예상치 못한 데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혼란의 리그 막판 레이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도장깨기로 살아난 광주

 

(리그 막판에 극적으로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한 광주, 여기서 그들의 도장깨기는 시작되었다.)

 

  대전이 챌린지 리그 우승을 확정지어 자동으로 승격 진출권을 얻었고, 2위였던 안산이 사실상 플레이오프 2차전 진출권을 획득하여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 진출권 두 장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 두 장의 티켓을 놓고 강원, 안양, 광주, 대구 4팀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이 4팀의 경합이 사실상 챌린지 후반기의 메인이었고, 특히나 마지막 라운드가 압권이다. 강원은 마지막라운드에서 수원FC를 2대1로 승리하면서 3위로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먼저 거머쥐었다. 남은건 고양vs광주, 그리고 안양vs대구 경기였는데, 광주는 고양과 0대0으로 비기면서 안양에서 벌어지는 경기결과에 온갖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이 경기를 끝날 때쯤, 안양에서는 대구가 2골을 먼저 쏟아부었고, 이어서 안양이 2골을 몰아치면서 2대2 무승부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광주와 안양의 승점이 동률이 되었는데, 광주는 골득실차에서 앞서면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야말로 극적인 연출로 진출한 것이다.

 

  이렇게 광주의 플레이오프 원정이 시작되었고, 장거리 시간을 통해 도착한 원주 원정에서 광주는 접전 끝에 광주의 핵심인 김호남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0 신승을 거두면서 강원을 제압했다. 그동안 강원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광주가 플레이오프에서 속시원하게 강원을 이기면서 나름 되갚음을 성공했다. 그리고 이어진 안산 원정, 원정 2연전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위인 안산을 3대0 완승으로 잡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 경기는 후반전에서만 무려 3골이 나왔는데, 그만큼 광주의 집중력이 안산과 달리 후반전에도 이어져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어렵사리 2위와 3위를 잡고 올라온 광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K리그 클래식 11위를 기록한 경남이었다. 승격이나 잔류냐를 앞둔 두 팀의 2연전만이 남았다.

 

  먼저 기세를 잡은 것은 광주였다. 1차전에서 광주는 경남을 홈으로 불러들여 3대1로 크게 이겼다. 조용태의 선제골과 경남 수비진의 실책을 틈타 디에고가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면서 광주는 2부리그 팀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경기 끝나기 직전 경남의 수비수인 스레텐의 자책골까지 나오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광주쪽으로 넘어가버렸다. 원정에서 무려 3골이나 내준 경남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결과였고, 2차전인 홈에서 뒤집기엔 상당히 버거웠다. 그리고 창원에서 이어진 2차전, 팽팽하던 0대0 분위기에서 경남은 후반 25분 송수영의 골로 잔류의 불씨를 되살리는가 싶었으나, 4분만에 김호남의 찬물 끼얹기로 좌절해버렸다. 종합스코어 4대2, 누가 뭐래도 광주의 완벽한 승리였고, 그들은 플레이오프 기적을 만들어내면서 3년만에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클럽 역사는 매우 짧지만서도, 광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창단과 신인왕 및 국가대표선수 배출, 그리고 강등과 구단주 및 감독 사퇴 등 기쁨과 슬픔을 단기간에 겪었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광주는 그러한 과정을 겪고 더욱 더 단단해졌고, 결국 도장깨기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자신들이 바라고 바래왔던 승격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마스코트인 불사조처럼 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이제 사람들은 다음 시즌 광주의 행보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K리그 클래식으로 복귀한 광주, 다음 시즌에 어떤 모습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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