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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헬 디마리아의 파란만장한 영국 여행 345일간 기록

J_Hyun_World 2015. 8. 9. 12:40

 

 

 

2014년 8월 26일(1일) : EPL 역대 최고 이적료로 도버해협을 건너오기까지 과정

 

(페르난도 토레스가 기록했던 EPL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영국에서 역대 비싼 선수가 된 앙헬 디마리아)

 

  20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가 '라 데시마(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 를 달성한 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앙헬 디마리아였다. 마드리드 더비로 이뤄졌던 결승전에서 90분간 1대1 균형을 깨지 못하고 있을 때, 연장전에서 번개같은 드리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전부 농락하면서 가레스 베일의 두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던 것이 승부처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정상에 올라섰다. 물론 디마리아가 이 한 경기에서만 빛났던 것이 아니었다. 메수트 외질이 이적한 뒤,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 변경하면서 그들의 필수불가결한 선수로 발돋움하였고, 공수 전반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선보였다. 디마리아의 활약상은 이후 벌어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준우승하는 데 적잖은 공헌까지 세웠다. 그에게는 앞으로 밝은 미래만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말이다.

 

  월드컵을 마치고 휴가에서 복귀했을 때, 그가 처한 상황은 마치 지난시즌 외질과 함께 누가 나갈 것이냐를 베팅할 때처럼으로 되어버렸다. 그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원인을 보았을 때, 표면상으로는 브라질월드컵 스타로 떠오른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마드리드 입단이었다. 가뜩이나 동포지션이었던 가레스 베일로 인하여 측면에서 중앙으로 위치를 옮겼는데, 이제는 중앙에서도 강력한 경쟁자가 추가되었으니, 당연히 신경쓰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좀 더 깊게 파고들면 구단과의 재계약 문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디마리아는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주급을 가레스 베일과 동급으로 올려주길 바랬다(그당시 디마리아는 베일이 받는 돈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의 활약상을 고려한다면 그는 분명히 그렇게 주장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페레즈는 디마리아와 생각이 달랐기에 디마리아의 요구를 거절했다. 1년 가까이 재계약 협상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디마리아는 갈라섰다.

 

  결국 협상테이블에서 틀어지면서 디마리아의 차기 행선지는 PSG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예측되고 있었으나, PSG가 FFP 제도로 인하여 디마리아를 영입할 수 없게 되자, 맨유는 5970만 파운드(약 1081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지불하고 앙헬 디마리아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록은 맨유 역대 최고 이적료이자, EPL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한 디마리아는 '맨유의 판타지스타' 의 등번호인 7번까지 받았다.

 

 

 

2014년 8월 30일(5일) :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맨유의 새로운 7번

 

(이적하자마자 디마리아는 번리전에서 데뷔전을 치르면서 답답한 맨유 중원의 한줄기 빛으로 보였다)

 

  디마리아가 합류하면서 사실 맨유 팬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무엇보다도 퍼거슨이 은퇴하기 전부터 맨유는 중원 보강을 0순위로 꼽아왔지만 별다른 보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빈약한 중원을 캐릭이나 루니를 세우는 임시방편으로 타개하곤 했다). 게다가 대런 플레처가 바이러스로 인하여 장기간 전력이탈해버렸고, 톰 클레버리나 안데르송은 맨유 중원에 마이너스 효과를 주고 있었기에, 그 어느때보다도 중원은 필수였다. 그리고 맨유의 왼쪽 측면 또한 그리 썩 좋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애슐리 영이 상당히 기복있는 플레이를 보였고, 애슐리 영을 제외하면 왼쪽 측면에서 활약할만한 선수도 딱히 없었다(그나마 후안 마타가 있었다곤 하지만, 마타는 측면보다 중앙이나 오른쪽 측면으로 출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과 왼쪽 측면 소화가 가능했기에 맨유는 오버페이라도 해서라도 디마리아 같은 빅사이닝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기대 속에서 번리의 홈구장인 터프 무어에서 치뤄진 디마리아의 데뷔전, 경기결과는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맨유는 3경기째 무승을 거두면서 2무 1패라는 성적으로 14위로 밀려났다. 분명 맨유라는 네임밸류에 걸맞지 않는 성적과 순위임에는 확실하다.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한다면 디마리아의 활약상이었다. 70분에 안데르송과 교체되기 전까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번뜩였다. 번리의 톰 히튼 골키퍼가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앙헬 디마리아는 반페르시에게 스페인전 원더골을 재현시킬 수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빈 곳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거나 때로는 날렵하고 빠른 드리블로 번리 중원을 헤집고 다녔다. 풀타임으로 뛰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쉬웠겠지만, 루이스 반할 감독이나 맨유 중계진들은 그의 플레이에 확실히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고, 적응만 잘한다면 맨유의 최고 선수가 될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2014년 9월 15일(21일) :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시즌 첫 골, 맨유 에이스로의 발돋움

 

(올드트래포드에서 첫번째 경기를 치룬 앙헬 디마리아, QPR전에서 MOM과 데뷔골을 모두 얻었다)

 

  2014년 9월 15일은 디마리아 자신에게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번리 원정에서 EPL에 처음 데뷔전을 치룬 이후, QPR전에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첫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홈 팬들에게 선보이는 첫 경기에서 그는 자신의 몸값이 왜 1000억원인지를 증명해보였다. 전반 24분, 프리킥 찬스에서 박스 안에서 바운딩된 공이 들어가면서 디마리아는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디마리아의 골이 기폭제가 되면서, 맨유의 전체적인 겨익력은 살아났고, 디마리아는 55분에 마타의 골까지 어시스트하면서 맨유의 4대0 대승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디마리아는 QPR전에서 MOM으로 선정되어 백넘버 7번 값을 확실히 해줬다고 평가받았다. 그 이후,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1골 1어시, 7라운드였던 에버튼과의 경기에서도 1골 1어시를 기록하였는데, 에버튼과의 경기에서는 거의 중거리슛에 가까운 슈팅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매 경기마다 디마리아가 90분 내내 번뜩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속칭 '하드캐리' 하면서 팀 에이스로 급부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왼쪽 측면에 배치될 때에는 루크 쇼가 오버래핑을 나간 후 돌아오질 않기에 깊숙이 수비진영까지 내려가 수비가담까지 해주고, 반페르시, 야누자이, 마타 등이 공격을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할 때에는 공격까지 직접 가담하여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공수 전반에 걸쳐서 온몸을 날리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던 경기가 바로 10라운드였던 맨체스터 더비였는데, 크리스 스몰링의 퇴장 때문에 수비수 위치까지 내려와서 몸을 날리는 허슬플레이를 보여주는가 하면, 좌우 측면 가리지 않고 스위칭하면서 고군분투했다. 루니, 반페르시와 함께 맨체스터 더비에서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11, 12라운드였던 크리스탈 팰리스와 아스날 전에서 각각 도움 1개씩 기록하면서 이름값은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14년 11월 30일(97일) : 시즌 첫 부상, 그리고 꼬이기 시작한 디마리아의 맨유 생활

 

(헐시티와의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디마리아, 사실 여기서부터 그의 영국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2014년 11월 30일, 헐시티와의 경기에 선발출장한 앙헬 디마리아는 전반 15분만에 안데르 에레라와 교체되어 나갔다. 사유는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부상 같은 경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겪는 경우가 많지만, 디마리아의 부상은 어쩌면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헐시티와의 경기에서 교체아웃 되기 전까지 디마리아는 거의 혹사당하는 듯한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공수 전체적으로 직접 관여하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거리를 움직이고, 디마리아가 피지컬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피로누적이 생기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디마리아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2주 이상을 결장하였고, 12월 21일에 있던 아스톤빌라와의 경기에서 반페르시와 교체하면서 복귀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박싱데이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부상으로 뉴캐슬전에 결장해버렸다. 보름 뒤인 2015년 1월 4일 FA컵 64강전에서 복귀하여 복귀 골을 성공시키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다음 경기였던 사우스햄튼전과 QPR과의 경기에서 그는 반할의 3-4-1-2 포메이션의 투톱의 한 축을 맡았다. 스트라이커로 출격한 디마리아의 모습은 말그대로 실망 그 자체였다. 물론 그동안 하프 윙 역할을 부여하다가 갑작스럽게 투톱 역할을 맡겨버린 반할의 전술적 판단 착오도 문제있었으나, 그의 폼이 시즌 초반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서도 장기 부상을 겪은 이후, 한동안 기복이 심한 플레이를 보였던 전례가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을 답습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해당 경기에서 후반전엔 윙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다시 활약하였으나, 그 이후 경기에서는 윙에서의 모습도 그닥 좋지 못했다. 디마리아의 이적료가 무려 1000억원이 넘었기에 맨유 팬들 입장에서는 최소한 이러한 기복성 플레이가 1000억원을 들인 것에 영 못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를 향한 비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잘하는 경기에서는 괜찮았지만, 조금 부진한다 싶으면 아예 경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디마리아, 때마침 크나큰 시련이 그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2015년 3월 10일(197일) : 아스날과의 FA컵 16강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다

 

(아스날과의 FA컵에서 앙헬 디마리아는 심판 옷을 잡아당기는 행위로 퇴장당했다)

(영상이 안나온다면 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373083)

 

  디마리아의 맨유 생활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3월 10일 아스날과의 FA컵 16강전, 맨유는 홈에서 아스날에게 2대1로 끌려가고 있던 상황이었고 최소한 동점을 만들어야하는 상황이었다. 디마리아는 드리블로 문전 쇄도하는 도중 아스날의 아론 램지와의 경합에서 밀리면서 쓰러졌다. 주심은 디마리아의 헐리웃 액션이라 판단하고 그에게 경고를 주었다(영상을 되돌려보면 주심의 판단이 맞았다). 자신이 경고를 받은 것에 화가 난 디마리아는 주심의 옷을 잡아당기는 행위를 저지르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사실 선수가 심판의 옷을 잡아당기는 등의 행동은 판정에 불복함과 동시에 심판의 권위에 직접적으로 대드는 행동이나 다름없었고, 그 즉시 퇴장을 줘도 문제가 없었다. 디마리아의 비매너적인 행동에 화가 난 주심은 그 즉시 그에게 레드카드를 줬고, 디마리아는 유유히 피치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맨유는 약 10년 만에 홈에서 아스날에게 패배하였다. 

 

  그의 아스날전 퇴장은 그의 입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 사건으로 남았다. 그 이후로 맨유팬들은 디마리아의 영입을 실패한 영입이라 여겼고, 그가 베컴이 아닌 베론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하는 분위기로 무게가 쏠렸다. 디마리아를 보는 반할의 시선도 이 경기를 기점으로 상당히 바뀌었고, 어느샌가 그가 선발로 출전하는 것보다 교체 투입 등으로 출전하는 게 자연스럽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디마리아는 리버풀과의 더비경기에서 공이 라인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잡는 핸드볼 파울까지 저질렀다. 물론 그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교체투입하자마자 46초만에 퇴장당했던 사건이 워낙 강해서 묻혀버리긴 했지만, 디마리아가 확실히 이상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맨유는 리그 4위로 종료하였고,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하여 최소 목표치는 달성하였으나, 디마리아를 향한 실망감은 감출 수 없었다. 첫 시즌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당장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알렉시스 산체스의 활약상과 비교했을 때에는 그의 스탯(3골 10도움)이나 임팩트는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2015년 7월 30일(339일) : 행방불명(?)된 디마리아

 

('행방불명된 앙헬 디마리아를 찾습니다') 

 

  시즌을 마친 앙헬 디마리아는 곧바로 칠레에서 열리는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합류하였다. 디마리아는 코파 아메리카 대회동안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마치 맨유에서 보여줬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듯한 일종의 퍼포먼스로 맨유팬들의 기대치를 다시 올려놓는가 했다.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차지했고, 루이스 반할은 디마리아에게 프리시즌 간 A매치를 치뤘으니 추가 휴가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디마리아가 이번 여름에 PSG로 이적할 것이라는 보도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는 점이며, 구체적인 이적료 및 주급까지 언급되고 있었다. 미국 투어가 한창이었던 그 때, 같이 코파 아메리카를 치뤘던 마르코스 로호를 비롯하여 일부 맨유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탔다는 연락이 왔으나, 그 탑승명단에 앙헬 디마리아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는 팀에게 알리지 않았고 무단 합류 거부를 해버린 셈이다.

 

  때마침 PSG와의 친선경기를 마친 맨유, 반할은 기자회견에서 디마리아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자 "당신은 그가 어디있는지 아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라고 답변하면서 디마리아가 맨유에 무단 합류거부를 한 것을 확인사살하였다. 오히려 디마리아의 행방을 PSG 감독인 로랑 블랑이 잘 알고 있었고, 블랑은 "조만간 디마리아가 파리로 합류하게 될 것이다." 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이 PSG는 디마리아의 현 소재지가 어딘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점인데, 오히려 현 소속팀인 맨유가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맨유 쪽에서 모를 수도 있고, 알고서도 모르는 척 할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마리아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점이고, 더이상 맨유에 남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주었고,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오피셜이 떴다.

 

 

 

2015년 8월 6일(346일) : 파리로 떠나가버린 도비, 결국 '최악의 먹튀, 최악의 7번' 으로 남게되다

 

(2015년 8월 6일, 디마리아는 결국 PSG로 이적하였다. 결말이 참으로 안타깝다.)

 

  2015년 8월 6일, 도비는 영국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적료 4430만 파운드(약 807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고, 1시즌만에 맨유에서 PSG로 팀을 옮겼다. 계약기간은 4년이며, 등번호는 11번을 받았다. 파리로 떠남과 동시에 맨유 역사상 최악의 7번으로 남아버렸다. 팀을 옮김과 동시에 그는 "맨유는 나를 먼저 팔려고 했다." 는 발언을 남기면서 손바닥 뒤집듯이 이전 소속팀을 디스했다. 그러면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때처럼 그는 손편지로 맨유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며 1년간 맨유 소속으로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달하였다. 그가 PSG에서 얼마만큼의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반할의 판단력이 틀린건지, 아니면 디마리아의 폼이 예전같지 않은 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아쉬운 것은 디마리아가 맨유 소속으로 있으면서 보여주었던 행동들이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었고, 그가 맨체스터 생활하는 도중 집에 도둑이 드는 등 불안정한 생활도 겪었던 점도 있으나, 그가 영국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기보다는 로호, 마타, 데헤아, 에레라 등과 어울려서 스페인어만 쓰려고 고집했다는 점이나, 팀을 떠날 때 방식이 상당히 프로답지 못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회자될 부분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예만 비교하더라도 그러했다. 호날두도 당시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상황이었지만, 떠날 때에는 아무런 소동없이 깔끔하고 쿨하게 이별을 했었고, 맨유 또한 그를 기분좋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는 골키퍼 다비드 데헤아도 최소한 프리시즌에는 맨유에 합류하여 일정을 소화하는 등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이러한 점을 비교했을 때, 디마리아는 비난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앙헬 디마리아의 파란만장했던 영국 여행은 345일로 마감하였고, 이제는 파리지앵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PSG에 가서는 부디 행운이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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