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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언더독' 레스터 시티의 리그우승을 바라고 있는 이유

J_Hyun_World 2016. 2. 21. 15:51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언더독' 레스터 시티의 계속되는 돌풍

 

(그 어떤 누구도 레스터 시티가 이정도까지 선전할 꺼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이번 2015/16 시즌 EPL이 개막하기 이전, 많은 축구 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이번에도 첼시가 2연패로 리그를 제패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영국 BBC에서는 전문가 28명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앨런 시어러나 루드 굴리트 등을 비롯하여 무려 20명 정도가 첼시의 우승을 자신했다. 미국의 ESPN 또한 첼시가 2연패를 거두면서 리그가 끝날 것이라 예측했다. 첼시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할 라이벌로는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로 손꼽았다. 하지만 리그 2/3가 지난 현재,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자신들이 지난 8월에 전망한 발언에 대해 상당히 창피할 것이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첼시는 우승권은 커녕 빅4에서도 밀려나 중위권에 이름을 겨우 올렸고,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아스날을 제외한 나머지 강호들(맨체스터 두 팀)은 우승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상태다. 전혀 생소한 이름을 가진 팀이 선두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니, 바로 레스터 시티다. 그들은 이번시즌 이변의 팀으로 영국 전역에 떠오르고 있다.

 

  레스터 시티가 이정도까지 잘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년 전 박싱데이 때만 하더라도, 레스터 시티는 20위 꼴지로 강등에 직면해있던 상황이었고, 겨우겨우 14위로 강등을 모면했었다. 시즌 개막 전 레스터 시티의 성적에 관해 대부분의 전문가나 언론에서는 가장 유력한 강등후보 0순위로 거론했을 정도로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아서였을까, 그들은 보란듯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선정한 '우승후보' 첼시를 보기좋게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맨시티와 리버풀, 토트넘을 격파하였고, 중하위권 팀들에게도 지지 않는 모습은 선보이면서 단숨에 빅4 안에 진입하여 어느새 선두까지 등극하였다. 비록 아스날에게는 2번 모두 패하긴 했으나, 포함하여 겨우 3패에 불과하다(나머지 1패는 리버풀에게 당하였다). 26경기를 치른 시점에서(2월 21일 기준) 레스터 시티는 승점 53점으로 북런던 두 팀에게 승점 2점 앞선 채 1위에 올라섰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언더독'으로 불리는 레스터 시티가 바로 이전이었던 에버튼이나 사우스햄튼과 달리 오랫동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로는 간판 공격수인 제이미 바디의 득점행진(현재 19골)과 스탯 기계인 리야드 마레즈의 케미스트리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가 단순히 두 명의 선수만으로 선두권까지 치고 올라온 것은 아니다.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 및 정확도가 20개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면서도 1위를 달리는 이유는 바로 철저하게 선수비 후역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팀들과의 경기에서도 보여줬듯이, 그들은 한쪽 측면을 내주더라도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차단하고 끊임없이 상대 선수들을 압박하면서 그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공을 탈취하면 바디나 마레즈, 알브라이튼 같이 순간침투가 가능한 선수들에게 다이렉트 패스로 연결하여 상대를 무너뜨리는 공격을 시도한다. 레스터 시티가 전방 패스를 시도하는 횟수가 유달리 많은 점이나, 실점률이 상위권을 기록하는 점도 라니에리의 선수비 후역습 전술 영향이 큰 것이다.

 

 

 

사람들이 레스터 시티의 EPL 우승을 바라고 있는 이유

 

(레스터의 돌풍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언더독' 레스터 시티의 등장, 그리고 이들의 돌풍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리그 1위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기 시작하자 다시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레스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적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레스터가 EPL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그동안 EPL의 주요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EPL로 출범한 이후 잉글랜드의 제왕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고수해왔다.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EPL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장과, 그의 휘하에 있던 스타 플레이어들이 들어올린 트로피만 하더라도 10개 이상이다. 맨유 이외에 아스날이나 첼시, 맨체스터 시티 또한 챔피언의 자리에 앉아본 경험이 있다. 이 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이들은 소위 말하는 '빅4' 라는 그룹을 형성해오면서 사실상 우승팀은 이 안에서 결정난다 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과 슈퍼스타들을 데려올 수 있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만 하더라도 빅4 팀들의 영입러쉬는 상당했다. 맨유만 하더라도 멤피스 데파이와 앙토니 마샬을 영입하는 데에만 자그마치 1,000억원 이상 지출하였고(다른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맨유가 사용한 이적료는 어마어마하다), 맨시티는 라힘 스털링과 케빈 데브라이너 영입에 약 1,8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사용했다(첼시 또한 1,000억원을 투자했다). 비단 빅4 뿐만 아니라 다른 EPL 클럽들도 전력 강화를 위해 적잖은 이적료를 지출하면서 그야말로 '판돈'을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레스터 시티 또한 지난 시즌 균등한 중계권료 배분으로 1,200억원이라는 큰 돈을 받았기에 다른 EPL 클럽들처럼 물량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여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은콜로 캉테나  오카자키 신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유계약, 혹은 싼 이적료로 영입해 온 선수들이다. 실제로 맨시티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한 레스터 선수들 총 몸값은 멤피스 데파이의 몸값에도 채 미치지 못할 정도이며, 팀 공격의 핵심인 바디와 마레즈의 당시 이적료는 10억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액 연봉이나 비싼 몸값이 실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고, 심지어 모든 이들이 레스터 시티의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박싱데이 또한 그들은 보란듯이 살아남았다. 2위를 달리고 있는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또한 "아스날, 토트넘, 맨시티를 제외한 모든 영국의 팬들이 레스터 시티를 지지하고 있다" 고 말할 정도로 레스터는 영국 내에서 가장 핫 아이콘이 되어버렸고, 영국인들의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기적을 만드는 여우들' 의 우승 가능성,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목표는?

 

 

(기적을 만들고 있는 여우들의 리그 우승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6라운드까지 치른 이 시점에서 레스터 시티의 EPL 우승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시즌 전 레스터 시티의 우승배당률은 자그마치 5000/1, 쉽게 말해 1,000원을 걸면 500만원의 배당금이 나오는 셈이다. BBC에서 이 5000/1 확률을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까지 생존할 확률, 혹은 설인이나 네스호의 괴물이 실존할 확률, 이번 시즌 이내 EPL에 여성감독이 부임할 확률 등이라 빗대고 있다. 지난 아스날 원정에서 종료직전 역전패를 거두어 뒤집힐 여지를 마련했다고 보는 시선들이 많지만, 아스날 전 이후 레스터의 일정은 다소 여유롭다. 이후에 치를 상대는 노리치-웨스트브롬위치-왓포드-뉴캐슬 등 하나같이 현재 레스터보다 전력이 한 수 아래의 팀이며, 올시즌 맞대결에서 레스터가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상대이다. 그들이 후반부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경기한다면, 그들이 우승하는 것이 마냥 기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의 한 슈퍼컴퓨터는 레스터 시티의 최종순위를 3위로 내다보고 있으며, 리그 우승은 아스날로 승점 76점으로 끝날 것이라 예측했다. ESPN에서는 자신들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레스터가 최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확정짓는다고 보고 있다. 즉, 레스터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예측하는 레스터의 최종 순위는 '못해도 3위 이내' 라는 셈이다.

 

  그렇다면 레스터 시티가 설정한 진짜 목표는 어디까지인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시즌이 개막하기 이전에 레스터의 목표 순위를 11위로 잡은 바가 있다. 하지만 선두권에 올라서면서 여우들은 영리하고 빠르게 목표를 재설정하였다. 라니에리는 현실적인 목표로 승점 79점으로 사실상 3~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으나, 리그 우승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라니에리는 "잔류에 대한 압박을 받아온 것이 선수들의 정신력을 더 성장시켰고, 그 압박이 우리를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것으로 바꿨다" 며 현재 그들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레스터는 리그를 제외한 나머지 대회(FA컵, 리그 컵)는 일찌감치 탈락하였기 때문에 일정에 대한 압박감이 전혀 없고,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다. 더군다나, 부상으로 전력 누수를 겪는 데에서 가장 자유롭다는 점도 그들에게 크나큰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리그 우승을 목표로 할 만한 또다른 동기도 있다. 바로 구단의 투자다. 레스터 구단주인 비차이 스리바드하나프라브하는 레스터를 인수한 뒤에 자신의 구단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되면 1억 8천만 파운드(약 3,1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레스터 구단주의 재산은 리버풀 구단주인 존 헨리보다 더 많다). 확실하게 투자지원을 받으려면 그들은 잔여시즌에 쐐기를 박아 모든 것을 결정지으려고 할 것이다. 또 하나, 레스터 시티는 여태껏 단 한 번도 1부리그에선 챔피언에 올라섰던 경험이 없다(2부 리그 우승만 7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새 역사를 기록한다는 다른 명분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빅4가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이, 레스터에게 있어 천재일우(千載一遇)나 다름없다. 영리한 여우들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스포츠에서 강자가 독식하기 보다는, 약자의 드라마같은 기적이 쓰여지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축구는 자본의 영향으로 승패, 그리고 트로피가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강자들 중에서 승자를 예측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강자들 사이에서 우뚝 선 '언더독' 레스터 시티가 모든 판을 어지럽게 만들어놓았고, 그들은 내친 김에 우승까지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EPL에서 수많은 언더독들이 골리앗을 향하여 도전장을 던졌지만, 승리의 여신은 강자의 손을 언제나 들어주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번 시즌에 더더욱 레스터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구장 이름처럼 '왕의 힘(King Power)' 을 받아 레스터가 새 역사를 쓸 것인가?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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