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23Round 첼시 대 블랙번 - 경기결과 2대0 승리, 하지만 총 슈팅 수 31개에 2골. 이기긴 했어도 예전에 첼시의 클래스와 비교한다면 이런 경기에는 보통 다득점 승리로 이길 법한 경기였다. 하지만 공격진의 침체, 그리고 밸런스가 무너진 수비진. 분명 예전 맨유, 아스날과 힘대결을 펼쳤던 첼시의 모습은 아니다.
(오늘 첼시를 살렸던 구세주, 이바노비치(왼쪽))
그동안 10경기에 가까운 무승행진을 고려해본다면 이정도 경기내용은 감안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졌으니 당장 시즌초반 융단폭격으로 양민학살클래스로 복귀하는 건 어려울 테니깐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내용이 첼시에게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입스위치와의 FA컵 64강전 대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으니, 이제 차근차근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예전의 궤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을 대야 할 부분은 있다.
1. 늙어가는 공격진, 언제까지 놔둘 생각인가?
첼시의 자랑이라고 하면 가장 손꼽히는 조합인 '말루다-드록바-아넬카', 이른바 '무서운 흑형느님' 쓰리톱이 있다. 올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름 재미를 봤었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나도 심각하다. 시즌초반에 7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선두를 달리던 말루다의 침묵, '신이라 불리던 사나이'인 드록바의 인간화 작업, 히딩크 버프로 인해 드록바의 환상의 짝궁이 된 아넬카의 무존재감(아넬카는 요근래 다시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긴 한다). 어쩌면 이 세 선수의 부진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문제는 바로 드록바다.
(다시는 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건가요, 드록인이시여...)
2004년 여름, 무리뉴의 부름을 받고 스탬포드 브릿지로 날아온 드록바는 어느덧 EPL 7년차에 접어들었고, 그가 푸른색 유니폼을 입으면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는 전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에게 '신'이라는 칭호까지 붙었던 건 당연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드록바가 없을 때, 누가 그를 대신할 지도 걱정거리다. 드록바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고, 그이기에 부진이라는 단어를 쓸 뿐이지, 사실 30대를 넘기기 시작하면 축구선수 커리어는 황혼기에 접어든 것이다(긱스처럼 예외적인 케이스도 가끔 있긴 하지만).
사실 드록바의 부진은 그 전에도 한 번 있었다. 08/09시즌 전반기에 침체되서 한 때 이적설까지 나돌았으나, 후반기에 말끔하게 부활하여 호날두와 득점왕경쟁을 겨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 말라리아를 앓고 난 이후로 도무지 폼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안첼로티는 여전히 드록바를 꾸준히 기용하며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시키고 있으니 폼은 폼대로 안돌아고 체력만 혹사하는 꼴이 되고 있다(로테이션에 비교적 소극적인 안첼로티의 방침에도 어느정도 책임은 있다). 블랙번전만 보더라도 드록바의 폼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쉽게 보여주는 사례다. 박스 안에서의 둔한 움직임과 저돌적인 돌파는 온데간데 없이 머뭇거리는 모습. 이건 분명 드록신시절의 모습은 아니다. 드록바의 부진이 말루다와 아넬카에의 부진으로 뻗쳐가니 첼시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아플 것이다.
2. '다니엘 스터리지'라는 카드를 이제 쓸 때가 되지 않았나?
그동안 첼시는 드록바의 백업으로 프랑크 디산토와 다니엘 스터리지를 보유하고 있다. 디산토의 경우에는 생각만큼 백업을 커버할 만큼 성장하지 못해 결국 임대신세로 여러팀을 돌며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반면 다니엘 스터리지는 디산토의 경우와는 다르다. 다니엘 스터리지, 맨체스터 시티 유소년 시스템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유망주 출신이다. 하지만, 맨시티가 갑부 구단주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스타 플레이어들 영입으로 인한 피해자가 되는 바람에 맨시티를 떠나 첼시로 이적했다. 스터리지의 현재 위치는 첼시의 4번째 공격옵션, 하지만 그의 잠재력은 드록바나 아넬카 못지 않다는 게 영국 내에선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허나 첼시의 소극적인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인해 다니엘 스터리지는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옮겨와도 리저브 경기에서만 미친듯한 활약을 보여주며 리저브 리그에서만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다. 간간히 리그 컵이나 FA컵 등 비중없는 경기에서나 얼굴을 비추지만 그것도 교체 출장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말해서 스터리지 같은 재능을 리저브에서만 돌리기엔 무척이나 아깝다. 이번 입스위치전에서 보여줬듯이 스터리지도 엄창난 폭발력과 파괴력을 지닌 스트라이커다. 경기출장만 충분히 보장된다면 지금 아넬카나 드록바 자리를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를 잉여자원으로 분류하고 힘에 부치는 노장 3인방을 계속 굴리게 되면 결과적으로 팀만 망치는 꼴이 되는 셈이다.
3. 첼시도 이제 리빌딩 시점이 왔다. 언제까지 노장선수들만 기용할 생각인가?
안첼로티 감독도 이제 슬슬 새로운 전술을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첼시가 자랑하는 쓰리톱의 노쇠화, 첼시의 자랑거리로 여겨졌던 '숨막혔던' 중원라인의 슬림화, 부상병동의 수비진에 맥을 못추는 풀백라인. 겉으로 보기 좋아 우승후보지, 속을 까보면 끙끙 앓고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기존의 선수들만 무한 기용하는 덕분에 첼시 유스에서 자라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유망주들은 리저브 리그에서만 만족하며, 첼시 유스들이게 1군 출장기회는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적시장에서 안첼로티감독은 절대 선수 영입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대로 유지했다간 첼시도 리버풀처럼 언제 빅4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지도 모른다. 첼시에는 다니엘 스터리지를 비롯하여 조쉬 맥키크런, 가엘 카쿠타, 패트릭 반 안홀트, 제프리 브루마 등 뛰어난 유망주들이 대기하고 있다. 최소한 겨울이적시장에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진작에 이런 유망주들에게 적극적인 기회를 줘야했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출장기회를 주면서 그들의 기량을 슬슬 실전에 맞춰서 끌어올려야 한다. 물론 유망주들을 당장 1군 무대에 투입시키는 게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첼시 입장에선 지금 당장의 성적을 바짝 올리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단시간 처방으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수비나 공격이나 미드필더나 전체적인 리빌딩은 필요한 시점이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첼시까지 굳이 밀란 감독으로 있을 때처럼 노인정 소리를 듣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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